“엄마, 미안해하지 말고 그냥 오세요”…‘강미숙’이 된 카라 보스

입력 2020.06.15 (11:36) 수정 2020.06.1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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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에 해외로 입양을 가게 된 한 여성이 36년 만에 한국 법원에 아버지와 자신이 친부모-친자식 관계임을 인정해달라는 소송에서 승소했습니다. 법원은 유전자 정보 대조 결과 두 사람이 명백하게 가족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이 여성은 호적상 비어 있던 아버지 자리를 채울 수 있게 됐습니다. 30여 년 만에 아버지를 찾은 여성이, 아버지를 상대로 소송을 걸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요?

미국으로 입양된 뒤의 카라 보스(한국 이름 ‘강미숙’) 씨미국으로 입양된 뒤의 카라 보스(한국 이름 ‘강미숙’) 씨

■ 1983년 11월 충북 괴산서 발견…3살에 미국으로 입양된 카라 보스(강미숙)

소송의 주인공 카라 보스(한국 이름 '강미숙') 씨는 2살이던 1983년 충북 괴산의 한 시장 주차장에서 홀로 발견됐습니다. 당시 작성된 보스 씨 관련 서류에는 보스 씨가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말하며 영리'했고 '빨간색 실크 상의에 붉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적혀 있지만, 어떻게 그곳에서 발견됐는지 보스 씨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듬해 보스 씨는 미국으로 입양돼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기 전까지 미국에서 살았습니다.

남편과 함께 네덜란드에서 지내던 보스 씨는 딸이 2살이 되던 해,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보스 씨는 2살이 된 딸을 보며 어머니와 딸 사이의 특별한 유대감을 느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때문에 자신이 2살이 되던 해 딸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 뒤에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가 궁금해졌다는 것입니다.

발견 당시 작성된 서류에는 ‘빨간색 실크 상의, 붉은 바지 입었음’이라고 적혀 있다.발견 당시 작성된 서류에는 ‘빨간색 실크 상의, 붉은 바지 입었음’이라고 적혀 있다.

■ 아버지 찾았지만…"어머니 만나려면 소송뿐"

2016년, 보스 씨는 친어머니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의 조언에 따라 입양인의 가족을 찾는 사이트에 유전자 정보도 등록해두고, 직접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에는 자신이 발견됐던 충북 괴산을 방문해 가족을 찾는다는 전단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2019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이헤리티지'라는 사이트에서 보스 씨와 유전자 정보가 상당히 일치하는 사람을 찾았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입니다.

보스 씨와 유전자 정보가 일치하는 이 사람은 영국 유학생 A 씨로, 보스 씨는 대화를 통해 자신과 A 씨가 이모와 조카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지었습니다. A 씨의 할아버지가 보스 씨의 아버지일 수 있다는 것이죠. 보스 씨는 아버지를 만나 어머니에 대해 묻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보스 씨가 아버지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A 씨의 친척들이 보스 씨를 만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친척들을 찾아가 "아버지를 만나서 어머니에 대해 아느냐는 딱 한 가지 질문만 할 수 있게 해준다면,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고 말하며 간절히 부탁해봤지만, 끝내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네덜란드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보스 씨는 "입양인들은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걸 느꼈다."라며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버려진 지 정확히 36년이 되던 지난해 11월, 자신이 아버지의 딸임을 인정받는 소송을 한국 법원에 제기했습니다.

지난 12일 판결을 듣기 위해 서울가정법원을 방문한 카라 보스(한국 이름 ‘강미숙’) 씨지난 12일 판결을 듣기 위해 서울가정법원을 방문한 카라 보스(한국 이름 ‘강미숙’) 씨

■ 유전자 정보 99.9% 일치…"원고는 피고의 친생자임을 인정한다"

법원 명령에 따라 보스 씨와 보스 씨의 아버지는 유전자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 두 사람의 유전자 정보는 99.9%의 확률로 일치했습니다.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보스 씨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보스 씨는 직접 아버지의 집으로 찾아가, 눈이 마주친 아버지에게 "저를 아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손을 내젓기만 했고, 보스 씨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5월 29일에 있던 첫 재판에도 아버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난 12일, 보스 씨는 선고를 듣기 위해 서울가정법원으로 출석했습니다. 판사의 입에서 "원고(카라 보스)는 피고(아버지)의 친생자임을 인지한다."라는 판결이 나온 직후 보스 씨는 환하게 미소지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흐느껴 울었습니다. 이날 법정에는 보스 씨와 같은 해외 입양자들이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보스 씨를 강하게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밝혔습니다.

보스 씨는 이번 주 중 드디어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보스 씨는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해 알고 있는지, 그렇다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건,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보스 씨와 보스 씨의 변호사는 취재진에게 이렇게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기사를 쓸 때 보스 씨의 이름 옆에 한국 이름인 '강미숙'을 함께 표기해 달라"고요. 어머니는 보스 씨의 미국 이름을 모를 테니, 한국 이름 '강미숙'을 보고 어머니가 보스 씨를 찾아올 수 있도록 말입니다.

끝으로, 보스 씨는 어머니를 만나면 이 말을 전하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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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미안해하지 말고 그냥 오세요”…‘강미숙’이 된 카라 보스
    • 입력 2020-06-15 11:36:19
    • 수정2020-06-15 19:51:40
    취재K
3살에 해외로 입양을 가게 된 한 여성이 36년 만에 한국 법원에 아버지와 자신이 친부모-친자식 관계임을 인정해달라는 소송에서 승소했습니다. 법원은 유전자 정보 대조 결과 두 사람이 명백하게 가족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이 여성은 호적상 비어 있던 아버지 자리를 채울 수 있게 됐습니다. 30여 년 만에 아버지를 찾은 여성이, 아버지를 상대로 소송을 걸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요?

미국으로 입양된 뒤의 카라 보스(한국 이름 ‘강미숙’) 씨
■ 1983년 11월 충북 괴산서 발견…3살에 미국으로 입양된 카라 보스(강미숙)

소송의 주인공 카라 보스(한국 이름 '강미숙') 씨는 2살이던 1983년 충북 괴산의 한 시장 주차장에서 홀로 발견됐습니다. 당시 작성된 보스 씨 관련 서류에는 보스 씨가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말하며 영리'했고 '빨간색 실크 상의에 붉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적혀 있지만, 어떻게 그곳에서 발견됐는지 보스 씨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듬해 보스 씨는 미국으로 입양돼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기 전까지 미국에서 살았습니다.

남편과 함께 네덜란드에서 지내던 보스 씨는 딸이 2살이 되던 해,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보스 씨는 2살이 된 딸을 보며 어머니와 딸 사이의 특별한 유대감을 느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때문에 자신이 2살이 되던 해 딸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 뒤에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가 궁금해졌다는 것입니다.

발견 당시 작성된 서류에는 ‘빨간색 실크 상의, 붉은 바지 입었음’이라고 적혀 있다.
■ 아버지 찾았지만…"어머니 만나려면 소송뿐"

2016년, 보스 씨는 친어머니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의 조언에 따라 입양인의 가족을 찾는 사이트에 유전자 정보도 등록해두고, 직접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에는 자신이 발견됐던 충북 괴산을 방문해 가족을 찾는다는 전단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2019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이헤리티지'라는 사이트에서 보스 씨와 유전자 정보가 상당히 일치하는 사람을 찾았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입니다.

보스 씨와 유전자 정보가 일치하는 이 사람은 영국 유학생 A 씨로, 보스 씨는 대화를 통해 자신과 A 씨가 이모와 조카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지었습니다. A 씨의 할아버지가 보스 씨의 아버지일 수 있다는 것이죠. 보스 씨는 아버지를 만나 어머니에 대해 묻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보스 씨가 아버지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A 씨의 친척들이 보스 씨를 만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친척들을 찾아가 "아버지를 만나서 어머니에 대해 아느냐는 딱 한 가지 질문만 할 수 있게 해준다면,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고 말하며 간절히 부탁해봤지만, 끝내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네덜란드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보스 씨는 "입양인들은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걸 느꼈다."라며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버려진 지 정확히 36년이 되던 지난해 11월, 자신이 아버지의 딸임을 인정받는 소송을 한국 법원에 제기했습니다.

지난 12일 판결을 듣기 위해 서울가정법원을 방문한 카라 보스(한국 이름 ‘강미숙’) 씨
■ 유전자 정보 99.9% 일치…"원고는 피고의 친생자임을 인정한다"

법원 명령에 따라 보스 씨와 보스 씨의 아버지는 유전자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 두 사람의 유전자 정보는 99.9%의 확률로 일치했습니다.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보스 씨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보스 씨는 직접 아버지의 집으로 찾아가, 눈이 마주친 아버지에게 "저를 아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손을 내젓기만 했고, 보스 씨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5월 29일에 있던 첫 재판에도 아버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난 12일, 보스 씨는 선고를 듣기 위해 서울가정법원으로 출석했습니다. 판사의 입에서 "원고(카라 보스)는 피고(아버지)의 친생자임을 인지한다."라는 판결이 나온 직후 보스 씨는 환하게 미소지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흐느껴 울었습니다. 이날 법정에는 보스 씨와 같은 해외 입양자들이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보스 씨를 강하게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밝혔습니다.

보스 씨는 이번 주 중 드디어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보스 씨는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해 알고 있는지, 그렇다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건,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보스 씨와 보스 씨의 변호사는 취재진에게 이렇게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기사를 쓸 때 보스 씨의 이름 옆에 한국 이름인 '강미숙'을 함께 표기해 달라"고요. 어머니는 보스 씨의 미국 이름을 모를 테니, 한국 이름 '강미숙'을 보고 어머니가 보스 씨를 찾아올 수 있도록 말입니다.

끝으로, 보스 씨는 어머니를 만나면 이 말을 전하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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