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울리는 서울시 일자리 쪼개기 “주휴수당 못받아”

입력 2020.06.2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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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기 고용'을 아십니까. 근로시간이 주 15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노동을 말합니다. 월 근로시간이 60시간을 넘기면 고용주에게 주휴수당과 사회보험료 납부 의무가 생깁니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근로시간을 주 15시간 미만으로 쪼개는 고용형태로, 노동자에게 불리하지만 갈수록 늘고 있는 불안정노동입니다.

그런데 노숙인에게 제공되는 공공 일자리도 '쪼개기 고용'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서울시가 7월부터 시행할 하반기 공공 일자리 얘깁니다. 오랜 거리 생활로 심신이 건강하지 않아 노동능력이 낮은 노숙인들에게 서울시가 재활시설이나 쪽방 상담소에서 급식 보조, 환경 정비 등 가벼운 일거리를 제공하는 사업입니다.

■ 주 15시간 미만된 서울시 노숙인 일자리 사업 '쪼개기 고용' 논란

[그래픽] 서울시 노숙인 공공일자리(반일제)개편안[그래픽] 서울시 노숙인 공공일자리(반일제)개편안

이 사업을 통해 매달 645명의 노숙인들은 올 상반기에는 하루 5시간씩 월 15일 이상 일했습니다. 월 60시간이 넘기 때문에 주휴수당과 월차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서울시가 근로시간과 근로일수를 1시간, 1일씩 줄이면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생활시설이나 쪽방 야간소방순찰대로 반일 근무를 하던 노숙인들은 월 평균 56시간만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근로시간 감소에 따른 임금 감소는 물론 주휴수당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홈리스행동과 노숙인들은 개편안이 "경악스럽다"는 반응입니다. 이들은 지난 16일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안정 고용을 감시ㆍ감독해야 할 서울시가 외려 민간의 편법적 고용관행을 공공 일자리 사업에 도입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민간 취업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민간 일자리 유도라는 명분으로 구체적인 프로그램 없이 공공 일자리를 축소해왔다고 지적했습니다.

6월 16일 서울 시청 앞 홈리스행동 기자회견 (사진제공 : 홈리스행동)6월 16일 서울 시청 앞 홈리스행동 기자회견 (사진제공 : 홈리스행동)

서울시 "축소된 예산에 일자리 나눈 것…주휴수당 때문 아냐"

서울시 측은 작년보다 노숙인 예산이 삭감돼 사업 방식을 조정한 것일 뿐,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실제로 서울시는 주휴수당 문제에 대해 각별한 관심과 개선 노력을 쏟아왔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28일 직접 기자설명회를 통해, "전국 최초로 건설일용노동자들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하겠다"면서 1년에 38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노숙인 공공 일자리 근로시간이 축소된 건 작년보다 예산 9억 원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감소된 예산에 따라 사업을 축소해야 했는데, 올해 1분기에는 겨울철이어서, 2분기에는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사업 규모가 작년 수준으로 진행됐습니다.

결국 하반기에 사업 인원이나 시간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되자, 서울시는 인원을 유지하고 시간을 줄이는 쪽으로 개편했습니다. 생활시설에서 노숙인에게 의식주를 지원하니까 공공 일자리 시간을 축소했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노숙인들은 48만 원에서 62만 원 수준의 월급을 받아 쪽방비 30만 원을 제하면 얼마가 남느냐고 반문합니다.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자활사업이라는 공공 일자리 사업의 목표와도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문제는 예산인데, 서울시는 올해 세 차례 추경을 통해 약 5조 원의 예산을 추가로 편성했습니다. 그런데 노숙인 일자리 사업은 '포스트 코로나' 또는 손실 보전이 아니라서 예산 배정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습니다.

이에 대해 권수정 서울시의원(정의당)은 "주거 정책이나 일자리 정책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할 뿐, 노숙인 대책을 종합적으로 고민하지 못하는 서울시 행정의 민낯을 보여준다"고 비판합니다. 노숙인 일자리 대책이 추경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도 "노숙인들은 코로나 이전 세상에서도 이미 가장 위기에 놓인 사람들인데, 서울시는 그 위에 코로나 상황을 반영해 어떻게 더 지원할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코로나 예산에 밀린 노숙인 일자리 사업…해외는 노숙인 대책 강화 추세

코로나 추경과 노숙인 대책은 과연 무관할까요. 다른 나라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해외 대도시들은 코로나 시대를 맞아 적극적인 노숙인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불러온 '자가 격리'의 시대, 집이 없는 노숙인은 감염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 노숙인 캠프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 노숙인 캠프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노숙인 거주 시설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이 발생하고 사망자가 속출하자, 2천여 개의 호텔 객실을 노숙자 격리 시설로 마련했습니다. 또 부자 동네로 둘러싸인 시청 앞 광장을 비롯해 시내 대형 주차장에 거리두기를 할 수 있고 급식을 제공하는 노숙인 캠프를 세웠고 40여 곳에 추가 설치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지방 정부가 호텔을 석달간 임대해 1만 5천 명이 넘는 노숙인들에게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고 자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긴급 대책 차원의 시설 제공에 그칠 게 아니라 노숙 생활을 끝낼 수 있도록 저렴한 주거를 확대지원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서울시의 코로나 관련 노숙인 대책은 이에 비하면 소극적인 수준입니다. 서울시는 공공시설 휴관에도 불구하고 노숙인 관련 시설을 계속 운영하고 소독용품과 마스크를 지원하며 무료 급식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거리의 노숙인에게 더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고 자활 기회를 제공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위기에서 다른 국제 도시들이 적극적인 노숙인 대책을 펼치는 이유는 전염병의 특성상 전파 고리를 끊지 않으면 도시 전체가 위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노숙인은 어쩌면 가장 취약한 연결고리이고, 노숙인이 안전하지 않으면 공동체도 안전할 수 없습니다. 서울시의회는 이달말 코로나 추경이라는 3차 추경 예산안을 심사합니다. 노숙인 예산이 수정 의결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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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숙인 울리는 서울시 일자리 쪼개기 “주휴수당 못받아”
    • 입력 2020-06-20 11:01:04
    취재K
'쪼개기 고용'을 아십니까. 근로시간이 주 15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노동을 말합니다. 월 근로시간이 60시간을 넘기면 고용주에게 주휴수당과 사회보험료 납부 의무가 생깁니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근로시간을 주 15시간 미만으로 쪼개는 고용형태로, 노동자에게 불리하지만 갈수록 늘고 있는 불안정노동입니다.

그런데 노숙인에게 제공되는 공공 일자리도 '쪼개기 고용'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서울시가 7월부터 시행할 하반기 공공 일자리 얘깁니다. 오랜 거리 생활로 심신이 건강하지 않아 노동능력이 낮은 노숙인들에게 서울시가 재활시설이나 쪽방 상담소에서 급식 보조, 환경 정비 등 가벼운 일거리를 제공하는 사업입니다.

■ 주 15시간 미만된 서울시 노숙인 일자리 사업 '쪼개기 고용' 논란

[그래픽] 서울시 노숙인 공공일자리(반일제)개편안
이 사업을 통해 매달 645명의 노숙인들은 올 상반기에는 하루 5시간씩 월 15일 이상 일했습니다. 월 60시간이 넘기 때문에 주휴수당과 월차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서울시가 근로시간과 근로일수를 1시간, 1일씩 줄이면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생활시설이나 쪽방 야간소방순찰대로 반일 근무를 하던 노숙인들은 월 평균 56시간만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근로시간 감소에 따른 임금 감소는 물론 주휴수당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홈리스행동과 노숙인들은 개편안이 "경악스럽다"는 반응입니다. 이들은 지난 16일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안정 고용을 감시ㆍ감독해야 할 서울시가 외려 민간의 편법적 고용관행을 공공 일자리 사업에 도입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민간 취업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민간 일자리 유도라는 명분으로 구체적인 프로그램 없이 공공 일자리를 축소해왔다고 지적했습니다.

6월 16일 서울 시청 앞 홈리스행동 기자회견 (사진제공 : 홈리스행동)
서울시 "축소된 예산에 일자리 나눈 것…주휴수당 때문 아냐"

서울시 측은 작년보다 노숙인 예산이 삭감돼 사업 방식을 조정한 것일 뿐,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실제로 서울시는 주휴수당 문제에 대해 각별한 관심과 개선 노력을 쏟아왔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28일 직접 기자설명회를 통해, "전국 최초로 건설일용노동자들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하겠다"면서 1년에 38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노숙인 공공 일자리 근로시간이 축소된 건 작년보다 예산 9억 원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감소된 예산에 따라 사업을 축소해야 했는데, 올해 1분기에는 겨울철이어서, 2분기에는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사업 규모가 작년 수준으로 진행됐습니다.

결국 하반기에 사업 인원이나 시간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되자, 서울시는 인원을 유지하고 시간을 줄이는 쪽으로 개편했습니다. 생활시설에서 노숙인에게 의식주를 지원하니까 공공 일자리 시간을 축소했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노숙인들은 48만 원에서 62만 원 수준의 월급을 받아 쪽방비 30만 원을 제하면 얼마가 남느냐고 반문합니다.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자활사업이라는 공공 일자리 사업의 목표와도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문제는 예산인데, 서울시는 올해 세 차례 추경을 통해 약 5조 원의 예산을 추가로 편성했습니다. 그런데 노숙인 일자리 사업은 '포스트 코로나' 또는 손실 보전이 아니라서 예산 배정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습니다.

이에 대해 권수정 서울시의원(정의당)은 "주거 정책이나 일자리 정책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할 뿐, 노숙인 대책을 종합적으로 고민하지 못하는 서울시 행정의 민낯을 보여준다"고 비판합니다. 노숙인 일자리 대책이 추경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도 "노숙인들은 코로나 이전 세상에서도 이미 가장 위기에 놓인 사람들인데, 서울시는 그 위에 코로나 상황을 반영해 어떻게 더 지원할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코로나 예산에 밀린 노숙인 일자리 사업…해외는 노숙인 대책 강화 추세

코로나 추경과 노숙인 대책은 과연 무관할까요. 다른 나라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해외 대도시들은 코로나 시대를 맞아 적극적인 노숙인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불러온 '자가 격리'의 시대, 집이 없는 노숙인은 감염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 노숙인 캠프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노숙인 거주 시설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이 발생하고 사망자가 속출하자, 2천여 개의 호텔 객실을 노숙자 격리 시설로 마련했습니다. 또 부자 동네로 둘러싸인 시청 앞 광장을 비롯해 시내 대형 주차장에 거리두기를 할 수 있고 급식을 제공하는 노숙인 캠프를 세웠고 40여 곳에 추가 설치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지방 정부가 호텔을 석달간 임대해 1만 5천 명이 넘는 노숙인들에게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고 자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긴급 대책 차원의 시설 제공에 그칠 게 아니라 노숙 생활을 끝낼 수 있도록 저렴한 주거를 확대지원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서울시의 코로나 관련 노숙인 대책은 이에 비하면 소극적인 수준입니다. 서울시는 공공시설 휴관에도 불구하고 노숙인 관련 시설을 계속 운영하고 소독용품과 마스크를 지원하며 무료 급식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거리의 노숙인에게 더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고 자활 기회를 제공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위기에서 다른 국제 도시들이 적극적인 노숙인 대책을 펼치는 이유는 전염병의 특성상 전파 고리를 끊지 않으면 도시 전체가 위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노숙인은 어쩌면 가장 취약한 연결고리이고, 노숙인이 안전하지 않으면 공동체도 안전할 수 없습니다. 서울시의회는 이달말 코로나 추경이라는 3차 추경 예산안을 심사합니다. 노숙인 예산이 수정 의결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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