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원회관에 내걸린 27개의 명패

입력 2020.07.07 (08:00) 수정 2020.07.08 (20:3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알려드립니다
최초 송고한 기사 말미에 국회의원 임기를 5년으로 잘못 기술해 4년으로 수정했습니다. 명백한 착오였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수십 년째 계속되는 일터에서 당하는 떼죽음

"일하는 사람들이 일터에서 일하다가 떼죽음을 당하는 참사가 수십 년간 계속되고 발생 건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소설가 김훈 작가가 지난 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읽어내린 연설의 한 대목입니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대형 참사가 없는 사이에도 하루에 몇 명씩, 한 달이면 수십 명씩, 일 년이면 수백 명씩 일터에서 산업재해로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죽음들이 최근 들어 언론을 통해서 전보다 많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지난 1일 국회 ‘생명안전포럼’ 창립식. 축사하고 있는 김훈 작가. 사진출처: 연합뉴스지난 1일 국회 ‘생명안전포럼’ 창립식. 축사하고 있는 김훈 작가. 사진출처: 연합뉴스

국회 의원회관에 걸린 27개의 명패

기사 앞머리에 있는, 국회의원 이름이 적힌 명패는 김훈 작가가 연설한 [국회 생명안전포럼]의 창립총회에서 전달한 기념품입니다. '생명안전 지킴이'라는 문구는 해당 의원이 [생명안전포럼]이라는 국회의원 연구단체에 가입돼 있다는 뜻입니다. 연구단체의 목적은 사회적 재난이나 산재처럼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를 예방하는 한편, 발생한 사고가 제대로 처리될 수 있도록 법 제도를 정비하는 것입니다.

김훈 작가의 말대로 수십 년 전부터 반복돼온 산재이지만, 최근 언론의 관심과 함께 국회에서도 활동이 시작된 것은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국회는 의원들이 연구단체를 만들면 토론회나 현장조사, 연구용역에 필요한 활동비를 지원합니다. 지난해에는 국회가 연구단체 68곳에 7억 9천만 원 정도를 지원했습니다. 예산이 지원되는 만큼 구성기준도 있습니다. 연구단체에는 10명 이상의 의원이 가입해야 하고 이 가운데 2개 이상의 정당(교섭단체/비교섭단체) 소속 의원이 포함돼 있어야 합니다. 또, 의원 1명은 연구단체에 3곳까지만 가입할 수 있습니다.

[생명안전포럼]에는 모두 27명의 의원이 가입했는데, 최소 기준인 10명 안팎의 의원들이 가입하는 관례에 비추어 꽤 많은 숫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포럼의 가입한 의원은 대부분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입니다. 그래서 포럼에 가입한 미래통합당 김기현 의원과 정의당 강은미 의원 2명의 소속 정당 덕분에(?) 포럼이 출범할 수 있었습니다.

21대 국회 개원에 맞춰 많은 의원과 함께 창립된 이 포럼, 어떤 일을 하게 될까요? 국회 연구단체인 만큼 입법과 제도 정비에 필요한 일을 하게 될 텐데, 대표의원을 맡은 우원식 의원실은 "재난이나 산업 재해처럼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를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공청회와 토론회, 현장 방문, 피해자 단체 간담회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미 산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상당수, 이 활동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법이 제정된다고 사랑하는 가족이 돌아올 수는 없지만, 법적인 강제가 또 다른 가족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데 유가족들이 뜻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산재 사고 상당수가 이미 방법이 알려진 안전조치를 소홀히 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에 국회를 통한 법적 장치의 도입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언론과 관계 당국에서 '안전 불감증'을 언급하며 은연중에 안전 조치를 무시한 노동자의 책임을 묻는 듯한 태도를 보이곤 합니다. 산재 처벌을 강화하는 법 제도는 설령 노동자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안전조치를 소홀히 하는 상황에서조차 사용자가 처벌이 두려워서라도 안전조치를 강제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생떼 같은 목숨 여럿이 사라져도 사업주는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받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모든 사업주가 안전조치에 발 벗고 나서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시민단체 [생명안전 시민넷]이 전달한 명패를 들고 있는 ‘생명안전포럼’ 소속 국회의원들의 모습. 사진출처: 연합뉴스시민단체 [생명안전 시민넷]이 전달한 명패를 들고 있는 ‘생명안전포럼’ 소속 국회의원들의 모습. 사진출처: 연합뉴스

공유된 희망은 더욱 크고 확실한 희망이다

창립식에서 명패를 전달받은 의원들은 각자 짤막한 소감을 밝혔습니다. 한 의원은 '생명안전 지킴이'라는 명패의 문구가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고, 명패의 값을 하는 의정활동을 약속한다는 의원도 있었습니다. 예방이 모든 것의 최우선이며, 더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한 의원도 있었습니다.

우원식, 이탄희, 오영환, 강은미, 고민정, 고영인, 김기현, 김영배, 민형배, 박주민, 변재일, 서영석, 설 훈, 양경숙, 양기대, 양이원영, 윤호중, 이용선, 이재정, 이정문, 이해식, 임호선, 전혜숙, 진성준, 천준호, 최혜영, 허 영.

명패를 받은 27명의 의원입니다. 이분들이 4년의 임기 동안 생명안전 분야에서 많은 일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의원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활동을 해주시기를, 그래도 유권자가 잊어버리면 다음 선거에서 [생명안전포럼]에서 이런 활동을 했노라고 선거 운동을 해주시기를 바라고 있겠습니다.

"시민들의 선한 의지의 힘과 변화를 선도하는 정치의 힘, 그리고 모든 사람의 생명의 힘을 합쳐서 우리는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창립총회 자리에서 저는 이 길이 갈 수 있는 길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공유된 희망은 더욱 크고 확실한 희망입니다."

김훈 작가는 위와 같은 말로 축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이제 일흔을 넘긴 작가가 새로 품은 희망이 머지않아 현실이 되기를, 그래서 다시 기사로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국회 의원회관에 내걸린 27개의 명패
    • 입력 2020-07-07 08:00:58
    • 수정2020-07-08 20:31:19
    취재K
※알려드립니다
최초 송고한 기사 말미에 국회의원 임기를 5년으로 잘못 기술해 4년으로 수정했습니다. 명백한 착오였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수십 년째 계속되는 일터에서 당하는 떼죽음

"일하는 사람들이 일터에서 일하다가 떼죽음을 당하는 참사가 수십 년간 계속되고 발생 건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소설가 김훈 작가가 지난 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읽어내린 연설의 한 대목입니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대형 참사가 없는 사이에도 하루에 몇 명씩, 한 달이면 수십 명씩, 일 년이면 수백 명씩 일터에서 산업재해로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죽음들이 최근 들어 언론을 통해서 전보다 많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지난 1일 국회 ‘생명안전포럼’ 창립식. 축사하고 있는 김훈 작가. 사진출처: 연합뉴스
국회 의원회관에 걸린 27개의 명패

기사 앞머리에 있는, 국회의원 이름이 적힌 명패는 김훈 작가가 연설한 [국회 생명안전포럼]의 창립총회에서 전달한 기념품입니다. '생명안전 지킴이'라는 문구는 해당 의원이 [생명안전포럼]이라는 국회의원 연구단체에 가입돼 있다는 뜻입니다. 연구단체의 목적은 사회적 재난이나 산재처럼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를 예방하는 한편, 발생한 사고가 제대로 처리될 수 있도록 법 제도를 정비하는 것입니다.

김훈 작가의 말대로 수십 년 전부터 반복돼온 산재이지만, 최근 언론의 관심과 함께 국회에서도 활동이 시작된 것은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국회는 의원들이 연구단체를 만들면 토론회나 현장조사, 연구용역에 필요한 활동비를 지원합니다. 지난해에는 국회가 연구단체 68곳에 7억 9천만 원 정도를 지원했습니다. 예산이 지원되는 만큼 구성기준도 있습니다. 연구단체에는 10명 이상의 의원이 가입해야 하고 이 가운데 2개 이상의 정당(교섭단체/비교섭단체) 소속 의원이 포함돼 있어야 합니다. 또, 의원 1명은 연구단체에 3곳까지만 가입할 수 있습니다.

[생명안전포럼]에는 모두 27명의 의원이 가입했는데, 최소 기준인 10명 안팎의 의원들이 가입하는 관례에 비추어 꽤 많은 숫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포럼의 가입한 의원은 대부분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입니다. 그래서 포럼에 가입한 미래통합당 김기현 의원과 정의당 강은미 의원 2명의 소속 정당 덕분에(?) 포럼이 출범할 수 있었습니다.

21대 국회 개원에 맞춰 많은 의원과 함께 창립된 이 포럼, 어떤 일을 하게 될까요? 국회 연구단체인 만큼 입법과 제도 정비에 필요한 일을 하게 될 텐데, 대표의원을 맡은 우원식 의원실은 "재난이나 산업 재해처럼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를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공청회와 토론회, 현장 방문, 피해자 단체 간담회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미 산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상당수, 이 활동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법이 제정된다고 사랑하는 가족이 돌아올 수는 없지만, 법적인 강제가 또 다른 가족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데 유가족들이 뜻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산재 사고 상당수가 이미 방법이 알려진 안전조치를 소홀히 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에 국회를 통한 법적 장치의 도입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언론과 관계 당국에서 '안전 불감증'을 언급하며 은연중에 안전 조치를 무시한 노동자의 책임을 묻는 듯한 태도를 보이곤 합니다. 산재 처벌을 강화하는 법 제도는 설령 노동자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안전조치를 소홀히 하는 상황에서조차 사용자가 처벌이 두려워서라도 안전조치를 강제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생떼 같은 목숨 여럿이 사라져도 사업주는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받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모든 사업주가 안전조치에 발 벗고 나서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시민단체 [생명안전 시민넷]이 전달한 명패를 들고 있는 ‘생명안전포럼’ 소속 국회의원들의 모습. 사진출처: 연합뉴스
공유된 희망은 더욱 크고 확실한 희망이다

창립식에서 명패를 전달받은 의원들은 각자 짤막한 소감을 밝혔습니다. 한 의원은 '생명안전 지킴이'라는 명패의 문구가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고, 명패의 값을 하는 의정활동을 약속한다는 의원도 있었습니다. 예방이 모든 것의 최우선이며, 더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한 의원도 있었습니다.

우원식, 이탄희, 오영환, 강은미, 고민정, 고영인, 김기현, 김영배, 민형배, 박주민, 변재일, 서영석, 설 훈, 양경숙, 양기대, 양이원영, 윤호중, 이용선, 이재정, 이정문, 이해식, 임호선, 전혜숙, 진성준, 천준호, 최혜영, 허 영.

명패를 받은 27명의 의원입니다. 이분들이 4년의 임기 동안 생명안전 분야에서 많은 일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의원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활동을 해주시기를, 그래도 유권자가 잊어버리면 다음 선거에서 [생명안전포럼]에서 이런 활동을 했노라고 선거 운동을 해주시기를 바라고 있겠습니다.

"시민들의 선한 의지의 힘과 변화를 선도하는 정치의 힘, 그리고 모든 사람의 생명의 힘을 합쳐서 우리는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창립총회 자리에서 저는 이 길이 갈 수 있는 길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공유된 희망은 더욱 크고 확실한 희망입니다."

김훈 작가는 위와 같은 말로 축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이제 일흔을 넘긴 작가가 새로 품은 희망이 머지않아 현실이 되기를, 그래서 다시 기사로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