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카드로 하루 71만 원 24번 결제…쇼핑몰·본사는 ‘모르쇠’

입력 2020.07.1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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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서 직원 카드 빌려 수억 원 허위 결제..."결제 취소 안 해줘"

서울 성동구의 한 오프라인 쇼핑몰. 이곳에 입점한 의류매장 직원 A 씨는 자기가 일하는 매장에서 본인 카드로 3개월간 결제와 취소를 반복했습니다. 결제액만 3천만 원에 이릅니다. 많은 날은 한 번에 71만 원씩 24번, 모두 1,700만 원을 하루에 결제했습니다. 다른 직원 B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인 카드는 물론 가족 카드까지 동원해 8개월간 7,500만 원을 결제했습니다. 물론 A 씨와 B 씨 모두 실제 물건을 사기 위한 건 아니었습니다. 의류업체 본사 직원인 매장 매니저 C 씨에게 카드를 빌려준 뒤 벌어진 일입니다.

A 씨와 B 씨의 사례를 '가매출'이라 부릅니다. 입점업체의 실적이 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실제 팔리지 않은 상품을 팔린 것처럼 결제한 뒤 나중에 취소하는 겁니다. A 씨와 B 씨가 일하는 매장에서는 2016년부터 '가매출'을 조성하기 위한 결제와 취소가 반복됐는데 지난해 2월 말부터 결제는 했는데 취소가 미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말 본사가 매장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직원들은 '가매출'을 전제로 결제한 1억 원 넘는 돈을 끝내 취소하지 못했습니다. 결제만 했지 상품을 받은 적 없는 A 씨와 B 씨 등은 1년 넘게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가매출' 조성의 원인이 쇼핑몰 측의 매출 압박이라고 지적합니다. 쇼핑몰의 매출 압박에는 의류업체 본사 직원인 C 씨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매출이 떨어져 매장을 철수한 곳 담당이었다"라는 꼬리표는 본사 소속 매니저에게도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매장 매니저 C 씨의 요구에 A 씨와 B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카드를 빌려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매니저 C 씨가 쇼핑몰 측에 보낸 내용증명을 볼까요. '(매출) 역신장을 하면 쇼핑몰 측에서 매일 찾아와 매출 찍을 카드를 달라고 했다', '3일 역신장을 하면 쇼핑몰 회장님께 끌려간다며 가매출을 찍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매니저 C 씨가 직원 A 씨와 B 씨의 카드를 빌려 가 '가매출'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담겨 있습니다.

'가매출'은 입점업체 매장 직원뿐 아니라 쇼핑몰 직원의 카드로도 조성됐습니다. 그런데 매장 철수를 앞두고 쇼핑몰 직원의 카드로 결제했던 '가매출' 내역은 모두 취소해 줬지만 입점업체 직원 카드로는 '가매출' 결제가 이뤄졌다고 C 씨는 털어놨습니다. 쇼핑몰 직원 카드로 조성한 '가매출'이 줄어드니 그걸 채우기 위해서였던 겁니다.

쇼핑몰 눈 밖에 나면 입점엄체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쇼핑몰 측이 터무니없는 인테리어나 위치 변경을 요구하거나 계약 연장을 해주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쇼핑몰이 '갑'이라면 입점업체 직원들은 언제나 '을'입니다. 이들은 "업계가 좁아 소문나면 금방"이라며 취소받지 못한 돈에 대해 항의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그렇게 1년 5개월이 지났습니다. 의류매장 본사에서는 "카드 결제 취소 권한이 없다"며, 해당 쇼핑몰은 "매니저 개인의 잘못"이라고 책임을 미루고 있습니다.

본사 온라인몰과 경쟁해야 하는 가맹점주...적자 '속출' 폐업 '연속'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유명 화장품업체 이니스프리의 가맹점을 모두 없애달라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청원 글을 올린 사람은 소비자도, 경쟁사도 아닌 해당 업체 가맹점주였습니다. 이들은 가맹점 본사가 온라인 위주의 판매 정책을 펴면서 자신들의 점포가 큰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가맹점을 열었는데 본사의 '테스트 매장'으로 전락했다며 가맹비를 돌려주고 보상을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오프라인 가맹점의 '테스트 매장화'는 최근 유통업계의 한 추세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을 보고 구매는 온라인으로 하는 추세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맹점주로서는 '테스트'만으로는 수익이 날 수 없는 노릇입니다. 특히 이니스프리 가맹점주들의 불만은 더 큽니다.

이니스프리 측은 자체적으로 온라인 전용관을 마련해 가맹점에서는 볼 수 없는 제품을 팔고 있습니다. 신상품을 쓰고 싶은 고객으로서는 오프라인 가맹점보다는 온라인 전용관에 더 끌리기 마련입니다. 또 같은 제품이라도 가맹점에서는 2만4천 원 하는 제품이 쿠팡 같은 오픈마켓에서는 1만1천 원에 살 수 있습니다. 가격 측면에서도 오프라인 가맹점은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소비자로서는 굳이 가맹점을 찾을 이유가 없어진 겁니다.


13년 동안 이니스프리 가맹점을 운영한 전혁구 씨는 "가맹점은 현재 본사의 공병 수거와 포인트 적립 등을 대신해주는 '서비스 센터'로 전락했다"라며 "아무리 본사에 문제를 제기해도 돌아오는 건 없다"라고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최근 오프라인 매장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 속에 이니스프리의 경우도 오프라인 가맹점은 1년 새 750개에서 520개로 줄었습니다. 젊은이들이나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서울 마포구 홍대 상권에 있던 한 가맹점도 지난 5월 말 매출 부진으로 폐점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입점업체나 가맹점에 대한 갑질이나 불공정행위는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가맹점으로선 어떻게든 재무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편법을 통해서라도 매출을 증가시키려 할 것"이라면서, 결국 서비스 질 하락으로 본사의 이미지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니스프리 측은 핵심 제품은 온라인과 가맹점 구분 없이 판매되며, 가맹점과 오픈 마켓과의 할인율은 비슷하게 유지되도록 상생정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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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원 카드로 하루 71만 원 24번 결제…쇼핑몰·본사는 ‘모르쇠’
    • 입력 2020-07-12 07:01:34
    취재K
쇼핑몰서 직원 카드 빌려 수억 원 허위 결제..."결제 취소 안 해줘"

서울 성동구의 한 오프라인 쇼핑몰. 이곳에 입점한 의류매장 직원 A 씨는 자기가 일하는 매장에서 본인 카드로 3개월간 결제와 취소를 반복했습니다. 결제액만 3천만 원에 이릅니다. 많은 날은 한 번에 71만 원씩 24번, 모두 1,700만 원을 하루에 결제했습니다. 다른 직원 B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인 카드는 물론 가족 카드까지 동원해 8개월간 7,500만 원을 결제했습니다. 물론 A 씨와 B 씨 모두 실제 물건을 사기 위한 건 아니었습니다. 의류업체 본사 직원인 매장 매니저 C 씨에게 카드를 빌려준 뒤 벌어진 일입니다.

A 씨와 B 씨의 사례를 '가매출'이라 부릅니다. 입점업체의 실적이 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실제 팔리지 않은 상품을 팔린 것처럼 결제한 뒤 나중에 취소하는 겁니다. A 씨와 B 씨가 일하는 매장에서는 2016년부터 '가매출'을 조성하기 위한 결제와 취소가 반복됐는데 지난해 2월 말부터 결제는 했는데 취소가 미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말 본사가 매장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직원들은 '가매출'을 전제로 결제한 1억 원 넘는 돈을 끝내 취소하지 못했습니다. 결제만 했지 상품을 받은 적 없는 A 씨와 B 씨 등은 1년 넘게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가매출' 조성의 원인이 쇼핑몰 측의 매출 압박이라고 지적합니다. 쇼핑몰의 매출 압박에는 의류업체 본사 직원인 C 씨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매출이 떨어져 매장을 철수한 곳 담당이었다"라는 꼬리표는 본사 소속 매니저에게도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매장 매니저 C 씨의 요구에 A 씨와 B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카드를 빌려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매니저 C 씨가 쇼핑몰 측에 보낸 내용증명을 볼까요. '(매출) 역신장을 하면 쇼핑몰 측에서 매일 찾아와 매출 찍을 카드를 달라고 했다', '3일 역신장을 하면 쇼핑몰 회장님께 끌려간다며 가매출을 찍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매니저 C 씨가 직원 A 씨와 B 씨의 카드를 빌려 가 '가매출'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담겨 있습니다.

'가매출'은 입점업체 매장 직원뿐 아니라 쇼핑몰 직원의 카드로도 조성됐습니다. 그런데 매장 철수를 앞두고 쇼핑몰 직원의 카드로 결제했던 '가매출' 내역은 모두 취소해 줬지만 입점업체 직원 카드로는 '가매출' 결제가 이뤄졌다고 C 씨는 털어놨습니다. 쇼핑몰 직원 카드로 조성한 '가매출'이 줄어드니 그걸 채우기 위해서였던 겁니다.

쇼핑몰 눈 밖에 나면 입점엄체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쇼핑몰 측이 터무니없는 인테리어나 위치 변경을 요구하거나 계약 연장을 해주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쇼핑몰이 '갑'이라면 입점업체 직원들은 언제나 '을'입니다. 이들은 "업계가 좁아 소문나면 금방"이라며 취소받지 못한 돈에 대해 항의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그렇게 1년 5개월이 지났습니다. 의류매장 본사에서는 "카드 결제 취소 권한이 없다"며, 해당 쇼핑몰은 "매니저 개인의 잘못"이라고 책임을 미루고 있습니다.

본사 온라인몰과 경쟁해야 하는 가맹점주...적자 '속출' 폐업 '연속'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유명 화장품업체 이니스프리의 가맹점을 모두 없애달라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청원 글을 올린 사람은 소비자도, 경쟁사도 아닌 해당 업체 가맹점주였습니다. 이들은 가맹점 본사가 온라인 위주의 판매 정책을 펴면서 자신들의 점포가 큰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가맹점을 열었는데 본사의 '테스트 매장'으로 전락했다며 가맹비를 돌려주고 보상을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오프라인 가맹점의 '테스트 매장화'는 최근 유통업계의 한 추세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을 보고 구매는 온라인으로 하는 추세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맹점주로서는 '테스트'만으로는 수익이 날 수 없는 노릇입니다. 특히 이니스프리 가맹점주들의 불만은 더 큽니다.

이니스프리 측은 자체적으로 온라인 전용관을 마련해 가맹점에서는 볼 수 없는 제품을 팔고 있습니다. 신상품을 쓰고 싶은 고객으로서는 오프라인 가맹점보다는 온라인 전용관에 더 끌리기 마련입니다. 또 같은 제품이라도 가맹점에서는 2만4천 원 하는 제품이 쿠팡 같은 오픈마켓에서는 1만1천 원에 살 수 있습니다. 가격 측면에서도 오프라인 가맹점은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소비자로서는 굳이 가맹점을 찾을 이유가 없어진 겁니다.


13년 동안 이니스프리 가맹점을 운영한 전혁구 씨는 "가맹점은 현재 본사의 공병 수거와 포인트 적립 등을 대신해주는 '서비스 센터'로 전락했다"라며 "아무리 본사에 문제를 제기해도 돌아오는 건 없다"라고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최근 오프라인 매장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 속에 이니스프리의 경우도 오프라인 가맹점은 1년 새 750개에서 520개로 줄었습니다. 젊은이들이나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서울 마포구 홍대 상권에 있던 한 가맹점도 지난 5월 말 매출 부진으로 폐점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입점업체나 가맹점에 대한 갑질이나 불공정행위는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가맹점으로선 어떻게든 재무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편법을 통해서라도 매출을 증가시키려 할 것"이라면서, 결국 서비스 질 하락으로 본사의 이미지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니스프리 측은 핵심 제품은 온라인과 가맹점 구분 없이 판매되며, 가맹점과 오픈 마켓과의 할인율은 비슷하게 유지되도록 상생정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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