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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그저 참는 수밖에”…그들에게 찾아 온 불공평한 재난의 공포
입력 2020.06.30 (07:01) 수정 2020.06.30 (07:35) 취재후
[취재후] “그저 참는 수밖에”…그들에게 찾아 온 불공평한 재난의 공포
재난은 불공평합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지만, 공평하게 생채기를 남기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19라는 큰 재난 앞에서 사회적인 약자들은 더 큰 상처를 입습니다. 코로나19 사태 반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들이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아이들도 힘들었고, 특히 장애인들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올해 들어 중증 장애인 자녀를 돌보던 어머니들이 잇따라 자녀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버티고 있는 중증 장애인,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만나봤습니다. 그리고 장애인들을 위한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불공평하게 찾아오는 재난의 공포를 다시금 절감했습니다.


■활동 보조인도 외면하는 최중증 장애인

정순경 씨는 19살 발달 장애인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딸은 태어날 때부터 아팠습니다. 뇌병변 장애 1급에 지적 장애 1급인 딸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온종일 누군가 보살펴줘야 합니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배변을 처리해줘야 합니다.

엄마인 정순경 씨에게 코로나19 사태는 말 그대로 '재난'이었습니다. 다니던 복지관은 문을 닫았습니다. 딸을 함께 돌봐주는 활동 보조인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딸이 학교에 못 간지도 여섯 달째. 정 씨의 삶은 녹록지 않습니다. 그림자처럼, 종일 딸에게 매여있어야 하는 일상. 정 씨는 인터뷰하며 굵은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활동보조인들도 중증 장애인들한테는 잘 안 와요."

장애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딸처럼 최중증에 속하는 장애인들은 소수자들 안에서도 차별받습니다. 보조인들도 기피합니다. 정 씨는 본인이 없는 상황을 늘 걱정합니다.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시라고 요청했습니다. 정 씨는 초점 없는 딸의 눈을 바라보며 당부했습니다. 엄마가 없더라도 누구에게라도 어디가 아픈지, 어디가 불편한지 꼭 말해야 한다고.


현행법에는 천재지변 등으로 피해를 당할 경우 장애인들이 긴급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적용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지자체별로 기준이 달랐고 지원 방법도 달랐습니다. 일관성없는 기준 적용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이 없도록, 이번 국회에서 법 개정안이 나왔습니다. 법적으로 장애인을 지원해야 하는 천재지변을 ‘감염병 확산에 따른 위기 경보가 발령됐을 경우'로 명시하자는 내용입니다. 법이 통과되면 대규모 질병 유행 상황에서 궁지에 몰리는 장애인들이 최소한 지금보다는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활동 보조인이 없는 시간… "그저 참는 수밖에"

50대인 신정훈 씨는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됐습니다. 전화 통화를 할 때는 신 씨가 얼마나 중증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신 씨는 27살 때 타고 가던 차가 트럭과 충돌하면서 전신마비 장애를 입었습니다. 바깥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신 씨의 기억은 그때에 멈춰있습니다. 지금은 활동 보조인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먹고, 입고, 씻는 모든 활동을 보조인에게 의존합니다. 신 씨가 할 수 있는 활동은 오로지 말하는 일 뿐입니다.

물론 신 씨는 정부로부터 활동 보조 지원을 받습니다. 신 씨가 활동 보조인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은 한 달에 710시간입니다. 산술적으로는 거의 하루 24시간 돌봄을 받을 수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는 2배, 공휴일은 1.5배 할증이 붙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활동 보조인이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신 씨를 돌본다고 하면 신 씨는 보조 지원 시간을 5시간이 아니라 10시간을 쓴 게 되는 겁니다.

이러다 보니 지원 시간을 모두 써도 필연적으로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신 씨는 서울시의 임대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공동 관리인이 있기에 활동 보조인이 없는 시간에 생기는 급한 일은 공동 관리인에게 부탁합니다. 신 씨는 말했습니다. "갑자기 강직이 (마비가) 올 때가 있거든요. 그때 굉장히 괴로운데. 그냥 참고 있어야죠. 방법이 없잖아요. 저는 할 수 있는 게 말하는 것밖에 없고.”


이런 불가피한 상황을 막기 위해 활동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24시간 도움을 받게 하자는 법 개정안이 나왔습니다. 장애인 개인별 특성을 반영해 필요한 한도에서 활동 보조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법안을 발의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재난 시기에 방치돼서, 안 그래도 취약했는데 훨씬 더 취약한 상황을 홀로 견딜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자꾸 발생하는 걸 막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장애인들의 상태는 비장애인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을 덜 겪도록 법적,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 장치는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라 '다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생길 수 있는 차별을 막기 위한 것이기에 오히려 공평하고 의미 있지 않을까요?

장기화된 코로나19 사태, 장애인에게 더 불공평한 재난 상황에서 만났던 신정훈 씨. 신 씨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20년 이상을 시설에서 살다가 지난 겨울에 독립했어요. 계절이 바뀐 걸 보면서 세상이 이런 거구나, 27년 전에 그런 모습 보고 처음 본 거였거든요. 그 모습들이 굉장히 아름다웠어요, 하루 24시간 활동 지원이 되면 여행을 좀 해보고 싶어요. 계절이 변하는 그 모습을 가슴에 담아두고 싶어요."
  • [취재후] “그저 참는 수밖에”…그들에게 찾아 온 불공평한 재난의 공포
    • 입력 2020.06.30 (07:01)
    • 수정 2020.06.30 (07:35)
    취재후
[취재후] “그저 참는 수밖에”…그들에게 찾아 온 불공평한 재난의 공포
재난은 불공평합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지만, 공평하게 생채기를 남기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19라는 큰 재난 앞에서 사회적인 약자들은 더 큰 상처를 입습니다. 코로나19 사태 반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들이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아이들도 힘들었고, 특히 장애인들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올해 들어 중증 장애인 자녀를 돌보던 어머니들이 잇따라 자녀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버티고 있는 중증 장애인,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만나봤습니다. 그리고 장애인들을 위한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불공평하게 찾아오는 재난의 공포를 다시금 절감했습니다.


■활동 보조인도 외면하는 최중증 장애인

정순경 씨는 19살 발달 장애인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딸은 태어날 때부터 아팠습니다. 뇌병변 장애 1급에 지적 장애 1급인 딸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온종일 누군가 보살펴줘야 합니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배변을 처리해줘야 합니다.

엄마인 정순경 씨에게 코로나19 사태는 말 그대로 '재난'이었습니다. 다니던 복지관은 문을 닫았습니다. 딸을 함께 돌봐주는 활동 보조인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딸이 학교에 못 간지도 여섯 달째. 정 씨의 삶은 녹록지 않습니다. 그림자처럼, 종일 딸에게 매여있어야 하는 일상. 정 씨는 인터뷰하며 굵은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활동보조인들도 중증 장애인들한테는 잘 안 와요."

장애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딸처럼 최중증에 속하는 장애인들은 소수자들 안에서도 차별받습니다. 보조인들도 기피합니다. 정 씨는 본인이 없는 상황을 늘 걱정합니다.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시라고 요청했습니다. 정 씨는 초점 없는 딸의 눈을 바라보며 당부했습니다. 엄마가 없더라도 누구에게라도 어디가 아픈지, 어디가 불편한지 꼭 말해야 한다고.


현행법에는 천재지변 등으로 피해를 당할 경우 장애인들이 긴급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적용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지자체별로 기준이 달랐고 지원 방법도 달랐습니다. 일관성없는 기준 적용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이 없도록, 이번 국회에서 법 개정안이 나왔습니다. 법적으로 장애인을 지원해야 하는 천재지변을 ‘감염병 확산에 따른 위기 경보가 발령됐을 경우'로 명시하자는 내용입니다. 법이 통과되면 대규모 질병 유행 상황에서 궁지에 몰리는 장애인들이 최소한 지금보다는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활동 보조인이 없는 시간… "그저 참는 수밖에"

50대인 신정훈 씨는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됐습니다. 전화 통화를 할 때는 신 씨가 얼마나 중증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신 씨는 27살 때 타고 가던 차가 트럭과 충돌하면서 전신마비 장애를 입었습니다. 바깥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신 씨의 기억은 그때에 멈춰있습니다. 지금은 활동 보조인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먹고, 입고, 씻는 모든 활동을 보조인에게 의존합니다. 신 씨가 할 수 있는 활동은 오로지 말하는 일 뿐입니다.

물론 신 씨는 정부로부터 활동 보조 지원을 받습니다. 신 씨가 활동 보조인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은 한 달에 710시간입니다. 산술적으로는 거의 하루 24시간 돌봄을 받을 수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는 2배, 공휴일은 1.5배 할증이 붙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활동 보조인이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신 씨를 돌본다고 하면 신 씨는 보조 지원 시간을 5시간이 아니라 10시간을 쓴 게 되는 겁니다.

이러다 보니 지원 시간을 모두 써도 필연적으로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신 씨는 서울시의 임대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공동 관리인이 있기에 활동 보조인이 없는 시간에 생기는 급한 일은 공동 관리인에게 부탁합니다. 신 씨는 말했습니다. "갑자기 강직이 (마비가) 올 때가 있거든요. 그때 굉장히 괴로운데. 그냥 참고 있어야죠. 방법이 없잖아요. 저는 할 수 있는 게 말하는 것밖에 없고.”


이런 불가피한 상황을 막기 위해 활동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24시간 도움을 받게 하자는 법 개정안이 나왔습니다. 장애인 개인별 특성을 반영해 필요한 한도에서 활동 보조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법안을 발의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재난 시기에 방치돼서, 안 그래도 취약했는데 훨씬 더 취약한 상황을 홀로 견딜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자꾸 발생하는 걸 막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장애인들의 상태는 비장애인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을 덜 겪도록 법적,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 장치는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라 '다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생길 수 있는 차별을 막기 위한 것이기에 오히려 공평하고 의미 있지 않을까요?

장기화된 코로나19 사태, 장애인에게 더 불공평한 재난 상황에서 만났던 신정훈 씨. 신 씨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20년 이상을 시설에서 살다가 지난 겨울에 독립했어요. 계절이 바뀐 걸 보면서 세상이 이런 거구나, 27년 전에 그런 모습 보고 처음 본 거였거든요. 그 모습들이 굉장히 아름다웠어요, 하루 24시간 활동 지원이 되면 여행을 좀 해보고 싶어요. 계절이 변하는 그 모습을 가슴에 담아두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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