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사죄드립니다”…청와대에 제출한 환경부 ‘반성문’?

입력 2020.07.01 (07:00) 수정 2020.07.0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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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1부(김선희 임정엽 권성수 부장판사)는 그제(29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에 대한 재판에 김 모 전 환경부 운영지원과장을 증인으로 소환했습니다. 정 모 전 환경부 운영지원과장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환경부 운영지원과장은 환경부 인사를 총괄하는 자리로, 고위공무원단인 국장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길목으로 꼽히는 자리입니다. 김 전 과장은 2017년 12월부터 2018년 8월 '4대강 조사평가단 기획총괄팀장'으로 부임할 때까지 8개월 정도 운영지원과장으로 근무했습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의 인사권 남용으로 김 전 과장이 ▲환경부 산하 특정 공공기관 임원에게 사직서 제출을 요구하고 ▲청와대가 추천한 후보자(추천 후보자)가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 서류와 면접 심사를 통과할 수 있도록 조직적으로 지원하고 ▲탈락한 추천 후보자가 다른 공공기관에 취업할 수 있게 지원하는 등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으며 추천 후보자가 탈락한 데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 전 과장에게 인사 불이익을 줬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김 전 장관 측은 ▲관행대로 장관이 정부 국정철학에 맞게 인사권을 행사했고 ▲장관이 추천 후보자 지원사항에 대한 구체적 지시를 내리지 않았고 ▲김 전 과장의 전보 조처는 인사 불이익이 아닌 장관의 인사 재량권 범위에 속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번 재판에선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을까요?

파행일까, 관행일까?

재판에서는 김 전 장관의 지시로 임원들에게 사직서를 요구했다는 증언, 그리고 이 같은 일은 오랜 관행으로 생각했다는 양쪽의 증언이 모두 나왔습니다.

김 전 과장은 김 전 장관의 지시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의 사직서 제출 '의향' 여부를 조사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김 전 과장은 "장관이 산하 공공기관 임원교체 문제가 가장 시급한 현안"이라고 말했고, 2018년 김 전 장관의 신년사 중 '산하기관 인사도 1월과 2월 중에는 마친다'라는 말에 신속히 사표를 받아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고 얘기했습니다. 실제로 인사팀 직원들에게 사직서를 요청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그중 두 명은 직접 찾아가 사표를 제출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고 밝혔습니다.

김 전 과장은 불편하고 어려운 마음으로 이런 업무를 수행했다면서, "누군가 하라고 얘기하지 않았다면 했겠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만, 김 전 장관 측 반대신문에서 증인은 20년 넘게 환경부에서 일하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며,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넘어갈 때,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넘어갈 때 공공기관 임원진이 많이 바뀌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특히, 국정철학이 임원 선임에 반영되는 게 옳은지 묻는 피고인 측의 질문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습니다.

추천 후보자에게 인사팀 차원의 지원이 이뤄졌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청와대나 김 전 장관이 추천 후보자와 연락처를 알려주면 이를 인사팀 실무자에게 전달했고, 인사팀에서 지원을 해줬다는 겁니다. 김 전 과장은 인사팀이 추천 후보자의 자기소개서와 직무수행계획서를 대신 작성해주는 과정을 알고 있었고,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 위원에겐 미리 추천 후보자를 알려줬다고 인정했습니다.

김 전 과장은 사표를 받거나 산하기관 임원 후보자를 선정하는 모든 절차는 청와대와 승인을 거쳐야 했고, 수시로 청와대를 찾아가 사표 제출 현황을 보고했다고 부연했습니다. 특히, 청와대 측 인사가 "후보자가 결정되고 나면 지원 단계별로 꼼꼼하게 잘 지원해서 떨어지는 일 없도록 유념해달라고 당부했다"라고 얘기했고, 김 전 장관도 이에 대해 잘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김 전 과장은 매번 실무자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았고, 인사팀 직원에게 추천 후보자가 누군지 얘기해주면 자동으로 절차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이미 오래된 업무 관행이라고 이해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김 전 장관에게 매번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보고하지도 않았고, 당시엔 문제가 되지 않는 선을 지키고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깊이 사죄드립니다"…청와대로 제출된 '반성문'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을 교체하는 작업이 이뤄지던 중,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모 일간지 간부 출신 후보가 환경부 서류심사도 통과하지 못한 겁니다. 이 후보는 청와대가 추천한 후보였습니다.

김 전 과장은 '향후 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엄중히 조치하겠다.', '매우 큰 불찰로 생각하며 깊이 사죄드린다', '어떠한 책임과 처벌도 감수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담긴 소명서를 청와대에 들고 갔다고 증언했습니다.

검찰은 이 부분이 신미숙 전 비서관이 강요로 이뤄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신 전 비서관이 '탈락에 대한 반성, 처벌 감수 및 재발 방지' 취지로 소명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김 전 과장을 질책했다는 겁니다.

김 전 과장은 공무원이 보고서나 사유서를 쓸 때, 이런 정도로 송구하다거나 사죄의 뜻을 담는 경우가 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그런 경우는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소명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큰 질책이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느냐는 검사의 질문엔 한참 뒤에야 입을 뗐습니다.

"제 전임자의 전례에 비춰봤을 때, 그런 이야기도 나왔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책임져야 할 부분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으로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4대강'으로 간 운영지원과장

얼마 뒤, 김 전 과장은 4대강 조사평가단으로 전보조치됩니다. 증인은 4대강 조사평가단이 환경부 공무원에게 부담스러운 자리라고 얘기합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했던 4대강 보호 처리 문제를 조사하고, 처리방법을 마련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공무원으로서 부담스러웠다는 겁니다. 고위공무원단으로 가는 길목에서 4대강으로, 김 전 과장은 8개월 만에 자리를 옮겼습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이 김 전 과장에게 책임을 물어 부당한 인사권을 행사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증인에게도 이 부분을 캐물었습니다. 검사는 운영지원과장으로 근무할 때 다른 보직을 원했는지, 추천 후보자를 관리하지 못한 문책성 인사라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김 전 과장은 "제가 먼저 (전보를) 희망한 건 아닙니다"라면서, "시기상 전혀 관련이 없을 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김 전 장관 측 입장은 달랐습니다. 김 전 과장의 동기이자 후임 인사운영과장이었던 이 모 전 과장이 김 전 과장이 승진한 후 몇 개월 뒤에나 승진했고, 전임 정 전 과장은 운영지원과장으로 2년을 근무한 뒤에 승진했던 것에 비춰보면 인사 불이익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또, 당시 김 전 과장 외에도 다른 과장들이 함께 4대강 조사평가단으로 옮겨왔던 점을 들었습니다.

다음 재판엔 윤 모 전 환경부 인사운영과 팀장이 증인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김 전 과장보다 인사 업무를 오래 했던 윤 팀장, 과연 무슨 증언을 이어갈까요? 다음 공판은 오는 10일에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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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깊이 사죄드립니다”…청와대에 제출한 환경부 ‘반성문’?
    • 입력 2020-07-01 07:00:27
    • 수정2020-07-01 18:20:57
    취재K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1부(김선희 임정엽 권성수 부장판사)는 그제(29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에 대한 재판에 김 모 전 환경부 운영지원과장을 증인으로 소환했습니다. 정 모 전 환경부 운영지원과장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환경부 운영지원과장은 환경부 인사를 총괄하는 자리로, 고위공무원단인 국장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길목으로 꼽히는 자리입니다. 김 전 과장은 2017년 12월부터 2018년 8월 '4대강 조사평가단 기획총괄팀장'으로 부임할 때까지 8개월 정도 운영지원과장으로 근무했습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의 인사권 남용으로 김 전 과장이 ▲환경부 산하 특정 공공기관 임원에게 사직서 제출을 요구하고 ▲청와대가 추천한 후보자(추천 후보자)가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 서류와 면접 심사를 통과할 수 있도록 조직적으로 지원하고 ▲탈락한 추천 후보자가 다른 공공기관에 취업할 수 있게 지원하는 등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으며 추천 후보자가 탈락한 데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 전 과장에게 인사 불이익을 줬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김 전 장관 측은 ▲관행대로 장관이 정부 국정철학에 맞게 인사권을 행사했고 ▲장관이 추천 후보자 지원사항에 대한 구체적 지시를 내리지 않았고 ▲김 전 과장의 전보 조처는 인사 불이익이 아닌 장관의 인사 재량권 범위에 속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번 재판에선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을까요?

파행일까, 관행일까?

재판에서는 김 전 장관의 지시로 임원들에게 사직서를 요구했다는 증언, 그리고 이 같은 일은 오랜 관행으로 생각했다는 양쪽의 증언이 모두 나왔습니다.

김 전 과장은 김 전 장관의 지시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의 사직서 제출 '의향' 여부를 조사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김 전 과장은 "장관이 산하 공공기관 임원교체 문제가 가장 시급한 현안"이라고 말했고, 2018년 김 전 장관의 신년사 중 '산하기관 인사도 1월과 2월 중에는 마친다'라는 말에 신속히 사표를 받아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고 얘기했습니다. 실제로 인사팀 직원들에게 사직서를 요청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그중 두 명은 직접 찾아가 사표를 제출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고 밝혔습니다.

김 전 과장은 불편하고 어려운 마음으로 이런 업무를 수행했다면서, "누군가 하라고 얘기하지 않았다면 했겠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만, 김 전 장관 측 반대신문에서 증인은 20년 넘게 환경부에서 일하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며,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넘어갈 때,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넘어갈 때 공공기관 임원진이 많이 바뀌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특히, 국정철학이 임원 선임에 반영되는 게 옳은지 묻는 피고인 측의 질문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습니다.

추천 후보자에게 인사팀 차원의 지원이 이뤄졌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청와대나 김 전 장관이 추천 후보자와 연락처를 알려주면 이를 인사팀 실무자에게 전달했고, 인사팀에서 지원을 해줬다는 겁니다. 김 전 과장은 인사팀이 추천 후보자의 자기소개서와 직무수행계획서를 대신 작성해주는 과정을 알고 있었고,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 위원에겐 미리 추천 후보자를 알려줬다고 인정했습니다.

김 전 과장은 사표를 받거나 산하기관 임원 후보자를 선정하는 모든 절차는 청와대와 승인을 거쳐야 했고, 수시로 청와대를 찾아가 사표 제출 현황을 보고했다고 부연했습니다. 특히, 청와대 측 인사가 "후보자가 결정되고 나면 지원 단계별로 꼼꼼하게 잘 지원해서 떨어지는 일 없도록 유념해달라고 당부했다"라고 얘기했고, 김 전 장관도 이에 대해 잘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김 전 과장은 매번 실무자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았고, 인사팀 직원에게 추천 후보자가 누군지 얘기해주면 자동으로 절차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이미 오래된 업무 관행이라고 이해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김 전 장관에게 매번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보고하지도 않았고, 당시엔 문제가 되지 않는 선을 지키고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깊이 사죄드립니다"…청와대로 제출된 '반성문'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을 교체하는 작업이 이뤄지던 중,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모 일간지 간부 출신 후보가 환경부 서류심사도 통과하지 못한 겁니다. 이 후보는 청와대가 추천한 후보였습니다.

김 전 과장은 '향후 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엄중히 조치하겠다.', '매우 큰 불찰로 생각하며 깊이 사죄드린다', '어떠한 책임과 처벌도 감수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담긴 소명서를 청와대에 들고 갔다고 증언했습니다.

검찰은 이 부분이 신미숙 전 비서관이 강요로 이뤄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신 전 비서관이 '탈락에 대한 반성, 처벌 감수 및 재발 방지' 취지로 소명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김 전 과장을 질책했다는 겁니다.

김 전 과장은 공무원이 보고서나 사유서를 쓸 때, 이런 정도로 송구하다거나 사죄의 뜻을 담는 경우가 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그런 경우는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소명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큰 질책이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느냐는 검사의 질문엔 한참 뒤에야 입을 뗐습니다.

"제 전임자의 전례에 비춰봤을 때, 그런 이야기도 나왔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책임져야 할 부분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으로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4대강'으로 간 운영지원과장

얼마 뒤, 김 전 과장은 4대강 조사평가단으로 전보조치됩니다. 증인은 4대강 조사평가단이 환경부 공무원에게 부담스러운 자리라고 얘기합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했던 4대강 보호 처리 문제를 조사하고, 처리방법을 마련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공무원으로서 부담스러웠다는 겁니다. 고위공무원단으로 가는 길목에서 4대강으로, 김 전 과장은 8개월 만에 자리를 옮겼습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이 김 전 과장에게 책임을 물어 부당한 인사권을 행사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증인에게도 이 부분을 캐물었습니다. 검사는 운영지원과장으로 근무할 때 다른 보직을 원했는지, 추천 후보자를 관리하지 못한 문책성 인사라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김 전 과장은 "제가 먼저 (전보를) 희망한 건 아닙니다"라면서, "시기상 전혀 관련이 없을 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김 전 장관 측 입장은 달랐습니다. 김 전 과장의 동기이자 후임 인사운영과장이었던 이 모 전 과장이 김 전 과장이 승진한 후 몇 개월 뒤에나 승진했고, 전임 정 전 과장은 운영지원과장으로 2년을 근무한 뒤에 승진했던 것에 비춰보면 인사 불이익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또, 당시 김 전 과장 외에도 다른 과장들이 함께 4대강 조사평가단으로 옮겨왔던 점을 들었습니다.

다음 재판엔 윤 모 전 환경부 인사운영과 팀장이 증인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김 전 과장보다 인사 업무를 오래 했던 윤 팀장, 과연 무슨 증언을 이어갈까요? 다음 공판은 오는 10일에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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