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가슴곰이요? 버릴 것 하나 없이 다 먹죠”

입력 2020.06.16 (14:47) 수정 2020.06.1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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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엔 웅담"… '특별식사' 제공?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경기도 용인의 한 농가에 반달가슴곰 30여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모두 국제 멸종위기종이라는 신분에 걸맞지 않게 두 평 남짓한 좁은 우리에서 지내고 있었고, 우리 바깥에 붙어 있는 물통에 입을 뻗어 허겁지겁 물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철조망을 엮어 만든 '뜬 장' 아래로는 언제부터 쌓여 있는지 모를 배설물이 모여 악취를 뿜어냈습니다.

KBS 취재진이 이 농가를 방문한 것은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로부터 제보받은 한 장의 광고지 때문입니다. "코로나19 등 다양한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건강한 삶을 위해 (..) 반달곰 웅담 특별 할인 판매 신청을 받습니다."라고 적힌 광고지에는 반달곰 도축 일자와 시간이 적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사전 예약 후 당일 현장 방문자에게는 특별식사 무료제공"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곰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돼 있습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취재진은 웅담을 구입하려는 손님으로 가장해 이날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의 한 농가가 웅담 특별할인 판매를 한다며 배포한 광고지경기도 용인시의 한 농가가 웅담 특별할인 판매를 한다며 배포한 광고지

■ 수의사 없이 마취·도축

반달곰 도축은 순식간에 이뤄졌습니다. 농가 주인 A 씨는 마취총을 이용해 반달곰에 진정제를 주입했고, 5분가량 기다린 뒤 우리로 들어가서 목 부분을 절단해 피를 빼냈습니다. 빠진 피는 그대로 우리 밑으로 흘러 들어간 채 방치됐습니다. 현행법상 야생동물에 대한 마취는 수의사의 입회하에 진행돼야 하고, 독극물인 마취제를 다룰 때도 수의사의 처방이 필요하지만 이 같은 과정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정현규 수의사는 "마취는 독약 성분이 있어 수의사의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며 "불법일 가능성이 커 보이기도 하지만, 정확한 용량이 주입되지 않아 고기나 혈액에 마취제 성분이 들어갈 수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 "버릴 것 하나 없이 다 먹죠"?… 곰 식용은 불법

이날 나온 웅담은 70그램 가량. 이 손바닥 반만 한 웅담을 위해 23년간 갇혀 살던 곰은 죽어서야 우리를 나올 수 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웅담을 빼낸 뒤였습니다. 도축에 나선 직원은 웅담을 빼낸 반달가슴곰을 부위별로 해체하고, '특별식사'를 위한 상차림을 시작했습니다. 곰 발바닥은 특히 귀한 것이라며, 버릴 곳 하나 없이 먹을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현재 국내에선 곰 식용이 금지돼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웅담 외엔 곰의 어떤 부위도 먹을 수 없습니다. 곰고기 매매뿐 아니라, 도축 업자가 웅담을 빼낸 뒤 판매하지 않고 자가 소비하는 것조차 금지돼 있을 정도로 엄밀합니다.

2011년 대법원은 "(반달가슴곰의) 용도변경이 불가피한 경우는 웅담 등 약재로만 제한한 것으로 보여진다"라며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듬해 대전지법도 "반달가슴곰은 적극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며 반달가슴곰을 직접 길렀어도 식용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 환경부 "법적 조치 검토"

담당 부처는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곰 식용이 금지된 건 충분히 알려져 있고 해당 농가도 알고 있을 것이므로 현장 조사 뒤 불법이 확인되면 수사 의뢰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 지역을 담당하는 한강유역환경청은 "불법 취식 뿐 아니라 도축 과정에서 약물 사용 등에 문제가 없는지 등을 검토해, 관계부처에 협조 요청하고 관련 규정에 따라 처리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환경부는 6월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사육 곰은 400여 마리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암암리에 불법 증식이 이루어져 정확한 숫자라고 보기 힘듭니다. 실제 동물자유연대는 이 농가를 사전 답사해 불법 증식으로 보이는 새끼 곰 3마리를 지난해에 이어 올해 추가로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불법증식으로 추정되는 새끼 곰불법증식으로 추정되는 새끼 곰

농가 주인 A 씨는 "내가 먹는 김에 오는 손님들에게 조금 맛보라고 한 거지, 곰 고기를 판매한 것은 아니었다"며, "자가소비까지 금지된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습니다.

■ "정부 주도로 곰 사육… 필요 없어지니 방치"

특히 A 씨는 "애당초 사육 곰을 정상적으로 분양, 증식해 왔는데 이제 와서 농가를 전과자로 만들고 범죄자를 만드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는데, 실제 사육 곰과 관련한 정부 정책을 살펴보면 농가의 입장도 그냥 넘길 수는 없어 보입니다.

1981년 정부는 농가의 소득을 높이겠다며 곰 수입과 사육을 독려했는데, 멸종위기종인 곰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제 여론이 높아지며 4년 만에 곰 수입을 금지합니다. 이 사이 수입된 곰이 5백여 마리입니다. 2005년 정부는 웅담 채취를 합법화하지만, 웅담 수요가 줄어들며 수백 마리의 곰이 방치되고 있는 겁니다.

이제 남은 것은 4백여 마리. 남은 곰들은 웅담 채취가 가능한 연령인 10살을 넘겨 도축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개체 수가 늘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자연도태'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엔 사육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고 사료비 등 농가 지출도 막대합니다. 그런 중에 불법 취식, 불법 증식과 같은 사각지대가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 개체 수 절반 이하로 감소…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어"

이 때문에 동물단체 등에서는 수년 전부터 '곰 보호소(생츄어리·sanctuary)' 설치를 요구해 왔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야생동물들을 구조하고 적합한 환경을 조성해 죽을 때까지 보호하는 공간입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야생동물들을 구조하고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는 곰 보호소 '생츄어리'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AnimalsAsia]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야생동물들을 구조하고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는 곰 보호소 '생츄어리'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AnimalsAsia]

동물자유연대는 "정부가 사육곰 문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지만 2005년 이후 15년간 정부가 사육곰 문제 해결에 지원한 국비는 단 59억 원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52억 원이 중성화 사업에 사용됐다"며 "현재는 개체 수가 절반 이하로 감소한 상태이므로 우리 사회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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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16 14:47:43
    • 수정2020-06-16 15:26:59
    취재K
■ "코로나엔 웅담"… '특별식사' 제공?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경기도 용인의 한 농가에 반달가슴곰 30여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모두 국제 멸종위기종이라는 신분에 걸맞지 않게 두 평 남짓한 좁은 우리에서 지내고 있었고, 우리 바깥에 붙어 있는 물통에 입을 뻗어 허겁지겁 물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철조망을 엮어 만든 '뜬 장' 아래로는 언제부터 쌓여 있는지 모를 배설물이 모여 악취를 뿜어냈습니다.

KBS 취재진이 이 농가를 방문한 것은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로부터 제보받은 한 장의 광고지 때문입니다. "코로나19 등 다양한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건강한 삶을 위해 (..) 반달곰 웅담 특별 할인 판매 신청을 받습니다."라고 적힌 광고지에는 반달곰 도축 일자와 시간이 적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사전 예약 후 당일 현장 방문자에게는 특별식사 무료제공"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곰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돼 있습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취재진은 웅담을 구입하려는 손님으로 가장해 이날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의 한 농가가 웅담 특별할인 판매를 한다며 배포한 광고지
■ 수의사 없이 마취·도축

반달곰 도축은 순식간에 이뤄졌습니다. 농가 주인 A 씨는 마취총을 이용해 반달곰에 진정제를 주입했고, 5분가량 기다린 뒤 우리로 들어가서 목 부분을 절단해 피를 빼냈습니다. 빠진 피는 그대로 우리 밑으로 흘러 들어간 채 방치됐습니다. 현행법상 야생동물에 대한 마취는 수의사의 입회하에 진행돼야 하고, 독극물인 마취제를 다룰 때도 수의사의 처방이 필요하지만 이 같은 과정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정현규 수의사는 "마취는 독약 성분이 있어 수의사의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며 "불법일 가능성이 커 보이기도 하지만, 정확한 용량이 주입되지 않아 고기나 혈액에 마취제 성분이 들어갈 수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 "버릴 것 하나 없이 다 먹죠"?… 곰 식용은 불법

이날 나온 웅담은 70그램 가량. 이 손바닥 반만 한 웅담을 위해 23년간 갇혀 살던 곰은 죽어서야 우리를 나올 수 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웅담을 빼낸 뒤였습니다. 도축에 나선 직원은 웅담을 빼낸 반달가슴곰을 부위별로 해체하고, '특별식사'를 위한 상차림을 시작했습니다. 곰 발바닥은 특히 귀한 것이라며, 버릴 곳 하나 없이 먹을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현재 국내에선 곰 식용이 금지돼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웅담 외엔 곰의 어떤 부위도 먹을 수 없습니다. 곰고기 매매뿐 아니라, 도축 업자가 웅담을 빼낸 뒤 판매하지 않고 자가 소비하는 것조차 금지돼 있을 정도로 엄밀합니다.

2011년 대법원은 "(반달가슴곰의) 용도변경이 불가피한 경우는 웅담 등 약재로만 제한한 것으로 보여진다"라며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듬해 대전지법도 "반달가슴곰은 적극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며 반달가슴곰을 직접 길렀어도 식용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 환경부 "법적 조치 검토"

담당 부처는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곰 식용이 금지된 건 충분히 알려져 있고 해당 농가도 알고 있을 것이므로 현장 조사 뒤 불법이 확인되면 수사 의뢰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 지역을 담당하는 한강유역환경청은 "불법 취식 뿐 아니라 도축 과정에서 약물 사용 등에 문제가 없는지 등을 검토해, 관계부처에 협조 요청하고 관련 규정에 따라 처리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환경부는 6월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사육 곰은 400여 마리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암암리에 불법 증식이 이루어져 정확한 숫자라고 보기 힘듭니다. 실제 동물자유연대는 이 농가를 사전 답사해 불법 증식으로 보이는 새끼 곰 3마리를 지난해에 이어 올해 추가로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불법증식으로 추정되는 새끼 곰
농가 주인 A 씨는 "내가 먹는 김에 오는 손님들에게 조금 맛보라고 한 거지, 곰 고기를 판매한 것은 아니었다"며, "자가소비까지 금지된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습니다.

■ "정부 주도로 곰 사육… 필요 없어지니 방치"

특히 A 씨는 "애당초 사육 곰을 정상적으로 분양, 증식해 왔는데 이제 와서 농가를 전과자로 만들고 범죄자를 만드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는데, 실제 사육 곰과 관련한 정부 정책을 살펴보면 농가의 입장도 그냥 넘길 수는 없어 보입니다.

1981년 정부는 농가의 소득을 높이겠다며 곰 수입과 사육을 독려했는데, 멸종위기종인 곰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제 여론이 높아지며 4년 만에 곰 수입을 금지합니다. 이 사이 수입된 곰이 5백여 마리입니다. 2005년 정부는 웅담 채취를 합법화하지만, 웅담 수요가 줄어들며 수백 마리의 곰이 방치되고 있는 겁니다.

이제 남은 것은 4백여 마리. 남은 곰들은 웅담 채취가 가능한 연령인 10살을 넘겨 도축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개체 수가 늘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자연도태'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엔 사육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고 사료비 등 농가 지출도 막대합니다. 그런 중에 불법 취식, 불법 증식과 같은 사각지대가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 개체 수 절반 이하로 감소…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어"

이 때문에 동물단체 등에서는 수년 전부터 '곰 보호소(생츄어리·sanctuary)' 설치를 요구해 왔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야생동물들을 구조하고 적합한 환경을 조성해 죽을 때까지 보호하는 공간입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야생동물들을 구조하고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는 곰 보호소 '생츄어리'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AnimalsAsia]
동물자유연대는 "정부가 사육곰 문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지만 2005년 이후 15년간 정부가 사육곰 문제 해결에 지원한 국비는 단 59억 원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52억 원이 중성화 사업에 사용됐다"며 "현재는 개체 수가 절반 이하로 감소한 상태이므로 우리 사회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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