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회고록의 재구성…‘결정적 장면’의 실체는?

입력 2020.06.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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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이 공식 출간됐습니다. 발간 전 입수된 회고록을 보면 2018년 이후 약 2년 동안 남북, 북미, 한미 정상외교에 관한 내용이 미국 백악관 내부자의 시선으로 자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보수 성향의 볼턴 전 보좌관 개인의 시각이 깊이 반영돼 있어 가려서 읽어야 하겠지만, 정상 외교의 숨은 이야기들을 엿볼 수 있는데요,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할 대목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남북미 세 나라 정상이 판문점에서 짧은 시간 동안 만났다. 한국 정부는 2018년 1차 북미정상회담 직후 남북미 3개국 정상회담을 강력히 추진했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 "남북미 정상회담 강력히 추진했지만..."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 이튿날 바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합니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볼턴에 따르면 이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만간 있을 북미 정상회담을 판문점에서 개최하고 싶다는 뜻을 강하게 밀어붙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곧바로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이 참여하는 3개국 정상회담을 열기 위해서입니다. '종전 선언' 등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입니다.

원래 1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북한은 판문점과 평양, 미국은 제네바와 싱가포르를 꼽고 있었다고 볼턴은 전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판문점을 강조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4월 30일 자신의 트위터에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합니다. 문 대통령 구상이 어느 정도 효과를 봤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북미 정상회담 장소는 싱가포르로 결정됩니다. 애초 평양에서 너무 멀고, 김정은 위원장의 비행기가 닿지 못한다는 이유로 북한이 꺼렸지만, 유럽보다는 싱가포르가 그나마 낫다며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볼턴은 남측이 이 결정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고 적었습니다.

장소가 싱가포르로 정해진 이후에도 남한은 3개국 정상회담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볼턴은 밝혔습니다. "싱가포르행을 지속해서 희망했다"는 건데요, 하지만 북한의 입장은 달랐다고 합니다. 1차 북미 정상회담이 한차례 취소됐다 재추진하기로 했던 2018년 5월 30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뉴욕을 방문합니다. 이때 김영철 부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싫어했으며 3국 회담에 아무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게 볼턴의 기억입니다.

흥미로운 건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백악관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을 만났을 때 볼턴 전 보좌관은 전임자들과 달리 배석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2018년 5월 한 차례 북미 정상회담이 취소되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게 바로 볼턴이라는 관측이 나왔었죠. 하지만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이른바 셔틀 회담을 하고 다시 한번 북미 정상 회동의 계기를 만들어가면서 싱가포르 회동을 앞두고 볼턴 보좌관이 이른바 '눈 밖에 났다'는 관측이 제기됐던 시깁니다.

그래도 미국은 한국 정부의 의지와는 동떨어진 입장을 정합니다. 6월 5일 볼턴은 폼페이오 국무부장관, 트럼프 대통령과 점심을 먹으면서 남북미 정상회담 여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볼턴이 한국 측 카운터파트, 즉 정의용 실장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통보했다는 겁니다. 그 결과는 3국 정상회담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연락을 받은 청와대도 실제 입장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5월 말까지만 해도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추진하겠다던 분위기를 보여왔지만 6월 7일쯤부터 3자 회담이나 종전선언이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는 방향으로 입장이 바뀝니다.

하지만 볼턴에 따르면 청와대는 그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 경과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로 바로 날아갈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 청와대 직원들과 외교부 의전 담당 실장, 심지어는 국가정보원 서훈 원장까지 싱가포르에 출장 중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 바로 전날인 6월 11일, 정상회담 전 준비 과정에서 종전선언 문제는 끝내 의제로 채택되지 못합니다. 이런 사실이 확정되자 볼턴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 3자 회담은 결국 불가능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렇게 우리 정부가 추진하던 남북미 3국 정상회담, 그리고 종전 선언 추진은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게 됩니다.


왼쪽부터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존 볼턴 미국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아치 쇼타로 일본 전 국가안전보장국장

■ 일본에 귀 활짝 열어뒀던 볼턴

존 볼턴은 미국 공화당의 네오콘, 즉 신보수주의자인 초강경 매파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해 온 변호사 출신 외교관입니다. 당선자가 누구냐를 둘러싸고 논란이 빚어졌던 2000년 미국 대선 당시, 문제의 핵심이었던 플로리다주 개표 결과를 조지 W. 부시 후보 측에 유리하게 이끄는 데 결정적 이바지를 한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공화당 내 주류 즉 네오콘이라 불리는 인사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2006년 유엔 대사를 지냈고, 2018년 4월 9일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에 취임했습니다. 북미 정상회담을 열기로 북한과 미국이 합의한 이후에 임명된 겁니다.

임명 사흘 뒤인 12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미국으로 날아갑니다. 자신의 미국 측 대화상대인 볼턴을 만나기 위해섭니다. 평소 한국의 대북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던 볼턴은 초면인 이 자리에서 대뜸 정 실장에게 4.27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논의하지 말라고 촉구합니다. 그럴 경우 한국과 미국 일본 등의 사이가 틀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정 의장을 만난 직후, 볼턴은 일본 측 카운터파트,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국장을 만납니다. 야치 국장을 만난 자리에서 볼턴은 자세를 확 바꿉니다. "일본의 자세는 남한과는 180도 달랐다"라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면서 "내 생각과 상당 부분 비슷했다"고도 말합니다.

이른바 '행동 대 행동' 공식을 원하지 않고 즉각적인 비핵화 조치를 요구한다는 점 등을 거론합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마음에 쏙 들었다는 것을 그대로 회고록에 묘사했습니다.

'행동대 행동'이라는 원칙은 2005년 6자회담 과정에서 발표했던 9.19 공동성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선언문 5항은 "6자는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근거하여 단계적 방식으로 상기 합의의 이행을 위해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할 것을 합의하였다"고 명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회담이었다 해도 한반도 이해 당사국 대표들이 모여 매우 어려운 협의 결과로 나왔던 합의문 내용에 볼턴은 자신의 호불호를 명확히 한 것입니다.

4.27 정상회담을 치른 뒤인 5월 4일, 정의용 실장이 미국으로 날아와 볼턴을 만납니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CVID, 즉 완벽하고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동의하도록 요구했으며 김 위원장은 이를 받아들일 것처럼 보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같은 날 볼턴은 또 일본 야치 국장을 만납니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볼턴은 일본이 북한의 비핵화 과정을 얼마나 엄중하게 지켜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고 회고록에 적었습니다. 야치 국장은 이 자리에서 "서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저 행복감을 반박하고 싶다"며 "우리는 북한의 전통적인 '행동 대 행동'식 접근에 빠져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겁니다. 남북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분위기가 읽힙니다.

볼턴은 마치 제 생각을 반영한다는 듯 야치 국장의 발언을 별다른 설명 없이 자주 인용했습니다. 5월 25일도 그 예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폭탄선언'을 한 직후입니다. 이때도 역시 정의용 실장과 볼턴이 먼저 통화합니다. 정 실장은 이번 결정으로 큰 정치적으로 난처한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고 하소연합니다. 하지만 볼턴은 당시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한 말들을 자세히 읽어보라고 말을 돌려줍니다.

그 뒤 볼턴은 재차 야치 국장과 이야기를 나는 듯합니다. 회고록에는 야치 국장의 발언이 짧게 인용돼 있는데 그 내용이 도발적입니다. "일본은 싱가포르 회담이 취소된 것에 대해 매우 안도했다."

하지만 볼턴의 기대와 달리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우여곡절 끝에 개최됐습니다. 볼턴은 이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직접 "더는 핵 실험은 없을 것이며, 불가역적 방법으로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겠다"는 언급을 듣습니다.

"불가역적 방법"이라는 표현은 볼턴 자신이 주장해왔던 CVID 즉, 포괄적이며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 과정의 시작점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언급입니다. 북한 지도자가 스스로 '불가역적'이라는 말을 언급했다면 당연히 후속 논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낳을 수 있는 대목이지만, 회고록은 이를 주목하지 않고 곧바로 북한 내 강경파를 우려하고 있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고백'으로 주제를 바꿔버립니다.

자기 뜻과 달리 개최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에서 주요 발언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기 싫었던 걸까요? 아니면 일부러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걸까요?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자신의 책에 실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모습. 맨 왼쪽에 볼턴 전 보좌관의 뒷모습이 찍혔다.

■ 도대체 '플러스알파'는 무엇일까?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충격 속에 아무런 합의 없이 끝났습니다. 다들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을 무렵,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을 합니다. 그는 "다들 모르지만, 우리가 발견한 새로운 것이 있다. 우리는 여러 지역을 언급했고, 북한은 이에 대해 놀란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의제이자 북한이 제시했던 카드인 영변 핵시설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 있는 핵 관련 시설까지 폐기하라고 요구했다는 겁니다. 폼페이오 국무부장관 역시 "영변 핵시설 외에도 굉장히 규모가 큰 핵시설이 있다"고 재차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영변 플러스알파'의 존재가 세간의 관심을 끈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다른 핵시설 폐기를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것이 하노이 북미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중요 원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볼턴은 이 부분에 대해 회고록에서 어떻게 기술하고 있을까?

북미회담 첫날 볼턴은 환영 만찬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미국 측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만이 참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볼턴은 만찬에서 있었던 얘기를 전해 듣고 회고록에 옮겨 놓았는데, 북한이 영변 폐기를 제시했고 반대로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볼턴은 자기 생각을 덧붙였는데, 북한은 영변 없이도 그들의 핵 프로그램을 계속할 수 있는 다른 많은 시설을 갖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놀랍게도 회고록에 나오는 '플러스 알파' 관련한 내용인 이것이 전부입니다. 다음 달 북미 단독 정상회담, 볼턴까지 참석한 확대 정상회담에서도 다른 핵 시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볼턴이 확대 정상회담에 참석한 덕에 회담 내 발언들과 분위기는 회고록에 세세하게 묘사돼 있음에도 말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영변 시설 폐기를 고집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 폐기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는 정도만 서술돼 있을 뿐입니다.

국가 기밀인 탓에 볼턴이 의도적으로 언급을 피했을까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걸까요?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 결렬이 주된 이유로 꼽았던 '플러스알파' 즉 또 다른 핵 시설이 무엇인지는 계속 의문 속에 남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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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볼턴 회고록의 재구성…‘결정적 장면’의 실체는?
    • 입력 2020-06-24 08:00:58
    취재K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이 공식 출간됐습니다. 발간 전 입수된 회고록을 보면 2018년 이후 약 2년 동안 남북, 북미, 한미 정상외교에 관한 내용이 미국 백악관 내부자의 시선으로 자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보수 성향의 볼턴 전 보좌관 개인의 시각이 깊이 반영돼 있어 가려서 읽어야 하겠지만, 정상 외교의 숨은 이야기들을 엿볼 수 있는데요,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할 대목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남북미 세 나라 정상이 판문점에서 짧은 시간 동안 만났다. 한국 정부는 2018년 1차 북미정상회담 직후 남북미 3개국 정상회담을 강력히 추진했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 "남북미 정상회담 강력히 추진했지만..."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 이튿날 바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합니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볼턴에 따르면 이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만간 있을 북미 정상회담을 판문점에서 개최하고 싶다는 뜻을 강하게 밀어붙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곧바로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이 참여하는 3개국 정상회담을 열기 위해서입니다. '종전 선언' 등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입니다.

원래 1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북한은 판문점과 평양, 미국은 제네바와 싱가포르를 꼽고 있었다고 볼턴은 전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판문점을 강조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4월 30일 자신의 트위터에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합니다. 문 대통령 구상이 어느 정도 효과를 봤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북미 정상회담 장소는 싱가포르로 결정됩니다. 애초 평양에서 너무 멀고, 김정은 위원장의 비행기가 닿지 못한다는 이유로 북한이 꺼렸지만, 유럽보다는 싱가포르가 그나마 낫다며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볼턴은 남측이 이 결정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고 적었습니다.

장소가 싱가포르로 정해진 이후에도 남한은 3개국 정상회담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볼턴은 밝혔습니다. "싱가포르행을 지속해서 희망했다"는 건데요, 하지만 북한의 입장은 달랐다고 합니다. 1차 북미 정상회담이 한차례 취소됐다 재추진하기로 했던 2018년 5월 30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뉴욕을 방문합니다. 이때 김영철 부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싫어했으며 3국 회담에 아무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게 볼턴의 기억입니다.

흥미로운 건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백악관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을 만났을 때 볼턴 전 보좌관은 전임자들과 달리 배석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2018년 5월 한 차례 북미 정상회담이 취소되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게 바로 볼턴이라는 관측이 나왔었죠. 하지만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이른바 셔틀 회담을 하고 다시 한번 북미 정상 회동의 계기를 만들어가면서 싱가포르 회동을 앞두고 볼턴 보좌관이 이른바 '눈 밖에 났다'는 관측이 제기됐던 시깁니다.

그래도 미국은 한국 정부의 의지와는 동떨어진 입장을 정합니다. 6월 5일 볼턴은 폼페이오 국무부장관, 트럼프 대통령과 점심을 먹으면서 남북미 정상회담 여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볼턴이 한국 측 카운터파트, 즉 정의용 실장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통보했다는 겁니다. 그 결과는 3국 정상회담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연락을 받은 청와대도 실제 입장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5월 말까지만 해도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추진하겠다던 분위기를 보여왔지만 6월 7일쯤부터 3자 회담이나 종전선언이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는 방향으로 입장이 바뀝니다.

하지만 볼턴에 따르면 청와대는 그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 경과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로 바로 날아갈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 청와대 직원들과 외교부 의전 담당 실장, 심지어는 국가정보원 서훈 원장까지 싱가포르에 출장 중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 바로 전날인 6월 11일, 정상회담 전 준비 과정에서 종전선언 문제는 끝내 의제로 채택되지 못합니다. 이런 사실이 확정되자 볼턴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 3자 회담은 결국 불가능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렇게 우리 정부가 추진하던 남북미 3국 정상회담, 그리고 종전 선언 추진은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게 됩니다.


왼쪽부터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존 볼턴 미국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아치 쇼타로 일본 전 국가안전보장국장

■ 일본에 귀 활짝 열어뒀던 볼턴

존 볼턴은 미국 공화당의 네오콘, 즉 신보수주의자인 초강경 매파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해 온 변호사 출신 외교관입니다. 당선자가 누구냐를 둘러싸고 논란이 빚어졌던 2000년 미국 대선 당시, 문제의 핵심이었던 플로리다주 개표 결과를 조지 W. 부시 후보 측에 유리하게 이끄는 데 결정적 이바지를 한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공화당 내 주류 즉 네오콘이라 불리는 인사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2006년 유엔 대사를 지냈고, 2018년 4월 9일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에 취임했습니다. 북미 정상회담을 열기로 북한과 미국이 합의한 이후에 임명된 겁니다.

임명 사흘 뒤인 12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미국으로 날아갑니다. 자신의 미국 측 대화상대인 볼턴을 만나기 위해섭니다. 평소 한국의 대북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던 볼턴은 초면인 이 자리에서 대뜸 정 실장에게 4.27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논의하지 말라고 촉구합니다. 그럴 경우 한국과 미국 일본 등의 사이가 틀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정 의장을 만난 직후, 볼턴은 일본 측 카운터파트,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국장을 만납니다. 야치 국장을 만난 자리에서 볼턴은 자세를 확 바꿉니다. "일본의 자세는 남한과는 180도 달랐다"라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면서 "내 생각과 상당 부분 비슷했다"고도 말합니다.

이른바 '행동 대 행동' 공식을 원하지 않고 즉각적인 비핵화 조치를 요구한다는 점 등을 거론합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마음에 쏙 들었다는 것을 그대로 회고록에 묘사했습니다.

'행동대 행동'이라는 원칙은 2005년 6자회담 과정에서 발표했던 9.19 공동성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선언문 5항은 "6자는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근거하여 단계적 방식으로 상기 합의의 이행을 위해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할 것을 합의하였다"고 명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회담이었다 해도 한반도 이해 당사국 대표들이 모여 매우 어려운 협의 결과로 나왔던 합의문 내용에 볼턴은 자신의 호불호를 명확히 한 것입니다.

4.27 정상회담을 치른 뒤인 5월 4일, 정의용 실장이 미국으로 날아와 볼턴을 만납니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CVID, 즉 완벽하고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동의하도록 요구했으며 김 위원장은 이를 받아들일 것처럼 보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같은 날 볼턴은 또 일본 야치 국장을 만납니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볼턴은 일본이 북한의 비핵화 과정을 얼마나 엄중하게 지켜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고 회고록에 적었습니다. 야치 국장은 이 자리에서 "서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저 행복감을 반박하고 싶다"며 "우리는 북한의 전통적인 '행동 대 행동'식 접근에 빠져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겁니다. 남북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분위기가 읽힙니다.

볼턴은 마치 제 생각을 반영한다는 듯 야치 국장의 발언을 별다른 설명 없이 자주 인용했습니다. 5월 25일도 그 예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폭탄선언'을 한 직후입니다. 이때도 역시 정의용 실장과 볼턴이 먼저 통화합니다. 정 실장은 이번 결정으로 큰 정치적으로 난처한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고 하소연합니다. 하지만 볼턴은 당시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한 말들을 자세히 읽어보라고 말을 돌려줍니다.

그 뒤 볼턴은 재차 야치 국장과 이야기를 나는 듯합니다. 회고록에는 야치 국장의 발언이 짧게 인용돼 있는데 그 내용이 도발적입니다. "일본은 싱가포르 회담이 취소된 것에 대해 매우 안도했다."

하지만 볼턴의 기대와 달리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우여곡절 끝에 개최됐습니다. 볼턴은 이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직접 "더는 핵 실험은 없을 것이며, 불가역적 방법으로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겠다"는 언급을 듣습니다.

"불가역적 방법"이라는 표현은 볼턴 자신이 주장해왔던 CVID 즉, 포괄적이며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 과정의 시작점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언급입니다. 북한 지도자가 스스로 '불가역적'이라는 말을 언급했다면 당연히 후속 논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낳을 수 있는 대목이지만, 회고록은 이를 주목하지 않고 곧바로 북한 내 강경파를 우려하고 있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고백'으로 주제를 바꿔버립니다.

자기 뜻과 달리 개최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에서 주요 발언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기 싫었던 걸까요? 아니면 일부러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걸까요?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자신의 책에 실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모습. 맨 왼쪽에 볼턴 전 보좌관의 뒷모습이 찍혔다.

■ 도대체 '플러스알파'는 무엇일까?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충격 속에 아무런 합의 없이 끝났습니다. 다들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을 무렵,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을 합니다. 그는 "다들 모르지만, 우리가 발견한 새로운 것이 있다. 우리는 여러 지역을 언급했고, 북한은 이에 대해 놀란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의제이자 북한이 제시했던 카드인 영변 핵시설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 있는 핵 관련 시설까지 폐기하라고 요구했다는 겁니다. 폼페이오 국무부장관 역시 "영변 핵시설 외에도 굉장히 규모가 큰 핵시설이 있다"고 재차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영변 플러스알파'의 존재가 세간의 관심을 끈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다른 핵시설 폐기를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것이 하노이 북미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중요 원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볼턴은 이 부분에 대해 회고록에서 어떻게 기술하고 있을까?

북미회담 첫날 볼턴은 환영 만찬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미국 측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만이 참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볼턴은 만찬에서 있었던 얘기를 전해 듣고 회고록에 옮겨 놓았는데, 북한이 영변 폐기를 제시했고 반대로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볼턴은 자기 생각을 덧붙였는데, 북한은 영변 없이도 그들의 핵 프로그램을 계속할 수 있는 다른 많은 시설을 갖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놀랍게도 회고록에 나오는 '플러스 알파' 관련한 내용인 이것이 전부입니다. 다음 달 북미 단독 정상회담, 볼턴까지 참석한 확대 정상회담에서도 다른 핵 시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볼턴이 확대 정상회담에 참석한 덕에 회담 내 발언들과 분위기는 회고록에 세세하게 묘사돼 있음에도 말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영변 시설 폐기를 고집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 폐기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는 정도만 서술돼 있을 뿐입니다.

국가 기밀인 탓에 볼턴이 의도적으로 언급을 피했을까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걸까요?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 결렬이 주된 이유로 꼽았던 '플러스알파' 즉 또 다른 핵 시설이 무엇인지는 계속 의문 속에 남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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