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 투기의 뇌관 용산, 불로소득의 고리를 끊자

입력 2020.06.2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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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에 과천만한 규모의 미니 신도시를 조성하겠다고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발표했습니다. 아파트 8천 세대를 짓겠다는 건데,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넓은 허허벌판이 있는지 사실 저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세금과 규제로만 집값을 잡을 순 없으니 주택 공급도 늘려야 할 겁니다. 그런데 여기가 노른자 중의 노른자 땅이잖아요? 사통팔달 교통 요지인 데다 옆에 있는 용산 미군기지도 곧 이전해 공원으로 된다고 하니까 말이죠. 자칫하면 이게 집값을 잡는 게 아니고 오히려 투기의 뇌관을 건드리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가 높습니다.

국토부는 용산 땅의 절반은 민간에 매각해서 민간분양을 하겠지만, 나머지 절반은 임대주택과 공공분양 아파트를 계획하고 있어서 투기판이 되진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사람들이 관심 갖는 건 여기 들어설 임대아파트와 공공분양 아파트가 아닙니다. 나머지 절반, 4천 세대 규모의 민간분양 아파트거든요.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이니 분양가가 높게 책정되진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당첨만 되면 로또 중의 로또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용산의 입지조건으로 봤을 때 아무리 전매제한 기간을 길게 설정한다 해도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역대급 시세차익을 남길 가능성이 많고, 자칫하면 서울은 물론 수도권 집값까지 자극할 우려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들과 일부 전문가들은 용산 땅을 민간에 팔지 말고 '토지임대 분양' 방식 개발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용어가 생소하죠?


보통 집을 사면 건물뿐 아니라 아파트가 깔고 있는 토지의 일부도 개인 소유로 등기를 해주잖아요? 그런데 토지임대 방식은 건물만 자기 소유고 토지는 택지를 조성한 공공기관(예를 들어 LH공사나 SH공사 등) 소유로 등기되는 겁니다. 아파트 건물만 내 것이고 땅은 내 것이 아니란 얘기죠.

땅값이 빠지니 당연히 아파트값이 싸겠죠. 100제곱미터, 30평 아파트라면 노른자 땅 용산에 지어진다 해도 건축비만 내면 되니 집값은 2억 원 정도면 분양받을 수 있을 겁니다. 대신 토지를 임대한 것이니 토지임대료는 매달 내야겠죠. 싼 값에 살 집을 마련할 순 있지만 집으로 돈 벌 가능성은 없습니다.

투기는 건물이 아닌 땅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땅이 개인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투기가 불가능하게 되죠. 이 방식으로 용산을 개발하자는 겁니다. 실수요자를 위한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고, 투기도 잡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도랑도 치고 가재도 잡아야겠는데, 문제는 이곳이 코레일 땅이거든요. 15조 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코레일 입장에선 사실 투기가 일어나든 말든 이 땅을 팔아서 빚 갚는 게 최우선일 겁니다. 그렇다고 코레일은 공기업이지 않나? 그러니 땅 팔아서 당장 빚 갚을 생각 말고 공공의 이익을 생각해서 토지임대 방식으로 가자, 이렇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을 겁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제안합니다. 코레일이 부채가 부담스럽다면 토지임대료를 기초로 하는 채권을 발행하는 겁니다. 물론 땅을 민간에 매각하는 것보다는 채권 발행가액이 조금 낮을 수는 있지만 당장 급한 채무를 우선 해결하기엔 충분한 금액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가치가 계속 커지는 용산 땅이 민간에 넘어가지 않고 공공이 계속 보유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코레일이 채권을 직접 발행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정부나 서울시가 코레일로부터 땅을 사들인 뒤 채권을 발행하면 된다고도 합니다. 노른자 중의 노른자 땅인 용산 부지 임대료로 설계된 채권이 팔리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거잖아요? 안전과 고수익을 위해 해외부동산을 찾아다니는 국민연금이라든지, 조성된 기금이 70조 원에 달하는 도시주택기금 입장에서 이보다 더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률이 보장되는 채권이 어디 있겠냐는 거죠.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사례가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습니다.

배터리파크 개발 후/전배터리파크 개발 후/전

왼쪽 사진 붉은색으로 표시된 곳이 배터리 파크라는 뉴욕 맨해튼 남쪽 끝에 들어선 신시가지인데, 고층 아파트 1만 4,000여 세대와 세계금융센터 등 산업용 빌딩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이곳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오른쪽 사진처럼 선착장이었습니다. 도시는 커지는데 맨해튼에 더 땅이 없으니 뉴욕시가 이 선착장을 매립하기로 결정합니다.

문제는 막대한 매립비용이었죠. 보통 조성된 땅을 민간에 팔아서 비용을 조달하기 마련인데 뉴욕시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땅은 뉴욕시 소유로 계속 보유하고, 민간들이 토지임대료를 내고 들어와 건물을 짓고 살거나 사업할 수 있게 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주의의 상징인 맨해튼에서 말이죠.

뉴욕시는 막대한 매립비용은 장기채권을 발행해 조달하기로 했습니다. 맨해튼이니만큼 들어오는 토지임대료는 채권 발행 이자를 내고도 남았고, 결국 2014년 채권을 모두 상환했습니다. 이때부터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거죠. 매년 약 2억 달러에 달하는 토지임대료가 꼬박꼬박 들어왔고, 뉴욕시는 이 돈을 뉴욕에 사는 빈민계층 주거지원에 사용하게 됐습니다.

한국의 용산 땅도 당장 급하다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것인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공공주도로 개발할 것인지는 정책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용산뿐만 아니라 수도권 3기 신도시도 본격 개발을 앞두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집값을 잡으려는 의지가 진짜 있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말합니다.

민간에서 개발하는 재개발ㆍ재건축이야 강제하지 못한다 해도, 앞으로 공공이 공급하는 거의 모든 주택은 민간에 땅을 팔아 민간분양하는 대신 토지임대 분양방식으로 가겠다고 정부가 선언하면 땅을 이용한 불로소득의 고리가 근본적으로 끊어질 수 있다는 거죠.

더 자세한 내용은 내일(6월 27일) 밤 8시 5분 KBS 1TV에서 방영되는 <시사기획 창> '땅, 불로소득의 고리를 끊자' 편을 통해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유튜브 '시사기획 창' 채널에서도 쉽고 재미있는 기자의 취재 이야기, 확인 가능합니다.

'시사기획 창' 홈페이지 https://bit.ly/39AXC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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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기획 창] 투기의 뇌관 용산, 불로소득의 고리를 끊자
    • 입력 2020-06-26 07:02:55
    취재K
서울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에 과천만한 규모의 미니 신도시를 조성하겠다고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발표했습니다. 아파트 8천 세대를 짓겠다는 건데,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넓은 허허벌판이 있는지 사실 저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세금과 규제로만 집값을 잡을 순 없으니 주택 공급도 늘려야 할 겁니다. 그런데 여기가 노른자 중의 노른자 땅이잖아요? 사통팔달 교통 요지인 데다 옆에 있는 용산 미군기지도 곧 이전해 공원으로 된다고 하니까 말이죠. 자칫하면 이게 집값을 잡는 게 아니고 오히려 투기의 뇌관을 건드리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가 높습니다.

국토부는 용산 땅의 절반은 민간에 매각해서 민간분양을 하겠지만, 나머지 절반은 임대주택과 공공분양 아파트를 계획하고 있어서 투기판이 되진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사람들이 관심 갖는 건 여기 들어설 임대아파트와 공공분양 아파트가 아닙니다. 나머지 절반, 4천 세대 규모의 민간분양 아파트거든요.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이니 분양가가 높게 책정되진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당첨만 되면 로또 중의 로또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용산의 입지조건으로 봤을 때 아무리 전매제한 기간을 길게 설정한다 해도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역대급 시세차익을 남길 가능성이 많고, 자칫하면 서울은 물론 수도권 집값까지 자극할 우려가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들과 일부 전문가들은 용산 땅을 민간에 팔지 말고 '토지임대 분양' 방식 개발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용어가 생소하죠?


보통 집을 사면 건물뿐 아니라 아파트가 깔고 있는 토지의 일부도 개인 소유로 등기를 해주잖아요? 그런데 토지임대 방식은 건물만 자기 소유고 토지는 택지를 조성한 공공기관(예를 들어 LH공사나 SH공사 등) 소유로 등기되는 겁니다. 아파트 건물만 내 것이고 땅은 내 것이 아니란 얘기죠.

땅값이 빠지니 당연히 아파트값이 싸겠죠. 100제곱미터, 30평 아파트라면 노른자 땅 용산에 지어진다 해도 건축비만 내면 되니 집값은 2억 원 정도면 분양받을 수 있을 겁니다. 대신 토지를 임대한 것이니 토지임대료는 매달 내야겠죠. 싼 값에 살 집을 마련할 순 있지만 집으로 돈 벌 가능성은 없습니다.

투기는 건물이 아닌 땅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땅이 개인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투기가 불가능하게 되죠. 이 방식으로 용산을 개발하자는 겁니다. 실수요자를 위한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고, 투기도 잡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도랑도 치고 가재도 잡아야겠는데, 문제는 이곳이 코레일 땅이거든요. 15조 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코레일 입장에선 사실 투기가 일어나든 말든 이 땅을 팔아서 빚 갚는 게 최우선일 겁니다. 그렇다고 코레일은 공기업이지 않나? 그러니 땅 팔아서 당장 빚 갚을 생각 말고 공공의 이익을 생각해서 토지임대 방식으로 가자, 이렇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을 겁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제안합니다. 코레일이 부채가 부담스럽다면 토지임대료를 기초로 하는 채권을 발행하는 겁니다. 물론 땅을 민간에 매각하는 것보다는 채권 발행가액이 조금 낮을 수는 있지만 당장 급한 채무를 우선 해결하기엔 충분한 금액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가치가 계속 커지는 용산 땅이 민간에 넘어가지 않고 공공이 계속 보유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코레일이 채권을 직접 발행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정부나 서울시가 코레일로부터 땅을 사들인 뒤 채권을 발행하면 된다고도 합니다. 노른자 중의 노른자 땅인 용산 부지 임대료로 설계된 채권이 팔리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거잖아요? 안전과 고수익을 위해 해외부동산을 찾아다니는 국민연금이라든지, 조성된 기금이 70조 원에 달하는 도시주택기금 입장에서 이보다 더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률이 보장되는 채권이 어디 있겠냐는 거죠.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사례가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습니다.

배터리파크 개발 후/전
왼쪽 사진 붉은색으로 표시된 곳이 배터리 파크라는 뉴욕 맨해튼 남쪽 끝에 들어선 신시가지인데, 고층 아파트 1만 4,000여 세대와 세계금융센터 등 산업용 빌딩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이곳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오른쪽 사진처럼 선착장이었습니다. 도시는 커지는데 맨해튼에 더 땅이 없으니 뉴욕시가 이 선착장을 매립하기로 결정합니다.

문제는 막대한 매립비용이었죠. 보통 조성된 땅을 민간에 팔아서 비용을 조달하기 마련인데 뉴욕시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땅은 뉴욕시 소유로 계속 보유하고, 민간들이 토지임대료를 내고 들어와 건물을 짓고 살거나 사업할 수 있게 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주의의 상징인 맨해튼에서 말이죠.

뉴욕시는 막대한 매립비용은 장기채권을 발행해 조달하기로 했습니다. 맨해튼이니만큼 들어오는 토지임대료는 채권 발행 이자를 내고도 남았고, 결국 2014년 채권을 모두 상환했습니다. 이때부터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거죠. 매년 약 2억 달러에 달하는 토지임대료가 꼬박꼬박 들어왔고, 뉴욕시는 이 돈을 뉴욕에 사는 빈민계층 주거지원에 사용하게 됐습니다.

한국의 용산 땅도 당장 급하다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것인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공공주도로 개발할 것인지는 정책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용산뿐만 아니라 수도권 3기 신도시도 본격 개발을 앞두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집값을 잡으려는 의지가 진짜 있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말합니다.

민간에서 개발하는 재개발ㆍ재건축이야 강제하지 못한다 해도, 앞으로 공공이 공급하는 거의 모든 주택은 민간에 땅을 팔아 민간분양하는 대신 토지임대 분양방식으로 가겠다고 정부가 선언하면 땅을 이용한 불로소득의 고리가 근본적으로 끊어질 수 있다는 거죠.

더 자세한 내용은 내일(6월 27일) 밤 8시 5분 KBS 1TV에서 방영되는 <시사기획 창> '땅, 불로소득의 고리를 끊자' 편을 통해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유튜브 '시사기획 창' 채널에서도 쉽고 재미있는 기자의 취재 이야기,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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