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뿐 3연속 회동…비건이 남긴 메시지는?

입력 2020.07.0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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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 일정으로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오늘(8일) 오전 매우 빡빡한 공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오전 9시쯤 서울 외교부 청사를 찾은 직후부터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세영 1차관,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을 잇달아 만난 겁니다.

장관과는 '접견', 차관과는 '전략 대화', 이 본부장과는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가졌습니다. 아침 식사는 이 본부장과 점심은 조 차관과 함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5~6시간 사이에 숨 가쁘게 몰아친 회의에서 비건 부장관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 장관과 코로나19 검사 소재로 '환담'

강 장관과 대화는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을 참작하면 환담 수준의 대화가 오갔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접견 전 모두 발언 정도만 짧게 공개됐습니다. 주된 소재는 전날 비건 부장관이 받아야 했던 코로나19 검사였습니다.

비건 부장관은 "한국 정부가 안전을 위한 작업에 매우 협조적"이라며 "우리는 안전하기를 원한다"고 말을 건넸습니다. 강 장관은 "우리는 이번 방문을 안전하게 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다 했다"며 "또 다른 검사를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답했습니다.

애초 비건 부장관 일행은 코로나19 검사와 자가격리 면제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국내에 착륙한 이후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사정에 대해 서로에 대한 노고를 평가하는 말을 주고받은 것입니다.


■ 차관과의 전략대화는 '얕고 넓게?'

비건 부장관은 다음으로 약 한 시간 반가량 조세영 1차관과 '한미 외교장관 전략대화'를 가졌습니다. 조 차관도, 비건 부장관도 이 회의체를 통해서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입니다.

두 나라의 주요 양자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전략대화가 지난 2017년 10월 이후 처음 열린 것인데, 비건 부장관이 지난해 12월에 취임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동안 두 인사는 코로나19 대응 등을 주제로 10차례 정도 통화를 통해 소통해 왔다고 외교부는 설명했습니다.

전략대화에서 나눈 이야기는 소재가 다양했습니다. 대화가 끝난 뒤 약식 기자회견을 통해 조 차관이 공개한 것을 보면 한미 동맹, 코로나 대응, 한반도 문제, 지역 정세, 글로벌 이슈 등이었습니다. 한 시간여 동안 깊이 있는 논의보다는 한미 관계 현안 전반을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대화를 나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 차관은 구체적으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한미 방위비 협상을 논의 내용을 우선 공개했습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한미가 서로 수용 가능한 결과가 나오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지난 6월 1일 한미 정상 통화에서 논의된 G7 정상회담 초청 및 확대 문제에 대해서도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비건 부장관은 한반도 평화에 대해 "한국과 매우 긴밀히 협력하고 올해에는 진전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미 동맹의 굳건함도 재확인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은 순간 한국이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도 표시했습니다. 조 차관과 비건 부장관의 발언만 보면 많은 주제에 대한 추상적인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 "북한에 만나자고 한 적 없다"...직설적 표현
오전에 공개된 마지막 일정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북핵 수석대표 협의였습니다. 비건 부장관과 이 본부장은 비건 부장관이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맡은 2년여 동안 한반도 비핵화를 논의하는 협상 파트너였습니다. 같은 차관급 지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비건 부장관이 우리나라로 치면 차관에 해당하는 부장관으로 승진하면서도 수석대표 지위를 유지하게 되면서 관계가 다소 애매해졌습니다. 비건 부장관의 한국 측 파트너가 부장관 신분일 땐 조세영 차관, 특별대표 신분일 땐 이도훈 본부장으로 나뉘게 된 겁니다. 비건 부장관이 차관, 본부장과 두 차례 별도의 만남을 갖게 된 이유입니다.

협상 지위와는 별개로 이 본부장은 최근 미국을 방문해 비건 부장관을 만나고 오는 등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논의는 두 사람 사이에 꾸준히 이뤄져 왔습니다. 이 본부장의 미국 방문 당시 협의 내용은 철저히 공개되지 않아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번에는 협의가 끝난 뒤 일부 공개가 됐습니다

비건 부장관은 다소 직설적인 표현으로 말했습니다. 최근 북한이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과 권정근 미국 담당 국장의 담화를 통해 미국과 대화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것에 대해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는 북한과 만남을 요청한 적 없다. 이번 방한은 동맹을 만나기 위한 것"이라고 공개했습니다. 애초에 이번 방한을 계기로 북한 접촉을 위해 판문점 등을 방문할 계획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 "협상 상대를 지정해 달라"... 대화 의지 강조
하지만 비건 부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나와의 협상 대상을 임명할 때, 그리고 그 사람이 협상 준비가 돼 있고 협상 권한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북한에 자신의 대화 상대가 없기 때문에 대화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다는 답답한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꿔 말하면 그동안 언론 등에서 일반적으로 대화 상대방으로 규정했던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 부상을 비토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입니다. 자신의 대화 의지는 여전히 강하고 대화의 문도 활짝 열려있다고 공언한 셈이기도 합니다. 이도훈 본부장 역시 "비건 대표가 북한과 대화 재개 시 균형 잡힌 합의를 이루기 위해 유연한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비건 부장관은 남북 협력도 강조했습니다. 비건 부장관은 "남북협력이 한반도에 더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며 "한국 정부가 북한과 남북협력 목표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한국 정부를 완전히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2주년 때도, 북한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북 전단을 비난할 때도, 북한이 남북 간의 모든 연락 채널을 단절시켰을 때도, 심지어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을 때에도 "남북 협력의 진전을 지지한다. 그를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지지한다"는 견해를 밝혀왔습니다. 비건 부장관이 국무부의 한반도 정책에서 기본적인 입장을 되풀이한 셈입니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서 한미 워킹그룹 등을 통해 미국이 남북관계 진전에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를 의식한 발언일 수도 있습니다. 발언 시점과 장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건 부장관의 국내 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일 청와대를 방문해 서훈 신임 국가안보실장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늘 오후 내내 외교부 인사들과 지속해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도 전해졌습니다. 내일 오후 일본으로 출국할 때까지 비건은 또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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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08 16: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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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 일정으로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오늘(8일) 오전 매우 빡빡한 공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오전 9시쯤 서울 외교부 청사를 찾은 직후부터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세영 1차관,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을 잇달아 만난 겁니다.

장관과는 '접견', 차관과는 '전략 대화', 이 본부장과는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가졌습니다. 아침 식사는 이 본부장과 점심은 조 차관과 함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5~6시간 사이에 숨 가쁘게 몰아친 회의에서 비건 부장관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 장관과 코로나19 검사 소재로 '환담'

강 장관과 대화는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을 참작하면 환담 수준의 대화가 오갔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접견 전 모두 발언 정도만 짧게 공개됐습니다. 주된 소재는 전날 비건 부장관이 받아야 했던 코로나19 검사였습니다.

비건 부장관은 "한국 정부가 안전을 위한 작업에 매우 협조적"이라며 "우리는 안전하기를 원한다"고 말을 건넸습니다. 강 장관은 "우리는 이번 방문을 안전하게 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다 했다"며 "또 다른 검사를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답했습니다.

애초 비건 부장관 일행은 코로나19 검사와 자가격리 면제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국내에 착륙한 이후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사정에 대해 서로에 대한 노고를 평가하는 말을 주고받은 것입니다.


■ 차관과의 전략대화는 '얕고 넓게?'

비건 부장관은 다음으로 약 한 시간 반가량 조세영 1차관과 '한미 외교장관 전략대화'를 가졌습니다. 조 차관도, 비건 부장관도 이 회의체를 통해서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입니다.

두 나라의 주요 양자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전략대화가 지난 2017년 10월 이후 처음 열린 것인데, 비건 부장관이 지난해 12월에 취임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동안 두 인사는 코로나19 대응 등을 주제로 10차례 정도 통화를 통해 소통해 왔다고 외교부는 설명했습니다.

전략대화에서 나눈 이야기는 소재가 다양했습니다. 대화가 끝난 뒤 약식 기자회견을 통해 조 차관이 공개한 것을 보면 한미 동맹, 코로나 대응, 한반도 문제, 지역 정세, 글로벌 이슈 등이었습니다. 한 시간여 동안 깊이 있는 논의보다는 한미 관계 현안 전반을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대화를 나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 차관은 구체적으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한미 방위비 협상을 논의 내용을 우선 공개했습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한미가 서로 수용 가능한 결과가 나오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지난 6월 1일 한미 정상 통화에서 논의된 G7 정상회담 초청 및 확대 문제에 대해서도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비건 부장관은 한반도 평화에 대해 "한국과 매우 긴밀히 협력하고 올해에는 진전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미 동맹의 굳건함도 재확인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은 순간 한국이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도 표시했습니다. 조 차관과 비건 부장관의 발언만 보면 많은 주제에 대한 추상적인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 "북한에 만나자고 한 적 없다"...직설적 표현
오전에 공개된 마지막 일정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북핵 수석대표 협의였습니다. 비건 부장관과 이 본부장은 비건 부장관이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맡은 2년여 동안 한반도 비핵화를 논의하는 협상 파트너였습니다. 같은 차관급 지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비건 부장관이 우리나라로 치면 차관에 해당하는 부장관으로 승진하면서도 수석대표 지위를 유지하게 되면서 관계가 다소 애매해졌습니다. 비건 부장관의 한국 측 파트너가 부장관 신분일 땐 조세영 차관, 특별대표 신분일 땐 이도훈 본부장으로 나뉘게 된 겁니다. 비건 부장관이 차관, 본부장과 두 차례 별도의 만남을 갖게 된 이유입니다.

협상 지위와는 별개로 이 본부장은 최근 미국을 방문해 비건 부장관을 만나고 오는 등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논의는 두 사람 사이에 꾸준히 이뤄져 왔습니다. 이 본부장의 미국 방문 당시 협의 내용은 철저히 공개되지 않아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번에는 협의가 끝난 뒤 일부 공개가 됐습니다

비건 부장관은 다소 직설적인 표현으로 말했습니다. 최근 북한이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과 권정근 미국 담당 국장의 담화를 통해 미국과 대화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것에 대해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는 북한과 만남을 요청한 적 없다. 이번 방한은 동맹을 만나기 위한 것"이라고 공개했습니다. 애초에 이번 방한을 계기로 북한 접촉을 위해 판문점 등을 방문할 계획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 "협상 상대를 지정해 달라"... 대화 의지 강조
하지만 비건 부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나와의 협상 대상을 임명할 때, 그리고 그 사람이 협상 준비가 돼 있고 협상 권한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북한에 자신의 대화 상대가 없기 때문에 대화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다는 답답한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꿔 말하면 그동안 언론 등에서 일반적으로 대화 상대방으로 규정했던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 부상을 비토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입니다. 자신의 대화 의지는 여전히 강하고 대화의 문도 활짝 열려있다고 공언한 셈이기도 합니다. 이도훈 본부장 역시 "비건 대표가 북한과 대화 재개 시 균형 잡힌 합의를 이루기 위해 유연한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비건 부장관은 남북 협력도 강조했습니다. 비건 부장관은 "남북협력이 한반도에 더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며 "한국 정부가 북한과 남북협력 목표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한국 정부를 완전히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2주년 때도, 북한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북 전단을 비난할 때도, 북한이 남북 간의 모든 연락 채널을 단절시켰을 때도, 심지어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을 때에도 "남북 협력의 진전을 지지한다. 그를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지지한다"는 견해를 밝혀왔습니다. 비건 부장관이 국무부의 한반도 정책에서 기본적인 입장을 되풀이한 셈입니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서 한미 워킹그룹 등을 통해 미국이 남북관계 진전에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를 의식한 발언일 수도 있습니다. 발언 시점과 장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건 부장관의 국내 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일 청와대를 방문해 서훈 신임 국가안보실장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늘 오후 내내 외교부 인사들과 지속해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도 전해졌습니다. 내일 오후 일본으로 출국할 때까지 비건은 또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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