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없이 부족한 아동학대 ‘쉼터’…지자체는 신규 설치 포기?

입력 2020.06.2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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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다 도망친 경남 창녕의 초등학생 A 양은 현재 '학대피해아동쉼터'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A 양은 쉼터에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A 양이 지내는 쉼터는 가정과 같은 환경에서 학대 피해 아동이 임시로 머무는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학대 트라우마 치료와 병원 치료를 받은 뒤 상황에 따라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거나 가정위탁, 일반 공동생활가정 등으로 가게 됩니다.

'쉼터' 입소 최대 인원 전국에 500여 명…연간 아동학대 건수는 2만 건 넘어

그런데 학대 피해 아동만을 위한 '집중치료' 공간인 쉼터는 올해 4월 기준 72곳에 불과합니다. 쉼터 한 곳에 입소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7명입니다. 전국을 다 합쳐봐도 500여 명의 아동만이 쉼터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반면 아동학대 사건은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 2015년 1만 1,715건이었던 아동학대 판정 건수는 2018년 2만 4,604건으로 2배가 됐습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쉼터'를 확충하기 위해 '학대피해아동쉼터 국고보조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쉼터 1개소당 국비 1억3천80만 원을 보조하기로 한 겁니다. '학대피해아동쉼터' 1개소에 드는 돈 3억2천700만 원 중 40%인 1억3천80만 원을 국비로 지원하고 나머지 60%는 지자체가 부담하게 하는 겁니다.

일부 지자체, '쉼터 확충' 국고보조사업 신청했다가 철회…이유는?

서울시와 보건복지부가 주고받은 문서. 신설하기로 했던 쉼터 1곳의 선정을 취소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서울시와 보건복지부가 주고받은 문서. 신설하기로 했던 쉼터 1곳의 선정을 취소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 일부 지자체들은 국고보조사업을 신청했다가 갑자기 취소하기도 하고 국고보조금을 반납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시는 2015년 당시 쉼터 4곳을 신설하겠다고 보건복지부에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해 개소된 건 중랑구와 관악구에 1곳씩 모두 2곳뿐입니다. 나머지 2곳은 어떻게 된 걸까요. 1곳은 매입할 주택을 찾지 못해 미뤄지다 2017년 시비 2억 원을 더 투입해 동대문구에 겨우 문을 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왜 이렇게 늦어진 걸까. 서울시는 쉼터 조건에 맞는 주택을 구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입니다. 복지부 지침에 따라 쉼터는 인근에 청소년 유해업소가 없어야 하고 생활에 충분한 공간과 안전 기준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규모는 전용면적 100㎡ 이상이어야 하고 방 4개 이상, 2곳 이상의 화장실 등이 갖춰져야 합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 안에서 이 조건에 맞는 주택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관계자는 "쉼터를 추가하려면 반드시 시비가 추가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나머지 1곳은 아예 사업 신청 자체를 취소했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이 예산으로는 지역 내에서 주택 매입이 어렵다며 신청을 취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상 국고보조금만으로는 오롯이 1개소를 여는 건 불가능하고 시 재정이 추가로 투입돼야 가능한 상황인 겁니다. 그러다 보니 시 재정이 넉넉지 않은 곳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천도 마찬가지입니다. 2015년 쉼터 2곳이 문을 열었습니다. 당시 국고보조금 1억 3천여만 원을 받았지만, 그걸로는 사업을 이끌고 가기 어려운 데다 시 재정도 넉넉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천시 관계자는 "국비와 시비를 함께 투입해 진행하는 사업인데 당시 인천시 재정이 어려웠다"며 "주택 매입이 가능했던 사회복지법인이 있어서 그쪽에서 부담하고 국비를 반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2015년 46개였던 쉼터, 2019년에도 고작 73개…올해는 오히려 1곳 감소


이런 상황이다 보니 쉼터 확충 속도는 더디기만 합니다. 2015년 46개였던 쉼터는 2016년 53개, 2017년 57개, 2018년 65개, 2019년 73개로 늘었을 뿐입니다. 심지어 올해는 작년보다 1개소가 줄었습니다.

윤혜미 아동권리보육원장은 "지금 쉼터가 70여 개 있다고 해도 남녀별로 따로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35개인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한 곳에 7명까지만 보호할 수 있다 보니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장 쉼터 확충이 어렵다면 제3자이긴 하더라도 엄마와 아버지로 구성된 '전문위탁가정제도'를 도입해 가정형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설치비 단가는 지역과 상관없이 동일하게 나가고 있다"라며 "설치비 단가를 올려달라는 지적은 꾸준히 나와 기획재정부에 요청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현재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학대피해아동쉼터 운영 예산이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복권기금 등에서 편성되는 것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재원은 법무부가, 편성은 기획재정부가 해서 복지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라며 "아동학대예방사업 예산을 보건복지부 기본예산(일반회계)으로 편성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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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턱없이 부족한 아동학대 ‘쉼터’…지자체는 신규 설치 포기?
    • 입력 2020-06-22 09:06:27
    취재K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다 도망친 경남 창녕의 초등학생 A 양은 현재 '학대피해아동쉼터'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A 양은 쉼터에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A 양이 지내는 쉼터는 가정과 같은 환경에서 학대 피해 아동이 임시로 머무는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학대 트라우마 치료와 병원 치료를 받은 뒤 상황에 따라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거나 가정위탁, 일반 공동생활가정 등으로 가게 됩니다.

'쉼터' 입소 최대 인원 전국에 500여 명…연간 아동학대 건수는 2만 건 넘어

그런데 학대 피해 아동만을 위한 '집중치료' 공간인 쉼터는 올해 4월 기준 72곳에 불과합니다. 쉼터 한 곳에 입소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7명입니다. 전국을 다 합쳐봐도 500여 명의 아동만이 쉼터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반면 아동학대 사건은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 2015년 1만 1,715건이었던 아동학대 판정 건수는 2018년 2만 4,604건으로 2배가 됐습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쉼터'를 확충하기 위해 '학대피해아동쉼터 국고보조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쉼터 1개소당 국비 1억3천80만 원을 보조하기로 한 겁니다. '학대피해아동쉼터' 1개소에 드는 돈 3억2천700만 원 중 40%인 1억3천80만 원을 국비로 지원하고 나머지 60%는 지자체가 부담하게 하는 겁니다.

일부 지자체, '쉼터 확충' 국고보조사업 신청했다가 철회…이유는?

서울시와 보건복지부가 주고받은 문서. 신설하기로 했던 쉼터 1곳의 선정을 취소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 일부 지자체들은 국고보조사업을 신청했다가 갑자기 취소하기도 하고 국고보조금을 반납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시는 2015년 당시 쉼터 4곳을 신설하겠다고 보건복지부에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해 개소된 건 중랑구와 관악구에 1곳씩 모두 2곳뿐입니다. 나머지 2곳은 어떻게 된 걸까요. 1곳은 매입할 주택을 찾지 못해 미뤄지다 2017년 시비 2억 원을 더 투입해 동대문구에 겨우 문을 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왜 이렇게 늦어진 걸까. 서울시는 쉼터 조건에 맞는 주택을 구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입니다. 복지부 지침에 따라 쉼터는 인근에 청소년 유해업소가 없어야 하고 생활에 충분한 공간과 안전 기준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규모는 전용면적 100㎡ 이상이어야 하고 방 4개 이상, 2곳 이상의 화장실 등이 갖춰져야 합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 안에서 이 조건에 맞는 주택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관계자는 "쉼터를 추가하려면 반드시 시비가 추가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나머지 1곳은 아예 사업 신청 자체를 취소했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이 예산으로는 지역 내에서 주택 매입이 어렵다며 신청을 취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상 국고보조금만으로는 오롯이 1개소를 여는 건 불가능하고 시 재정이 추가로 투입돼야 가능한 상황인 겁니다. 그러다 보니 시 재정이 넉넉지 않은 곳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천도 마찬가지입니다. 2015년 쉼터 2곳이 문을 열었습니다. 당시 국고보조금 1억 3천여만 원을 받았지만, 그걸로는 사업을 이끌고 가기 어려운 데다 시 재정도 넉넉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천시 관계자는 "국비와 시비를 함께 투입해 진행하는 사업인데 당시 인천시 재정이 어려웠다"며 "주택 매입이 가능했던 사회복지법인이 있어서 그쪽에서 부담하고 국비를 반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2015년 46개였던 쉼터, 2019년에도 고작 73개…올해는 오히려 1곳 감소


이런 상황이다 보니 쉼터 확충 속도는 더디기만 합니다. 2015년 46개였던 쉼터는 2016년 53개, 2017년 57개, 2018년 65개, 2019년 73개로 늘었을 뿐입니다. 심지어 올해는 작년보다 1개소가 줄었습니다.

윤혜미 아동권리보육원장은 "지금 쉼터가 70여 개 있다고 해도 남녀별로 따로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35개인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한 곳에 7명까지만 보호할 수 있다 보니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장 쉼터 확충이 어렵다면 제3자이긴 하더라도 엄마와 아버지로 구성된 '전문위탁가정제도'를 도입해 가정형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설치비 단가는 지역과 상관없이 동일하게 나가고 있다"라며 "설치비 단가를 올려달라는 지적은 꾸준히 나와 기획재정부에 요청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현재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학대피해아동쉼터 운영 예산이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복권기금 등에서 편성되는 것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재원은 법무부가, 편성은 기획재정부가 해서 복지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라며 "아동학대예방사업 예산을 보건복지부 기본예산(일반회계)으로 편성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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