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못 받은 이유

입력 2020.07.0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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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자료 없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할 경우,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연이어 무죄가 선고되던 와중,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다시 심리하라며 돌려보낸 첫 사건입니다.

앞으로 구체적 자료 뒷받침 없이 "종교적 신념이 있어 병역 이행이 어렵다"는 당사자 주장만으로는 양심적 병역거부란 점을 인정받기 힘들 전망입니다.

■대법,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판결 이후 무죄 행렬에 제동

대법원(주심 대법관 이동원)은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A 씨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을 오늘(9일) 열고, 병역 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던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자세히 심리하라며 창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임을 자처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고 있지만, 피고인의 병역거부가 실제로도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으로서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의문이 남는다"며 이같이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은 1심부터 대법원을 거쳐 파기환송심까지 거쳤음에도, 대법원에서 또다시 재파기환송을 한 드문 사례입니다. 창원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다시 받게 되면 피고인은 6번 재판을 받게 되는 셈입니다.

앞서 현역병 입영대상자 A 씨는 지난 2015년 12월까지 입영하라는 통지를 받고서도 입영일부터 3일이 지난 날까지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A 씨는 입영통지를 받은 후 병무청에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다는 취지가 기재된 진술서를 제출하고 "침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하여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것으로, 입영할 수 없으며 대체복무가 생긴다면 대체복무를 하겠다"는 내용의 서한문을 작성해 병무청장에게 보냈습니다.

A 씨는 이른바 '모태신앙'으로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어머니 영향 아래 어렸을 때부터 해당 종교를 신봉해왔다고 주장했지만, 여호와의 증인에서 공적 모임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그 종교의 다른 신도들로부터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지는 의식인 '침례'를 변론종결 당시까지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A 씨는 또 재판 과정에서 △여호와의 증인에 정식으로 입문하는 의식인 침례를 아직까지 받지 않은 경위와 이유 △향후의 계획 △여호와의 증인이 A 씨를 정식 신도로 인정하고 있는지 △A 씨가 교리 일반을 숙지하고 철저하게 따르고 있는지 △A 씨의 신앙 기간과 실제 종교적 활동이 어떠하였는지 등을 보여주는 회중(교회)의 사실확인원 등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1심과 환송 전 항소심은 입영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없다며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대법원은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로 조건부 인정한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법리오해 및 심리미진을 이유로 사건을 파기환송 했고, 사건을 돌려받은 창원지방법원은 '입영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고 피고인을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파기환송심은 "피고인은 아직 정식으로 침례를 받지 아니하였으나 이른바 ‘모태신앙’으로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인 어머니의 영향 하에 어렸을 때부터 위 종교를 신봉했고,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하고, 신앙생활과 관련된 각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며 "각종 선교 활동에 참여하고 종교시설에 대한 유지보수에 자원하여 봉사하는 등 생활의 상당 부분을 종교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봤습니다.

파기환송심은 또 "피고인은 입영을 거부할 당시 다른 신도들이 병역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형 집행을 받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입영 거부에 따른 여러 가지 불이익이 있음에도, 피고인은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제1심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환송 전 항소심과 상고심 및 원심법원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건을 좀 더 자세히 판단하라며 재파기환송을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은 "항소심은 피고인이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임을 자처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라고 주장하는 변소를 충분한 심리를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심리미진 및 법리오해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 종교적 신념 판단기준 구체적 제시

대법원은 "모든 종교는 각각의 교리에 맞는 고유한 의식을 가지기 마련이고, 이러한 의식은 어느 종교를 다른 종교들과 구분하는 기준이 되거나 그 종교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 중의 하나인 것이며 신도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에 의하여 대대로 유지․계승된다는 특징을 가진다"면서 "어느 종교의 신도들이 그 고유의 의식에 참여한다는 것은 종교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이는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고 피고인이 침례를 받지 않은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대법원은 "비록 침례를 받았는지 여부가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이 그의 내면에 실재하는지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유일한 사항은 아닐지라도, 종교적인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고 있는 이 사건의 특성상 피고인이 밝히는 양심과 불가분적으로 연계된 종교적 신념이 얼마만큼 피고인에게 내면화·공고화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단초로 삼기에는 충분하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병역거부에 이르게 된 원인으로 주장하는 '양심'이 과연 그 주장에 상응하는 만큼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인지, 종교적 신념에 의한 것이라는 피고인의 병역거부가 실제로도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으로서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는 여전히 의문이 있다"면서 "원심은 위에서 본 의문점을 비롯하여 피고인이 주장하는 종교적 신념의 형성 여부 및 그 과정 등에 관하여 피고인에게 구체적인 해명자료를 제시하도록 석명을 구한 다음 이에 따라 추가로 심리·판단하지 아니한 채 판시와 같은 사정만으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침례 등 종교 특유의 입문 의식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다면 받을 계획이 있는지 △해당 종교에서 정식 신도로 인정받고 있는지 및 그 자료 △종교의 교리 일반을 숙지하고 철저하게 따르고 있는지 △신앙 기간과 실제 종교적 활동이 어떠하였는지 등을 보여주는 회중(교회)의 사실확인원 등을 확인하고 유무죄를 판단했어야 한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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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남자가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못 받은 이유
    • 입력 2020-07-09 15:44:27
    취재K
객관적 자료 없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할 경우,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연이어 무죄가 선고되던 와중,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다시 심리하라며 돌려보낸 첫 사건입니다.

앞으로 구체적 자료 뒷받침 없이 "종교적 신념이 있어 병역 이행이 어렵다"는 당사자 주장만으로는 양심적 병역거부란 점을 인정받기 힘들 전망입니다.

■대법,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판결 이후 무죄 행렬에 제동

대법원(주심 대법관 이동원)은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A 씨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을 오늘(9일) 열고, 병역 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던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자세히 심리하라며 창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임을 자처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고 있지만, 피고인의 병역거부가 실제로도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으로서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의문이 남는다"며 이같이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은 1심부터 대법원을 거쳐 파기환송심까지 거쳤음에도, 대법원에서 또다시 재파기환송을 한 드문 사례입니다. 창원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다시 받게 되면 피고인은 6번 재판을 받게 되는 셈입니다.

앞서 현역병 입영대상자 A 씨는 지난 2015년 12월까지 입영하라는 통지를 받고서도 입영일부터 3일이 지난 날까지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A 씨는 입영통지를 받은 후 병무청에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다는 취지가 기재된 진술서를 제출하고 "침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하여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것으로, 입영할 수 없으며 대체복무가 생긴다면 대체복무를 하겠다"는 내용의 서한문을 작성해 병무청장에게 보냈습니다.

A 씨는 이른바 '모태신앙'으로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어머니 영향 아래 어렸을 때부터 해당 종교를 신봉해왔다고 주장했지만, 여호와의 증인에서 공적 모임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그 종교의 다른 신도들로부터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지는 의식인 '침례'를 변론종결 당시까지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A 씨는 또 재판 과정에서 △여호와의 증인에 정식으로 입문하는 의식인 침례를 아직까지 받지 않은 경위와 이유 △향후의 계획 △여호와의 증인이 A 씨를 정식 신도로 인정하고 있는지 △A 씨가 교리 일반을 숙지하고 철저하게 따르고 있는지 △A 씨의 신앙 기간과 실제 종교적 활동이 어떠하였는지 등을 보여주는 회중(교회)의 사실확인원 등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1심과 환송 전 항소심은 입영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없다며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대법원은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로 조건부 인정한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법리오해 및 심리미진을 이유로 사건을 파기환송 했고, 사건을 돌려받은 창원지방법원은 '입영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고 피고인을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파기환송심은 "피고인은 아직 정식으로 침례를 받지 아니하였으나 이른바 ‘모태신앙’으로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인 어머니의 영향 하에 어렸을 때부터 위 종교를 신봉했고,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하고, 신앙생활과 관련된 각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며 "각종 선교 활동에 참여하고 종교시설에 대한 유지보수에 자원하여 봉사하는 등 생활의 상당 부분을 종교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봤습니다.

파기환송심은 또 "피고인은 입영을 거부할 당시 다른 신도들이 병역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형 집행을 받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입영 거부에 따른 여러 가지 불이익이 있음에도, 피고인은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제1심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환송 전 항소심과 상고심 및 원심법원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건을 좀 더 자세히 판단하라며 재파기환송을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은 "항소심은 피고인이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임을 자처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라고 주장하는 변소를 충분한 심리를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심리미진 및 법리오해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 종교적 신념 판단기준 구체적 제시

대법원은 "모든 종교는 각각의 교리에 맞는 고유한 의식을 가지기 마련이고, 이러한 의식은 어느 종교를 다른 종교들과 구분하는 기준이 되거나 그 종교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 중의 하나인 것이며 신도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에 의하여 대대로 유지․계승된다는 특징을 가진다"면서 "어느 종교의 신도들이 그 고유의 의식에 참여한다는 것은 종교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이는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고 피고인이 침례를 받지 않은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대법원은 "비록 침례를 받았는지 여부가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이 그의 내면에 실재하는지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유일한 사항은 아닐지라도, 종교적인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고 있는 이 사건의 특성상 피고인이 밝히는 양심과 불가분적으로 연계된 종교적 신념이 얼마만큼 피고인에게 내면화·공고화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단초로 삼기에는 충분하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병역거부에 이르게 된 원인으로 주장하는 '양심'이 과연 그 주장에 상응하는 만큼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인지, 종교적 신념에 의한 것이라는 피고인의 병역거부가 실제로도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으로서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는 여전히 의문이 있다"면서 "원심은 위에서 본 의문점을 비롯하여 피고인이 주장하는 종교적 신념의 형성 여부 및 그 과정 등에 관하여 피고인에게 구체적인 해명자료를 제시하도록 석명을 구한 다음 이에 따라 추가로 심리·판단하지 아니한 채 판시와 같은 사정만으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침례 등 종교 특유의 입문 의식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다면 받을 계획이 있는지 △해당 종교에서 정식 신도로 인정받고 있는지 및 그 자료 △종교의 교리 일반을 숙지하고 철저하게 따르고 있는지 △신앙 기간과 실제 종교적 활동이 어떠하였는지 등을 보여주는 회중(교회)의 사실확인원 등을 확인하고 유무죄를 판단했어야 한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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