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국방부 땅 판 봉이김선달…‘사단장 도장’은 어디서?

입력 2020.07.11 (09:07) 수정 2020.07.1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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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군 소유의 국유재산을 불하받았다며 이를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해 돈을 편취한 예비역 군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군인이 이런 제안을 한 건 군 영내 보병사단 복지관에서였고, 증빙으로 내민 국유재산 매수신청서에 해당 사단장의 '진짜 도장'이 찍혀 있었다면, 속지 않을 자신이 있으신가요.

민간인이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책임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외관상 공무원의 직무집행이 아니냐는 주장인데, 국가는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요. 국가배상책임이 쟁점이 된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군인만 살 수 있는 국유재산 있다…돈 내면 공유해준다"

앞서 군인 A 씨는 육군 부사관으로 군에 임관해 2009년부터 육군 보병사단 보충대에서 행정보급관(원사) 등으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A 씨는 2010년경부터 주식 투자를 하다 손실을 입었고, 2013년쯤 제2금융권을 포함한 채무가 합계 약 1억 원 상당에 이르게 됐습니다. A 씨는 주식투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민간인을 상대로 국방부가 관리하는 국유재산을 매수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사기를 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A 씨는 2013년 말 지방 소재 육군 보병사단 복지관에서 피해자 B 씨에게 "현역 군인만 공시지가의 60% 금액에 낙찰받을 수 있는 국유재산으로 국방부 내부물건이 있다. 다만, 낙찰을 받은 후 소유권은 국방부에 유예해둔 채로 3년이 지나면 시세대로 환매가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이어 "내가 이미 전북 군산시 대야면 보덕리 OOO 등 10필지 7만 5,991㎡에 대해 매수신청을 하고 3억 6,000만 원을 국가에 예치해두었는데 투자자 중 한 명이 선교 때문에 외국에 나가서 투자금을 돌려주어야 한다. 예치금의 1/3인 1억 2,000만 원을 주면 위 토지를 공유하도록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그 증거로 B 씨에게 자신이 위 토지 매수를 위해 국가에 3억 6,000만 원을 예치해두었다는 내용의 국유재산 매수신청서를 보여주었습니다. 해당 신청서에는 보병사단의 사단장 관인이 찍혀 있었으며, 이는 진짜 도장으로 찍힌 것이었습니다.

A 씨는 귀가 솔깃해진 B 씨와 법률사무소를 찾아 'A 씨와 B 씨가 공동으로 국유재산을 매수한다'는 내용에 대하여 인증서까지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현역군인만 매수 신청이 가능한 국유재산, 그런 건 없었습니다. 나아가 A 씨는 토지에 매수신청을 해두거나 예치금을 납부한 사실이 없었으며, B 씨로부터 받은 금원을 주식 투자에 사용할 작정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위 토지의 지분을 넘겨줄 의사나 능력도 없었습니다.

B 씨에게 보여준 매수신청서 역시 거짓이었습니다. 이 매수신청서는 A 씨가 자신의 군인 신분을 이용해 보병사단 보충대 사무실에 들어가 B 씨를 속일 목적으로 그곳 컴퓨터를 이용해 위조한 국유재산매수신청서였습니다.

해당 사단 보안업무 예규(보안예규)에 의하면, 20년 이상 근무한 예비역 간부는 전역증 확인 후 표찰을 교부받고 일반구역에 한해 안내 없이 출입할 수 있지만, 군사보호구역(통제제한구역) 출입 시에는 안내자에 의한 인솔을 받아야 합니다. 아울러 사단장 관인은 이중 철제함에 관리하고 관인날인 후에는 기록부에 등재해 사용처를 기재해야 했지만, 이런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A 씨는 양식 중 재산의 표시란에 '군산 대야 보덕리 OOO 등 10필지 7만 5,991㎡' 예치금란에 '일억 이천만 원(120,000,000)', 접수확인란에 '사령부 6급 대우 OOO', 접수일 '13. 2. 6(수)'라고 기재한 후, 이를 3장 출력해 각 국유재산매수신청서의 제OO보병사단장 이름 옆에 사단장의 관인을 날인하는 식으로 공문서를 정교하게 위조했습니다.

A 씨는 지난 2015년 군을 전역한 다음에도 자신의 예비역 신분을 이용해 해당 보병사단 보충대 사무실을 출입하며 '입찰보증금 추가납입 통지서' 등을 위조했습니다.

통지서엔 "재매각율은 48% 진행되고 있으며 공가국유재산 발생률 증가와 지자체 민원소요가, 활용가능부지를 고려 기타 물건은 가급적 신속히 처리할 방침임, 2017년 7~8월까지 모든 물건 매각, 물건별 계약실시(계약은 매수신청금으로 하고 등기이전은 3년 이내 완료), 결정된 신청인은 계약체결 후 양도 가능"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고, 역시 보병사단장의 관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B 씨는 위조된 공문서들에 속고 말았고, 2013년 12월부터 2016년까지 A 씨 명의의 농협 계좌로 토지 매입대금 등 명목으로 총 13회에 걸쳐 4억 450만 원을 보냈습니다.

A 씨는 결국 사기, 공문서위조 및 동 행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2심은 A 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피해자에게 3,000만 원을 지급하고 나머지 금원은 추후 변제하는 내용으로 합의한 점, 동종 범행으로 처벌받은 전력은 없는 점 등을 이유로 형을 징역 2년 6개월로 감형했고, 대법원은 올해 1월 상고를 기각하고 사건을 확정했습니다.

■사기 피해자 "군 행위로 믿었다…국가가 배상해야" 소송

B 씨는 국가배상책임 등을 주장하며 정부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습니다.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민법 제756조는 '타인을 사용하여 어느 사무에 종사하게 한 자는 피용자가 그 사무집행에 관하여 제삼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B 씨는 "육군 공무원인 A 씨는 관련 형사판결에서 인정된 바와 같이 2013년 12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사단장 명의 공문서를 위조해 제시하면서 '현역 군인만이 매수할 수 있는 국유재산을 취득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기망해 4억여 원을 편취했다"면서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A 씨는 퇴직 군인이지만 사기를 치는 과정에서 사단장 직인이 찍힌 국유재산매수신청서를 제시했을 뿐 아니라 이러한 기망행위가 사단 영내 복지관에서 이뤄졌으므로, 외관상 공무원의 직무집행행위로 보여질 수 있다고 보아야 하는 이상 정부가 국가배상법에 따라 손해를 배상해야 한단 주장이었습니다.

국가배상책임 혹은 A 씨를 부린 국가에게 '사용자책임'이 있단 겁니다.

B 씨는 이 외에도 "A 씨는 사단장 관인을 무단으로 꺼내 날인하고, 전역 이후에도 사단 영내에 출입해 관인을 날인해 공문서를 위조한 것인데, 이런 행위는 사단 출입 및 인장 관리 담당자가 현역 군인 외의 무단 출입을 금지하고, 관인을 이중 철제함에 관리하며, 날인 후 기록부에 등재해 사용처를 기재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한 가운데 발생했다"며 "이런 인장관리담당자의 행위는 공무원 직무집행에 해당할 뿐 아니라 위법하다"며 인장관리 군인의 과실에 의한 국가배상책임 내지 사용자책임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법원 "A 씨 행위는 외관상 공무원 직무집행 아냐…국가 책임 없다"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는 직접 공무원의 집행행위이거나 그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행위를 포함하고, 이는 행위 외관을 객관적으로 관찰해 공무원 직무행위로 보여질 땐 비록 그것이 실질적으로 직무행위가 아니거나 또는 행위자로서는 주관적으로 공무집행의 의사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 행위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또 민법 제756조에 규정된 사용자책임의 요건인 '사무집행에 관하여'란 뜻은 피용자의 불법행위가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의 사업활동, 사무집행행위 또는 그와 관련된 것이라고 보일 때는 행위자의 주관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이를 사무집행에 관해 한 행위로 본다는 뜻입니다.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의 사무집행에 관련된 것인지는 피용자의 본래 직무와 불법행위와의 관련 정도, 사용자에게 손해 발생에 대한 위험창출과 방지조치 결여 책임이 어느 정도 있는지가 고려됩니다.

서울중앙지법 제15민사부(부장판사 민성철)는 이 같은 법리를 근거로 B 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법원은 "A 씨의 행위가 공무원의 직무집행행위나,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인 정부의 사무집행행위와 관련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A 씨의 행위에 관해 국가배상책임을 묻기 위해선 행위 외관이 공무원의 '직무행위'로 보여져야 하고, 민법상 사용자책임을 묻기 위해선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의 사무 집행'에 관련된 것이어야 하므로, 어느 책임에 있어서나 그 행위는 외관상 공무원 개인이 아니라 정부에 귀속될 수 있는 행위임이 인정돼야 한다는 겁니다.

법원은 "A씨가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행위와 관련해 원고에게 한 말의 취지는 B 씨가 직접 국유재산을 낙찰 또는 매수하도록 해주겠단 게 아니라, A 씨 자신이 정부로부터 토지를 매수했음을 전제로 일단 자신의 명의로 위 토지를 취득했다가 전매제한기간이 경과하면 이를 원고가 취득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즉 A 씨의 행위는 '공무원으로서 국가의 국유재산 불하 등에 관한 직무를 집행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장차 취득할 부동산을 전매하기로 하는 내용의 사인 간의 거래로 봄이 타당하고, 따라서 A 씨의 사적인 부동산 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가 그 외관상 공무원의 직무집행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법원은 또 "범행 과정에서 A 씨가 사단장 명의 공문서를 위조해 B 씨에게 행사했음은 인정되나 문서 내용은 사단장이 A 씨가 국유재산에 대해 매수신청을 했음을 확인한다는 것이므로, 이는 A 씨가 향후 국유재산을 취득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음을 확인하여 주는 것으로, 향후 A 씨와 B 씨의 계약관계에서 A 씨의 이행 가능성을 확인하여 주는 의미가 있다고 볼 뿐 그 문서가 제시됐단 사정만으로 위와 같은 A 씨의 행위가 국가의 직무집행행위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이어 A 씨는 보충대대에서 부관병과 소속 행정보급관으로 근무하면서 신병관리, 교육, 병사 복지 등을 담당해 국유재산 매각 내지 사단장 인장 관리 등과 전혀 관련 없는 업무에 종사했고, 돈을 B 씨로부터 송금받은 계좌는 대한민국 명의 계좌가 아닌 A 씨의 개인 계좌란 점에서도 A 씨의 행위를 대한민국의 사무집행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봤습니다.

A 씨는 육군본부에 근무하는 매각업무 담당자들에게 접대를 한다거나 명절 인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B 씨로부터 수천만 원의 돈을 받기도 했는데, 다른 공무원에게 접대나 청탁을 한단 명목으로 돈을 건네받은 행위를 외관상 피고 대한민국의 직무행위라고 볼 여지도 없단 겁니다.

법원은 아울러 "A 씨가 사단 영내서 B 씨에게 기망행위를 했단 점 역시 외형상 공무원의 직무행위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주장하나, 관련 형사판결을 보면 A 씨가 복지관에서 B 씨를 만난 것 외에는 B 씨가 사단 내 출입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고, 복지관은 통상 군인 가족 등 민간인들도 출입할 수 있도록 부대 검문소 영외에 위치하는 점을 고려하면, 그런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봤습니다.

■법원 "사단장 도장 관리자 잘못 있지만, B 씨 손해와 상당 인과관계 없어"

핵심은 사단 인장관리자가 사단장 관인을 소홀히 관리한 잘못이 있는데, 이것이 B 씨의 손해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한 판단이었습니다.

공무원이 법령에서 부과된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것을 계기로 제3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그 제3자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이 발생하기 위해선 공무원의 직무상 의무 위반행위와 제3자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이때 대법원은 상당인과관계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공무원에게 직무상 의무를 부과한 법령의 보호 목적이 사회 구성원 개인의 이익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공공일반의 이익이나 행정기관 내부의 질서를 규율하기 위한 것이라면, 가사 공무원이 그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것을 계기로 제3자가 손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공무원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행위와 제3자가 입은 손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법원은 위와 같은 법리를 근거로 "공무원 의무 위반의 근거로 주장하는 사단의 출입 및 인장관리에 관한 규정의 보호목적은 사회 구성원 개인의 이익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공공일반의 이익이나 행정기관 내부 질서를 규율하기 위한 것"이라며 사단 군인의 도장 관리 소홀과 B 씨의 손해 사이엔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단 보안업무 예규(보안예규)가 20년 이상 근무한 예비역 간부는 전역증 확인 후 표찰을 교부받고 일반구역에 한해 안내 없이 출입할 수 있고, 군사보호구역(통제제한구역) 출입 시에는 안내자에 의한 인솔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사단 행정 및 상훈 업무 예규에 따르면 사단장 관인은 이중 철제함에 관리하고 관인날인 후에는 기록부에 등재해 사용처를 기재해야 합니다.

보안예규, 상훈예규를 둔 취지는 군부대 내 보안을 유지하고 군대에서 사용되는 인장의 적절한 관리를 통해 사단 근무 군인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서, 공공일반의 이익이나 행정기관 내부의 질서를 규율하기 위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고, 기타 사회 구성원 개인의 이익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법원은 "A 씨가 위조한 국유재산 매수신청서를 보면 사단장 관인이 찍혀 있는데, 국유재산 매각과 관련해서는 입찰신청자가 온비드(전자자산처분시스템)에 직접 신청해 낙찰받아야 하고 개별적으로 사단 등 부대에 국유재산 매각을 신청하는 절차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국유재산법 시행규칙상 국유재산 매수신청서 양식에도 매수신청을 확인하는 부분은 없는 바, 해당 사단의 상훈예규는 이와 같은 서류에 관인이 날인될 것을 예정하지 않고 제정되었고, 서류를 제시받는 상대의 구체적 개별적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아울러 "B 씨가 주장하는 사단 소속 군인의 부대 출입 및 사단장의 인장관리에 관한 업무는 그 자체로 '공행정작용'으로서, 사경제주체로서 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그 소속 공무원의 고의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에 관해선 국가배상법이 적용되므로, 민법상 사용자책임 역시 문제될 여지가 없다"고도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이에 따라 B 씨의 국가배상청구 등을 모두 기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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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남] 국방부 땅 판 봉이김선달…‘사단장 도장’은 어디서?
    • 입력 2020-07-11 09:07:39
    • 수정2020-07-11 09:32:02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군 소유의 국유재산을 불하받았다며 이를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해 돈을 편취한 예비역 군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군인이 이런 제안을 한 건 군 영내 보병사단 복지관에서였고, 증빙으로 내민 국유재산 매수신청서에 해당 사단장의 '진짜 도장'이 찍혀 있었다면, 속지 않을 자신이 있으신가요.

민간인이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책임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외관상 공무원의 직무집행이 아니냐는 주장인데, 국가는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요. 국가배상책임이 쟁점이 된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군인만 살 수 있는 국유재산 있다…돈 내면 공유해준다"

앞서 군인 A 씨는 육군 부사관으로 군에 임관해 2009년부터 육군 보병사단 보충대에서 행정보급관(원사) 등으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A 씨는 2010년경부터 주식 투자를 하다 손실을 입었고, 2013년쯤 제2금융권을 포함한 채무가 합계 약 1억 원 상당에 이르게 됐습니다. A 씨는 주식투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민간인을 상대로 국방부가 관리하는 국유재산을 매수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사기를 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A 씨는 2013년 말 지방 소재 육군 보병사단 복지관에서 피해자 B 씨에게 "현역 군인만 공시지가의 60% 금액에 낙찰받을 수 있는 국유재산으로 국방부 내부물건이 있다. 다만, 낙찰을 받은 후 소유권은 국방부에 유예해둔 채로 3년이 지나면 시세대로 환매가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이어 "내가 이미 전북 군산시 대야면 보덕리 OOO 등 10필지 7만 5,991㎡에 대해 매수신청을 하고 3억 6,000만 원을 국가에 예치해두었는데 투자자 중 한 명이 선교 때문에 외국에 나가서 투자금을 돌려주어야 한다. 예치금의 1/3인 1억 2,000만 원을 주면 위 토지를 공유하도록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그 증거로 B 씨에게 자신이 위 토지 매수를 위해 국가에 3억 6,000만 원을 예치해두었다는 내용의 국유재산 매수신청서를 보여주었습니다. 해당 신청서에는 보병사단의 사단장 관인이 찍혀 있었으며, 이는 진짜 도장으로 찍힌 것이었습니다.

A 씨는 귀가 솔깃해진 B 씨와 법률사무소를 찾아 'A 씨와 B 씨가 공동으로 국유재산을 매수한다'는 내용에 대하여 인증서까지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현역군인만 매수 신청이 가능한 국유재산, 그런 건 없었습니다. 나아가 A 씨는 토지에 매수신청을 해두거나 예치금을 납부한 사실이 없었으며, B 씨로부터 받은 금원을 주식 투자에 사용할 작정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위 토지의 지분을 넘겨줄 의사나 능력도 없었습니다.

B 씨에게 보여준 매수신청서 역시 거짓이었습니다. 이 매수신청서는 A 씨가 자신의 군인 신분을 이용해 보병사단 보충대 사무실에 들어가 B 씨를 속일 목적으로 그곳 컴퓨터를 이용해 위조한 국유재산매수신청서였습니다.

해당 사단 보안업무 예규(보안예규)에 의하면, 20년 이상 근무한 예비역 간부는 전역증 확인 후 표찰을 교부받고 일반구역에 한해 안내 없이 출입할 수 있지만, 군사보호구역(통제제한구역) 출입 시에는 안내자에 의한 인솔을 받아야 합니다. 아울러 사단장 관인은 이중 철제함에 관리하고 관인날인 후에는 기록부에 등재해 사용처를 기재해야 했지만, 이런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A 씨는 양식 중 재산의 표시란에 '군산 대야 보덕리 OOO 등 10필지 7만 5,991㎡' 예치금란에 '일억 이천만 원(120,000,000)', 접수확인란에 '사령부 6급 대우 OOO', 접수일 '13. 2. 6(수)'라고 기재한 후, 이를 3장 출력해 각 국유재산매수신청서의 제OO보병사단장 이름 옆에 사단장의 관인을 날인하는 식으로 공문서를 정교하게 위조했습니다.

A 씨는 지난 2015년 군을 전역한 다음에도 자신의 예비역 신분을 이용해 해당 보병사단 보충대 사무실을 출입하며 '입찰보증금 추가납입 통지서' 등을 위조했습니다.

통지서엔 "재매각율은 48% 진행되고 있으며 공가국유재산 발생률 증가와 지자체 민원소요가, 활용가능부지를 고려 기타 물건은 가급적 신속히 처리할 방침임, 2017년 7~8월까지 모든 물건 매각, 물건별 계약실시(계약은 매수신청금으로 하고 등기이전은 3년 이내 완료), 결정된 신청인은 계약체결 후 양도 가능"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고, 역시 보병사단장의 관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B 씨는 위조된 공문서들에 속고 말았고, 2013년 12월부터 2016년까지 A 씨 명의의 농협 계좌로 토지 매입대금 등 명목으로 총 13회에 걸쳐 4억 450만 원을 보냈습니다.

A 씨는 결국 사기, 공문서위조 및 동 행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2심은 A 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피해자에게 3,000만 원을 지급하고 나머지 금원은 추후 변제하는 내용으로 합의한 점, 동종 범행으로 처벌받은 전력은 없는 점 등을 이유로 형을 징역 2년 6개월로 감형했고, 대법원은 올해 1월 상고를 기각하고 사건을 확정했습니다.

■사기 피해자 "군 행위로 믿었다…국가가 배상해야" 소송

B 씨는 국가배상책임 등을 주장하며 정부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습니다.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민법 제756조는 '타인을 사용하여 어느 사무에 종사하게 한 자는 피용자가 그 사무집행에 관하여 제삼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B 씨는 "육군 공무원인 A 씨는 관련 형사판결에서 인정된 바와 같이 2013년 12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사단장 명의 공문서를 위조해 제시하면서 '현역 군인만이 매수할 수 있는 국유재산을 취득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기망해 4억여 원을 편취했다"면서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A 씨는 퇴직 군인이지만 사기를 치는 과정에서 사단장 직인이 찍힌 국유재산매수신청서를 제시했을 뿐 아니라 이러한 기망행위가 사단 영내 복지관에서 이뤄졌으므로, 외관상 공무원의 직무집행행위로 보여질 수 있다고 보아야 하는 이상 정부가 국가배상법에 따라 손해를 배상해야 한단 주장이었습니다.

국가배상책임 혹은 A 씨를 부린 국가에게 '사용자책임'이 있단 겁니다.

B 씨는 이 외에도 "A 씨는 사단장 관인을 무단으로 꺼내 날인하고, 전역 이후에도 사단 영내에 출입해 관인을 날인해 공문서를 위조한 것인데, 이런 행위는 사단 출입 및 인장 관리 담당자가 현역 군인 외의 무단 출입을 금지하고, 관인을 이중 철제함에 관리하며, 날인 후 기록부에 등재해 사용처를 기재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한 가운데 발생했다"며 "이런 인장관리담당자의 행위는 공무원 직무집행에 해당할 뿐 아니라 위법하다"며 인장관리 군인의 과실에 의한 국가배상책임 내지 사용자책임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법원 "A 씨 행위는 외관상 공무원 직무집행 아냐…국가 책임 없다"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는 직접 공무원의 집행행위이거나 그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행위를 포함하고, 이는 행위 외관을 객관적으로 관찰해 공무원 직무행위로 보여질 땐 비록 그것이 실질적으로 직무행위가 아니거나 또는 행위자로서는 주관적으로 공무집행의 의사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 행위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또 민법 제756조에 규정된 사용자책임의 요건인 '사무집행에 관하여'란 뜻은 피용자의 불법행위가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의 사업활동, 사무집행행위 또는 그와 관련된 것이라고 보일 때는 행위자의 주관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이를 사무집행에 관해 한 행위로 본다는 뜻입니다.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의 사무집행에 관련된 것인지는 피용자의 본래 직무와 불법행위와의 관련 정도, 사용자에게 손해 발생에 대한 위험창출과 방지조치 결여 책임이 어느 정도 있는지가 고려됩니다.

서울중앙지법 제15민사부(부장판사 민성철)는 이 같은 법리를 근거로 B 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법원은 "A 씨의 행위가 공무원의 직무집행행위나,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인 정부의 사무집행행위와 관련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A 씨의 행위에 관해 국가배상책임을 묻기 위해선 행위 외관이 공무원의 '직무행위'로 보여져야 하고, 민법상 사용자책임을 묻기 위해선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의 사무 집행'에 관련된 것이어야 하므로, 어느 책임에 있어서나 그 행위는 외관상 공무원 개인이 아니라 정부에 귀속될 수 있는 행위임이 인정돼야 한다는 겁니다.

법원은 "A씨가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행위와 관련해 원고에게 한 말의 취지는 B 씨가 직접 국유재산을 낙찰 또는 매수하도록 해주겠단 게 아니라, A 씨 자신이 정부로부터 토지를 매수했음을 전제로 일단 자신의 명의로 위 토지를 취득했다가 전매제한기간이 경과하면 이를 원고가 취득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즉 A 씨의 행위는 '공무원으로서 국가의 국유재산 불하 등에 관한 직무를 집행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장차 취득할 부동산을 전매하기로 하는 내용의 사인 간의 거래로 봄이 타당하고, 따라서 A 씨의 사적인 부동산 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가 그 외관상 공무원의 직무집행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법원은 또 "범행 과정에서 A 씨가 사단장 명의 공문서를 위조해 B 씨에게 행사했음은 인정되나 문서 내용은 사단장이 A 씨가 국유재산에 대해 매수신청을 했음을 확인한다는 것이므로, 이는 A 씨가 향후 국유재산을 취득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음을 확인하여 주는 것으로, 향후 A 씨와 B 씨의 계약관계에서 A 씨의 이행 가능성을 확인하여 주는 의미가 있다고 볼 뿐 그 문서가 제시됐단 사정만으로 위와 같은 A 씨의 행위가 국가의 직무집행행위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이어 A 씨는 보충대대에서 부관병과 소속 행정보급관으로 근무하면서 신병관리, 교육, 병사 복지 등을 담당해 국유재산 매각 내지 사단장 인장 관리 등과 전혀 관련 없는 업무에 종사했고, 돈을 B 씨로부터 송금받은 계좌는 대한민국 명의 계좌가 아닌 A 씨의 개인 계좌란 점에서도 A 씨의 행위를 대한민국의 사무집행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봤습니다.

A 씨는 육군본부에 근무하는 매각업무 담당자들에게 접대를 한다거나 명절 인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B 씨로부터 수천만 원의 돈을 받기도 했는데, 다른 공무원에게 접대나 청탁을 한단 명목으로 돈을 건네받은 행위를 외관상 피고 대한민국의 직무행위라고 볼 여지도 없단 겁니다.

법원은 아울러 "A 씨가 사단 영내서 B 씨에게 기망행위를 했단 점 역시 외형상 공무원의 직무행위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주장하나, 관련 형사판결을 보면 A 씨가 복지관에서 B 씨를 만난 것 외에는 B 씨가 사단 내 출입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고, 복지관은 통상 군인 가족 등 민간인들도 출입할 수 있도록 부대 검문소 영외에 위치하는 점을 고려하면, 그런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봤습니다.

■법원 "사단장 도장 관리자 잘못 있지만, B 씨 손해와 상당 인과관계 없어"

핵심은 사단 인장관리자가 사단장 관인을 소홀히 관리한 잘못이 있는데, 이것이 B 씨의 손해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한 판단이었습니다.

공무원이 법령에서 부과된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것을 계기로 제3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그 제3자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이 발생하기 위해선 공무원의 직무상 의무 위반행위와 제3자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이때 대법원은 상당인과관계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공무원에게 직무상 의무를 부과한 법령의 보호 목적이 사회 구성원 개인의 이익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공공일반의 이익이나 행정기관 내부의 질서를 규율하기 위한 것이라면, 가사 공무원이 그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것을 계기로 제3자가 손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공무원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행위와 제3자가 입은 손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법원은 위와 같은 법리를 근거로 "공무원 의무 위반의 근거로 주장하는 사단의 출입 및 인장관리에 관한 규정의 보호목적은 사회 구성원 개인의 이익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공공일반의 이익이나 행정기관 내부 질서를 규율하기 위한 것"이라며 사단 군인의 도장 관리 소홀과 B 씨의 손해 사이엔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단 보안업무 예규(보안예규)가 20년 이상 근무한 예비역 간부는 전역증 확인 후 표찰을 교부받고 일반구역에 한해 안내 없이 출입할 수 있고, 군사보호구역(통제제한구역) 출입 시에는 안내자에 의한 인솔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사단 행정 및 상훈 업무 예규에 따르면 사단장 관인은 이중 철제함에 관리하고 관인날인 후에는 기록부에 등재해 사용처를 기재해야 합니다.

보안예규, 상훈예규를 둔 취지는 군부대 내 보안을 유지하고 군대에서 사용되는 인장의 적절한 관리를 통해 사단 근무 군인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서, 공공일반의 이익이나 행정기관 내부의 질서를 규율하기 위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고, 기타 사회 구성원 개인의 이익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법원은 "A 씨가 위조한 국유재산 매수신청서를 보면 사단장 관인이 찍혀 있는데, 국유재산 매각과 관련해서는 입찰신청자가 온비드(전자자산처분시스템)에 직접 신청해 낙찰받아야 하고 개별적으로 사단 등 부대에 국유재산 매각을 신청하는 절차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국유재산법 시행규칙상 국유재산 매수신청서 양식에도 매수신청을 확인하는 부분은 없는 바, 해당 사단의 상훈예규는 이와 같은 서류에 관인이 날인될 것을 예정하지 않고 제정되었고, 서류를 제시받는 상대의 구체적 개별적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아울러 "B 씨가 주장하는 사단 소속 군인의 부대 출입 및 사단장의 인장관리에 관한 업무는 그 자체로 '공행정작용'으로서, 사경제주체로서 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그 소속 공무원의 고의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에 관해선 국가배상법이 적용되므로, 민법상 사용자책임 역시 문제될 여지가 없다"고도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이에 따라 B 씨의 국가배상청구 등을 모두 기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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