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현 보고서’ 후 6년…대한민국 ‘아동학대’는 달라졌을까?

입력 2020.06.1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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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9살 남자 어린이가 여행용 가방에 갇혀있다가 숨지고, 창녕에서는 학대당하던 9살 여자 어린이가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등 아동학대가 잇따르며 이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7년 전, 소풍날 의붓어머니에게 맞아 죽은 '울산 이서현 어린이 사망 사건' 때도 많은 사람이 분노했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이 사건을 분석한 '이서현 보고서'를 취재진이 입수해 분석해봤습니다. 당시에는 사건 당사자들을 고려해 보고서가 비공개 처리됐습니다.

소풍날 의붓어머니에게 맞아 죽음에 이른 이서현 어린이

7년 전, 울산에서 8살 여자 어린이가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갈비뼈가 부러졌는데 부러진 뼈가 폐를 찔러 사망한 겁니다.

2013년 10월 24일. 그날은 숨진 이서현 어린이의 소풍날이었습니다. 서현이는 그날 의붓어머니에게 죽음에 이를 정도로 맞았습니다. 이웃 아주머니에게 받은 용돈 2만 원 중에서 2천 원가량이 없어졌다며 서현이를 때린 의붓어머니, '소풍만은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서현이의 머리와 가슴을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렸습니다.

한국판 '클림비 보고서'…국내 유일 아동학대 사망보고서


이 사건은 당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고 국회 남인순 의원실과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4년, 국내에서 유일한 아동학대 사망보고서인 '이서현 보고서'를 냈습니다.

지난 2002년 영국에서 발간된 '클림비 보고서'의 한국판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클림비'라는 8살 여자 어린이가 아동학대로 사망한 이후 영국 정부는 2년간 진상조사를 거쳐 보고서를 냈고 이후 아동보호시스템을 학대예방 중심으로 바꿨습니다.

그럼 '이서현 보고서'가 나온 뒤 6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달라졌을까요?

사망 2년 전, 유치원 교사가 아동학대 신고했지만….

서현이가 학대당하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건 서현이가 숨지기 2년여 전, 포항에서 유치원을 다닐 때였습니다.

서현이의 몸에 멍과 상처가 계속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유치원 교사가 신고했습니다. 당시 유치원 교사는 서현이가 '지속적인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1년 전에도 머리에 죽도로 맞은 듯한 상처가 났고, 두 달 전에도 상처가 났다고 전했습니다. 신고 당일에는 여러 차례 때린 것으로 보이는 멍 자국도 생생했습니다. 하지만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상담원은 '원가정보호'를 결정했고 서현이는 의붓어머니가 있는 집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당시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상담원은 입사 5개월이 조금 안 된 신입사원이었습니다. 상담원은 신고 당일 유치원에서 서현이를 만났고 5일이 지난 뒤에야 서현이를 소아과 병원으로 데려가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미 멍이 없어진 뒤였습니다.

학대 아동 대면조사는 단 두 번, 위험점수는 계속 낮춰

이렇게 서현이를 단 두 번 만났을 뿐인데 서현이의 위험 사정척도, 즉 아동학대 위험성 점수는 2달 동안 4번에 걸쳐 꾸준히 하락했습니다.

'아동이 이유 없이 보호자를 두려워하거나 눈치를 본다'는 항목의 위험 수준이 '중'에서 '저'로 하향 조정되고, '아동이 무표정하고 경직되어 있거나 혹은 위축돼 있고 자신감이 없다'는 항목의 위험 수준이 '저'에서 '없음'으로 변경됐습니다. 서현이를 직접 보지도 않고 어떻게 이런 판단을 했을까요?

상담원은 서현이가 인천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두 달가량 동안 13차례 학대 행위자인 서현이의 의붓어머니를 상담했습니다. 주로 전화로 이뤄졌고, 서현이의 친아버지는 단 한 차례 전화통화만 했을 뿐입니다. 결국, 서현이의 위험성을 학대 가해자의 말을 듣고 판단한 셈입니다.

이사로 중단된 상담…아동보호망 작동 안 돼

최초로 학대가 신고된 후 두 달 만에 서현이는 인천으로 이사 가게 됩니다. 당시 유치원 교사는 이사하기 전 서현이가 "인천에 가지 않고 선생님이랑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매우 심하게 울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그 또래 아이들이 이사에 대한 개념이 없어 이사한다고 하면 '안녕'하고 가버리는 것과 비교해 남달랐다는 겁니다.

인천으로 이사한 후 인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포항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서현이 사례를 넘겨받았습니다. 담당 상담원이 서현이의 의붓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을 권유했지만, 의붓어머니는 "문제가 없으니 도움이 필요 없다"고 거부했습니다.

상담원이 이후에도 서현이의 의붓어머니에게 몇 차례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았고, 이후 서현이가 숨지기 전 아동보호기관 등에서 서현이나 그 가족에게 접촉을 시도한 적은 없었습니다. 서현이에게 아동보호망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셈입니다.

대퇴부 골절, 손발 화상에도 누구도 몰랐던 학대


이후 울산 울주로 이사한 뒤 초등학교에 입학한 서현이는 밝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고 담임 교사는 기억합니다. 서현이의 의붓어머니도 학급어머니회장을 맡을 정도로 적극적인 부모였습니다.

그동안 서현이는 대퇴부 골절로 병원에 12일간 입원했고, 손과 발에 화상을 입어 한 달가량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서현이가 학대당하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서현이가 숨지고 난 뒤 경찰 조사 결과 대퇴부 골절도 의붓어머니의 폭행으로 인한 것이었고, 화상은 서현이의 아버지와 싸운 뒤 화가 난 의붓어머니가 서현이에게 뜨거운 물을 부었던 것이었습니다.

서현이 사망 후 신고 의무자였던 교사와 당시 치료 의사 등을 조사했지만 신고 의무자 누구도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서현 보고서' 후 처벌은 강화됐지만…반복되는 아동 학대

'이서현 보고서' 이후 국회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신고 의무를 강화하는 것 등이 주요 골자입니다. 아동학대 가해자인 부모에 대한 지속적 교육과 상담 등도 담기긴 했지만, 강제성은 없습니다. 결국 처벌은 강화됐지만, 아동학대를 '예방'하기에는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한 셈입니다.

'이서현 보고서' 이후에도 대한민국에서는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랐습니다. 아동권리보장원이 파악한 것만 2018년에 28명의 아동이 학대로 숨졌습니다. 하지만 이서현 보고서 이후 해당 아동이 사망에 이르기까지 다각적으로 아동보호시스템을 점검한 보고서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2020년, 충남 천안에서는 9살 남자 어린이가 의붓어머니에 의해 여행용 가방에 갇혀있다 숨졌습니다. 한 달 전 치료를 받은 병원에서 아동학대로 의심된다고 신고했지만, 경찰도 아동보호전문기관도 뒤늦게 확인했고, 아이가 처한 위험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경남 창녕에서는 이미 1월에 위기 아동으로 분류됐던 9살 여자아이가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학대를 당하다 목숨을 걸고 탈출했습니다.

언제쯤이면 '제2의 이서현'이 사라지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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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서현 보고서’ 후 6년…대한민국 ‘아동학대’는 달라졌을까?
    • 입력 2020-06-15 15:44:30
    취재K
최근 9살 남자 어린이가 여행용 가방에 갇혀있다가 숨지고, 창녕에서는 학대당하던 9살 여자 어린이가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등 아동학대가 잇따르며 이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7년 전, 소풍날 의붓어머니에게 맞아 죽은 '울산 이서현 어린이 사망 사건' 때도 많은 사람이 분노했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이 사건을 분석한 '이서현 보고서'를 취재진이 입수해 분석해봤습니다. 당시에는 사건 당사자들을 고려해 보고서가 비공개 처리됐습니다.

소풍날 의붓어머니에게 맞아 죽음에 이른 이서현 어린이

7년 전, 울산에서 8살 여자 어린이가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갈비뼈가 부러졌는데 부러진 뼈가 폐를 찔러 사망한 겁니다.

2013년 10월 24일. 그날은 숨진 이서현 어린이의 소풍날이었습니다. 서현이는 그날 의붓어머니에게 죽음에 이를 정도로 맞았습니다. 이웃 아주머니에게 받은 용돈 2만 원 중에서 2천 원가량이 없어졌다며 서현이를 때린 의붓어머니, '소풍만은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서현이의 머리와 가슴을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렸습니다.

한국판 '클림비 보고서'…국내 유일 아동학대 사망보고서


이 사건은 당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고 국회 남인순 의원실과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4년, 국내에서 유일한 아동학대 사망보고서인 '이서현 보고서'를 냈습니다.

지난 2002년 영국에서 발간된 '클림비 보고서'의 한국판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클림비'라는 8살 여자 어린이가 아동학대로 사망한 이후 영국 정부는 2년간 진상조사를 거쳐 보고서를 냈고 이후 아동보호시스템을 학대예방 중심으로 바꿨습니다.

그럼 '이서현 보고서'가 나온 뒤 6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달라졌을까요?

사망 2년 전, 유치원 교사가 아동학대 신고했지만….

서현이가 학대당하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건 서현이가 숨지기 2년여 전, 포항에서 유치원을 다닐 때였습니다.

서현이의 몸에 멍과 상처가 계속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유치원 교사가 신고했습니다. 당시 유치원 교사는 서현이가 '지속적인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1년 전에도 머리에 죽도로 맞은 듯한 상처가 났고, 두 달 전에도 상처가 났다고 전했습니다. 신고 당일에는 여러 차례 때린 것으로 보이는 멍 자국도 생생했습니다. 하지만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상담원은 '원가정보호'를 결정했고 서현이는 의붓어머니가 있는 집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당시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상담원은 입사 5개월이 조금 안 된 신입사원이었습니다. 상담원은 신고 당일 유치원에서 서현이를 만났고 5일이 지난 뒤에야 서현이를 소아과 병원으로 데려가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미 멍이 없어진 뒤였습니다.

학대 아동 대면조사는 단 두 번, 위험점수는 계속 낮춰

이렇게 서현이를 단 두 번 만났을 뿐인데 서현이의 위험 사정척도, 즉 아동학대 위험성 점수는 2달 동안 4번에 걸쳐 꾸준히 하락했습니다.

'아동이 이유 없이 보호자를 두려워하거나 눈치를 본다'는 항목의 위험 수준이 '중'에서 '저'로 하향 조정되고, '아동이 무표정하고 경직되어 있거나 혹은 위축돼 있고 자신감이 없다'는 항목의 위험 수준이 '저'에서 '없음'으로 변경됐습니다. 서현이를 직접 보지도 않고 어떻게 이런 판단을 했을까요?

상담원은 서현이가 인천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두 달가량 동안 13차례 학대 행위자인 서현이의 의붓어머니를 상담했습니다. 주로 전화로 이뤄졌고, 서현이의 친아버지는 단 한 차례 전화통화만 했을 뿐입니다. 결국, 서현이의 위험성을 학대 가해자의 말을 듣고 판단한 셈입니다.

이사로 중단된 상담…아동보호망 작동 안 돼

최초로 학대가 신고된 후 두 달 만에 서현이는 인천으로 이사 가게 됩니다. 당시 유치원 교사는 이사하기 전 서현이가 "인천에 가지 않고 선생님이랑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매우 심하게 울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그 또래 아이들이 이사에 대한 개념이 없어 이사한다고 하면 '안녕'하고 가버리는 것과 비교해 남달랐다는 겁니다.

인천으로 이사한 후 인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포항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서현이 사례를 넘겨받았습니다. 담당 상담원이 서현이의 의붓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을 권유했지만, 의붓어머니는 "문제가 없으니 도움이 필요 없다"고 거부했습니다.

상담원이 이후에도 서현이의 의붓어머니에게 몇 차례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았고, 이후 서현이가 숨지기 전 아동보호기관 등에서 서현이나 그 가족에게 접촉을 시도한 적은 없었습니다. 서현이에게 아동보호망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셈입니다.

대퇴부 골절, 손발 화상에도 누구도 몰랐던 학대


이후 울산 울주로 이사한 뒤 초등학교에 입학한 서현이는 밝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고 담임 교사는 기억합니다. 서현이의 의붓어머니도 학급어머니회장을 맡을 정도로 적극적인 부모였습니다.

그동안 서현이는 대퇴부 골절로 병원에 12일간 입원했고, 손과 발에 화상을 입어 한 달가량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서현이가 학대당하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서현이가 숨지고 난 뒤 경찰 조사 결과 대퇴부 골절도 의붓어머니의 폭행으로 인한 것이었고, 화상은 서현이의 아버지와 싸운 뒤 화가 난 의붓어머니가 서현이에게 뜨거운 물을 부었던 것이었습니다.

서현이 사망 후 신고 의무자였던 교사와 당시 치료 의사 등을 조사했지만 신고 의무자 누구도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서현 보고서' 후 처벌은 강화됐지만…반복되는 아동 학대

'이서현 보고서' 이후 국회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신고 의무를 강화하는 것 등이 주요 골자입니다. 아동학대 가해자인 부모에 대한 지속적 교육과 상담 등도 담기긴 했지만, 강제성은 없습니다. 결국 처벌은 강화됐지만, 아동학대를 '예방'하기에는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한 셈입니다.

'이서현 보고서' 이후에도 대한민국에서는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랐습니다. 아동권리보장원이 파악한 것만 2018년에 28명의 아동이 학대로 숨졌습니다. 하지만 이서현 보고서 이후 해당 아동이 사망에 이르기까지 다각적으로 아동보호시스템을 점검한 보고서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2020년, 충남 천안에서는 9살 남자 어린이가 의붓어머니에 의해 여행용 가방에 갇혀있다 숨졌습니다. 한 달 전 치료를 받은 병원에서 아동학대로 의심된다고 신고했지만, 경찰도 아동보호전문기관도 뒤늦게 확인했고, 아이가 처한 위험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경남 창녕에서는 이미 1월에 위기 아동으로 분류됐던 9살 여자아이가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학대를 당하다 목숨을 걸고 탈출했습니다.

언제쯤이면 '제2의 이서현'이 사라지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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