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검찰 수사 못믿겠다”…‘검사 내전(內戰)’ 된 검언 유착 의혹

입력 2020.07.14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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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상황이 실시간 유출되고, 수사의 결론을 미리 제시하는 수사팀 관계자와 법무부 관계자의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재 상황에 대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 피의자가 어제(13일)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의 편향성을 비판하며 한 말입니다.

이 말 자체는 그다지 새롭지 않습니다. 주요 사건 수사 때마다 피의자들이 더러 주장해온 바이기도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한명숙 전 총리,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 조국 전 장관 등 검찰 수사를 받은 주요 인사 상당수가 이와 비슷한 취지의 하소연을 했습니다.

뻔하다면 뻔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말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화자(話者)가 다름 아닌 현직 검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그냥 검사가 아닌 '검찰의 별'이라고 불리는 검사장급 간부인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하 한 검사장)이 변호인을 통해 밝힌 입장입니다.

한 검사장은 위와 같은 이유로 검찰 수사를 믿지 못하겠다면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습니다. 수사의 적절성과 기소 여부 등에 대해 외부 전문가들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겁니다.

검찰 내 최고 에이스이자 총장의 최측근으로 통하던 검사장급 간부가 검찰의 수사에 대한 불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외부 판단을 받아보자고 하는 이 상황, 어떻게 봐야 할까요.

■ '검언 유착' 의혹, 검찰 내전(內戰)으로 비화

지난 3월 불거진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검찰 안팎에서 상당한 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켜왔습니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유례 없는 '수사 지휘' 갈등도 바로 이 사건에 대한 처리를 둘러싼 이견으로 인해 빚어졌습니다.

검찰 내부의 갈등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서울중앙지검 현 수사팀의 수사 방향이 옳으냐를 두고 검찰 내부는 크게 둘로 갈려 있는 상황입니다.


윤석열 총장의 전문수사자문단 소집 결정을 놓고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공개 반발하는가 하면, 대검의 수사 지휘 실무를 맡은 간부 검사와 수사팀 간부 검사가 내부 게시판에 잇따라 글을 쓰며 설전 아닌 설전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검찰 수장인 윤석열 총장과 '넘버 2'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대면 주례보고도 2주째 중단됐습니다.

"다수의 중요 증거를 확보하여 실체적 진실에 상당 부분 접근하고 있다"(수사팀 담당 부장검사)는 주장과 "(수사팀이) 정권과 유착되어 대검 지휘에 불응하고 있다"(수사 지휘 대검 측 중간 간부)는 말은 '검언 유착' 의혹 수사를 바라보는 양측의 인식 차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

한 간부 검사는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을 둘러싼 갈등으로) 총장의 리더십이 크게 훼손된 상태"라면서 "사실상 내전 양상"이라는 말로 검찰이 처한 현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 수사 결과에 따라 한쪽은 치명상…'직(職)을 걸었다'

이 내전에서 누가 승리하느냐는 결국 수사 결과에 따라 갈리게 될 것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관측입니다.

채널A 이모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이 사전 공모해 여권 실세의 신라젠 연루 의혹을 캐기 위해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를 압박한 사실이 객관적 물증에 의해 입증된다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현 수사팀이 주도권을 쥐게 됩니다.

한 검사장은 재판에 넘겨지고,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 등을 통해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 했던 윤 총장 역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윤 총장이 한 검사장의 공모 사실을 사전 보고받았는지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이 같은 실체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는다면 중앙지검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고, 윤석열 총장과의 극한 대립을 감수하고 현 수사팀에 무게를 실어준 추미애 장관도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수사팀이 이번 수사 결과에 '직(職)을 걸었다'고 얘기할 정도로 비장한 각오를 보이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 수사의 분수령 : 수사심의위와 구속영장 청구

남은 수사의 분수령은 크게 두 번으로 예상됩니다.

하나는 바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입니다. 이미 이철 전 대표가 요청한 검찰수사심의위가 오는 24일 소집을 앞두고 있습니다. 채널A 이 모 전 기자의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은 '동일한 사건에 대한 심의위가 소집돼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한 검사장의 수사심의위 요청건 역시 이 전 기자의 요청과 비슷한 이유로 이철 전 대표가 요청한 수사심의위에 병합될 거란 전망이 나옵니다.


이렇게 되면 수사팀과 피해자를 자처하는 이철 전 대표, 피의자인 이모 전 기자와 한 검사장 측이 모두 수사심의위에 나와 수사의 적절성 여부 등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주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외부 위원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수사도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분수령은 바로 이모 전 기자에 대한 신병처리 여부입니다.

수사팀은 이 전 기자가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초기화하는 등 증거를 인멸한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달 대검에 구속영장 청구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당시 대검은 '현 단계에서 구속 필요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이를 반려했습니다.

이제 대검의 지휘를 받지 않아도 되는 만큼, 수사팀이 자체 판단에 따라 이 전 기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수사팀은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발부가 된다면 수사에 큰 동력이 붙겠지만, 반대로 기각된다면 '무리한 수사'라는 역풍이 불 것이라는 우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수사심의위는 앞서 언급했든 오는 24일 소집되고, 구속영장 청구 여부도 이달 안에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검언 유착'인지 아니면 '권언 유착'인지에 대한 판단도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명확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만, 조직 내부에 깊이 파인 갈등의 골과 이로 인해 훼손된 신뢰를 어떻게 극복할지는 검찰이 오랜 시간을 두고 풀어야 할 숙제로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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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사가 “검찰 수사 못믿겠다”…‘검사 내전(內戰)’ 된 검언 유착 의혹
    • 입력 2020-07-14 15: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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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상황이 실시간 유출되고, 수사의 결론을 미리 제시하는 수사팀 관계자와 법무부 관계자의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재 상황에 대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 피의자가 어제(13일)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의 편향성을 비판하며 한 말입니다.

이 말 자체는 그다지 새롭지 않습니다. 주요 사건 수사 때마다 피의자들이 더러 주장해온 바이기도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한명숙 전 총리,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 조국 전 장관 등 검찰 수사를 받은 주요 인사 상당수가 이와 비슷한 취지의 하소연을 했습니다.

뻔하다면 뻔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말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화자(話者)가 다름 아닌 현직 검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그냥 검사가 아닌 '검찰의 별'이라고 불리는 검사장급 간부인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하 한 검사장)이 변호인을 통해 밝힌 입장입니다.

한 검사장은 위와 같은 이유로 검찰 수사를 믿지 못하겠다면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습니다. 수사의 적절성과 기소 여부 등에 대해 외부 전문가들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겁니다.

검찰 내 최고 에이스이자 총장의 최측근으로 통하던 검사장급 간부가 검찰의 수사에 대한 불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외부 판단을 받아보자고 하는 이 상황, 어떻게 봐야 할까요.

■ '검언 유착' 의혹, 검찰 내전(內戰)으로 비화

지난 3월 불거진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검찰 안팎에서 상당한 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켜왔습니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유례 없는 '수사 지휘' 갈등도 바로 이 사건에 대한 처리를 둘러싼 이견으로 인해 빚어졌습니다.

검찰 내부의 갈등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서울중앙지검 현 수사팀의 수사 방향이 옳으냐를 두고 검찰 내부는 크게 둘로 갈려 있는 상황입니다.


윤석열 총장의 전문수사자문단 소집 결정을 놓고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공개 반발하는가 하면, 대검의 수사 지휘 실무를 맡은 간부 검사와 수사팀 간부 검사가 내부 게시판에 잇따라 글을 쓰며 설전 아닌 설전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검찰 수장인 윤석열 총장과 '넘버 2'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대면 주례보고도 2주째 중단됐습니다.

"다수의 중요 증거를 확보하여 실체적 진실에 상당 부분 접근하고 있다"(수사팀 담당 부장검사)는 주장과 "(수사팀이) 정권과 유착되어 대검 지휘에 불응하고 있다"(수사 지휘 대검 측 중간 간부)는 말은 '검언 유착' 의혹 수사를 바라보는 양측의 인식 차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

한 간부 검사는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을 둘러싼 갈등으로) 총장의 리더십이 크게 훼손된 상태"라면서 "사실상 내전 양상"이라는 말로 검찰이 처한 현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 수사 결과에 따라 한쪽은 치명상…'직(職)을 걸었다'

이 내전에서 누가 승리하느냐는 결국 수사 결과에 따라 갈리게 될 것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관측입니다.

채널A 이모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이 사전 공모해 여권 실세의 신라젠 연루 의혹을 캐기 위해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를 압박한 사실이 객관적 물증에 의해 입증된다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현 수사팀이 주도권을 쥐게 됩니다.

한 검사장은 재판에 넘겨지고,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 등을 통해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 했던 윤 총장 역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윤 총장이 한 검사장의 공모 사실을 사전 보고받았는지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이 같은 실체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는다면 중앙지검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고, 윤석열 총장과의 극한 대립을 감수하고 현 수사팀에 무게를 실어준 추미애 장관도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수사팀이 이번 수사 결과에 '직(職)을 걸었다'고 얘기할 정도로 비장한 각오를 보이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 수사의 분수령 : 수사심의위와 구속영장 청구

남은 수사의 분수령은 크게 두 번으로 예상됩니다.

하나는 바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입니다. 이미 이철 전 대표가 요청한 검찰수사심의위가 오는 24일 소집을 앞두고 있습니다. 채널A 이 모 전 기자의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은 '동일한 사건에 대한 심의위가 소집돼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한 검사장의 수사심의위 요청건 역시 이 전 기자의 요청과 비슷한 이유로 이철 전 대표가 요청한 수사심의위에 병합될 거란 전망이 나옵니다.


이렇게 되면 수사팀과 피해자를 자처하는 이철 전 대표, 피의자인 이모 전 기자와 한 검사장 측이 모두 수사심의위에 나와 수사의 적절성 여부 등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주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외부 위원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수사도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분수령은 바로 이모 전 기자에 대한 신병처리 여부입니다.

수사팀은 이 전 기자가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초기화하는 등 증거를 인멸한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달 대검에 구속영장 청구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당시 대검은 '현 단계에서 구속 필요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이를 반려했습니다.

이제 대검의 지휘를 받지 않아도 되는 만큼, 수사팀이 자체 판단에 따라 이 전 기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수사팀은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발부가 된다면 수사에 큰 동력이 붙겠지만, 반대로 기각된다면 '무리한 수사'라는 역풍이 불 것이라는 우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수사심의위는 앞서 언급했든 오는 24일 소집되고, 구속영장 청구 여부도 이달 안에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검언 유착'인지 아니면 '권언 유착'인지에 대한 판단도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명확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만, 조직 내부에 깊이 파인 갈등의 골과 이로 인해 훼손된 신뢰를 어떻게 극복할지는 검찰이 오랜 시간을 두고 풀어야 할 숙제로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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