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이라도 친자확인소송 무조건 못 낸다…대법, 40년만의 판례 변경

입력 2020.06.18 (15:58) 수정 2020.06.1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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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이른바 민법상 '친족' 관계에 해당하는 사람이더라도, 다른 친족의 친자 관계가 맞는지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함부로 낼 수 없게 됩니다.

'친족이라면 다른 친족의 친자확인 소송을 당연히 낼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며 40년 동안 이어져온 판례가 변경됐습니다.

대법원은 건국훈장 포상대상자인 A씨의 증손자가 A씨와 다른 딸 사이에 친생자관계를 다투며 광주지방검찰청 검사를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존부확인소송의 상고심 선고공판을 오늘(18일) 열고, A씨의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민법상 친족 관계라면 당연히 다른 친족의 친생자관계를 따지는 소송을 낼 수 있다'는 1981년 대법원 판결을 변경한 겁니다.

앞서 1909년 사망한 A 씨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 포상대상자로 결정됐습니다. A 씨는 자녀로 B, C, D 씨를 두었는데, 장남인 B 씨와 그 배우자·자녀, 장녀인 C 씨와 그 배우자, 차녀인 D 씨와 그 배우자는 2010년 이전 모두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C 씨의 자녀 E 씨는 구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른 독립유공자 유족등록 신청을 했고, 행정소송을 통해 2014년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B 씨의 손자, 즉 A 씨의 증손자인 원고는 A 씨와 C 씨 사이, A 씨의 배우자와 C 씨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각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인정된 E 씨의 어머니인 C 씨가 A 씨의 친생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면, 원고가 독립유공자 유족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원심은 원고 적격이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습니다.

△원고가 위와 같은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판결을 받더라도 구 독립유공자예우법이 정한 기준에 따른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등록되는 게 아니고 △구 독립유공자예우법은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 중 선순위자 1명'에게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했는데 보상을 받는 유족의 범위는 독립유공자의 배우자, 자녀, 손자녀 및 며느리 순으로 한정되어 있고 그 중 같은 순위자가 2명 이상이면 나이가 많은 자를 우선하게 되어 있어 원고에게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을 구할 이해관계가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자 원고는 자신이 A 씨와 민법상 '친족' 관계에 있으므로 종전 대법원 판례에 따라 당연히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이익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상고를 제기했습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1981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민법 제777조의 친족(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이라는 신분관계만 있다면 친생자관계존부확인 소송을 낼 자격이 있다는 결론을 냈고, 이 판례는 40년간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동시에 대법원은 '민법 제777조에서 정한 친족이라는 신분관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당연히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한 종전 대법원 판례를 폐기했습니다.

대법원은 "1990년말 폐지된 구 인사소송법은 인사(人事)에 관한 소송절차의 특례를 정하면서 '민법상 친족이 언제든지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었지만, 1991년 시행된가사소송법에는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의 제기권자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종전 대법원 판례의 핵심적 근거 조항이 사라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대법원은 "가족형태도 이미 핵가족화돼 '민법상 친족'이 밀접한 신분적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볼 법률적, 사회적 근거가 약해졌다"고 봤습니다. 오늘날 가족관계는 혈연관계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의 의사를 기초로 다양하게 형성되므로 이에 관한 당사자들의 자유로운 의사를 존중할 필요가 있고, 친생자 관계 여부를 다툴 수 있는 '제3자'의 범위를 넓게 볼 경우 신분질서의 안정을 해치고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당사자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겁니다.

대법원은 이어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는 제소요건이 엄격한 다른 소송절차를 대신하여 활용되는 경우가 많고, 당사자 일방 또는 쌍방이 사망한 경우가 아니라면 제소기간의 제한도 없으므로 원고적격 범위를 넓히는 것은 다른 소송절차와 비교하여 균형이 맞지 않고 법령의 제한 등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나아가 판례를 변경해 민법상 친족에게 일률적으로 원고적격을 부여하지 않더라도, 제3자가 '이해관계인'에 해당하는 경우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이상 제3자의 권리나 재판청구권을 부당하게 제약하지 않는다고 대법원은 설명했습니다.

대법원은 변경된 판례에 따라 친족이라도 무조건 원고적격을 인정할 것이 아니고, 소송 제기가 가능한지 그 사정을 따져야 하는데 이를 감안하면 원고가 소송을 낼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민법에서 정한 제소권자, 즉 △친생자관계의 당사자인 부, 모, 자녀 △자녀의 직계비속과 그 법정대리인 △성년후견인, 유언집행자, 부(夫) 또는 처(妻)의 직계존속이나 직계비속 가운데 민법상 요건을 갖춘 경우로 한정되는데, 원고는 위 조항에서 정한 당연 제소권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울러 대법원은 원고가 '이해관계인'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해관계인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이른바 이해관계인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판결이 확정됨으로써 일정한 권리를 얻거나 의무를 면하는 등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는 제3자로서 상속이나 부양 등에 관한 자신의 권리나 의무, 법적 지위에 구체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여야 한단 겁니다.

대법원은 "이해관계인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원고의 주장과 변론에 나타난 제반사정을 토대로 원고의 권리나 의무, 법적 지위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이 무엇인지 등을 개별적으로 심리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른바 가족관계등록부에 아무런 친족관계가 나타나지 않지만 스스로 생부나 생모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을 받아들여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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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족’이라도 친자확인소송 무조건 못 낸다…대법, 40년만의 판례 변경
    • 입력 2020-06-18 15:58:46
    • 수정2020-06-18 16:10:18
    사회
앞으로는 이른바 민법상 '친족' 관계에 해당하는 사람이더라도, 다른 친족의 친자 관계가 맞는지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함부로 낼 수 없게 됩니다.

'친족이라면 다른 친족의 친자확인 소송을 당연히 낼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며 40년 동안 이어져온 판례가 변경됐습니다.

대법원은 건국훈장 포상대상자인 A씨의 증손자가 A씨와 다른 딸 사이에 친생자관계를 다투며 광주지방검찰청 검사를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존부확인소송의 상고심 선고공판을 오늘(18일) 열고, A씨의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민법상 친족 관계라면 당연히 다른 친족의 친생자관계를 따지는 소송을 낼 수 있다'는 1981년 대법원 판결을 변경한 겁니다.

앞서 1909년 사망한 A 씨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 포상대상자로 결정됐습니다. A 씨는 자녀로 B, C, D 씨를 두었는데, 장남인 B 씨와 그 배우자·자녀, 장녀인 C 씨와 그 배우자, 차녀인 D 씨와 그 배우자는 2010년 이전 모두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C 씨의 자녀 E 씨는 구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른 독립유공자 유족등록 신청을 했고, 행정소송을 통해 2014년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B 씨의 손자, 즉 A 씨의 증손자인 원고는 A 씨와 C 씨 사이, A 씨의 배우자와 C 씨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각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인정된 E 씨의 어머니인 C 씨가 A 씨의 친생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면, 원고가 독립유공자 유족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원심은 원고 적격이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습니다.

△원고가 위와 같은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판결을 받더라도 구 독립유공자예우법이 정한 기준에 따른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등록되는 게 아니고 △구 독립유공자예우법은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 중 선순위자 1명'에게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했는데 보상을 받는 유족의 범위는 독립유공자의 배우자, 자녀, 손자녀 및 며느리 순으로 한정되어 있고 그 중 같은 순위자가 2명 이상이면 나이가 많은 자를 우선하게 되어 있어 원고에게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을 구할 이해관계가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자 원고는 자신이 A 씨와 민법상 '친족' 관계에 있으므로 종전 대법원 판례에 따라 당연히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이익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상고를 제기했습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1981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민법 제777조의 친족(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이라는 신분관계만 있다면 친생자관계존부확인 소송을 낼 자격이 있다는 결론을 냈고, 이 판례는 40년간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동시에 대법원은 '민법 제777조에서 정한 친족이라는 신분관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당연히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한 종전 대법원 판례를 폐기했습니다.

대법원은 "1990년말 폐지된 구 인사소송법은 인사(人事)에 관한 소송절차의 특례를 정하면서 '민법상 친족이 언제든지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었지만, 1991년 시행된가사소송법에는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의 제기권자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종전 대법원 판례의 핵심적 근거 조항이 사라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대법원은 "가족형태도 이미 핵가족화돼 '민법상 친족'이 밀접한 신분적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볼 법률적, 사회적 근거가 약해졌다"고 봤습니다. 오늘날 가족관계는 혈연관계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의 의사를 기초로 다양하게 형성되므로 이에 관한 당사자들의 자유로운 의사를 존중할 필요가 있고, 친생자 관계 여부를 다툴 수 있는 '제3자'의 범위를 넓게 볼 경우 신분질서의 안정을 해치고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당사자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겁니다.

대법원은 이어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는 제소요건이 엄격한 다른 소송절차를 대신하여 활용되는 경우가 많고, 당사자 일방 또는 쌍방이 사망한 경우가 아니라면 제소기간의 제한도 없으므로 원고적격 범위를 넓히는 것은 다른 소송절차와 비교하여 균형이 맞지 않고 법령의 제한 등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나아가 판례를 변경해 민법상 친족에게 일률적으로 원고적격을 부여하지 않더라도, 제3자가 '이해관계인'에 해당하는 경우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이상 제3자의 권리나 재판청구권을 부당하게 제약하지 않는다고 대법원은 설명했습니다.

대법원은 변경된 판례에 따라 친족이라도 무조건 원고적격을 인정할 것이 아니고, 소송 제기가 가능한지 그 사정을 따져야 하는데 이를 감안하면 원고가 소송을 낼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민법에서 정한 제소권자, 즉 △친생자관계의 당사자인 부, 모, 자녀 △자녀의 직계비속과 그 법정대리인 △성년후견인, 유언집행자, 부(夫) 또는 처(妻)의 직계존속이나 직계비속 가운데 민법상 요건을 갖춘 경우로 한정되는데, 원고는 위 조항에서 정한 당연 제소권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울러 대법원은 원고가 '이해관계인'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해관계인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이른바 이해관계인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판결이 확정됨으로써 일정한 권리를 얻거나 의무를 면하는 등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는 제3자로서 상속이나 부양 등에 관한 자신의 권리나 의무, 법적 지위에 구체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여야 한단 겁니다.

대법원은 "이해관계인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원고의 주장과 변론에 나타난 제반사정을 토대로 원고의 권리나 의무, 법적 지위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이 무엇인지 등을 개별적으로 심리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른바 가족관계등록부에 아무런 친족관계가 나타나지 않지만 스스로 생부나 생모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을 받아들여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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