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만지고 쓰다듬고 이어진 성추행…학교는 지옥이었다

입력 2020.07.0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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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언어폭력을 비롯한 '학교폭력'에 대해 일선 학교에서는 상당히 엄격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폭력 피해자와 상담을 한 교사가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를 의결하는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 위원으로 참석했다면, 학교가 가해 학생에게 내린 처분은 정당할까요. 학교폭력 관련 처분의 절차가 쟁점으로 다뤄진 최신 하급심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동급생 선동해 부모님 욕설…피해 학생 여동생 사진 멋대로 SNS 올려

앞서 고등학생 A 군과 B 군은 2018년 1학기부터 명문 자립형 사립고인 C 고등학교의 같은 반에 다녔습니다. A 군은 그해 4월부터 B 군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A 군은 B 군의 부정적인 별명을 반 교실 등에서 퍼뜨렸습니다. A 군은 1주일에 학교를 나오는 5일 중 가운데 3~4번, 친구들을 선동해 B 군의 부모님 욕과 B 군의 별명을 불러 창피를 주었습니다. B 군에게 "XXXX" "왜 사냐"는 등의 욕설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A 군은 이 외에도 B 군의 허락을 받지 않고 B 군과 그 여동생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거나, 심지어 교실 칠판에 그려진 여성의 은밀한 부분에 B 군의 어머니와 여동생의 것이라고 이름을 쓰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쉬는 시간에는 B 군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B 군을 만지거나 성행위를 하는 듯한 행동을 하고, 볼이나 귀에 뽀뽀하기, 끌어안기, 머리 때리기, 귀에 바람불기 등의 행위를 계속했습니다.

A 군은 2018년 초와 2018년 8월 각각 학교가 개학한 후 B군에게 "저지른 일들을 생활안전부 선생님께 발설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입막음을 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B 군의 부친은 자신의 아들이 괴롭힘을 당한단 사실을 알게 됐고, B 군이 A 군으로부터 4개월간 지속적으로 언어폭력을 당해 왔다고 C 고등학교에 신고했습니다.

A군은 학교의 조사를 받고 곧바로 B 군에게 가서 "선생님께 서로 친하다고 말해달라"고 하고, 같은 반 다른 친구에게도 "B 군을 놀리는 것은 반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장난이라고 말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C 고등학교는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를 열어 A 군과 B 군, 각 보호자의 의견 진술을 들은 뒤 12가지의 징계 사유가 있다며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전학 처분을 할 것을 학교장에게 요청했고, 2018년 9월 학교장은 A 군에게 전학 조치를 통지했습니다.

■ 가해 학생 "피해자 조사한 교사가 전학 처분 의결…절차 위법"

A 군은 서울시 학생징계조정위원회에 학교가 내린 전학처분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 결정을 받자,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 전학처분이 무효라며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A 군은 자신이 전학 처분을 받은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현행 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 제26조 제1항 제3호는 '자치위원회 위원이 해당 사건의 피해 학생 또는 가해 학생이 친분이 있거나 관련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위원을 제척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A 군을 조사한 생활안전부장 교사가 가해 학생에 대한 처분을 내리는 기구, 즉 전학 처분을 학교장에게 요청한 자치위원회 위원으로 포함돼 의결권을 행사한 건 위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A 군은 또 "처분사유 가운데 일부 행위를 행한 사실이 없거나 장난삼아 했을 뿐인데, 학교 측이 피해 사실을 왜곡 과장한 피해 학생의 진술만을 전적으로 신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A 군은 "B 군과 평소 별명을 부를 수 있는 친밀한 사이로 장난삼아 서로의 몸을 만지며 놀기도 한 점, A 군의 SNS에 B 군의 사진을 올렸을 당시 B 군이 온라인상으로는 '좋아요'라는 버튼을 눌렀던 점, 다른 학생이 그린 여성의 성기 그림에 B 군의 어머니 이름 등을 적어넣은 자신의 행동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그 그림을 지웠던 점, 피해 학생에 대해 지속적으로 화해하고 싶단 의사를 밝혔던 점 등을 고려하면 전학처분은 학교법인의 재량권을 일탈한 과도한 처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있다고 보기 어려워"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제28민사부(부장판사 윤도근)는 학교의 처분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A 군이 주장한 절차적 위법에 대해 "생활안전부장 교사는 그해 자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위촉됐고, 피해 학생 보호자가 피해 사실을 신고하자 자치위 회의에 참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원고가 제출한 증거로는 교사가 원고 내지 피해 학생과 친분 또는 관련이 있거나 그에게 공정한 심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우선 법원은 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이 학교의 교사 중 학생생활지도 경력이 있는 교사에게 자치위원이 될 자격을 부여하면서, 특별히 전문상담교사나 생활안전부장 등 학교폭력 담당교사 등 학교폭력에 대한 조사를 담당하는 교원을 자치위원회 위원에서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사정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법원은 이어 "시행령 제26조 제2항이 '위원에게 공정한 심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인정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기피신청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을 고려하면, '해당 학생의 피해 학생 또는 가해 학생과 친분이 있거나 관련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라는 제척사유 규정은 '위원에게 위 학생과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있거나 해당 사건인 학교폭력의 발생 또는 피해의 확대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여 그 자체로 공정한 심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교사가 이 사건 자치위원회 위원으로 의결권을 행사했다고 해서 자치위 구성에 하자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입니다.

지난해 다른 하급심에선 전문상담직원이 자치위원으로 참여한 경우 처분에 위법이 있단 결론을 내리기도 해, 구체적 사안에 따라 처분 절차의 위법성에 대한 결론이 다른 것으로 보여집니다.

■법원 "가해 학생에게 매겨진 학교폭력 조치 점수 16점…전학처분 정당"

이어 법원은 학교의 처분 사유도 존재한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피해 학생이 이 사건 징계 사유에 관해 이 사건 자치위원회에서 한 진술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 객관적인 증거에 부합하여 신빙성이 매우 높고, A 군이 5개월간 B 군을 상대로 피해 학생과 그 가족의 별명을 불러 모욕하거나 성폭력을 행사하였다는 징계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면 대부분 A 군이 먼저 B 군에게 연락하거나 답장을 재촉하고, 이에 대응해 B 군은 소극적으로 응답하거나 여동생 사진을 보내달라는 원고의 요구에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으며, B 군이 자치위에서 담임교사에게 언급하지 않았던 징계 사유들에 대해 당시 상황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나 사실의 묘사 등을 상세히 진술한 이상 이를 믿지 않기는 어렵단 겁니다.

아울러 학교장 처분에 재량권의 일탈·남용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학교폭력예방법상의 각종 조치는 학교폭력에 대한 제재의 성격을 가지는 한편, 인격적으로 완성되지 않아 개선의 여지가 많은 학생에게 적절한 훈육과 선도를 통해 모범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할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교육적 성격도 강하므로 구체적 사안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관해 일정한 범위의 재량권이 인정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조치권자가 재량권의 행사로서 한 조치가 사회 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인정될 때엔 그 처분은 위법한 것이라고 할 것이며,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가 사회 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었는지 여부는 구체적 사례에 따라 조치의 원인이 된 학교폭력의 내용과 성질, 해당 조치에 의해 달성하려고 하는 행정목적, 관련 법령에 따른 조치의 기준 등 여러 요소를 종합하여 판단하게 됩니다.

법원은 "전학처분을 통해 달성하려는 공익이 이 사건 전학처분으로 원고가 입게 되는 불이익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히 크다고 보이므로, 이 사건 전학처분이 사회 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어 징계권자에게 맡겨진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은 '가해 학생에 대해 학교가 내리는 조치'와 여기 적용되는 기준을 두고 △가해학생이 행사한 학교폭력의 심각성·지속성·고의성 △가해학생의 반성 정도 △조치로 인한 가해 학생의 선도가능성 △학생 및 보호자간 화해의 정도 △피해 학생이 장애 학생인지 여부 등을 고려해 결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교육부 장관 고시는 위의 항목별로 0~4점의 범위에서 판정해 합계 점수의 범위에 따라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를 결정하도록 정하고 있는데요.

이 사건에서 학교 자치위원회는 A 군의 행위에 대해 학교폭력의 심각성 항목은 4점(매우높음), 학교폭력의 지속성 항목은 3점(높음), 학교폭력의 고의성 항목은 3점(높음), 가해학생의 반성정도 항목은 3점(낮음), 화해정도 항목은 3점(낮음)으로 총 16점으로 평가하고, 이 사건 학교장에게 원고에 대한 전학처분을 요청했습니다. 16점 이상이면 전학 처분이 가능합니다.

법원은 "A 군이 저지른 학교폭력은 원고가 피해 학생과 가족에 관한 모욕적 언사를 포함한 것일 뿐 아니라 성적인 괴롭힘의 경우 원고가 인정하는 부분만을 보더라도 피해 학생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기 충분한 행위로 판단되므로 그 심각성을 긍정할 수 있고, 학교폭력은 약 4달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위 학교폭력의 기간과 그 내용에 비추어 원고에게는 피해 학생을 괴롭힐 목적이 있었다고 봄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이어 "원고에 대한 신고가 접수된 이후 원고가 보여온 태도나 행동, 피해 학생의 원고에 대한 반응이나 호소하는 증상 등을 고려하면 학급 교체만으로 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고, 원고가 학교를 계속 다닐 경우 피해 학생과 수시로 마주치게 됨으로써 입게 될 피해 학생의 심적 고통과 학습권 역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법원은 "학교폭력예방법상 가해 학생의 반성 정도, 가해 학생 및 보호자와 피해 학생 및 보호자간의 화해의 정도는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의 종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데, 원고의 해명을 직접 들은 이 사건 자치위원회에서 원고의 반성에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A군은 피해 학생에게 자신의 잘못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이용하여 사과하기도 하였으나 그 후에도 괴롭힘이 계속된 것으로 보이고 A 군이나 그 학부모가 피해 학생 측과 화해에 이르지도 못했다"며 A군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이 사건은 항소가 이뤄지지 않았고, 1심에서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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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남] 만지고 쓰다듬고 이어진 성추행…학교는 지옥이었다
    • 입력 2020-07-04 10:04:25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언어폭력을 비롯한 '학교폭력'에 대해 일선 학교에서는 상당히 엄격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폭력 피해자와 상담을 한 교사가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를 의결하는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 위원으로 참석했다면, 학교가 가해 학생에게 내린 처분은 정당할까요. 학교폭력 관련 처분의 절차가 쟁점으로 다뤄진 최신 하급심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동급생 선동해 부모님 욕설…피해 학생 여동생 사진 멋대로 SNS 올려

앞서 고등학생 A 군과 B 군은 2018년 1학기부터 명문 자립형 사립고인 C 고등학교의 같은 반에 다녔습니다. A 군은 그해 4월부터 B 군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A 군은 B 군의 부정적인 별명을 반 교실 등에서 퍼뜨렸습니다. A 군은 1주일에 학교를 나오는 5일 중 가운데 3~4번, 친구들을 선동해 B 군의 부모님 욕과 B 군의 별명을 불러 창피를 주었습니다. B 군에게 "XXXX" "왜 사냐"는 등의 욕설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A 군은 이 외에도 B 군의 허락을 받지 않고 B 군과 그 여동생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거나, 심지어 교실 칠판에 그려진 여성의 은밀한 부분에 B 군의 어머니와 여동생의 것이라고 이름을 쓰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쉬는 시간에는 B 군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B 군을 만지거나 성행위를 하는 듯한 행동을 하고, 볼이나 귀에 뽀뽀하기, 끌어안기, 머리 때리기, 귀에 바람불기 등의 행위를 계속했습니다.

A 군은 2018년 초와 2018년 8월 각각 학교가 개학한 후 B군에게 "저지른 일들을 생활안전부 선생님께 발설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입막음을 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B 군의 부친은 자신의 아들이 괴롭힘을 당한단 사실을 알게 됐고, B 군이 A 군으로부터 4개월간 지속적으로 언어폭력을 당해 왔다고 C 고등학교에 신고했습니다.

A군은 학교의 조사를 받고 곧바로 B 군에게 가서 "선생님께 서로 친하다고 말해달라"고 하고, 같은 반 다른 친구에게도 "B 군을 놀리는 것은 반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장난이라고 말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C 고등학교는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를 열어 A 군과 B 군, 각 보호자의 의견 진술을 들은 뒤 12가지의 징계 사유가 있다며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전학 처분을 할 것을 학교장에게 요청했고, 2018년 9월 학교장은 A 군에게 전학 조치를 통지했습니다.

■ 가해 학생 "피해자 조사한 교사가 전학 처분 의결…절차 위법"

A 군은 서울시 학생징계조정위원회에 학교가 내린 전학처분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 결정을 받자,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 전학처분이 무효라며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A 군은 자신이 전학 처분을 받은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현행 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 제26조 제1항 제3호는 '자치위원회 위원이 해당 사건의 피해 학생 또는 가해 학생이 친분이 있거나 관련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위원을 제척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A 군을 조사한 생활안전부장 교사가 가해 학생에 대한 처분을 내리는 기구, 즉 전학 처분을 학교장에게 요청한 자치위원회 위원으로 포함돼 의결권을 행사한 건 위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A 군은 또 "처분사유 가운데 일부 행위를 행한 사실이 없거나 장난삼아 했을 뿐인데, 학교 측이 피해 사실을 왜곡 과장한 피해 학생의 진술만을 전적으로 신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A 군은 "B 군과 평소 별명을 부를 수 있는 친밀한 사이로 장난삼아 서로의 몸을 만지며 놀기도 한 점, A 군의 SNS에 B 군의 사진을 올렸을 당시 B 군이 온라인상으로는 '좋아요'라는 버튼을 눌렀던 점, 다른 학생이 그린 여성의 성기 그림에 B 군의 어머니 이름 등을 적어넣은 자신의 행동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그 그림을 지웠던 점, 피해 학생에 대해 지속적으로 화해하고 싶단 의사를 밝혔던 점 등을 고려하면 전학처분은 학교법인의 재량권을 일탈한 과도한 처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있다고 보기 어려워"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제28민사부(부장판사 윤도근)는 학교의 처분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A 군이 주장한 절차적 위법에 대해 "생활안전부장 교사는 그해 자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위촉됐고, 피해 학생 보호자가 피해 사실을 신고하자 자치위 회의에 참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원고가 제출한 증거로는 교사가 원고 내지 피해 학생과 친분 또는 관련이 있거나 그에게 공정한 심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우선 법원은 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이 학교의 교사 중 학생생활지도 경력이 있는 교사에게 자치위원이 될 자격을 부여하면서, 특별히 전문상담교사나 생활안전부장 등 학교폭력 담당교사 등 학교폭력에 대한 조사를 담당하는 교원을 자치위원회 위원에서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사정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법원은 이어 "시행령 제26조 제2항이 '위원에게 공정한 심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인정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기피신청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을 고려하면, '해당 학생의 피해 학생 또는 가해 학생과 친분이 있거나 관련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라는 제척사유 규정은 '위원에게 위 학생과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있거나 해당 사건인 학교폭력의 발생 또는 피해의 확대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여 그 자체로 공정한 심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교사가 이 사건 자치위원회 위원으로 의결권을 행사했다고 해서 자치위 구성에 하자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입니다.

지난해 다른 하급심에선 전문상담직원이 자치위원으로 참여한 경우 처분에 위법이 있단 결론을 내리기도 해, 구체적 사안에 따라 처분 절차의 위법성에 대한 결론이 다른 것으로 보여집니다.

■법원 "가해 학생에게 매겨진 학교폭력 조치 점수 16점…전학처분 정당"

이어 법원은 학교의 처분 사유도 존재한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피해 학생이 이 사건 징계 사유에 관해 이 사건 자치위원회에서 한 진술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 객관적인 증거에 부합하여 신빙성이 매우 높고, A 군이 5개월간 B 군을 상대로 피해 학생과 그 가족의 별명을 불러 모욕하거나 성폭력을 행사하였다는 징계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면 대부분 A 군이 먼저 B 군에게 연락하거나 답장을 재촉하고, 이에 대응해 B 군은 소극적으로 응답하거나 여동생 사진을 보내달라는 원고의 요구에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으며, B 군이 자치위에서 담임교사에게 언급하지 않았던 징계 사유들에 대해 당시 상황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나 사실의 묘사 등을 상세히 진술한 이상 이를 믿지 않기는 어렵단 겁니다.

아울러 학교장 처분에 재량권의 일탈·남용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학교폭력예방법상의 각종 조치는 학교폭력에 대한 제재의 성격을 가지는 한편, 인격적으로 완성되지 않아 개선의 여지가 많은 학생에게 적절한 훈육과 선도를 통해 모범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할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교육적 성격도 강하므로 구체적 사안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관해 일정한 범위의 재량권이 인정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조치권자가 재량권의 행사로서 한 조치가 사회 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인정될 때엔 그 처분은 위법한 것이라고 할 것이며,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가 사회 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었는지 여부는 구체적 사례에 따라 조치의 원인이 된 학교폭력의 내용과 성질, 해당 조치에 의해 달성하려고 하는 행정목적, 관련 법령에 따른 조치의 기준 등 여러 요소를 종합하여 판단하게 됩니다.

법원은 "전학처분을 통해 달성하려는 공익이 이 사건 전학처분으로 원고가 입게 되는 불이익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히 크다고 보이므로, 이 사건 전학처분이 사회 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어 징계권자에게 맡겨진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은 '가해 학생에 대해 학교가 내리는 조치'와 여기 적용되는 기준을 두고 △가해학생이 행사한 학교폭력의 심각성·지속성·고의성 △가해학생의 반성 정도 △조치로 인한 가해 학생의 선도가능성 △학생 및 보호자간 화해의 정도 △피해 학생이 장애 학생인지 여부 등을 고려해 결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교육부 장관 고시는 위의 항목별로 0~4점의 범위에서 판정해 합계 점수의 범위에 따라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를 결정하도록 정하고 있는데요.

이 사건에서 학교 자치위원회는 A 군의 행위에 대해 학교폭력의 심각성 항목은 4점(매우높음), 학교폭력의 지속성 항목은 3점(높음), 학교폭력의 고의성 항목은 3점(높음), 가해학생의 반성정도 항목은 3점(낮음), 화해정도 항목은 3점(낮음)으로 총 16점으로 평가하고, 이 사건 학교장에게 원고에 대한 전학처분을 요청했습니다. 16점 이상이면 전학 처분이 가능합니다.

법원은 "A 군이 저지른 학교폭력은 원고가 피해 학생과 가족에 관한 모욕적 언사를 포함한 것일 뿐 아니라 성적인 괴롭힘의 경우 원고가 인정하는 부분만을 보더라도 피해 학생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기 충분한 행위로 판단되므로 그 심각성을 긍정할 수 있고, 학교폭력은 약 4달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위 학교폭력의 기간과 그 내용에 비추어 원고에게는 피해 학생을 괴롭힐 목적이 있었다고 봄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이어 "원고에 대한 신고가 접수된 이후 원고가 보여온 태도나 행동, 피해 학생의 원고에 대한 반응이나 호소하는 증상 등을 고려하면 학급 교체만으로 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고, 원고가 학교를 계속 다닐 경우 피해 학생과 수시로 마주치게 됨으로써 입게 될 피해 학생의 심적 고통과 학습권 역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울러 법원은 "학교폭력예방법상 가해 학생의 반성 정도, 가해 학생 및 보호자와 피해 학생 및 보호자간의 화해의 정도는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의 종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데, 원고의 해명을 직접 들은 이 사건 자치위원회에서 원고의 반성에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A군은 피해 학생에게 자신의 잘못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이용하여 사과하기도 하였으나 그 후에도 괴롭힘이 계속된 것으로 보이고 A 군이나 그 학부모가 피해 학생 측과 화해에 이르지도 못했다"며 A군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이 사건은 항소가 이뤄지지 않았고, 1심에서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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