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제2 개성공단을 어디에 만드나 했더니

입력 2020.06.24 (08: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는 압록강을 가로질러 신(新)압록강대교가 시원스럽게 놓여있다. 신압록강대교는 단둥 신구(新區) 랑터우(浪头)와 북한 남 신의주 용천(龍川)을 잇는 길이 3km, 폭 33m의 왕복 4차로 사장교다. 중국이 공사비 22억 위안(3천8억 백 억원)을 부담해 2014년 11월 교량 본체를 완공됐지만 아직까지 개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측은 이미 세관 건물과 통관시설을 마련했지만 북한 측이 세관 설치와 연결 도로 공사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개통이 늦어지고 있다.

현재 북한과 중국은 이 신압록강대교로 부터 상류 방향으로 20km 떨어진 ‘조중우의교’, 이른바 압록강 철교를 통해 육로 통상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이 압록강 철교가 1937년에 건설돼 노후한데다 단선이어서 국경 무역에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쌍방 통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전에는 단둥 세관에서 신의주 세관으로 화물 트럭이 가고 오후에는 반대로 신의주 세관에서 단둥 세관으로 넘어오는 방식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9년 10월 원자바오(溫家寶) 당시 총리가 방북했을 때 양국이 새 다리 건설에 동의하면서 2010년 12월 31일 단둥 신구에서 첫 삽을 뜬 뒤 지금의 신압록강대교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5년 넘게 지지부진하던 이 신압록강대교 개통이 북한의 태도 변화로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수십 대의 덤프트럭과 공사 차량이 신압록강대교 다리 끝단에서 작업하는 모습이 매일 목격되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19로 북·중 국경이 봉쇄된 상황에서도 야간작업까지 벌이며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4월 중순 신압록강 대교와 용천 1번 국도를 잇는 비포장 연결 도로는 최근 아스팔트 포장까지 마무리했다. 이제 신압록강 대교 끝단 왼편에 북한 측 세관 건물만 지으면 개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공사가 진척됐다.


그런데 북한은 이 신압록강대교 개통만을 염두에 두지 않고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바로 개성공단과 비슷한 ‘수출입가공단지’ 북한은 공식적으로 ‘수출입가공업구’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 수출입가공단지를 지난해 10월부터 신압록강 대교 부근에 1㎢ (약 30만 평) 규모로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성공단의 3배쯤 되는 면적이다. 현재도 대형 공사 차량이 매일 아스팔트로 포장된 국도 1호선을 따라 흙을 퍼 나르고 한쪽에서는 불도저가 평탄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기반공사를 모두 마무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곳에 새롭게 조성되는 수출입가공단지는 임가공 위탁생산 방식을 채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기업이 입주해 북한 종업원을 고용한 뒤 중국에서 들여온 원자재를 가공해 다시 중국으로 완제품을 수출하는 방식이다. 북한 내수용이 아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이곳을 ‘단둥 개발구’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왕복 4차로인 신압록강대교 완공에 따라 가능해졌다.


북한은 중국기업의 적극적인 호응을 기대하고 있다. 일단 기존의 접경지역 조·중 합작기업보다 북한 종업원의 인건비가 5분의 1에 불과해 매력적이라는 평가다. 다른 접경지역 조·중 합작기업은 북한에서 종업원을 데려와 숙소에서 먹이고 재우는 일까지 모두 중국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비용면에서 훨씬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북소식통은 수출입가공단지가 완공되면 중국에서 만개 이상의 기업이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은 세관 건물 신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출입가공단지 옆에 들어설 세관 건물은 4층 높이로 지어 1층에는 커피숍을 유치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중국에 투자 유치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점은 북한 세무당국이 이런 종합계획에 따라 자동화 설비를 갖춘 통관시스템을 설치하기로 하고 중국 측 유관부서에 협조를 요청했다. 북한 세관원 5명이 중국에서 연수를 받게 해달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현재 북·중 교역 창구인 압록강 철교에 있는 신의주 세관은 예전 방식 그대로 세관원이 일일이 짐을 살피는 육안 검사로 통관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북한은 신압록강대교 개통과 함께 자동화 설비를 갖춘 통관 시스템 구축에 나서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자동화 설비가 워낙 고가여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남북 간 세관 당국의 협력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해 6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방북했을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위한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중국은 차관형식으로 기존의 신의주-평양 간 국도를 대체하는 새로운 고속도로 건설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남북 긴장 관계가 지속되고 국경 봉쇄로 북한 경제가 더욱더 곤경에 빠지고 미·중 간 신냉전의 골이 깊어질수록 중국은 북한의 심장부까지 적극적으로 파고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70년 전 중공이 압록강을 넘었던 그때처럼 말이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리포트] 제2 개성공단을 어디에 만드나 했더니
    • 입력 2020-06-24 08:00:59
    특파원 리포트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는 압록강을 가로질러 신(新)압록강대교가 시원스럽게 놓여있다. 신압록강대교는 단둥 신구(新區) 랑터우(浪头)와 북한 남 신의주 용천(龍川)을 잇는 길이 3km, 폭 33m의 왕복 4차로 사장교다. 중국이 공사비 22억 위안(3천8억 백 억원)을 부담해 2014년 11월 교량 본체를 완공됐지만 아직까지 개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측은 이미 세관 건물과 통관시설을 마련했지만 북한 측이 세관 설치와 연결 도로 공사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개통이 늦어지고 있다.

현재 북한과 중국은 이 신압록강대교로 부터 상류 방향으로 20km 떨어진 ‘조중우의교’, 이른바 압록강 철교를 통해 육로 통상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이 압록강 철교가 1937년에 건설돼 노후한데다 단선이어서 국경 무역에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쌍방 통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전에는 단둥 세관에서 신의주 세관으로 화물 트럭이 가고 오후에는 반대로 신의주 세관에서 단둥 세관으로 넘어오는 방식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9년 10월 원자바오(溫家寶) 당시 총리가 방북했을 때 양국이 새 다리 건설에 동의하면서 2010년 12월 31일 단둥 신구에서 첫 삽을 뜬 뒤 지금의 신압록강대교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5년 넘게 지지부진하던 이 신압록강대교 개통이 북한의 태도 변화로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수십 대의 덤프트럭과 공사 차량이 신압록강대교 다리 끝단에서 작업하는 모습이 매일 목격되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19로 북·중 국경이 봉쇄된 상황에서도 야간작업까지 벌이며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4월 중순 신압록강 대교와 용천 1번 국도를 잇는 비포장 연결 도로는 최근 아스팔트 포장까지 마무리했다. 이제 신압록강 대교 끝단 왼편에 북한 측 세관 건물만 지으면 개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공사가 진척됐다.


그런데 북한은 이 신압록강대교 개통만을 염두에 두지 않고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바로 개성공단과 비슷한 ‘수출입가공단지’ 북한은 공식적으로 ‘수출입가공업구’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 수출입가공단지를 지난해 10월부터 신압록강 대교 부근에 1㎢ (약 30만 평) 규모로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성공단의 3배쯤 되는 면적이다. 현재도 대형 공사 차량이 매일 아스팔트로 포장된 국도 1호선을 따라 흙을 퍼 나르고 한쪽에서는 불도저가 평탄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기반공사를 모두 마무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곳에 새롭게 조성되는 수출입가공단지는 임가공 위탁생산 방식을 채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기업이 입주해 북한 종업원을 고용한 뒤 중국에서 들여온 원자재를 가공해 다시 중국으로 완제품을 수출하는 방식이다. 북한 내수용이 아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이곳을 ‘단둥 개발구’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왕복 4차로인 신압록강대교 완공에 따라 가능해졌다.


북한은 중국기업의 적극적인 호응을 기대하고 있다. 일단 기존의 접경지역 조·중 합작기업보다 북한 종업원의 인건비가 5분의 1에 불과해 매력적이라는 평가다. 다른 접경지역 조·중 합작기업은 북한에서 종업원을 데려와 숙소에서 먹이고 재우는 일까지 모두 중국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비용면에서 훨씬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북소식통은 수출입가공단지가 완공되면 중국에서 만개 이상의 기업이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은 세관 건물 신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출입가공단지 옆에 들어설 세관 건물은 4층 높이로 지어 1층에는 커피숍을 유치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중국에 투자 유치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점은 북한 세무당국이 이런 종합계획에 따라 자동화 설비를 갖춘 통관시스템을 설치하기로 하고 중국 측 유관부서에 협조를 요청했다. 북한 세관원 5명이 중국에서 연수를 받게 해달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현재 북·중 교역 창구인 압록강 철교에 있는 신의주 세관은 예전 방식 그대로 세관원이 일일이 짐을 살피는 육안 검사로 통관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북한은 신압록강대교 개통과 함께 자동화 설비를 갖춘 통관 시스템 구축에 나서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자동화 설비가 워낙 고가여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남북 간 세관 당국의 협력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해 6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방북했을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위한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중국은 차관형식으로 기존의 신의주-평양 간 국도를 대체하는 새로운 고속도로 건설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남북 긴장 관계가 지속되고 국경 봉쇄로 북한 경제가 더욱더 곤경에 빠지고 미·중 간 신냉전의 골이 깊어질수록 중국은 북한의 심장부까지 적극적으로 파고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70년 전 중공이 압록강을 넘었던 그때처럼 말이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