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공직자는 다주택자면 안 되나요?…문제는 신뢰

입력 2020.07.08 (07:00) 수정 2020.07.08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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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면서 정치권도 들썩이고 있습니다. 집값 급등에 대한 비판이 다주택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로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민주당 "실거주 이외 주택 모두 처분"

시작은 청와대였습니다. 지난해 12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청와대 전·현직 참모들의 부동산 가격이 3년간 평균 40%가 올랐다고 비판하자,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자체 권고안을 냈던 겁니다. 수도권 등 투기 과열지구에 2채 이상 집을 가진 청와대 참모들은 실거주하는 한 채를 제외하고 모두 처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브리핑에 나선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비서관 임용 시 잣대가 될 것으로 본다, 다른 부처에도 파급이 미칠 것"이라며 공직자라면 따라야 할 행동지침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시한도 6개월로 제시했습니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선 민주당도 움직였습니다. 민주당은 4·15 총선 후보자들에게 '당선될 경우 거주목적 외 주택을 2년 이내 처분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았습니다.


6개월을 훌쩍 넘긴 지금, 먼저 청와대의 '권고'는 잘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살지 않는 집을 매각한 참모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참모 12명은 여전히 다주택자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다주택 매각 권고의 당사자인 노영민 비서실장(당시 반포, 청주에 각 1채씩 보유)은 청주가 '수도권 등 투기과열지구'가 아니기 때문에 '권고' 대상자는 아니었지만, 거주하지 않는 반포 아파트를 팔지 않으면서 눈총의 대상이 됐습니다. 여기에, 반포 아파트를 팔 것처럼 알려졌다가, 실제로는 청주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은 정점을 찍었습니다. 청주 아파트가 팔린 사실이 어제 알려졌지만, 비난 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매각'은 아직 진행형입니다. 경실련에 따르면 집을 2채 이상 가진 의원은 42명, 이 중 21명이 주택처분 서약 권고 대상자입니다. 민주당은 "약속 이행 여부를 지속적으로 살피고 있다"면서도 "그 과정을 공개할 계획은 아직 없다"고 밝혔습니다.


통합당 "다주택 처분은 재산권 침해 … 반헌법적인 발상"

하지만 다주택자 보유가 무조건 금기시될 건 아니라는 반론이 나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유재산인 부동산을 처분하는 일은 개인의 자유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라고 해서 무조건 다주택을 처분해야 하는 건 시장 원리가 아니라는 건데, 통합당은 강제적 주택 처분이 재산권 침해라는 입장입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통합당 다주택자 의원들이 주택을 처분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그 발상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유재산 처분은 헌법에 보장된 것인데 시장 원리에 따라 작동해야지, 임의적인 주택 처분 지시는 반헌법적인 발상이라는 겁니다.

통합당 핵심 당직자 또한 KBS와의 통화에서 "민주당도 의원들에게 주택 처분을 강제한 게 아니라 권고한 거지, 재산권을 침해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라며 "정책 관련자가 책임감이나 소명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주택 처분 등 재산권은 비단 정치권의 문제가 아닌 헌법에 보장된 내용"이라고 말했습니다.

매각 권고는 '대국민 약속'… '신뢰의 무게' 새겨야

다주택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맞는 건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이 귀 기울여야 하는 건 바로 '신뢰'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입니다.

청와대의 다주택 매각 권고는 국민에겐 일종의 약속이었습니다. 청와대 참모들부터 솔선수범하겠다는 자세의 표현이었고, 부동산 시장만큼은 안정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사유재산권 침해일지라도, 급매에 따른 손실을 감수하면서라도 청와대가 의지를 보인 점에 국민은 고개를 끄덕였고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래서 '청와대의 권고'가 지켜지지 않은 지금, 많은 국민은 약속을 어겼다고 보는 것입니다. 처지에 따라 안 지켜도 되는 '권고'에 불과한 것이었다면 아예 권고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정부 정책의 콘트롤 타워인 청와대의 언행이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것이라면 이보다 더 경계해야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청와대의 '권고'보다 더한, 민주당의 주택 처분 '서약', 더 많은 국민이 지켜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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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인·공직자는 다주택자면 안 되나요?…문제는 신뢰
    • 입력 2020-07-08 07:00:58
    • 수정2020-07-08 08:27:26
    취재K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면서 정치권도 들썩이고 있습니다. 집값 급등에 대한 비판이 다주택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로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민주당 "실거주 이외 주택 모두 처분"

시작은 청와대였습니다. 지난해 12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청와대 전·현직 참모들의 부동산 가격이 3년간 평균 40%가 올랐다고 비판하자,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자체 권고안을 냈던 겁니다. 수도권 등 투기 과열지구에 2채 이상 집을 가진 청와대 참모들은 실거주하는 한 채를 제외하고 모두 처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브리핑에 나선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비서관 임용 시 잣대가 될 것으로 본다, 다른 부처에도 파급이 미칠 것"이라며 공직자라면 따라야 할 행동지침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시한도 6개월로 제시했습니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선 민주당도 움직였습니다. 민주당은 4·15 총선 후보자들에게 '당선될 경우 거주목적 외 주택을 2년 이내 처분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았습니다.


6개월을 훌쩍 넘긴 지금, 먼저 청와대의 '권고'는 잘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살지 않는 집을 매각한 참모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참모 12명은 여전히 다주택자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다주택 매각 권고의 당사자인 노영민 비서실장(당시 반포, 청주에 각 1채씩 보유)은 청주가 '수도권 등 투기과열지구'가 아니기 때문에 '권고' 대상자는 아니었지만, 거주하지 않는 반포 아파트를 팔지 않으면서 눈총의 대상이 됐습니다. 여기에, 반포 아파트를 팔 것처럼 알려졌다가, 실제로는 청주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은 정점을 찍었습니다. 청주 아파트가 팔린 사실이 어제 알려졌지만, 비난 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매각'은 아직 진행형입니다. 경실련에 따르면 집을 2채 이상 가진 의원은 42명, 이 중 21명이 주택처분 서약 권고 대상자입니다. 민주당은 "약속 이행 여부를 지속적으로 살피고 있다"면서도 "그 과정을 공개할 계획은 아직 없다"고 밝혔습니다.


통합당 "다주택 처분은 재산권 침해 … 반헌법적인 발상"

하지만 다주택자 보유가 무조건 금기시될 건 아니라는 반론이 나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유재산인 부동산을 처분하는 일은 개인의 자유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라고 해서 무조건 다주택을 처분해야 하는 건 시장 원리가 아니라는 건데, 통합당은 강제적 주택 처분이 재산권 침해라는 입장입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통합당 다주택자 의원들이 주택을 처분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그 발상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유재산 처분은 헌법에 보장된 것인데 시장 원리에 따라 작동해야지, 임의적인 주택 처분 지시는 반헌법적인 발상이라는 겁니다.

통합당 핵심 당직자 또한 KBS와의 통화에서 "민주당도 의원들에게 주택 처분을 강제한 게 아니라 권고한 거지, 재산권을 침해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라며 "정책 관련자가 책임감이나 소명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주택 처분 등 재산권은 비단 정치권의 문제가 아닌 헌법에 보장된 내용"이라고 말했습니다.

매각 권고는 '대국민 약속'… '신뢰의 무게' 새겨야

다주택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맞는 건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이 귀 기울여야 하는 건 바로 '신뢰'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입니다.

청와대의 다주택 매각 권고는 국민에겐 일종의 약속이었습니다. 청와대 참모들부터 솔선수범하겠다는 자세의 표현이었고, 부동산 시장만큼은 안정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사유재산권 침해일지라도, 급매에 따른 손실을 감수하면서라도 청와대가 의지를 보인 점에 국민은 고개를 끄덕였고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래서 '청와대의 권고'가 지켜지지 않은 지금, 많은 국민은 약속을 어겼다고 보는 것입니다. 처지에 따라 안 지켜도 되는 '권고'에 불과한 것이었다면 아예 권고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정부 정책의 콘트롤 타워인 청와대의 언행이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것이라면 이보다 더 경계해야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청와대의 '권고'보다 더한, 민주당의 주택 처분 '서약', 더 많은 국민이 지켜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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