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살포투쟁?…“무섭지는 않지만 피곤한” 대남전단

입력 2020.06.2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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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대규모의 대적삐라살포투쟁" (6월 22일)
연이어 말 폭탄을 쏟아내던 북한이 곧 대남전단을 띄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 표현대로 "분노와 적개심이 담긴 1,200만 장의 각종 삐라"가 남한을 향해 하늘을 날아오는 상황이 벌어지겠죠. 대남전단 살포를 예고하며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에 등장한 그들의 표현은 무시무시합니다. 삐라(대남전단)를 통해 "막을 수 없는 전 인민적, 전 사회적 분노를 분출"하고 있습니다. 삐라를 보내 남한을 "응징보복"한다고 합니다. 북한의 의도는 먹힐까요? 과거 대남전단이 어떻게 날아왔는지를 살펴보면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소제목에서 큰 따옴표로 인용한 문장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겁니다.

'오랜 심리전 수단' 삐라, 위력 있나?
북한을 향해 날아가는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전단에 북한은 광분합니다. 폐쇄 사회 북한에서 체제의 치부를 폭로하고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대북전단은 북한의 아픈 곳을 찌르는 강력한 심리전 무기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 중에 북한이 보낸 대남전단을 보고 마음이 흔들릴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 얼굴을 넣어 인쇄한 대남전단을 공개하며 남한이 최고 존엄을 건드렸으니 자기들도 남한 대통령을 비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선 대통령에 대한 포털 사이트 댓글 수위가 대남전단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2016년 10월 18일 방송된 KBS 뉴스의 제목은 "대남전단 또 살포…시민들 무관심"입니다. 북한 특유의 강렬한 색에 선동적인 문구로 채워져 있지만, 시민들은 무덤덤하고, 20대들은 전단을 뿌리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며, 온라인에서는 '조잡한 내용', '종이 낭비'라며 놀림거리가 될 정도라고 나와 있습니다.

2016년 수도권 일대에서 발견된 대남전단2016년 수도권 일대에서 발견된 대남전단

"남조선(남한)의 깊은 종심까지 살포" (22일)
북한도 이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북한의 핵실험으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었던 정세에서 북한은 꾸준히 대남전단을 날려보냈습니다. KBS의 보도정보시스템에서 2016년부터 2017년 기간에 "대남전단"을 검색하면 약 70차례에 걸쳐 곳곳에서 대남전단이 발견됐습니다. 2016년 1월에는 강원도 고성, 인제, 철원 등 접경지역에서, 2월에는 경북 안동과 서울 성북구 동대문구 등에서, 3월에는 청주와 파주 등 8, 9월과 12월을 제외하고 1년 중에서 9달 동안 대남전단 발견 기사가 있습니다. 2017년에도 1월 천안, 파주, 수원, 청주를 비롯해 2월부터 10월까지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서울 각 지역과 경기도는 물론 강원도 강릉, 원주, 인천 등에서 꾸준히 발견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살포 시점과 신고 시점은 다를 수 있고, 또 전단이 날아왔다 해도 산속이나 인적이 없는 곳에 떨어지면 발견되지 않을 수 있으니 대남전단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반적으로 여름에는 따듯한 남쪽으로부터 바람이 북쪽으로 불어가고, 겨울에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름에는 북한을 향해 대북전단을 날릴 수는 있지만, 대남전단이 날아와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전단은 연중 내내 날아옵니다. 여름철에도 때에 따라서 몇 시간이라도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기도 합니다. 22일 오전에도 약간 북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또 지상에서 느껴지는 바람의 방향과 대남전단 풍선이 나는 고도의 바람의 방향이 다르기도 합니다. 북한 지도를 보면 NLL 인근 해상이나 도서 지역은 남쪽으로 내려와 있습니다. 바람이 북서나 서북서에서만 불어와도 수도권 쪽으로 대남 전단을 날릴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경기도, 강원도 접경지역은 물론, 수도권 일대에서 여름에도 대남전단이 발견됩니다. 북풍이 부는 겨울에는 멀리 경북 안동까지도 대남전단이 날아갑니다.

발견되는 장소도 다양합니다. 주택가, 공장, 산책로는 물론 2016년 2월에는 여의도 국회 도서관과 화단 등 국회 경내에서 발견됐습니다. 10월 9일엔 대공 수사를 하는 서울 중앙지검 청사 안과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발견됐습니다. 3일 뒤엔 여의도 KBS 별관 주차장과 본관, 신관 옥상에서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2017년 10월엔 청와대 춘추관 앞에서 발견돼 경호처가 나서 수거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10월 12일 새벽 여의도 KBS 별관에서 발견된 대남전단2016년 10월 12일 새벽 여의도 KBS 별관에서 발견된 대남전단

"삐라와 오물 그것을 수습하는 것이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이며 기분 더러운 일인가" (22일)
전단이 날아오면 치우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비상이 걸리기도 합니다. 2016년 5월 30일 대남전단이 달린 대형풍선 2개가 서울 은평구 주택가의 전깃줄에 걸린 채 발견됐습니다. 전단은 170장뿐이었지만 북한은 안에 흙을 넣어 보냈습니다. 그냥 흙인지, 아니면 독성물질이나 생화학무기가 포함된 건 아닌지 모르는 상황. 결국, 경찰은 물론 군 화생방 신속대응팀까지 출동했고 성분검사, 생물학작용검사, 생화학검사까지 했습니다. 다행히 유독물질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추가 정밀 검사를 위해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 표본을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북한이 전단을 대량으로 날려보내면 일단 수거하기 번거롭습니다. 이에 더해 흙이나 가루, 이상하게 보이는 물질을 보내면 우리 행정력을 동원해야 합니다. 수습이 골치가 아픕니다. 대남 전단 신고가 들어오면 수거를 위해 군 당국이 현장에 가기도 합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던 서울 은평구의 대남전단 풍선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던 서울 은평구의 대남전단 풍선

타이머에 폭발장치…때로는 오작동
2016년 1월 경기도 고양에서 발견된 대남전단을 당국이 수거해 살펴보니 전단 뭉치에는 미리 시간을 입력한 뒤 풍선이 수도권 상공에 도달하면 터질 수 있도록 타이머와 자동폭발 장치가 장착돼 있었습니다.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고도에서 터지면 하늘에서 흩뿌려지며 살포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폭파장치가 오작동해 전단 뭉치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일도 발생합니다.

타이머와 폭발장치를 갖춘 대남전단타이머와 폭발장치를 갖춘 대남전단

2016년 1월 경기도 고양시에서는 대남전단 뭉치가 한꺼번에 떨어지며 주차된 차량을 덮쳤습니다. 차량 선루프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한 달 뒤 수원에서도 전단이 뭉치째 주택가로 떨어졌습니다. 빌라 옥상에 설치된 물탱크가 산산조각이 났고, 쏟아진 물은 엄동설한에 곳곳에서 얼어붙었습니다. 같은 해 6월 서울 방화동에서도 전단 뭉치가 떨어지며 주차된 차량 트렁크가 파손됐습니다. 당시 전단 뭉치의 무게는 무려 20kg. 만약 차가 아니라 사람을 덮쳤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전단은 더는 심리전 수단이 아닙니다. 공중에서 무력을 투발하는 수단이 되는 겁니다. 더군다나 이 경우엔 국민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군의 임무는 외세의 무력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원칙대로라면 군은 우리 영토에 상대의 무력이 투사되면 막아내야 할 뿐만 아니라 대응(또는 보복)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남전단이 주차된 차나 주택을 파손시켰다 해도 그때마다 군이 나서기도 애매합니다.

대남 전단으로 지붕이 파손된 차량대남 전단으로 지붕이 파손된 차량

대남전단 때문에 전투기 뜨기도
우리 군을 피곤하게 하는 상황은 또 있었습니다. 2017년 5월 정체불명의 비행체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하했습니다. 군은 북한 무인기로 추정하고 경고방송을 하고, 수백 발의 K-3 기관총 경고사격을 퍼부었습니다. F-15K 전투기까지 대응 출격했습니다. 그야말로 비상이 걸린 셈입니다. 나중에 밝혀진 비행체의 정체는 대남전단 살포용 풍선이었습니다. 당시 비구름이 깔려 시정이 좋지 않아 식별이 늦어졌던 것입니다.

당시 대남전단 풍선 비행경로당시 대남전단 풍선 비행경로

실제 대북전단을 날려보낸 경험이 있는 활동가는 2012년 기준으로 가스비와 비닐 등 전단용 풍선 한 개 비용을 10만 원으로 계산했습니다. 타이머와 폭파 장치를 달았다 해도 북한의 대남 전단도 비용면에선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이런 풍선 몇 개 때문에 한 대에 천억 원 정도 하는 최신예 전투기가 뜬 이 소동을 북한도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 군을 애먹이려면 일부러 시정이 안 좋은 날 풍선 여러 개를 띄우거나, 또는 대남전단 안에 레이더에 잘 잡히도록 일부러 금속성 물질 등을 넣어 무인기처럼 보이게 교란책을 쓸 수도 있습니다.일단 레이더에 포착되면 군은 새떼인지, 무인기인지, 그냥 전단 살포용 풍선인지 일일이 식별, 다시 말해 구분을 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대응이 필요한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죠. 북한으로선 대남전단을 심리전 수단이 아니라 다량으로 풍선을 날려보내 우리 군 감시 자산을 긴장시켰다가 긴장을 풀었다 하는 약 올리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대남전단 때문에 출격했던 F-15K 전투기대남전단 때문에 출격했던 F-15K 전투기

"여러 가지 삐라살포기재, 수단들이 준비" (22일)
사실 대남전단이 그저 풍선에 실려 군사분계선을 날아오면 군은 일단 식별은 하겠지만, 대응 수단이 애매합니다. 전단이 날아온다 해서 굳이 군이 쏴서 떨어트리거나 하는 대응을 해야 하는지부터 의문입니다. 하지만 전단이 대량으로 날아오면 "우리 하늘이 뚫렸다"는 여론이 일 수 있습니다. 북한의 의도가 먹히는 겁니다.

그렇다고 군이 적극적으로 전단 차단 작전에 들어가기도 애매합니다. 긴장 고조를 원하는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대남전단 살포에 단순히 풍선이 아니라 다른 수단을 동원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한의 무인기 기술은 다량의 전단을 더 정확하게 운반할 수 있습니다. 명백히 9.19 군사합의 위반이며, 비행금지구역을 대놓고 어기는 도발을 할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무인기가 뜨면 군이 나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련해서 22일 오전 정경두 국방부 장관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 대남전단에 대한 대책을 묻는 말에 "북한이 어떤 수단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군 대응이) 달라질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북한은 여러 가지 삐라살포 기재, 수단들이 이미 준비돼있다고 합니다. 과연, 풍선이 아닌 다른 수단이 등장할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남측이 골머리가 아파할 일" (6월 5일)
이 시점에서 지난 5일 북한 통일전선부 대변인의 언급이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우리도 접경지역에서 남측이 골머리가 아파할 일판을 벌일 것이고, 남측이 몹시 피로해 할 일판을 준비하고 있으며 시달리게 해주겠다는 위협입니다.

풍선 대남전단은 우리에게 사실 큰 군사적 위협이라 볼 수 없습니다. 대남 전단은 우리에게 심리전 효과도 없습니다. 무섭지 않습니다. 그러나 피곤합니다. 여러 장 떨어지면 청소부터 귀찮습니다.

국방부는 북한의 대남전단 살포 행위는 남북 간 합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며, 남북 사이의 잘못된 관행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키는 조치이자,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관계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임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통일부 역시 대남전단 살포는 남북관계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역시 원천 봉쇄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북한은 끝내, 기어이 피곤한 일을 만들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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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삐라살포투쟁?…“무섭지는 않지만 피곤한” 대남전단
    • 입력 2020-06-23 07:01:22
    취재K
"역대 최대규모의 대적삐라살포투쟁" (6월 22일)
연이어 말 폭탄을 쏟아내던 북한이 곧 대남전단을 띄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 표현대로 "분노와 적개심이 담긴 1,200만 장의 각종 삐라"가 남한을 향해 하늘을 날아오는 상황이 벌어지겠죠. 대남전단 살포를 예고하며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에 등장한 그들의 표현은 무시무시합니다. 삐라(대남전단)를 통해 "막을 수 없는 전 인민적, 전 사회적 분노를 분출"하고 있습니다. 삐라를 보내 남한을 "응징보복"한다고 합니다. 북한의 의도는 먹힐까요? 과거 대남전단이 어떻게 날아왔는지를 살펴보면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소제목에서 큰 따옴표로 인용한 문장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겁니다.

'오랜 심리전 수단' 삐라, 위력 있나?
북한을 향해 날아가는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전단에 북한은 광분합니다. 폐쇄 사회 북한에서 체제의 치부를 폭로하고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대북전단은 북한의 아픈 곳을 찌르는 강력한 심리전 무기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 중에 북한이 보낸 대남전단을 보고 마음이 흔들릴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 얼굴을 넣어 인쇄한 대남전단을 공개하며 남한이 최고 존엄을 건드렸으니 자기들도 남한 대통령을 비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선 대통령에 대한 포털 사이트 댓글 수위가 대남전단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2016년 10월 18일 방송된 KBS 뉴스의 제목은 "대남전단 또 살포…시민들 무관심"입니다. 북한 특유의 강렬한 색에 선동적인 문구로 채워져 있지만, 시민들은 무덤덤하고, 20대들은 전단을 뿌리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며, 온라인에서는 '조잡한 내용', '종이 낭비'라며 놀림거리가 될 정도라고 나와 있습니다.

2016년 수도권 일대에서 발견된 대남전단
"남조선(남한)의 깊은 종심까지 살포" (22일)
북한도 이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북한의 핵실험으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었던 정세에서 북한은 꾸준히 대남전단을 날려보냈습니다. KBS의 보도정보시스템에서 2016년부터 2017년 기간에 "대남전단"을 검색하면 약 70차례에 걸쳐 곳곳에서 대남전단이 발견됐습니다. 2016년 1월에는 강원도 고성, 인제, 철원 등 접경지역에서, 2월에는 경북 안동과 서울 성북구 동대문구 등에서, 3월에는 청주와 파주 등 8, 9월과 12월을 제외하고 1년 중에서 9달 동안 대남전단 발견 기사가 있습니다. 2017년에도 1월 천안, 파주, 수원, 청주를 비롯해 2월부터 10월까지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서울 각 지역과 경기도는 물론 강원도 강릉, 원주, 인천 등에서 꾸준히 발견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살포 시점과 신고 시점은 다를 수 있고, 또 전단이 날아왔다 해도 산속이나 인적이 없는 곳에 떨어지면 발견되지 않을 수 있으니 대남전단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반적으로 여름에는 따듯한 남쪽으로부터 바람이 북쪽으로 불어가고, 겨울에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름에는 북한을 향해 대북전단을 날릴 수는 있지만, 대남전단이 날아와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전단은 연중 내내 날아옵니다. 여름철에도 때에 따라서 몇 시간이라도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기도 합니다. 22일 오전에도 약간 북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또 지상에서 느껴지는 바람의 방향과 대남전단 풍선이 나는 고도의 바람의 방향이 다르기도 합니다. 북한 지도를 보면 NLL 인근 해상이나 도서 지역은 남쪽으로 내려와 있습니다. 바람이 북서나 서북서에서만 불어와도 수도권 쪽으로 대남 전단을 날릴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경기도, 강원도 접경지역은 물론, 수도권 일대에서 여름에도 대남전단이 발견됩니다. 북풍이 부는 겨울에는 멀리 경북 안동까지도 대남전단이 날아갑니다.

발견되는 장소도 다양합니다. 주택가, 공장, 산책로는 물론 2016년 2월에는 여의도 국회 도서관과 화단 등 국회 경내에서 발견됐습니다. 10월 9일엔 대공 수사를 하는 서울 중앙지검 청사 안과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발견됐습니다. 3일 뒤엔 여의도 KBS 별관 주차장과 본관, 신관 옥상에서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2017년 10월엔 청와대 춘추관 앞에서 발견돼 경호처가 나서 수거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10월 12일 새벽 여의도 KBS 별관에서 발견된 대남전단
"삐라와 오물 그것을 수습하는 것이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이며 기분 더러운 일인가" (22일)
전단이 날아오면 치우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비상이 걸리기도 합니다. 2016년 5월 30일 대남전단이 달린 대형풍선 2개가 서울 은평구 주택가의 전깃줄에 걸린 채 발견됐습니다. 전단은 170장뿐이었지만 북한은 안에 흙을 넣어 보냈습니다. 그냥 흙인지, 아니면 독성물질이나 생화학무기가 포함된 건 아닌지 모르는 상황. 결국, 경찰은 물론 군 화생방 신속대응팀까지 출동했고 성분검사, 생물학작용검사, 생화학검사까지 했습니다. 다행히 유독물질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추가 정밀 검사를 위해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 표본을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북한이 전단을 대량으로 날려보내면 일단 수거하기 번거롭습니다. 이에 더해 흙이나 가루, 이상하게 보이는 물질을 보내면 우리 행정력을 동원해야 합니다. 수습이 골치가 아픕니다. 대남 전단 신고가 들어오면 수거를 위해 군 당국이 현장에 가기도 합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던 서울 은평구의 대남전단 풍선
타이머에 폭발장치…때로는 오작동
2016년 1월 경기도 고양에서 발견된 대남전단을 당국이 수거해 살펴보니 전단 뭉치에는 미리 시간을 입력한 뒤 풍선이 수도권 상공에 도달하면 터질 수 있도록 타이머와 자동폭발 장치가 장착돼 있었습니다.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고도에서 터지면 하늘에서 흩뿌려지며 살포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폭파장치가 오작동해 전단 뭉치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일도 발생합니다.

타이머와 폭발장치를 갖춘 대남전단
2016년 1월 경기도 고양시에서는 대남전단 뭉치가 한꺼번에 떨어지며 주차된 차량을 덮쳤습니다. 차량 선루프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한 달 뒤 수원에서도 전단이 뭉치째 주택가로 떨어졌습니다. 빌라 옥상에 설치된 물탱크가 산산조각이 났고, 쏟아진 물은 엄동설한에 곳곳에서 얼어붙었습니다. 같은 해 6월 서울 방화동에서도 전단 뭉치가 떨어지며 주차된 차량 트렁크가 파손됐습니다. 당시 전단 뭉치의 무게는 무려 20kg. 만약 차가 아니라 사람을 덮쳤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전단은 더는 심리전 수단이 아닙니다. 공중에서 무력을 투발하는 수단이 되는 겁니다. 더군다나 이 경우엔 국민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군의 임무는 외세의 무력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원칙대로라면 군은 우리 영토에 상대의 무력이 투사되면 막아내야 할 뿐만 아니라 대응(또는 보복)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남전단이 주차된 차나 주택을 파손시켰다 해도 그때마다 군이 나서기도 애매합니다.

대남 전단으로 지붕이 파손된 차량
대남전단 때문에 전투기 뜨기도
우리 군을 피곤하게 하는 상황은 또 있었습니다. 2017년 5월 정체불명의 비행체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하했습니다. 군은 북한 무인기로 추정하고 경고방송을 하고, 수백 발의 K-3 기관총 경고사격을 퍼부었습니다. F-15K 전투기까지 대응 출격했습니다. 그야말로 비상이 걸린 셈입니다. 나중에 밝혀진 비행체의 정체는 대남전단 살포용 풍선이었습니다. 당시 비구름이 깔려 시정이 좋지 않아 식별이 늦어졌던 것입니다.

당시 대남전단 풍선 비행경로
실제 대북전단을 날려보낸 경험이 있는 활동가는 2012년 기준으로 가스비와 비닐 등 전단용 풍선 한 개 비용을 10만 원으로 계산했습니다. 타이머와 폭파 장치를 달았다 해도 북한의 대남 전단도 비용면에선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이런 풍선 몇 개 때문에 한 대에 천억 원 정도 하는 최신예 전투기가 뜬 이 소동을 북한도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 군을 애먹이려면 일부러 시정이 안 좋은 날 풍선 여러 개를 띄우거나, 또는 대남전단 안에 레이더에 잘 잡히도록 일부러 금속성 물질 등을 넣어 무인기처럼 보이게 교란책을 쓸 수도 있습니다.일단 레이더에 포착되면 군은 새떼인지, 무인기인지, 그냥 전단 살포용 풍선인지 일일이 식별, 다시 말해 구분을 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대응이 필요한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죠. 북한으로선 대남전단을 심리전 수단이 아니라 다량으로 풍선을 날려보내 우리 군 감시 자산을 긴장시켰다가 긴장을 풀었다 하는 약 올리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대남전단 때문에 출격했던 F-15K 전투기
"여러 가지 삐라살포기재, 수단들이 준비" (22일)
사실 대남전단이 그저 풍선에 실려 군사분계선을 날아오면 군은 일단 식별은 하겠지만, 대응 수단이 애매합니다. 전단이 날아온다 해서 굳이 군이 쏴서 떨어트리거나 하는 대응을 해야 하는지부터 의문입니다. 하지만 전단이 대량으로 날아오면 "우리 하늘이 뚫렸다"는 여론이 일 수 있습니다. 북한의 의도가 먹히는 겁니다.

그렇다고 군이 적극적으로 전단 차단 작전에 들어가기도 애매합니다. 긴장 고조를 원하는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대남전단 살포에 단순히 풍선이 아니라 다른 수단을 동원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한의 무인기 기술은 다량의 전단을 더 정확하게 운반할 수 있습니다. 명백히 9.19 군사합의 위반이며, 비행금지구역을 대놓고 어기는 도발을 할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무인기가 뜨면 군이 나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련해서 22일 오전 정경두 국방부 장관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 대남전단에 대한 대책을 묻는 말에 "북한이 어떤 수단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군 대응이) 달라질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북한은 여러 가지 삐라살포 기재, 수단들이 이미 준비돼있다고 합니다. 과연, 풍선이 아닌 다른 수단이 등장할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남측이 골머리가 아파할 일" (6월 5일)
이 시점에서 지난 5일 북한 통일전선부 대변인의 언급이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우리도 접경지역에서 남측이 골머리가 아파할 일판을 벌일 것이고, 남측이 몹시 피로해 할 일판을 준비하고 있으며 시달리게 해주겠다는 위협입니다.

풍선 대남전단은 우리에게 사실 큰 군사적 위협이라 볼 수 없습니다. 대남 전단은 우리에게 심리전 효과도 없습니다. 무섭지 않습니다. 그러나 피곤합니다. 여러 장 떨어지면 청소부터 귀찮습니다.

국방부는 북한의 대남전단 살포 행위는 남북 간 합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며, 남북 사이의 잘못된 관행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키는 조치이자,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관계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임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통일부 역시 대남전단 살포는 남북관계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역시 원천 봉쇄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북한은 끝내, 기어이 피곤한 일을 만들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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