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사주받고 이런 설문이야?”…차별금지법에 대한 21대 국회의원들의 반응

입력 2020.06.3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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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이 어제(29일) 이른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습니다. 8번째 시도입니다. 이전 7번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는데, 21대 국회에서는 과연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을까요?

이런 궁금증으로 KBS는 21대 국회의원 300명 전원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입장을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입장을 밝힌 의원은 300명 가운데 94명에 불과했습니다. 206명은 입장 표명을 거부했습니다. 지난주 일주일간 수차례 문자메시지와 통화로 의사를 물은 결과였습니다.

21대 국회의원들의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응답하거나 응답하지 않거나 이유도 가지가지였는데요.

유형① "무응답 처리해주세요."

첫 번째 유형은 의견표명을 보류하겠다거나, 무응답으로 처리해달라는 의원들이었습니다. 사실 가장 많은 의원이 여기에 속합니다. 찬반 의견을 밝힌 인원보다 더 많은 116명가량이 KBS의 설문에 무응답으로 처리해달라고 답했습니다.

무응답 처리에도 여러 유형이 있긴 합니다. '별생각이 없다.' '생각이 정립돼있지 않다.' 등 잘 모르겠다며 무응답으로 처리해달라고 말한 경우도 많았고요.

'심도 있게 법안을 검토하고 의견을 표명해야 할 일'이라거나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한 반발 등을 생각하면 아직 판단이 잘 안 된다'며 의견표명을 미루기도 했습니다.

'공식적으로 답하고 싶지 않다'며 조심스러워하는 의원들도 많았습니다. 익명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걱정된다면서 솔직하게 '자신의 소신과 지역구의 민심이 달라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죠.

심지어 한 초선 의원실은 응답했다가도 뒤늦게 보좌진의 실수였다며 응답을 취소하고 무응답 처리해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유형② "기독교인이라서…."

답하기 곤란해 하는 이유 중에 하나로 꼽는 것이 국회의원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는 목사님이 많아서' 곤란하다고 한 일도 있었고, '기독교인인데 종교 관점에서 보면 반대해야 하는데 소수자가 피해를 보면 안 되는 점에서는 또 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유형③ "이런 조사는 왜 하는 거죠?"

사실 많은 의원이 KBS의 설문 조사 자체를 불편해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응답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는데, '내가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거냐"라며 불쾌해 하는 의원들도 있었고요. '자신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밝힌 한 의원은 "누구의 사주를 받고 설문조사 하는 거냐"라며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이 설문조사를 하는 의도를 의심하는 건데요. 다시 한 번 밝히지만, KBS의 설문조사 의도는 21대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이 통과될 수 있을지 21대 국회의원들의 생각을 묻기 위한 의도 하나뿐입니다.

유형④"설문조사에는 응하지 않는 원칙이 있어서…."

응답유형 가운데 특이한 점은 꽤 여러 명의 의원이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고 답한 겁니다. 모든 설문에 응하지 않는 원칙을 세웠다며 KBS에만 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 이해해달라는 건데, 이 의원들은 왜 이런 원칙을 세웠을까요?

한 의원은 "우리는 의정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법에 대해 직접 물어보는 것에 의원이 답하는 것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의문이 듭니다. 입법 활동을 하는 국회의원에게 법에 대한 의견을 묻는데 그것을 답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니…. 저희의 설문 문항이 자신들의 의견을 담기에 부족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의원이 법에 대한 생각을 말하기 꺼리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한 초선 의원은 "설문조사는 익명이 아니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밝혔는데요. 의원님, 저희는 실명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유형⑤ "익명은 보장되는 거죠?"

응답한 의원들은 익명 보장을 신신당부했습니다. 따로 전화를 걸어 익명 보장이 맞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익명을 꼭 보장해달라고 당부했죠. 자신들의 실명이 보도될 경우 기독교단체 등으로부터 받게 될 압박을 우려한 겁니다.

본회의에서 투표할 때는 실명이 표시되는데 그땐 어떻게 하시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면서도 "그래도 차별금지법에 힘을 실어주고 싶으니 지금은 본회의 투표 때도 찬성한다고 답한 거로 해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만으로 21대 국회에서의 '차별금지법' 처리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까지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의견을 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니까요. 그래도 잘 지켜보겠습니다. 21대 국회에서는 이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 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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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 사주받고 이런 설문이야?”…차별금지법에 대한 21대 국회의원들의 반응
    • 입력 2020-06-30 14:16:24
    취재K
정의당이 어제(29일) 이른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습니다. 8번째 시도입니다. 이전 7번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는데, 21대 국회에서는 과연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을까요?

이런 궁금증으로 KBS는 21대 국회의원 300명 전원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입장을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입장을 밝힌 의원은 300명 가운데 94명에 불과했습니다. 206명은 입장 표명을 거부했습니다. 지난주 일주일간 수차례 문자메시지와 통화로 의사를 물은 결과였습니다.

21대 국회의원들의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응답하거나 응답하지 않거나 이유도 가지가지였는데요.

유형① "무응답 처리해주세요."

첫 번째 유형은 의견표명을 보류하겠다거나, 무응답으로 처리해달라는 의원들이었습니다. 사실 가장 많은 의원이 여기에 속합니다. 찬반 의견을 밝힌 인원보다 더 많은 116명가량이 KBS의 설문에 무응답으로 처리해달라고 답했습니다.

무응답 처리에도 여러 유형이 있긴 합니다. '별생각이 없다.' '생각이 정립돼있지 않다.' 등 잘 모르겠다며 무응답으로 처리해달라고 말한 경우도 많았고요.

'심도 있게 법안을 검토하고 의견을 표명해야 할 일'이라거나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한 반발 등을 생각하면 아직 판단이 잘 안 된다'며 의견표명을 미루기도 했습니다.

'공식적으로 답하고 싶지 않다'며 조심스러워하는 의원들도 많았습니다. 익명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걱정된다면서 솔직하게 '자신의 소신과 지역구의 민심이 달라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죠.

심지어 한 초선 의원실은 응답했다가도 뒤늦게 보좌진의 실수였다며 응답을 취소하고 무응답 처리해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유형② "기독교인이라서…."

답하기 곤란해 하는 이유 중에 하나로 꼽는 것이 국회의원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는 목사님이 많아서' 곤란하다고 한 일도 있었고, '기독교인인데 종교 관점에서 보면 반대해야 하는데 소수자가 피해를 보면 안 되는 점에서는 또 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유형③ "이런 조사는 왜 하는 거죠?"

사실 많은 의원이 KBS의 설문 조사 자체를 불편해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응답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는데, '내가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거냐"라며 불쾌해 하는 의원들도 있었고요. '자신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밝힌 한 의원은 "누구의 사주를 받고 설문조사 하는 거냐"라며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이 설문조사를 하는 의도를 의심하는 건데요. 다시 한 번 밝히지만, KBS의 설문조사 의도는 21대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이 통과될 수 있을지 21대 국회의원들의 생각을 묻기 위한 의도 하나뿐입니다.

유형④"설문조사에는 응하지 않는 원칙이 있어서…."

응답유형 가운데 특이한 점은 꽤 여러 명의 의원이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고 답한 겁니다. 모든 설문에 응하지 않는 원칙을 세웠다며 KBS에만 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 이해해달라는 건데, 이 의원들은 왜 이런 원칙을 세웠을까요?

한 의원은 "우리는 의정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법에 대해 직접 물어보는 것에 의원이 답하는 것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의문이 듭니다. 입법 활동을 하는 국회의원에게 법에 대한 의견을 묻는데 그것을 답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니…. 저희의 설문 문항이 자신들의 의견을 담기에 부족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의원이 법에 대한 생각을 말하기 꺼리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한 초선 의원은 "설문조사는 익명이 아니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밝혔는데요. 의원님, 저희는 실명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유형⑤ "익명은 보장되는 거죠?"

응답한 의원들은 익명 보장을 신신당부했습니다. 따로 전화를 걸어 익명 보장이 맞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익명을 꼭 보장해달라고 당부했죠. 자신들의 실명이 보도될 경우 기독교단체 등으로부터 받게 될 압박을 우려한 겁니다.

본회의에서 투표할 때는 실명이 표시되는데 그땐 어떻게 하시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면서도 "그래도 차별금지법에 힘을 실어주고 싶으니 지금은 본회의 투표 때도 찬성한다고 답한 거로 해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만으로 21대 국회에서의 '차별금지법' 처리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까지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의견을 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니까요. 그래도 잘 지켜보겠습니다. 21대 국회에서는 이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 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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