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야죠” 고단한 경비원의 하루…故 최희석 씨가 남긴 숙제

입력 2020.06.28 (21:20) 수정 2020.06.2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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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던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최희석 경비원이 세상을 뜬 지 50일이 지났습니다.

최 씨 사건을 계기로 경비원에 대한 갑질에 경각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아직 갈길이 먼데요.

최 씨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 허효진 기자가 고단한 경비원의 하루를 함께하며 하나씩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오늘은 일주일에 하루, 재활용 쓰레기가 나오는 날입니다.

경비원들에겐 가장 바쁜 날, 출근하자마자 분리수거장으로 가야 합니다.

[A 씨/아파트경비원/음성변조 : "오늘 쉴 시간이 없죠, 아침 6시부터 내일 출고될 때까지. 이거 한 번 하면 입 안이 해지고 그래요."]

재활용 쓰레기 분리만 반나절, 점심 휴게 시간은 그냥 지나가버렸습니다.

겨우 끼니를 때울 짬이 났습니다.

하지만 먹는둥 마는둥, 곧바로, 청소하러 가야합니다.

민원이 들어오기 전에 쓰레기도 줍고, 풀도 베야 합니다.

[B 씨/아파트경비원/음성변조 : "너무 (풀이) 많으면 항의랑 민원이 들어오니까 자주 깎아줘야 민원이 안 들어오죠."]

각 호수별로 택배를 정돈하고 나면...

이제부터가 본연의 경비업뭅니다.

아침 저녁 하루에 두번씩 도는 순찰.

수상한 사람은 없는지, 술 취해 집 못찾는 주민은 없는지...

저녁 순찰이 끝나면 하루 업무가 마무리되지만, 편히 쉴 수는 없습니다.

[C 씨/아파트경비원/음성변조 : "취객들이 늦은 시간에 술 먹고서 늦게 귀가하면서 (경비초소에) 와서 택배를 달라고 억지를 쓰는 경우, 일반 사적인 개인사유 때문에 문을 두들기는 사람도 있고..."]

지하방이지만 이렇게라도 휴게 공간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 좁은 화장실이 곧 식당이자 휴게실인 경우도 다반삽니다.

일보다 더 힘든 건, 일부 입주민들의 시선입니다.

[C 씨/아파트경비원/음성변조 : "분명히 사복입고 출퇴근하는 거 아닙니까? 그때는 똑같은 사람이야. 근데 경비복을 갈아입고 경비 모자를 쓰고 나오면 그때부터는 주민이 보는 시선은 그게 아니야. 사람을 대하는 게 아니야."]

그래서 故 최희석 경비원의 일이 결코 남일 같지 않습니다.

[D 씨/아파트경비원/음성변조 : "사람이 너무 착했다고 그러더라고. 그런 걸 얘기하면 안정적으로 자기가 경비 업무를 할 수가 없으니까 참는거지."]

고 최희석 경비원의 근로계약섭니다.

격일제 24시간 근무, 식사시간을 포함한 휴게 시간은 모두 10시간이 보장돼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보셨듯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래서 이런 일도 생깁니다.

최 씨의 근무일지, 저녁에 가로등 점등을 한 시각, 저녁 7시 반인데 이 때는 '휴게시간'이었습니다.

경비원의 법적 지위는 어떨까요.

감단직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감시단속직을 줄인 말인데, 근로기준법에서 일종의 예외 직종으로 나눠놨습니다.

주로 초소 같은데서 대기를 하다가 노동을 하는, 업무특성상 휴게시간을 특정할 수 없다는 건데요,

그래서 임금을 줄이려고 휴게시간을 늘리는 등 근무형태를 바꾸려면 고용부장관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승인, 사실상 100%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경비업법, 경비원들은 순찰같은 경비 본연의 업무 말고는 다른 일을 해서는 안되지만,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죠.

그래서 우선적으로 경비원의 법적 지위를 다시 규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감단직에서 제외하고, 실제 업무에 따라 직종을 나누자는 겁니다.

[남우근/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공동사업단 연구위원 : "사실은 (경비원들은) 감시단속적 근로자에 적용을 하면 안된다고 저는 생각하고요. 경비원과 관리원을 이원화해서 가는게 불가피하지 않냐. (격일 24시간) 근무형태를 좀 변경하는 모델들을 개발해야겠다..."]

경비원 상수가 고령자인 현실적 문제도 감안해야 하고,

[C 씨/아파트경비원/음성변조 : "6개월 단기 계약으로도 불안했는데 50대로 노동자들을 바꿔야 한다는 말들이 나옵니다. 사실 너무 두렵습니다."]

당장 휴게시간만이라도 잘 지켜달란 호소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D 씨/前 아파트경비원/음성변조 : "야간 시간에 중간에 일어나 순찰을 하는 경우에는 제대로 잘 수 없어 경비 노동자의 몸은 점점 안 좋아집니다."]

정부는 올해 안에 경비원의 업무 범위와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지만 전국 18만 경비노동자들은 오늘도, 내일도, 고단한 일상을 참아내야 합니다.

KBS 뉴스 허효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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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아야죠” 고단한 경비원의 하루…故 최희석 씨가 남긴 숙제
    • 입력 2020-06-28 21:22:07
    • 수정2020-06-28 21:40:56
    뉴스 9
[앵커]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던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최희석 경비원이 세상을 뜬 지 50일이 지났습니다.

최 씨 사건을 계기로 경비원에 대한 갑질에 경각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아직 갈길이 먼데요.

최 씨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 허효진 기자가 고단한 경비원의 하루를 함께하며 하나씩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오늘은 일주일에 하루, 재활용 쓰레기가 나오는 날입니다.

경비원들에겐 가장 바쁜 날, 출근하자마자 분리수거장으로 가야 합니다.

[A 씨/아파트경비원/음성변조 : "오늘 쉴 시간이 없죠, 아침 6시부터 내일 출고될 때까지. 이거 한 번 하면 입 안이 해지고 그래요."]

재활용 쓰레기 분리만 반나절, 점심 휴게 시간은 그냥 지나가버렸습니다.

겨우 끼니를 때울 짬이 났습니다.

하지만 먹는둥 마는둥, 곧바로, 청소하러 가야합니다.

민원이 들어오기 전에 쓰레기도 줍고, 풀도 베야 합니다.

[B 씨/아파트경비원/음성변조 : "너무 (풀이) 많으면 항의랑 민원이 들어오니까 자주 깎아줘야 민원이 안 들어오죠."]

각 호수별로 택배를 정돈하고 나면...

이제부터가 본연의 경비업뭅니다.

아침 저녁 하루에 두번씩 도는 순찰.

수상한 사람은 없는지, 술 취해 집 못찾는 주민은 없는지...

저녁 순찰이 끝나면 하루 업무가 마무리되지만, 편히 쉴 수는 없습니다.

[C 씨/아파트경비원/음성변조 : "취객들이 늦은 시간에 술 먹고서 늦게 귀가하면서 (경비초소에) 와서 택배를 달라고 억지를 쓰는 경우, 일반 사적인 개인사유 때문에 문을 두들기는 사람도 있고..."]

지하방이지만 이렇게라도 휴게 공간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 좁은 화장실이 곧 식당이자 휴게실인 경우도 다반삽니다.

일보다 더 힘든 건, 일부 입주민들의 시선입니다.

[C 씨/아파트경비원/음성변조 : "분명히 사복입고 출퇴근하는 거 아닙니까? 그때는 똑같은 사람이야. 근데 경비복을 갈아입고 경비 모자를 쓰고 나오면 그때부터는 주민이 보는 시선은 그게 아니야. 사람을 대하는 게 아니야."]

그래서 故 최희석 경비원의 일이 결코 남일 같지 않습니다.

[D 씨/아파트경비원/음성변조 : "사람이 너무 착했다고 그러더라고. 그런 걸 얘기하면 안정적으로 자기가 경비 업무를 할 수가 없으니까 참는거지."]

고 최희석 경비원의 근로계약섭니다.

격일제 24시간 근무, 식사시간을 포함한 휴게 시간은 모두 10시간이 보장돼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보셨듯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래서 이런 일도 생깁니다.

최 씨의 근무일지, 저녁에 가로등 점등을 한 시각, 저녁 7시 반인데 이 때는 '휴게시간'이었습니다.

경비원의 법적 지위는 어떨까요.

감단직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감시단속직을 줄인 말인데, 근로기준법에서 일종의 예외 직종으로 나눠놨습니다.

주로 초소 같은데서 대기를 하다가 노동을 하는, 업무특성상 휴게시간을 특정할 수 없다는 건데요,

그래서 임금을 줄이려고 휴게시간을 늘리는 등 근무형태를 바꾸려면 고용부장관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승인, 사실상 100%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경비업법, 경비원들은 순찰같은 경비 본연의 업무 말고는 다른 일을 해서는 안되지만,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죠.

그래서 우선적으로 경비원의 법적 지위를 다시 규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감단직에서 제외하고, 실제 업무에 따라 직종을 나누자는 겁니다.

[남우근/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공동사업단 연구위원 : "사실은 (경비원들은) 감시단속적 근로자에 적용을 하면 안된다고 저는 생각하고요. 경비원과 관리원을 이원화해서 가는게 불가피하지 않냐. (격일 24시간) 근무형태를 좀 변경하는 모델들을 개발해야겠다..."]

경비원 상수가 고령자인 현실적 문제도 감안해야 하고,

[C 씨/아파트경비원/음성변조 : "6개월 단기 계약으로도 불안했는데 50대로 노동자들을 바꿔야 한다는 말들이 나옵니다. 사실 너무 두렵습니다."]

당장 휴게시간만이라도 잘 지켜달란 호소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D 씨/前 아파트경비원/음성변조 : "야간 시간에 중간에 일어나 순찰을 하는 경우에는 제대로 잘 수 없어 경비 노동자의 몸은 점점 안 좋아집니다."]

정부는 올해 안에 경비원의 업무 범위와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지만 전국 18만 경비노동자들은 오늘도, 내일도, 고단한 일상을 참아내야 합니다.

KBS 뉴스 허효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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