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했던 강아지가 갑자기 죽었다!…곳곳에 뿌려지는 ‘유박비료’의 정체

입력 2020.07.02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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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길을 걷다가 자주 땅을 파헤친다.
2. 바닥에 떨어진 건, 일단 입에 넣고 본다.

요즘 반려동물 키우는 분들 많으시죠. 혹시 내 강아지와 고양이에게 저런 습관이 있다면, 당분간 집 앞 공원에 산책 나갈 때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운이 나쁠 경우,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황당한 말이냐고요?

■ 건강한 강아지가 갑자기 죽어버렸다.

대구에 사는 김경진 씨는 지난주 집 앞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가 소중한 반려견을 잃었습니다. 강아지 '슈'가 화단 밑에 떨어진 작은 알갱이를 주워 먹은 뒤, 며칠을 시름시름 앓다 결국, 피를 토하고 죽은 겁니다. 김 씨는 입에 들어간 알갱이들을 곧바로 뱉게 했지만, 몸속에 들어간 알갱이 두 알이 화근이었습니다.

알갱이의 정체는 '유박비료'. 아주까리라는 풀의 기름을 짜서 나온 찌꺼기를 다시 말려서 만든 비료였습니다. 식물의 생장을 돕기 위해 봄철에 주로 뿌린다고 합니다. 다른 유기농 비료에 비해 가격이 싸고, 비료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아 도심 공원이나 산책로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비료에 청산가리의 6천 배에 달하는 독성물질 '리신'이 함유되어 있다는 겁니다. 독성 실험을 했을 때, 청산가리 양의 6천분의 1 수준으로도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이런 강한 독성 때문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는 리신을 생화학테러물질로까지 분류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유박 비료에 이런 위험한 물질이 함유되어 있으니, 김 씨의 강아지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실제 이 유박비료를 먹고 자신의 강아지가 죽었다는 민원이 전국에서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유박비료 섭취로 인한 반려동물 사망 사고가 해마다 보고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도심 공원 화단에 아무렇게나 뿌려져있던 유박비료를 설명하는 김경진 씨도심 공원 화단에 아무렇게나 뿌려져있던 유박비료를 설명하는 김경진 씨

■ 비료 만들던 과정에서 실수 있었나?

당연히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리신의 위험성을 모를 리가 없겠죠. 농식품부 역시 유박비료가 처음 판매됐던 지난 1984년부터, 유박비료의 안전성을 엄격히 관리했습니다. 국제 기준에 맞춰서 안점 점검을 하고, 비료를 공급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독성물질인 리신은 유박비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대부분 그 독성이 사라집니다. 고온·고압으로 압착해서 기름을 짜낼 때, 독성이 열에 녹아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예 없애지는 못해서 안전 기준을 따로 만들었는데요. 해당 기준에 따르면, 리신은 비료 1kg당 10mg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동물 실험을 해보니, 이보다 두 배인 20mg의 리신이 포함된 비료를 동물이 먹어도 안전에 문제가 없었다는 겁니다. 실제 지난해 시판되는 모든 유박비료를 검사해 봐도, 이 기준을 초과하는 비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강아지들이 고작 비료 한두 알을 먹고 죽는 일이 잇따르고 있는 겁니다.

생김새가 강아지 사료와 비슷하고, 고소한 냄새까지 나는 유박비료생김새가 강아지 사료와 비슷하고, 고소한 냄새까지 나는 유박비료

농식품부는 황당하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한 가지 원인을 추정했습니다. 비료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원료 일부가, 열처리에 누락됐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하필 강아지들이 독성이 덜 빠진 비료를 먹게 되었고, 탈이 났을 수 있다는 거죠. 이 때문에 농식품부 역시 유박비료의 안전성을 100% 확신할 수 없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 봄철 알레르기, 유박비료 때문이었나

문제는 이 유박비료가 인체에도 유해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입니다. 취재를 위해 자문을 구한 의사는 리신 성분이 든 유박비료가 도심 공원에 뿌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유박비료의 주원료인 아주까리가 인체에 심각한 알레르기를 유발한다는 보고가 이미 오래전부터 의학계에 보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공준 영남대 의과대학 교수는 몇 가지 논문을 보여줬습니다. 실제 이 논문들에는 아주까리가 두드러기, 비염, 천식 등을 유발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도와 스리랑카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탈수, 혈변 경련 등의 증상을 보였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즉 아주까리로 만드는 유박비료가 건강에 굉장히 유해하다는 것입니다.

유박비료의 유해성이 담긴 의학 논문유박비료의 유해성이 담긴 의학 논문

알갱이 형태의 비료는 위험을 인지할 수 있지만, 땅에 녹은 비료가 분말이 되고 또 바람에 흩날려서 인체에 흡입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사공준 교수는 도심에 사는 시민들이 봄철 알레르기를 겪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유박비료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도심지에서 유박비료 사용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 강력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

유박비료가 강아지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위험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상황. 농식품부는 KBS 보도가 나가자 즉시 강력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가장 먼저 자치단체와 관공서에 유박비료가 납품되는 것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또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유박비료도 도심 공원에 살포하지 못하도록 공문을 넣었습니다. 비료 제조공정을 다시 살펴보고, 안전 기준도 원점에서 다시 검증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민간 영역입니다. 여전히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서 누구든지 쉽게 유박비료를 구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들 쇼핑몰에는 유박비료의 독성물질에 대한 안내는커녕, 기본적인 주의사항 조차 없는 곳이 많은 상황입니다. 온라인 판매자들이 이를 기재해야 한다는 규정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의사항도 없이 온라인으로 판매되고 있는 유박비료들주의사항도 없이 온라인으로 판매되고 있는 유박비료들

이렇게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유박비료 중 일부는 아파트 단지의 조경 조성을 위해 쓰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광범위한 피해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농식품부는 온라인 판매의 경우, 유통채널이 워낙 다양해 당장 비농업용 유박비료 판매 중단 요청이 힘들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온라인 판매자에게 독성물질 주의사항을 표기하도록 새롭게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안전이겠죠. 유박비료의 유해성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안내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뉴스 보도가 나가고 많은 농민 분들께서 궁금해 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평소 유박비료를 자주 쓰는데, 계속 비료를 써도 괜찮냐는 겁니다. 정답은 ‘괜찮다’입니다. 강한 독성물질이 포함되어 있지만, 우리가 비료를 직접 섭취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또 농촌의 경우 인적이 드문 곳이 많기 때문에 알레르기 유발 같은 유해성도 도심 공원보다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입니다. 다만 앞으로 좀 더 주의를 기울여서 비료를 사용해야 하긴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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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했던 강아지가 갑자기 죽었다!…곳곳에 뿌려지는 ‘유박비료’의 정체
    • 입력 2020-07-02 13:47:22
    취재K
1. 길을 걷다가 자주 땅을 파헤친다.
2. 바닥에 떨어진 건, 일단 입에 넣고 본다.

요즘 반려동물 키우는 분들 많으시죠. 혹시 내 강아지와 고양이에게 저런 습관이 있다면, 당분간 집 앞 공원에 산책 나갈 때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운이 나쁠 경우,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황당한 말이냐고요?

■ 건강한 강아지가 갑자기 죽어버렸다.

대구에 사는 김경진 씨는 지난주 집 앞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가 소중한 반려견을 잃었습니다. 강아지 '슈'가 화단 밑에 떨어진 작은 알갱이를 주워 먹은 뒤, 며칠을 시름시름 앓다 결국, 피를 토하고 죽은 겁니다. 김 씨는 입에 들어간 알갱이들을 곧바로 뱉게 했지만, 몸속에 들어간 알갱이 두 알이 화근이었습니다.

알갱이의 정체는 '유박비료'. 아주까리라는 풀의 기름을 짜서 나온 찌꺼기를 다시 말려서 만든 비료였습니다. 식물의 생장을 돕기 위해 봄철에 주로 뿌린다고 합니다. 다른 유기농 비료에 비해 가격이 싸고, 비료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아 도심 공원이나 산책로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비료에 청산가리의 6천 배에 달하는 독성물질 '리신'이 함유되어 있다는 겁니다. 독성 실험을 했을 때, 청산가리 양의 6천분의 1 수준으로도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이런 강한 독성 때문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는 리신을 생화학테러물질로까지 분류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유박 비료에 이런 위험한 물질이 함유되어 있으니, 김 씨의 강아지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실제 이 유박비료를 먹고 자신의 강아지가 죽었다는 민원이 전국에서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유박비료 섭취로 인한 반려동물 사망 사고가 해마다 보고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도심 공원 화단에 아무렇게나 뿌려져있던 유박비료를 설명하는 김경진 씨
■ 비료 만들던 과정에서 실수 있었나?

당연히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리신의 위험성을 모를 리가 없겠죠. 농식품부 역시 유박비료가 처음 판매됐던 지난 1984년부터, 유박비료의 안전성을 엄격히 관리했습니다. 국제 기준에 맞춰서 안점 점검을 하고, 비료를 공급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독성물질인 리신은 유박비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대부분 그 독성이 사라집니다. 고온·고압으로 압착해서 기름을 짜낼 때, 독성이 열에 녹아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예 없애지는 못해서 안전 기준을 따로 만들었는데요. 해당 기준에 따르면, 리신은 비료 1kg당 10mg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동물 실험을 해보니, 이보다 두 배인 20mg의 리신이 포함된 비료를 동물이 먹어도 안전에 문제가 없었다는 겁니다. 실제 지난해 시판되는 모든 유박비료를 검사해 봐도, 이 기준을 초과하는 비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강아지들이 고작 비료 한두 알을 먹고 죽는 일이 잇따르고 있는 겁니다.

생김새가 강아지 사료와 비슷하고, 고소한 냄새까지 나는 유박비료
농식품부는 황당하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한 가지 원인을 추정했습니다. 비료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원료 일부가, 열처리에 누락됐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하필 강아지들이 독성이 덜 빠진 비료를 먹게 되었고, 탈이 났을 수 있다는 거죠. 이 때문에 농식품부 역시 유박비료의 안전성을 100% 확신할 수 없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 봄철 알레르기, 유박비료 때문이었나

문제는 이 유박비료가 인체에도 유해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입니다. 취재를 위해 자문을 구한 의사는 리신 성분이 든 유박비료가 도심 공원에 뿌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유박비료의 주원료인 아주까리가 인체에 심각한 알레르기를 유발한다는 보고가 이미 오래전부터 의학계에 보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공준 영남대 의과대학 교수는 몇 가지 논문을 보여줬습니다. 실제 이 논문들에는 아주까리가 두드러기, 비염, 천식 등을 유발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도와 스리랑카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탈수, 혈변 경련 등의 증상을 보였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즉 아주까리로 만드는 유박비료가 건강에 굉장히 유해하다는 것입니다.

유박비료의 유해성이 담긴 의학 논문
알갱이 형태의 비료는 위험을 인지할 수 있지만, 땅에 녹은 비료가 분말이 되고 또 바람에 흩날려서 인체에 흡입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사공준 교수는 도심에 사는 시민들이 봄철 알레르기를 겪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유박비료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도심지에서 유박비료 사용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 강력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

유박비료가 강아지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위험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상황. 농식품부는 KBS 보도가 나가자 즉시 강력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가장 먼저 자치단체와 관공서에 유박비료가 납품되는 것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또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유박비료도 도심 공원에 살포하지 못하도록 공문을 넣었습니다. 비료 제조공정을 다시 살펴보고, 안전 기준도 원점에서 다시 검증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민간 영역입니다. 여전히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서 누구든지 쉽게 유박비료를 구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들 쇼핑몰에는 유박비료의 독성물질에 대한 안내는커녕, 기본적인 주의사항 조차 없는 곳이 많은 상황입니다. 온라인 판매자들이 이를 기재해야 한다는 규정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의사항도 없이 온라인으로 판매되고 있는 유박비료들
이렇게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유박비료 중 일부는 아파트 단지의 조경 조성을 위해 쓰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광범위한 피해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농식품부는 온라인 판매의 경우, 유통채널이 워낙 다양해 당장 비농업용 유박비료 판매 중단 요청이 힘들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온라인 판매자에게 독성물질 주의사항을 표기하도록 새롭게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안전이겠죠. 유박비료의 유해성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안내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뉴스 보도가 나가고 많은 농민 분들께서 궁금해 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평소 유박비료를 자주 쓰는데, 계속 비료를 써도 괜찮냐는 겁니다. 정답은 ‘괜찮다’입니다. 강한 독성물질이 포함되어 있지만, 우리가 비료를 직접 섭취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또 농촌의 경우 인적이 드문 곳이 많기 때문에 알레르기 유발 같은 유해성도 도심 공원보다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입니다. 다만 앞으로 좀 더 주의를 기울여서 비료를 사용해야 하긴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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