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빼온 ‘면접평가표’…법원 “부정채용 맞다”

입력 2020.06.16 (16:0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회사 면접 전형을 하루 앞둔 날 오전. A 씨는 아버지에게서 "준비 철저히 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격려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문자와 함께 어떤 문서를 찍은 사진도 함께 보내왔습니다. '면접 평가표'라는 제목이 달린 해당 문서에는, "개인 인적사항, 사회성, 업무수행역량, 성장성" 등의 구체적인 평가 항목과 함께 "면접 포인트", 배점 등이 정리돼 있었습니다. A 씨가 내일 보게 될 면접 전형의 채점표를 아버지가 어떤 방법으로인지 빼내온 것입니다.

아버지는 30분 뒤 "우선 질문사항에 답을 글로 적은 다음 여러 번 반복해 연습하는 것이 좋겠다" "배우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나가는 사람들도 모범답안을 만들어 거울을 보면서 반복연습을 하니까 TV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거다"라고 또 문자를 보냈습니다. A 씨는 "네"라고 답한 뒤, 아버지가 전해준 '족집게' 문서를 참고해 면접을 준비했습니다.

A 씨는 다음 날 오후 5시 반부터 6시까지 면접에 임했고, 닷새 뒤 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당초 면접시험 자격이 있던 사람이 124명이었는데 뽑힌 사람은 32명뿐이었으니, 2.5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입사에 성공한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 뒤, 회사는 A 씨가 부정채용 됐음이 확인됐다며 A 씨를 해고했습니다.

A 씨에 대한 채용절차가 진행 중일 때, A 씨의 아버지가 당시 회사의 노조위원장이었던 B 씨에게 2백만 원을 건넸다는 사실이 경찰 수사로 밝혀진 것입니다. A 씨가 아버지한테 받은 '면접평가표'는 이런 청탁금을 받은 B 씨가 미리 입수해 건네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A 씨는 해고가 부당하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했습니다. 당시 A 씨가 내놓은 주장은 이러했습니다: "채용절차에서 면접의 영향은 적었다". "면접 문제 역시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버지가 불필요하게 면접평가표를 보내줬지만, 이미 면접을 준비하면서 알고 있는 내용에 불과했다". "나는 성실히 취업을 준비해 서류전형에서도 높은 점수(합격자 186명 중 11등)를 받았다". "면허증, 교육 이수, 단기근로 등 관련 경력도 다른 지원자보다 풍부했다". "점수나 순위 조작 등 부정행위도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정당하게' '실력으로' 입사에 성공한 것일뿐, 별 도움도 안되는 면접 평가표를 미리 입수한 것과 자신의 합격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이 같은 A 씨 주장을 받아들여, 회사가 A 씨를 부당해고했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A 씨를 부정채용자로 보고 해고한 회사 처분은 합리적 사유가 인정돼 정당하다는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A 씨 아버지와 노조위원장 B 씨 사이의 부정한 행위가 채용절차에 개입됨으로써, 그 자체만으로 이미 해당 채용절차의 공공성과 그에 대한 일반 공중의 신뢰가 중대하게 훼손돼 A 씨가 공정하게 선발하게 선발되지 못했다는 "규범적 평가"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더 나아가 '면접 평가표' 유출이라는 행위와 A 씨의 채용 사이에 인과관계가 정확히 증명되진 않았더라도, 아예 관계가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채용절차를 보면 ▲서류전형과 인적성시험을 합격한 사람들만 면접전형에 응시할 수 있었고 ▲면접전형에서 면접위원 3명의 평균 점수가 80점 이상인 자들을 대상으로 고득점순으로 합격자가 선정했고(즉 합격자 선정에 있어 서류전형과 인적성 점수는 고려되지 않는 '제로 베이스' 방식) ▲서류전형 점수는 면접점수가 동점인 경우, 동점자 중 최종 합격자를 가려내는 과정에서만 고려사항이 됐습니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인적성시험 이후에는 면접전형이 '독립된' 합격자 선정 과정으로서 채용 당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습니다. A 씨는 자신이 서류전형 점수가 높았고 전체 채용과정에서 면접의 영향은 적었다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달랐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또 실제 A 씨보다 서류전형 점수가 높았던 지원자 중 7명이 면접에서 탈락한 점도 지적하며, "면접평가표를 사전에 받아 준비한 것과 A 씨가 면접전형을 통과한 것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볼 수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또 면접위원들이 청탁금 지급을 바탕으로 면접 평가표가 사전에 유출됐음을 알고 있었다면, 면접 전형에서 A 씨에게 높은 점수를 줘서 A 씨를 합격시켰을 거라고 보기 어렵다고도 설명했습니다.

A 씨는 자신에 대한 해고는 회사의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A 씨의 회사가 정부정책을 수행하는 공익적 성격을 갖고 있어 채용절차에서 일반 사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준수할 것으로 기대되는 점 ▲A 씨에 대한 해고는 정부가 2018년 1월 발표했던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후속조치 및 제도개선 방안'에 따른 조치로서, '채용비리 엄단'이라는 규범적 평가가 반영돼 있는 점 ▲청탁금 교부와 면접 평가표 유출이라는 가볍지 않은 비위 행위가 있었음에도 A 씨와 회사 사이의 근로관계가 유지될 경우, 채용 비리에 엄격히 대처하려는 정부 조치의 의미가 퇴색되는데다 향후 회사의 채용전형 등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정도 등 회사의 대외적 신뢰도와 기업질서가 크게 훼손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들었습니다.

재판부는 또 채용 청탁은 아버지가 벌인 일이긴 하지만, A 씨가 유출된 면접 평가표를 사전에 받아봤고 이것이 A 씨의 합격에 영향 또한 미미하다고 볼 수 없다며 A 씨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관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아빠가 빼온 ‘면접평가표’…법원 “부정채용 맞다”
    • 입력 2020-06-16 16:03:38
    취재K
회사 면접 전형을 하루 앞둔 날 오전. A 씨는 아버지에게서 "준비 철저히 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격려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문자와 함께 어떤 문서를 찍은 사진도 함께 보내왔습니다. '면접 평가표'라는 제목이 달린 해당 문서에는, "개인 인적사항, 사회성, 업무수행역량, 성장성" 등의 구체적인 평가 항목과 함께 "면접 포인트", 배점 등이 정리돼 있었습니다. A 씨가 내일 보게 될 면접 전형의 채점표를 아버지가 어떤 방법으로인지 빼내온 것입니다.

아버지는 30분 뒤 "우선 질문사항에 답을 글로 적은 다음 여러 번 반복해 연습하는 것이 좋겠다" "배우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나가는 사람들도 모범답안을 만들어 거울을 보면서 반복연습을 하니까 TV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거다"라고 또 문자를 보냈습니다. A 씨는 "네"라고 답한 뒤, 아버지가 전해준 '족집게' 문서를 참고해 면접을 준비했습니다.

A 씨는 다음 날 오후 5시 반부터 6시까지 면접에 임했고, 닷새 뒤 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당초 면접시험 자격이 있던 사람이 124명이었는데 뽑힌 사람은 32명뿐이었으니, 2.5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입사에 성공한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 뒤, 회사는 A 씨가 부정채용 됐음이 확인됐다며 A 씨를 해고했습니다.

A 씨에 대한 채용절차가 진행 중일 때, A 씨의 아버지가 당시 회사의 노조위원장이었던 B 씨에게 2백만 원을 건넸다는 사실이 경찰 수사로 밝혀진 것입니다. A 씨가 아버지한테 받은 '면접평가표'는 이런 청탁금을 받은 B 씨가 미리 입수해 건네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A 씨는 해고가 부당하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했습니다. 당시 A 씨가 내놓은 주장은 이러했습니다: "채용절차에서 면접의 영향은 적었다". "면접 문제 역시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버지가 불필요하게 면접평가표를 보내줬지만, 이미 면접을 준비하면서 알고 있는 내용에 불과했다". "나는 성실히 취업을 준비해 서류전형에서도 높은 점수(합격자 186명 중 11등)를 받았다". "면허증, 교육 이수, 단기근로 등 관련 경력도 다른 지원자보다 풍부했다". "점수나 순위 조작 등 부정행위도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정당하게' '실력으로' 입사에 성공한 것일뿐, 별 도움도 안되는 면접 평가표를 미리 입수한 것과 자신의 합격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이 같은 A 씨 주장을 받아들여, 회사가 A 씨를 부당해고했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A 씨를 부정채용자로 보고 해고한 회사 처분은 합리적 사유가 인정돼 정당하다는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A 씨 아버지와 노조위원장 B 씨 사이의 부정한 행위가 채용절차에 개입됨으로써, 그 자체만으로 이미 해당 채용절차의 공공성과 그에 대한 일반 공중의 신뢰가 중대하게 훼손돼 A 씨가 공정하게 선발하게 선발되지 못했다는 "규범적 평가"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더 나아가 '면접 평가표' 유출이라는 행위와 A 씨의 채용 사이에 인과관계가 정확히 증명되진 않았더라도, 아예 관계가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채용절차를 보면 ▲서류전형과 인적성시험을 합격한 사람들만 면접전형에 응시할 수 있었고 ▲면접전형에서 면접위원 3명의 평균 점수가 80점 이상인 자들을 대상으로 고득점순으로 합격자가 선정했고(즉 합격자 선정에 있어 서류전형과 인적성 점수는 고려되지 않는 '제로 베이스' 방식) ▲서류전형 점수는 면접점수가 동점인 경우, 동점자 중 최종 합격자를 가려내는 과정에서만 고려사항이 됐습니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인적성시험 이후에는 면접전형이 '독립된' 합격자 선정 과정으로서 채용 당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습니다. A 씨는 자신이 서류전형 점수가 높았고 전체 채용과정에서 면접의 영향은 적었다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달랐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또 실제 A 씨보다 서류전형 점수가 높았던 지원자 중 7명이 면접에서 탈락한 점도 지적하며, "면접평가표를 사전에 받아 준비한 것과 A 씨가 면접전형을 통과한 것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볼 수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또 면접위원들이 청탁금 지급을 바탕으로 면접 평가표가 사전에 유출됐음을 알고 있었다면, 면접 전형에서 A 씨에게 높은 점수를 줘서 A 씨를 합격시켰을 거라고 보기 어렵다고도 설명했습니다.

A 씨는 자신에 대한 해고는 회사의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A 씨의 회사가 정부정책을 수행하는 공익적 성격을 갖고 있어 채용절차에서 일반 사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준수할 것으로 기대되는 점 ▲A 씨에 대한 해고는 정부가 2018년 1월 발표했던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후속조치 및 제도개선 방안'에 따른 조치로서, '채용비리 엄단'이라는 규범적 평가가 반영돼 있는 점 ▲청탁금 교부와 면접 평가표 유출이라는 가볍지 않은 비위 행위가 있었음에도 A 씨와 회사 사이의 근로관계가 유지될 경우, 채용 비리에 엄격히 대처하려는 정부 조치의 의미가 퇴색되는데다 향후 회사의 채용전형 등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정도 등 회사의 대외적 신뢰도와 기업질서가 크게 훼손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들었습니다.

재판부는 또 채용 청탁은 아버지가 벌인 일이긴 하지만, A 씨가 유출된 면접 평가표를 사전에 받아봤고 이것이 A 씨의 합격에 영향 또한 미미하다고 볼 수 없다며 A 씨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관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