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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창] 회고록 속 北美외교 30년…볼턴은 무얼 노렸나?
입력 2020.07.03 (15:57) 취재K
[남북의창] 회고록 속 北美외교 30년…볼턴은 무얼 노렸나?
'그것이 일어난 방' 출간 일주일 만에 78만 부 돌파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이 출간 일주일 만에 78만 부 이상 팔렸습니다. 지난달 23일 출간된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은 벌써 11판 인쇄를 앞두고 있습니다.

미 경제전문매체 포브스는 볼턴의 회고록 판매 부수가 100만 권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선인세로 200만 달러를 받아 국가 기밀을 돈벌이에 사용했다는 비난에도 미국의 대형서점들은 책을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존 볼턴의 회고록은 왜 파장이 클까요? 30년 동안 이어진 북미회담에 나섰던 주요 인사들이 남긴 회고록을 들춰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북미 회담이 본격화된 것은 북핵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1989년입니다. 프랑스 위성 '스팟 2호’가 북한의 영변 핵 단지를 촬영했고, 이는 곧 국제사회에 공개됐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 IAEA는 특별사찰을 요구했지만, 북한은 이를 끝내 거부했고 결국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합니다.

당시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열렸지만 북미의 입장 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미국 측 수석대표로는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가 나섰습니다. 그는 회고록에서 "북한의 NPT 탈퇴와 핵 개발은 당시 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1992년 걸프전 이후의 북한 지도부가 가진 위기감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으로의 권력 승계 시기가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것입니다.


1994년 3월, 남북 실무회담 중에 나온 북한 대표단은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말아요."라며 공격성 말했습니다. 당시 한반도 위기감은 최고조를 치달았습니다.

이런 위기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면서 극적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역시 훗날 회고록을 통해 당시 북미외교에 대해 상세히 전달했습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이 모든 사안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핵 문제를 상세히 토론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북한과의 갈등을 협상을 통해 풀어낸 새로운 접근은 결국 북-미 제네바 합의를 도출할 수 있게 됐다고 회고록에서 밝혔습니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외교 관계의 산증인이자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내기도 한 크리스토퍼 힐도 회고록을 남겼습니다.

크리스토퍼 힐은 풍부한 사례와 인물·심리묘사로 자신이 거쳐 온 외교사의 굴곡을 회고록에 펼쳤는데, 특히 부시 정부 출범 이후 북미 갈등 폭발 상황을 상세히 다뤘습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자 북한은 영변 핵 시설 가동을 재개했고 제네바 합의 체제는 붕괴했습니다. 2차 북핵 위기가 조성되자 북-미는 6자회담을 통해 다시 한번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는데 당시 미국의 대표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였습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자신의 회고록에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의 기싸움을 고스란히 담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원칙과 목표를 담은 9.19 공동 성명의 최종 타결에 이르게 된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존 볼턴은 앞선 북미외교 대표주자들이 출간됐던 회고록을 염두에 두었을까요? 존 볼턴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회담장에서 메모에 열중했습니다. 각 정상의 질문마다 볼턴의 펜은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이후 희망으로 시작된 하노이 회담은 결렬이라는 종지부를 찍었는데 그는 1년 4개월 뒤,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이유를 회고록을 통해 폭로했습니다.

예기치 못한 양보를 막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레이건 대통령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는 영상을 보여줬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장거리 미사일 제거를 할 수 있겠냐고 제안했을 때는 생화학무기 전부에 대한 기본적인 신고가 필요하다며 두 정상의 대화에 끼어들었음을 고백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볼턴의 회고록을 두고 날 선 공방만 벌일 것이 아니라 그 기록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볼턴이 쓴 책 내용을 보면 여러 가지 미국의 협상,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있었을 때 미국의 생각이 그 안에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회고록 내용으로는 북미 정상회담마저 회의감을 들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앞으로 남북 관계를 긴장 수위를 낮출 혜안을 찾을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관련 이슈는 4일 오전 7시 50분 KBS 1TV <남북의 창>과 유튜브 <이북리더기>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kbs.co.kr/vod/program.do?bcd=0031&ref=pMenu#2020.06
https://www.youtube.com/channel/UCkLOF14rzE4O9K6WVP-cCJQ/videos
  • [남북의창] 회고록 속 北美외교 30년…볼턴은 무얼 노렸나?
    • 입력 2020.07.03 (15:57)
    취재K
[남북의창] 회고록 속 北美외교 30년…볼턴은 무얼 노렸나?
'그것이 일어난 방' 출간 일주일 만에 78만 부 돌파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이 출간 일주일 만에 78만 부 이상 팔렸습니다. 지난달 23일 출간된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은 벌써 11판 인쇄를 앞두고 있습니다.

미 경제전문매체 포브스는 볼턴의 회고록 판매 부수가 100만 권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선인세로 200만 달러를 받아 국가 기밀을 돈벌이에 사용했다는 비난에도 미국의 대형서점들은 책을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존 볼턴의 회고록은 왜 파장이 클까요? 30년 동안 이어진 북미회담에 나섰던 주요 인사들이 남긴 회고록을 들춰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북미 회담이 본격화된 것은 북핵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1989년입니다. 프랑스 위성 '스팟 2호’가 북한의 영변 핵 단지를 촬영했고, 이는 곧 국제사회에 공개됐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 IAEA는 특별사찰을 요구했지만, 북한은 이를 끝내 거부했고 결국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합니다.

당시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열렸지만 북미의 입장 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미국 측 수석대표로는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가 나섰습니다. 그는 회고록에서 "북한의 NPT 탈퇴와 핵 개발은 당시 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1992년 걸프전 이후의 북한 지도부가 가진 위기감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으로의 권력 승계 시기가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것입니다.


1994년 3월, 남북 실무회담 중에 나온 북한 대표단은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말아요."라며 공격성 말했습니다. 당시 한반도 위기감은 최고조를 치달았습니다.

이런 위기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면서 극적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역시 훗날 회고록을 통해 당시 북미외교에 대해 상세히 전달했습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이 모든 사안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핵 문제를 상세히 토론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북한과의 갈등을 협상을 통해 풀어낸 새로운 접근은 결국 북-미 제네바 합의를 도출할 수 있게 됐다고 회고록에서 밝혔습니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외교 관계의 산증인이자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내기도 한 크리스토퍼 힐도 회고록을 남겼습니다.

크리스토퍼 힐은 풍부한 사례와 인물·심리묘사로 자신이 거쳐 온 외교사의 굴곡을 회고록에 펼쳤는데, 특히 부시 정부 출범 이후 북미 갈등 폭발 상황을 상세히 다뤘습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자 북한은 영변 핵 시설 가동을 재개했고 제네바 합의 체제는 붕괴했습니다. 2차 북핵 위기가 조성되자 북-미는 6자회담을 통해 다시 한번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는데 당시 미국의 대표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였습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자신의 회고록에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의 기싸움을 고스란히 담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원칙과 목표를 담은 9.19 공동 성명의 최종 타결에 이르게 된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존 볼턴은 앞선 북미외교 대표주자들이 출간됐던 회고록을 염두에 두었을까요? 존 볼턴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회담장에서 메모에 열중했습니다. 각 정상의 질문마다 볼턴의 펜은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이후 희망으로 시작된 하노이 회담은 결렬이라는 종지부를 찍었는데 그는 1년 4개월 뒤,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이유를 회고록을 통해 폭로했습니다.

예기치 못한 양보를 막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레이건 대통령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는 영상을 보여줬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장거리 미사일 제거를 할 수 있겠냐고 제안했을 때는 생화학무기 전부에 대한 기본적인 신고가 필요하다며 두 정상의 대화에 끼어들었음을 고백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볼턴의 회고록을 두고 날 선 공방만 벌일 것이 아니라 그 기록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볼턴이 쓴 책 내용을 보면 여러 가지 미국의 협상,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있었을 때 미국의 생각이 그 안에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회고록 내용으로는 북미 정상회담마저 회의감을 들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앞으로 남북 관계를 긴장 수위를 낮출 혜안을 찾을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관련 이슈는 4일 오전 7시 50분 KBS 1TV <남북의 창>과 유튜브 <이북리더기>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kbs.co.kr/vod/program.do?bcd=0031&ref=pMenu#2020.06
https://www.youtube.com/channel/UCkLOF14rzE4O9K6WVP-cCJQ/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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