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판 살인의 추억’ 보육교사 살인사건 영구 미제되나?

입력 2020.07.0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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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판 살인의 추억' 보육교사 살인사건에 대해 아시나요? 오늘(8일)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 주재로 열린 보육교사 살인사건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영구 미제사건이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보육교사 살인사건 11년째범인은 오리무중

2009년 2월 새벽 제주시 애월읍 한 농로 하수구에서 싸늘한 시신이 발견됩니다. 해당 시신은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던 27살 여성 이 모 씨였습니다.

당시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려 대대적인 수사에 돌입했습니다. 피해자 이 씨가 휴대폰이 꺼지기 직전 택시를 이용한 점을 토대로 택시기사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이를 위해 도내 택시기사 5천 명에 대한 운행기록까지 전수조사했습니다.

당시 경찰이 지목한 유력 용의자는 택시기사 박 모 씨. 하지만 경찰은 DNA 등 직접증거를 찾지 못하면서 수사가 원점으로 돌아갔고, 결국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습니다.

2009년 2월 보육교사 살인사건 피해자가 발견된 애월읍 한 농로 하수구 주변. 당시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2009년 2월 보육교사 살인사건 피해자가 발견된 애월읍 한 농로 하수구 주변. 당시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경찰 재수사 착수…'미세섬유 증거' 확보

2016년 제주지방경찰청이 보육교사 살인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했습니다. 2015년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장기 미제사건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이듬해 미제사건 수사팀을 신설한 겁니다.

경찰은 증거 확보에 열을 올렸습니다. 사망 추정시각을 특정하기 위해 피해자가 발견된 장소와 유사한 환경에서 동물 사체 실험을 벌였고, 증거물을 재감정해 피해자가 당시 입고 있던 옷(무스탕)과 비슷한 섬유를 유력 용의자였던 박 씨의 택시에서 발견하는 등 새로운 '미세섬유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또, 범행 동선으로 추정되는 곳에 있던 CCTV에 박 씨가 몰던 택시가 지나간 점 등을 추가 증거로 내세웠습니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지난 2018년 5월 경북 지역에 은거하던 박 씨를 체포했고, 검찰은 살인 혐의로 박 씨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보육교사 살인사건 재판이 열린 제주지방법원 재판장 모습.보육교사 살인사건 재판이 열린 제주지방법원 재판장 모습.

"정황증거만으로는 범인 단정 안 돼"

하지만 지난해 7월 1심 재판부는 피고인 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찰이 내세운 증거들이 '정황증거'에 불과해 박 씨를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검찰이 제시한 미세섬유 증거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의 옷에서 나온 미세섬유는 당시 대량 생산된 것으로 피고인 박 씨의 택시에서 나온 미세섬유와 피해자의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승객이 남긴 섬유 조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겁니다.

CCTV 증거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CCTV 영상의 화질이 좋지 않아 영상 속 차량이 박 씨의 택시로 단정 지을 수 없고, 검찰이 추정한 범행 동선도 중간에 여러 도로가 존재하기 때문에 범인이 반드시 같은 경로로 이동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결국,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범죄가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 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은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피고인 택시기사 박 씨. 항소심무죄 판결 직후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은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피고인 택시기사 박 씨. 항소심무죄 판결 직후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항소심도 무죄…피고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1심 판결이 나온 지 1년여 만인 오늘(8일), 박 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렸습니다. 검찰 측에서 증거의 증명력을 인정하지 않은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항소에 나섰던 건데, 결과는 1심과 같은 '무죄'. 항소심 재판부도 검찰의 정황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는 "검찰 측에서 제출한 미세섬유나 CCTV 등 정황 증거로는 범인을 단정할 수 없다며 검찰 항소를 기각"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재판부는 "검찰이 피고인을 범인으로 전제해 수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원심과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린 겁니다.

선고 직후 피고인 박 씨는 그동안의 소회를 덤덤히 밝혔습니다.

박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처음 시작이 다 억측으로부터 시작됐었고, 모든 과정에서 재판부나 언론이나 다 마찬가지로 다 저한테는 전부 다 족쇄 같은 그런 존재들이었다"며 "제 생활하는 데 있어서 너무 많은 것들을 잃었고, 모든 상황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제주지방검찰청 전경. 박 씨를 범인으로 특정할 만한 직접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제주지방검찰청 전경. 박 씨를 범인으로 특정할 만한 직접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진실은 어디에?

검찰이 1심과 2심 판결을 뒤집을 만한 결정적인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이상 대법원에서도 무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피고인 박 씨의 변호인 최영 변호사는 "검찰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데, 미세섬유만 가지고선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대법원가서 딱히 뒤집힐까 한다"고 말했습니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피고인을 범인으로 특정할 결정적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검찰. 대법원에서도 무죄 가능성이 커지면서 영구 미제사건으로 묻히는 건 아닐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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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08 18:26:57
    취재K
'제주판 살인의 추억' 보육교사 살인사건에 대해 아시나요? 오늘(8일)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 주재로 열린 보육교사 살인사건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영구 미제사건이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보육교사 살인사건 11년째범인은 오리무중

2009년 2월 새벽 제주시 애월읍 한 농로 하수구에서 싸늘한 시신이 발견됩니다. 해당 시신은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던 27살 여성 이 모 씨였습니다.

당시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려 대대적인 수사에 돌입했습니다. 피해자 이 씨가 휴대폰이 꺼지기 직전 택시를 이용한 점을 토대로 택시기사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이를 위해 도내 택시기사 5천 명에 대한 운행기록까지 전수조사했습니다.

당시 경찰이 지목한 유력 용의자는 택시기사 박 모 씨. 하지만 경찰은 DNA 등 직접증거를 찾지 못하면서 수사가 원점으로 돌아갔고, 결국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습니다.

2009년 2월 보육교사 살인사건 피해자가 발견된 애월읍 한 농로 하수구 주변. 당시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경찰 재수사 착수…'미세섬유 증거' 확보

2016년 제주지방경찰청이 보육교사 살인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했습니다. 2015년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장기 미제사건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이듬해 미제사건 수사팀을 신설한 겁니다.

경찰은 증거 확보에 열을 올렸습니다. 사망 추정시각을 특정하기 위해 피해자가 발견된 장소와 유사한 환경에서 동물 사체 실험을 벌였고, 증거물을 재감정해 피해자가 당시 입고 있던 옷(무스탕)과 비슷한 섬유를 유력 용의자였던 박 씨의 택시에서 발견하는 등 새로운 '미세섬유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또, 범행 동선으로 추정되는 곳에 있던 CCTV에 박 씨가 몰던 택시가 지나간 점 등을 추가 증거로 내세웠습니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지난 2018년 5월 경북 지역에 은거하던 박 씨를 체포했고, 검찰은 살인 혐의로 박 씨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보육교사 살인사건 재판이 열린 제주지방법원 재판장 모습.
"정황증거만으로는 범인 단정 안 돼"

하지만 지난해 7월 1심 재판부는 피고인 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찰이 내세운 증거들이 '정황증거'에 불과해 박 씨를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검찰이 제시한 미세섬유 증거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의 옷에서 나온 미세섬유는 당시 대량 생산된 것으로 피고인 박 씨의 택시에서 나온 미세섬유와 피해자의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승객이 남긴 섬유 조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겁니다.

CCTV 증거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CCTV 영상의 화질이 좋지 않아 영상 속 차량이 박 씨의 택시로 단정 지을 수 없고, 검찰이 추정한 범행 동선도 중간에 여러 도로가 존재하기 때문에 범인이 반드시 같은 경로로 이동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결국,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범죄가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 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은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피고인 택시기사 박 씨. 항소심무죄 판결 직후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항소심도 무죄…피고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1심 판결이 나온 지 1년여 만인 오늘(8일), 박 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렸습니다. 검찰 측에서 증거의 증명력을 인정하지 않은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항소에 나섰던 건데, 결과는 1심과 같은 '무죄'. 항소심 재판부도 검찰의 정황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는 "검찰 측에서 제출한 미세섬유나 CCTV 등 정황 증거로는 범인을 단정할 수 없다며 검찰 항소를 기각"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재판부는 "검찰이 피고인을 범인으로 전제해 수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원심과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린 겁니다.

선고 직후 피고인 박 씨는 그동안의 소회를 덤덤히 밝혔습니다.

박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처음 시작이 다 억측으로부터 시작됐었고, 모든 과정에서 재판부나 언론이나 다 마찬가지로 다 저한테는 전부 다 족쇄 같은 그런 존재들이었다"며 "제 생활하는 데 있어서 너무 많은 것들을 잃었고, 모든 상황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제주지방검찰청 전경. 박 씨를 범인으로 특정할 만한 직접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진실은 어디에?

검찰이 1심과 2심 판결을 뒤집을 만한 결정적인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이상 대법원에서도 무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피고인 박 씨의 변호인 최영 변호사는 "검찰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데, 미세섬유만 가지고선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대법원가서 딱히 뒤집힐까 한다"고 말했습니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피고인을 범인으로 특정할 결정적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검찰. 대법원에서도 무죄 가능성이 커지면서 영구 미제사건으로 묻히는 건 아닐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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