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비디오’ 손 씨 美 인도 거절…면죄부 안되려면

입력 2020.07.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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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법원은 세계 최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거래사이트 '웰컴투비디오'(W2V) 운영자 손 모 씨에 대해 미국으로의 범죄인 인도거절 결정을 내렸습니다. 인도 구속영장이 발부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손 씨도 어제 오후 석방됐습니다.

인도 불허를 결정한 법원을 향해 화살이 쏟아집니다. 강영수 수석부장판사의 대법관 후보 자격을 박탈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엔 하루 만에 30만 명 넘는 인원이 참여했습니다.

세계 최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거래사이트 운영자…징역 1년 6개월

회원 128만 명, 저장된 음란물 용량만 8TB(테라바이트).

'웰컴투비디오'는 세계 최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거래사이트였습니다. 이 사이트 운영자 손 씨는 3,055개의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올리고, 회원 4,073명에게 4억여 원을 받아 챙겼습니다.

2018년 3월 청소년성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손 씨, 1심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2심에선 징역 1년 6개월, 손 씨가 상고를 취하해 항소심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범행의 대가는 징역 1년 6개월이 전부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분노한 대목입니다. 법정형이 무거운 미국에서 손 씨가 단죄를 받았으면 한다는 바람이 터져 나왔습니다.

한가지 죄목으로만 인도가 가능했던 손 씨...美, 자금세탁 혐의 손 씨 넘겨달라

앞서 손 씨는 미국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 6개 죄명으로 기소됐습니다. ▲아동음란물 광고 음모 ▲아동음란물 광고 ▲미합중국으로 수입하기 위한 미성년자의 노골적인 성표현물 제작 ▲아동음란물 유통 음모 ▲아동음란물 유통 ▲자금세탁, 모두 6개입니다.

이 가운데 검찰은 손 씨가 처벌받지 않은 혐의, 범죄수익은닉죄(미국 자금세탁죄)를 특정해 손 씨에 대한 인도심사를 청구했습니다.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간 범죄인인도 조약과 범죄인 인도법에 따라 이미 유·무죄선고를 받았으면 인도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한국에서 처벌될 수 있는 범죄가 아니라면 역시 인도심사청구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물론, 법원이 어제 손 씨에 대해 인도허가 결정을 내놨더라도, 미국 법원은 아동음란물 광고, 아동음란물 유통 등의 죄는 처벌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남는 건 자금세탁죄, 이번 사건에서 대한민국 법원은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을 위반한 손 씨를 미국으로 넘길지, 말지에 대한 판단만 하게 된 겁니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의 경우, 한국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지만, 미국에선 최대 징역 20년에 처할 수 있습니다.



범죄의 예방과 억제…면죄부 비판도

"이 사건의 결정이 범죄인에 대하여 면죄부를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범죄인은 자신의 진술대로, 앞으로 이루어질 수사 및 재판 과정에 적극 협조하고, 정당한 처벌을 받기 바랍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20부

재판부는 '범죄의 예방과 억제'를 강조했습니다. 범죄인 인도 제도의 목적은 범죄의 예방과 억제이지, 범죄인이 법정형이 더 높은 국가에서 엄하게 처벌받도록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재판부는 이를 위해 손 씨를 한국에 남겨 수사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에서 관련 수사 활동에 필요한 정보와 증거를 추가로 수집하고, 이를 수사과정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웰컴투비디오' 회원 128만 명 중 지난해 검거된 수는 346명에 불과합니다. 그중 223명이 한국인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회원을 모두 찾아내는 게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관련 범죄 근절에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이는, 대한민국 사법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물론 예방과 억제를 위한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 노력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무슨 수사가 더 필요하다는 것인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로 수사기관은 지난해 검거한 '웰컴투비디오' 이용자 223명 전원에 대한 수사를 마쳤습니다.

최대 20년형에 처할 수 있는 미국 대신, 최대 5년형에 처하는 한국에서 수사를 받게 되었으니 결국 면죄부를 준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미국 인도는 답이 됐을까?

손 씨를 미국으로 보내는 게 해답이 될 순 없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손 씨를 미국으로 보내 엄벌에 처해지도록 하는 게 한국사회 개선의 해결책이 될 순 없다는 겁니다.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기획팀장은 "한국법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이 착취물임을 명확히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면서 그동안의 관행에 대해 반성하고 나아가는 방향은 국내법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손 씨를 미국으로 보낸다고 '음란물 유통' 정도로 사건을 다뤄왔던 관행이 해결되진 않는다는 겁니다. 특히, 한국 사법체계의 개선 없이는 제2의, 제3의 손 씨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 역시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말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 순 없지만, 미국으로 보내는 방식이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변호사는 "대한민국 사법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데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면서 우리 손으로 엄중하게 수사하고 처벌하자는 말이 한국에선 약한 처벌이 나올 게 뻔하니 미국으로 보내자는 말로 반박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제2의, 제3의 손 모 씨가 나올 때마다 미국으로 보내 엄벌을 구해야 하는 게 올바른 방향은 아닐 겁니다.

미약했던 처벌, 국민청원 올라간 판사…그 다음은?

결국, 중요한 건 손 씨를 미국으로 인도하지 않았다는 것보다 손 씨에게 내려진 징역 1년 6개월이라는 판결입니다. 디지털 성범죄를 관대하게 바라봐왔던 이전 재판부와 검찰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겠죠.

법원 스스로도 인정합니다. 재판부는 그동안 수사기관과 법원이 반인륜적이고 극악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이 미약한 상태에서 형사사법 제도를 운영해 왔다는 비판에 공감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범죄를 억제하고 피해예방을 위한 적절한 입법적 조치가 뒤따라야 하고, 수사기관과 법원도 기존의 수사와 양형 관행에서 탈피해 재발 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디지털 성범죄'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제작 범죄는 양형기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불거진 뒤에야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초안이 마련되었습니다.

최근 중학생 여성을 착취했던 10대 학생에게 법원은 법정최고형인 장기 10년에 단기 5년을 선고했습니다. 강간이나 강제추행과 다르게 디지털 성범죄를 관대하게 바라봤던 인식이 변하고 있는 신호였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여전히 수많은 'N번방' 피고인들이 법원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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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웰컴투비디오’ 손 씨 美 인도 거절…면죄부 안되려면
    • 입력 2020-07-08 07:00:58
    취재K
지난 6일 법원은 세계 최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거래사이트 '웰컴투비디오'(W2V) 운영자 손 모 씨에 대해 미국으로의 범죄인 인도거절 결정을 내렸습니다. 인도 구속영장이 발부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손 씨도 어제 오후 석방됐습니다.

인도 불허를 결정한 법원을 향해 화살이 쏟아집니다. 강영수 수석부장판사의 대법관 후보 자격을 박탈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엔 하루 만에 30만 명 넘는 인원이 참여했습니다.

세계 최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거래사이트 운영자…징역 1년 6개월

회원 128만 명, 저장된 음란물 용량만 8TB(테라바이트).

'웰컴투비디오'는 세계 최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거래사이트였습니다. 이 사이트 운영자 손 씨는 3,055개의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올리고, 회원 4,073명에게 4억여 원을 받아 챙겼습니다.

2018년 3월 청소년성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손 씨, 1심 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2심에선 징역 1년 6개월, 손 씨가 상고를 취하해 항소심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범행의 대가는 징역 1년 6개월이 전부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분노한 대목입니다. 법정형이 무거운 미국에서 손 씨가 단죄를 받았으면 한다는 바람이 터져 나왔습니다.

한가지 죄목으로만 인도가 가능했던 손 씨...美, 자금세탁 혐의 손 씨 넘겨달라

앞서 손 씨는 미국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 6개 죄명으로 기소됐습니다. ▲아동음란물 광고 음모 ▲아동음란물 광고 ▲미합중국으로 수입하기 위한 미성년자의 노골적인 성표현물 제작 ▲아동음란물 유통 음모 ▲아동음란물 유통 ▲자금세탁, 모두 6개입니다.

이 가운데 검찰은 손 씨가 처벌받지 않은 혐의, 범죄수익은닉죄(미국 자금세탁죄)를 특정해 손 씨에 대한 인도심사를 청구했습니다.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간 범죄인인도 조약과 범죄인 인도법에 따라 이미 유·무죄선고를 받았으면 인도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한국에서 처벌될 수 있는 범죄가 아니라면 역시 인도심사청구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물론, 법원이 어제 손 씨에 대해 인도허가 결정을 내놨더라도, 미국 법원은 아동음란물 광고, 아동음란물 유통 등의 죄는 처벌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남는 건 자금세탁죄, 이번 사건에서 대한민국 법원은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을 위반한 손 씨를 미국으로 넘길지, 말지에 대한 판단만 하게 된 겁니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의 경우, 한국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지만, 미국에선 최대 징역 20년에 처할 수 있습니다.



범죄의 예방과 억제…면죄부 비판도

"이 사건의 결정이 범죄인에 대하여 면죄부를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범죄인은 자신의 진술대로, 앞으로 이루어질 수사 및 재판 과정에 적극 협조하고, 정당한 처벌을 받기 바랍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20부

재판부는 '범죄의 예방과 억제'를 강조했습니다. 범죄인 인도 제도의 목적은 범죄의 예방과 억제이지, 범죄인이 법정형이 더 높은 국가에서 엄하게 처벌받도록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재판부는 이를 위해 손 씨를 한국에 남겨 수사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에서 관련 수사 활동에 필요한 정보와 증거를 추가로 수집하고, 이를 수사과정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웰컴투비디오' 회원 128만 명 중 지난해 검거된 수는 346명에 불과합니다. 그중 223명이 한국인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회원을 모두 찾아내는 게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관련 범죄 근절에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이는, 대한민국 사법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물론 예방과 억제를 위한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 노력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무슨 수사가 더 필요하다는 것인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로 수사기관은 지난해 검거한 '웰컴투비디오' 이용자 223명 전원에 대한 수사를 마쳤습니다.

최대 20년형에 처할 수 있는 미국 대신, 최대 5년형에 처하는 한국에서 수사를 받게 되었으니 결국 면죄부를 준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미국 인도는 답이 됐을까?

손 씨를 미국으로 보내는 게 해답이 될 순 없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손 씨를 미국으로 보내 엄벌에 처해지도록 하는 게 한국사회 개선의 해결책이 될 순 없다는 겁니다.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기획팀장은 "한국법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이 착취물임을 명확히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면서 그동안의 관행에 대해 반성하고 나아가는 방향은 국내법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손 씨를 미국으로 보낸다고 '음란물 유통' 정도로 사건을 다뤄왔던 관행이 해결되진 않는다는 겁니다. 특히, 한국 사법체계의 개선 없이는 제2의, 제3의 손 씨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 역시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말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 순 없지만, 미국으로 보내는 방식이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변호사는 "대한민국 사법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데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면서 우리 손으로 엄중하게 수사하고 처벌하자는 말이 한국에선 약한 처벌이 나올 게 뻔하니 미국으로 보내자는 말로 반박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제2의, 제3의 손 모 씨가 나올 때마다 미국으로 보내 엄벌을 구해야 하는 게 올바른 방향은 아닐 겁니다.

미약했던 처벌, 국민청원 올라간 판사…그 다음은?

결국, 중요한 건 손 씨를 미국으로 인도하지 않았다는 것보다 손 씨에게 내려진 징역 1년 6개월이라는 판결입니다. 디지털 성범죄를 관대하게 바라봐왔던 이전 재판부와 검찰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겠죠.

법원 스스로도 인정합니다. 재판부는 그동안 수사기관과 법원이 반인륜적이고 극악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이 미약한 상태에서 형사사법 제도를 운영해 왔다는 비판에 공감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범죄를 억제하고 피해예방을 위한 적절한 입법적 조치가 뒤따라야 하고, 수사기관과 법원도 기존의 수사와 양형 관행에서 탈피해 재발 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디지털 성범죄'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제작 범죄는 양형기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불거진 뒤에야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초안이 마련되었습니다.

최근 중학생 여성을 착취했던 10대 학생에게 법원은 법정최고형인 장기 10년에 단기 5년을 선고했습니다. 강간이나 강제추행과 다르게 디지털 성범죄를 관대하게 바라봤던 인식이 변하고 있는 신호였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여전히 수많은 'N번방' 피고인들이 법원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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