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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극치?’…여성 임원 할당제 이유는?
입력 2020.07.01 (07:00) 수정 2020.07.01 (07:14) 취재K
‘페미니즘의 극치?’…여성 임원 할당제 이유는?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8년 연속 OECD 전체 회원국 29개국 가운데 '유리 천장 지수' 꼴찌입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직장 내에서 고위직으로 가기 어렵다는 뜻이죠.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자본시장법이 개정됐습니다.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인 주권상장기업은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으로 구성하지 않아야 한다'는 일명 '여성 임원 할당제' 조항이 신설됐습니다.


■ 상장법인 10곳 중 6곳 이상은 여성 임원 '0명'…여성 임원 비율은 4.5%

이런 가운데 여성가족부가 어제(30일) 상장법인의 임원 성별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지난해부터 매년 하는 조사인데, 올해 내용은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처음 나오는 조사 결과라 의미가 있습니다. 조사 결과, 상장법인 전체 2,148개 중 여성 임원이 한 명이라도 있는 기업은 33.5%였고, 여성 임원은 모두 196명으로 전체의 4.5%였습니다. 지난해보다 1.4%p 늘어난 수치입니다.

개정된 자본시장법의 대상인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기업은 어땠을까요? 개정 자본시장법에서 말하는 임원은 등기임원입니다. 2조 원 이상 기업 중 여성 등기임원이 있는 기업은 30.6%로 45개였습니다. 지난해 27개에 비해 1.7배 늘어나 자본시장법 개정이 기업의 여성 임원 확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여성가족부는 평가했습니다.

■ "저희가 여성 임원이 있어요?" 되묻는 기업도…'사외·비상임이사'로 생색내기

여성 임원의 숫자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을 보면, 법이 본래 취지대로 가고 있는 걸까요?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 기업 중 여성 임원 비율이 상위권인 한 기업에 전화해봤습니다. 이 기업 관계자는 "저희가 여성 임원이 있느냐"라며 기자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러면서, "누구인지는 모르는데, 외국 은행이 기업의 지분을 갖게 되면서 그쪽 대표가 사외이사가 된 것 같다"라는 추정을 했습니다. 또 다른 회사는 여성 임원 인터뷰를 요청하자, 비상임이사라 내부 승진으로 올라온 인사가 아니고, 회사에 상주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기업 중 지난해보다 올해 늘어난 여성 임원을 보면 사내이사는 단 한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사외이사였습니다. 이 조사를 진행한 CEO스코어의 박주근 대표는 '기업들의 전형적인 구색 맞추기'라고 평가했습니다.

박 대표는 "사외이사는 원래 감시자 역할을 위해 도입됐지만, 우리나라의 사외이사는 대부분 거수기 역할을 해 기업 내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라고 꼬집었습니다. "법안의 목적은 기업 내 인사의 다양성을 높여서 진정한 양성평등으로 나아가기 위함인데, 이렇게 외부 인사를 데려오는 식으로 구색만 맞출 경우 이 법은 껍데기뿐이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제도적으로 여성 임원 TO를 만들어놓고 이 제도에 들어갈 수 있는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능력이 우선", "페미니즘의 극치" 비판도…"궁극적 목적은 성별 다양성"

여성 임원 할당제에 대한 비판도 여전합니다. "능력이 우선이다", "페미니즘의 극치"라는 등 부정적인 여론은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법안 제정 과정에 참여한 한국여성변호사회 측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금까지 조직사회에서의 능력은 남성 위주의 기울어진 운동장, 기득권 세력에 의해 평가됐다는 겁니다.

한국여성변호사회의 최희정 변호사는 "여성은 평가의 주체, 의사결정자의 지위에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실질적인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가정, 육아의 그늘에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이 법안 시행 초기에는 실질적으로 여성을 우대하기 위해 시행되겠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성별 다양성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성별 다양성'을 사기업의 이사회에 법률로 요구할 수 있느냐는 지적에 대해선 헌법의 성 평등 규정을 들었습니다. 평등은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불평등의 제거'를 의미하는데, 사기업에서 여성의 노동이 역사적, 구조적으로 저평가돼 왔기 때문에 적극적 평등 실현 조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 외에도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이 기업의 투명성 개선에 기여하는 점 등도 덧붙였습니다.

■ 유럽연합·미국·일본 등 이미 '여성 임원 할당제' 시행

여성 임원 할당제는 세계적인 흐름입니다. 유럽연합은 각 회원국에 대해 기업 내 여성 이사 비율 30~40%를 요구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도 상장회사에 대해 여성 이사를 두도록 법으로 규정합니다. 일본 역시 법률은 아니지만,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에 따라 2015년 1월부터 상장기업들에 여성 임원 할당 등 임원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도록 규정합니다. 타당한 이유가 없이 따르지 않으면 제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늦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당제 시행은 2022년 8월부터입니다. 많은 기업이 이사진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그때까지 여성 이사를 선임해야 해 비상 상황이라고 합니다. 법의 취지에 맞게 직장 내에서 변화가 생길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 ‘페미니즘의 극치?’…여성 임원 할당제 이유는?
    • 입력 2020.07.01 (07:00)
    • 수정 2020.07.01 (07:14)
    취재K
‘페미니즘의 극치?’…여성 임원 할당제 이유는?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8년 연속 OECD 전체 회원국 29개국 가운데 '유리 천장 지수' 꼴찌입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직장 내에서 고위직으로 가기 어렵다는 뜻이죠.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자본시장법이 개정됐습니다.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인 주권상장기업은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으로 구성하지 않아야 한다'는 일명 '여성 임원 할당제' 조항이 신설됐습니다.


■ 상장법인 10곳 중 6곳 이상은 여성 임원 '0명'…여성 임원 비율은 4.5%

이런 가운데 여성가족부가 어제(30일) 상장법인의 임원 성별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지난해부터 매년 하는 조사인데, 올해 내용은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처음 나오는 조사 결과라 의미가 있습니다. 조사 결과, 상장법인 전체 2,148개 중 여성 임원이 한 명이라도 있는 기업은 33.5%였고, 여성 임원은 모두 196명으로 전체의 4.5%였습니다. 지난해보다 1.4%p 늘어난 수치입니다.

개정된 자본시장법의 대상인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기업은 어땠을까요? 개정 자본시장법에서 말하는 임원은 등기임원입니다. 2조 원 이상 기업 중 여성 등기임원이 있는 기업은 30.6%로 45개였습니다. 지난해 27개에 비해 1.7배 늘어나 자본시장법 개정이 기업의 여성 임원 확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여성가족부는 평가했습니다.

■ "저희가 여성 임원이 있어요?" 되묻는 기업도…'사외·비상임이사'로 생색내기

여성 임원의 숫자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을 보면, 법이 본래 취지대로 가고 있는 걸까요?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 기업 중 여성 임원 비율이 상위권인 한 기업에 전화해봤습니다. 이 기업 관계자는 "저희가 여성 임원이 있느냐"라며 기자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러면서, "누구인지는 모르는데, 외국 은행이 기업의 지분을 갖게 되면서 그쪽 대표가 사외이사가 된 것 같다"라는 추정을 했습니다. 또 다른 회사는 여성 임원 인터뷰를 요청하자, 비상임이사라 내부 승진으로 올라온 인사가 아니고, 회사에 상주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기업 중 지난해보다 올해 늘어난 여성 임원을 보면 사내이사는 단 한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사외이사였습니다. 이 조사를 진행한 CEO스코어의 박주근 대표는 '기업들의 전형적인 구색 맞추기'라고 평가했습니다.

박 대표는 "사외이사는 원래 감시자 역할을 위해 도입됐지만, 우리나라의 사외이사는 대부분 거수기 역할을 해 기업 내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라고 꼬집었습니다. "법안의 목적은 기업 내 인사의 다양성을 높여서 진정한 양성평등으로 나아가기 위함인데, 이렇게 외부 인사를 데려오는 식으로 구색만 맞출 경우 이 법은 껍데기뿐이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제도적으로 여성 임원 TO를 만들어놓고 이 제도에 들어갈 수 있는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능력이 우선", "페미니즘의 극치" 비판도…"궁극적 목적은 성별 다양성"

여성 임원 할당제에 대한 비판도 여전합니다. "능력이 우선이다", "페미니즘의 극치"라는 등 부정적인 여론은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법안 제정 과정에 참여한 한국여성변호사회 측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금까지 조직사회에서의 능력은 남성 위주의 기울어진 운동장, 기득권 세력에 의해 평가됐다는 겁니다.

한국여성변호사회의 최희정 변호사는 "여성은 평가의 주체, 의사결정자의 지위에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실질적인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가정, 육아의 그늘에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이 법안 시행 초기에는 실질적으로 여성을 우대하기 위해 시행되겠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성별 다양성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성별 다양성'을 사기업의 이사회에 법률로 요구할 수 있느냐는 지적에 대해선 헌법의 성 평등 규정을 들었습니다. 평등은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불평등의 제거'를 의미하는데, 사기업에서 여성의 노동이 역사적, 구조적으로 저평가돼 왔기 때문에 적극적 평등 실현 조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 외에도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이 기업의 투명성 개선에 기여하는 점 등도 덧붙였습니다.

■ 유럽연합·미국·일본 등 이미 '여성 임원 할당제' 시행

여성 임원 할당제는 세계적인 흐름입니다. 유럽연합은 각 회원국에 대해 기업 내 여성 이사 비율 30~40%를 요구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도 상장회사에 대해 여성 이사를 두도록 법으로 규정합니다. 일본 역시 법률은 아니지만,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에 따라 2015년 1월부터 상장기업들에 여성 임원 할당 등 임원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도록 규정합니다. 타당한 이유가 없이 따르지 않으면 제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늦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당제 시행은 2022년 8월부터입니다. 많은 기업이 이사진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그때까지 여성 이사를 선임해야 해 비상 상황이라고 합니다. 법의 취지에 맞게 직장 내에서 변화가 생길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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