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운동가에서 최초 3선 서울시장까지…9년간 3선의 공과는?

입력 2020.07.10 (21:12) 수정 2020.07.10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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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시민운동가,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 시장은 최초의 3선 서울시장이었습니다.

서민의 삶의 질에 중점을 둔 정책 덕이었다는 평가지만 아쉬운 부분도 남습니다.

최장수 시장의 3천백80일, 김용준 기자가 되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1980년 6개월 만에 검사직을 그만둔 박원순 시장은 줄곧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1995년부터는 시민단체로 활동 무대를 넓히면서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했습니다.

사법개혁과 소액주주 운동을 펼쳤고, 16대 총선을 앞둔 지난 2000년에는 부패 정치인 낙천·낙선운동을 선도했습니다.

이후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해 기부 문화를 확산하는 등 사회적 영향력을 키운 박 시장은 지난 2011년, 정계 첫발을 화려하게 내디뎠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양보를 받아 무소속 시민후보로 당선됐습니다.

[박원순/지난 2011년 당선 직후 : "서울, 사람이 행복하다는 말은 시정의 좌표가 될 것입니다. 사람과 복지 중심의 시정이 구현될 것입니다."]

오 전 시장의 남은 임기를 넘겨받은 박 시장은 시립대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챙겼고,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을 서울시에 전진 배치해 시정의 우선순위를 민생으로 바꿨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14년엔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따돌리고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보여주기식 대규모 토목 사업보단 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을 선호했던 박 시장은 서울역 고가를 도심 공원으로 바꾸고, 오래된 공구거리를 시민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정책 등을 잇따라 내놨습니다.

[박원순/지난 2014년/뉴욕하이라인파크 출장 : "산업유산을 활용해서 현대인들에게 맞게 하나의 보행공간으로 확보한다는 것, 또 녹색공간으로 전환시킨다는 것..."]

서울시장 3선에 성공한 박 시장은 다시 도시 재생에 집중했습니다.

또 공공자전거 '따릉이'나 청년수당 등의 정책은 전국으로 확대되는 효과도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안전문(스크린도어)을 고치다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 군 사고는 대표적인 과오였고, 2018년에 발표한 '여의도·용산 개발 마스터플랜'은 주변 집값이 폭등하자, 정책을 한 달 만에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최근까지 공공 임대주택 확대와 그린벨트 해제 반대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친 박 시장은 2년 남은 임기를 못 채우고 직을 마감했습니다.

KBS 뉴스 김용준입니다.

영상편집:안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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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 운동가에서 최초 3선 서울시장까지…9년간 3선의 공과는?
    • 입력 2020-07-10 21:12:40
    • 수정2020-07-10 22: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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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시민운동가,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 시장은 최초의 3선 서울시장이었습니다.

서민의 삶의 질에 중점을 둔 정책 덕이었다는 평가지만 아쉬운 부분도 남습니다.

최장수 시장의 3천백80일, 김용준 기자가 되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1980년 6개월 만에 검사직을 그만둔 박원순 시장은 줄곧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1995년부터는 시민단체로 활동 무대를 넓히면서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했습니다.

사법개혁과 소액주주 운동을 펼쳤고, 16대 총선을 앞둔 지난 2000년에는 부패 정치인 낙천·낙선운동을 선도했습니다.

이후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해 기부 문화를 확산하는 등 사회적 영향력을 키운 박 시장은 지난 2011년, 정계 첫발을 화려하게 내디뎠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양보를 받아 무소속 시민후보로 당선됐습니다.

[박원순/지난 2011년 당선 직후 : "서울, 사람이 행복하다는 말은 시정의 좌표가 될 것입니다. 사람과 복지 중심의 시정이 구현될 것입니다."]

오 전 시장의 남은 임기를 넘겨받은 박 시장은 시립대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챙겼고,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을 서울시에 전진 배치해 시정의 우선순위를 민생으로 바꿨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14년엔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따돌리고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보여주기식 대규모 토목 사업보단 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을 선호했던 박 시장은 서울역 고가를 도심 공원으로 바꾸고, 오래된 공구거리를 시민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정책 등을 잇따라 내놨습니다.

[박원순/지난 2014년/뉴욕하이라인파크 출장 : "산업유산을 활용해서 현대인들에게 맞게 하나의 보행공간으로 확보한다는 것, 또 녹색공간으로 전환시킨다는 것..."]

서울시장 3선에 성공한 박 시장은 다시 도시 재생에 집중했습니다.

또 공공자전거 '따릉이'나 청년수당 등의 정책은 전국으로 확대되는 효과도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안전문(스크린도어)을 고치다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 군 사고는 대표적인 과오였고, 2018년에 발표한 '여의도·용산 개발 마스터플랜'은 주변 집값이 폭등하자, 정책을 한 달 만에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최근까지 공공 임대주택 확대와 그린벨트 해제 반대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친 박 시장은 2년 남은 임기를 못 채우고 직을 마감했습니다.

KBS 뉴스 김용준입니다.

영상편집:안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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