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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400억대 손실 막았는데 해고”…한전KPS 직원의 눈물
입력 2020.07.07 (11:52) 수정 2020.07.07 (16:55) 취재K
사업 진행 과정에서 수백억 원의 잠재적 손실을 막아낸 공기업 직원이 있습니다. 이 직원은 회사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 휴가나 포상을 받았을까요? 아닙니다. 이 직원은 얼마 전 해고됐습니다.


이 회사는 한전KPS입니다. 전력시설의 설비 유지와 관리를 전담하는 회사인데, 한국전력의 자회사입니다. 한전KPS는 대규모 사업의 효율적인 위험 관리를 위해 2016년 '사업 관리 전문경력직'을 모집했고, 이때 입사한 금융전문가가 바로 해고된 직원, 이 모 씨입니다.

이 씨는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전문계약직입니다. 4년 전 입사한 뒤 세 차례 계약을 연장했습니다. 상·하반기마다 받는 인사평가에서도 줄곧 최고 등급에 가까운 좋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에는 처음으로 성과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사업 계약 책임 구조사업 계약 책임 구조

지난해 9월, 한전KPS는 포스코와 '광양 제철소 기능 개선 사업'의 계약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2017년부터 계약 체결을 위해 준비해 온 사업이었습니다. 총 사업 규모액이 610억 원인데 한전KPS로서는 대형 사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씨가 계약서상의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한전KPS가 일본 업체 등이 생산한 터빈과 보일러를 광양 제철소에 공급·설치하는 사업인데, 총 사업비 610억 원 중 부품 가격을 포함해 다른 업체들이 책임져야 하는 금액이 419억 원 정도이고 나머지 191억 원은 설치를 담당하는 한전KPS 사업 영역이었습니다. 문제는 약속된 사업 기한을 못 맞추거나, 터빈 성능이 기준에 미달하는 등 사업에 차질이 생겼을 때 물어야 하는 위약금을 모두 한전KPS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계약서가 작성돼 있었던 겁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계약서 법률검토 회신법무법인 태평양의 계약서 법률검토 회신

포스코로서는 문제가 생겼을 때 국내 회사인 한전KPS로부터 위약금 전액을 받을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의 계약입니다. 하지만 한전KPS로서는 일본 업체 등 다른 업체들의 잘못까지 모두 뒤집어쓸 수 있는 '독소 조항'이 포함된 불합리한 계약이었습니다. 계약서의 문제점은 이 씨만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한전KPS가 법무법인 태평양에 계약서에 대한 법률검토를 의뢰했는데, 태평양 역시 이 씨의 같은 내용의 지적을 담아 회신했습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 씨가 계약서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상사에게 보고했지만, 계약서는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상사는 "실제 우리 책임 금액은 일부일 뿐"이라며 이 씨의 보고를 뭉갰다고 합니다. 심지어 법무법인 태평양의 회신도 경영진에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최종 계약 서명을 앞둔 지난해 8월 말, 사장 주재 회의가 열립니다. 부서별 사업 진행 상황에 대한 보고에 이어 이 씨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사장 앞에서 이 씨는 공개적으로 "이 계약은 문제가 있다"라고 밝힙니다. 이어진 사장과의 독대 자리에서 이 씨는 한전KPS가 모든 책임을 질 수도 있는 계약서의 '독소 조항'을 보고했습니다. 사장으로서는 처음 듣는 소리였습니다. 결국, 경영진은 계약을 중단시키고 재협상을 지시했습니다. 얼마 뒤 한전KPS의 책임 범위를 610억 원 전액에서 191억 원으로 크게 줄인 새 계약서가 체결됩니다. 사장 주재회의에서 용기를 낸 이 씨 덕이었습니다.


칭찬을 받아도 마땅할 텐데 '그 회의' 이후 이 씨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우선 상사로부터 "앞으로 사장 주재 회의에 참석하지 마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맡고 있던 실장 보직에서 물러나 평사원으로 강등됩니다. 업무와 각종 회의에서도 배제당합니다.

심지어 그 일이 있고 난 뒤 첫 인사평가에서 전체 등급 'C', 특정 항목에선 최하등급인 'D'를 받습니다. 무슨 항목이었느냐고요? '프로젝트 추진 검토 지원과 위기 관리 항목'입니다. 이 씨가 문제를 제기한 뒤에야 인사위원회에서 업무실적을 재평가한 뒤 전체등급은 'B'로, 위기관리 항목은 'C'로 한 단계씩 상향 조정됩니다.

이 씨 혼자 근무했던 임시 사무실 ‘회의실’이 씨 혼자 근무했던 임시 사무실 ‘회의실’

인사평가는 상향 조정됐지만, 이 씨를 둘러싼 이해할 수 없는 '따돌림'은 계속됐습니다. 참다못한 이 씨는 지난해 말, 사내 직장 내 괴롭힘 공식 신고 채널 '레드휘슬'에 도움을 요청하고 상사 등 '가해자'들과의 분리조치를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회사는 이 씨에게 다른 층 텅 빈 회의실에 임시로 혼자 지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면서 매일 뭘 하는지 일일이 일지 작성을 요구했습니다. 예전에는 없던 지시였습니다.

이 씨가 문제를 제기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감사실은 진상조사를 시작하고도 몇 달째 뚜렷한 결과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 씨는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텅 빈 회의실에서 혼자 지낸 지 넉 달 만이었습니다. 계약 해지가 결정된 뒤 그제야 감사실은 이 씨가 제기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결과를 내놨습니다.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었습니다.

회사의 잠재적 손해를 막아낸 직원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보복'이 자행된 상황. 한전KPS 측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한전KPS는 "이 씨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가 더는 필요 없다는 수요 조사 결과에 따라 계약을 해지한 것"이라며 "계약서 독소조항 문제는 상사들도 알고 있었고 보고 시기가 서로 맞지 않았을 뿐, 보복성 해고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피해자 보호를 위해 회의실에 임시 사무 공간을 마련한 건데 감사실 조사가 늦어지면서 오래 머물게 된 것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특히 "인사평가 문제는 상사가 이 씨의 업무에 대해 몰라 벌어진 일"이라는 답변을 내놨는데 그 '상사'는 바로 독소 조항이 포함된 계약서 체결이 중단된 뒤 승진에서 탈락한 사람입니다.

400억 원대의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상황, 하지만 한전 KPS에서 이 일로 징계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해고된 사람은 문제를 제기한 이 씨 한 명뿐입니다.

이 씨는 '그 회의' 이후 "경영진에게 수차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무실에서 수개월 동안 혼자 지내며 "혼자 밥 먹고 온종일 혼자 말 한마디 안 하고 있다 보니 '회사의 유령'이 된 것 같았다"고도 했습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대상포진에 부정맥까지 왔지만, 이 씨는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또 한 명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한전KPS 사장입니다. 자신에게 '독소 조항'이 담긴 계약서의 문제점을 알려준 직원. 그로 인해 회사가 입을 수 있었던 큰 피해를 사전에 막아낸 직원이 이후 회사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해고된 과정을 사장은 전혀 몰랐을까요?
  • [단독] “400억대 손실 막았는데 해고”…한전KPS 직원의 눈물
    • 입력 2020-07-07 11:52:47
    • 수정2020-07-07 16:55:01
    취재K
사업 진행 과정에서 수백억 원의 잠재적 손실을 막아낸 공기업 직원이 있습니다. 이 직원은 회사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 휴가나 포상을 받았을까요? 아닙니다. 이 직원은 얼마 전 해고됐습니다.


이 회사는 한전KPS입니다. 전력시설의 설비 유지와 관리를 전담하는 회사인데, 한국전력의 자회사입니다. 한전KPS는 대규모 사업의 효율적인 위험 관리를 위해 2016년 '사업 관리 전문경력직'을 모집했고, 이때 입사한 금융전문가가 바로 해고된 직원, 이 모 씨입니다.

이 씨는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전문계약직입니다. 4년 전 입사한 뒤 세 차례 계약을 연장했습니다. 상·하반기마다 받는 인사평가에서도 줄곧 최고 등급에 가까운 좋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에는 처음으로 성과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사업 계약 책임 구조사업 계약 책임 구조

지난해 9월, 한전KPS는 포스코와 '광양 제철소 기능 개선 사업'의 계약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2017년부터 계약 체결을 위해 준비해 온 사업이었습니다. 총 사업 규모액이 610억 원인데 한전KPS로서는 대형 사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씨가 계약서상의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한전KPS가 일본 업체 등이 생산한 터빈과 보일러를 광양 제철소에 공급·설치하는 사업인데, 총 사업비 610억 원 중 부품 가격을 포함해 다른 업체들이 책임져야 하는 금액이 419억 원 정도이고 나머지 191억 원은 설치를 담당하는 한전KPS 사업 영역이었습니다. 문제는 약속된 사업 기한을 못 맞추거나, 터빈 성능이 기준에 미달하는 등 사업에 차질이 생겼을 때 물어야 하는 위약금을 모두 한전KPS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계약서가 작성돼 있었던 겁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계약서 법률검토 회신법무법인 태평양의 계약서 법률검토 회신

포스코로서는 문제가 생겼을 때 국내 회사인 한전KPS로부터 위약금 전액을 받을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의 계약입니다. 하지만 한전KPS로서는 일본 업체 등 다른 업체들의 잘못까지 모두 뒤집어쓸 수 있는 '독소 조항'이 포함된 불합리한 계약이었습니다. 계약서의 문제점은 이 씨만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한전KPS가 법무법인 태평양에 계약서에 대한 법률검토를 의뢰했는데, 태평양 역시 이 씨의 같은 내용의 지적을 담아 회신했습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 씨가 계약서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상사에게 보고했지만, 계약서는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상사는 "실제 우리 책임 금액은 일부일 뿐"이라며 이 씨의 보고를 뭉갰다고 합니다. 심지어 법무법인 태평양의 회신도 경영진에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최종 계약 서명을 앞둔 지난해 8월 말, 사장 주재 회의가 열립니다. 부서별 사업 진행 상황에 대한 보고에 이어 이 씨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사장 앞에서 이 씨는 공개적으로 "이 계약은 문제가 있다"라고 밝힙니다. 이어진 사장과의 독대 자리에서 이 씨는 한전KPS가 모든 책임을 질 수도 있는 계약서의 '독소 조항'을 보고했습니다. 사장으로서는 처음 듣는 소리였습니다. 결국, 경영진은 계약을 중단시키고 재협상을 지시했습니다. 얼마 뒤 한전KPS의 책임 범위를 610억 원 전액에서 191억 원으로 크게 줄인 새 계약서가 체결됩니다. 사장 주재회의에서 용기를 낸 이 씨 덕이었습니다.


칭찬을 받아도 마땅할 텐데 '그 회의' 이후 이 씨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우선 상사로부터 "앞으로 사장 주재 회의에 참석하지 마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맡고 있던 실장 보직에서 물러나 평사원으로 강등됩니다. 업무와 각종 회의에서도 배제당합니다.

심지어 그 일이 있고 난 뒤 첫 인사평가에서 전체 등급 'C', 특정 항목에선 최하등급인 'D'를 받습니다. 무슨 항목이었느냐고요? '프로젝트 추진 검토 지원과 위기 관리 항목'입니다. 이 씨가 문제를 제기한 뒤에야 인사위원회에서 업무실적을 재평가한 뒤 전체등급은 'B'로, 위기관리 항목은 'C'로 한 단계씩 상향 조정됩니다.

이 씨 혼자 근무했던 임시 사무실 ‘회의실’이 씨 혼자 근무했던 임시 사무실 ‘회의실’

인사평가는 상향 조정됐지만, 이 씨를 둘러싼 이해할 수 없는 '따돌림'은 계속됐습니다. 참다못한 이 씨는 지난해 말, 사내 직장 내 괴롭힘 공식 신고 채널 '레드휘슬'에 도움을 요청하고 상사 등 '가해자'들과의 분리조치를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회사는 이 씨에게 다른 층 텅 빈 회의실에 임시로 혼자 지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면서 매일 뭘 하는지 일일이 일지 작성을 요구했습니다. 예전에는 없던 지시였습니다.

이 씨가 문제를 제기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감사실은 진상조사를 시작하고도 몇 달째 뚜렷한 결과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 씨는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텅 빈 회의실에서 혼자 지낸 지 넉 달 만이었습니다. 계약 해지가 결정된 뒤 그제야 감사실은 이 씨가 제기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결과를 내놨습니다.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었습니다.

회사의 잠재적 손해를 막아낸 직원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보복'이 자행된 상황. 한전KPS 측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한전KPS는 "이 씨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가 더는 필요 없다는 수요 조사 결과에 따라 계약을 해지한 것"이라며 "계약서 독소조항 문제는 상사들도 알고 있었고 보고 시기가 서로 맞지 않았을 뿐, 보복성 해고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피해자 보호를 위해 회의실에 임시 사무 공간을 마련한 건데 감사실 조사가 늦어지면서 오래 머물게 된 것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특히 "인사평가 문제는 상사가 이 씨의 업무에 대해 몰라 벌어진 일"이라는 답변을 내놨는데 그 '상사'는 바로 독소 조항이 포함된 계약서 체결이 중단된 뒤 승진에서 탈락한 사람입니다.

400억 원대의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상황, 하지만 한전 KPS에서 이 일로 징계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해고된 사람은 문제를 제기한 이 씨 한 명뿐입니다.

이 씨는 '그 회의' 이후 "경영진에게 수차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무실에서 수개월 동안 혼자 지내며 "혼자 밥 먹고 온종일 혼자 말 한마디 안 하고 있다 보니 '회사의 유령'이 된 것 같았다"고도 했습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대상포진에 부정맥까지 왔지만, 이 씨는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또 한 명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한전KPS 사장입니다. 자신에게 '독소 조항'이 담긴 계약서의 문제점을 알려준 직원. 그로 인해 회사가 입을 수 있었던 큰 피해를 사전에 막아낸 직원이 이후 회사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해고된 과정을 사장은 전혀 몰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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