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이후 2년 지났지만…이번에도 ‘피해자’는 없었다

입력 2020.07.15 (21:14) 수정 2020.07.15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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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알린 '우 조교 사건'.

교수의 성추행 의혹을 둘러싼 공방은 6년동안 이어졌고, 마침내 법원은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한참 뒤, 누군가 이 사건에 대해 묻자 담당 변호사였던 그는 용어를 바로잡았습니다.

"우 조교 사건이 아니라 신 교수 사건이라고 해야죠."

철저하게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대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숱한 의문점 남긴 채 세상을 떠난 이후 여권신장을 위해 애쓴 걸로 알려진 인물이 오히려 성추행 논란의 중심이 됐는데 생전에 했던 이 말은, 역설적으로 이번 논란에도 적용됩니다.

철저하게 피해자. 또 고소인 중심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2018년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백이죠.

'미투 운동'이 시작된 지 2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하지만 권력형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고, 그럴 때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양상도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

박원순 시장의 죽음 이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사회 여성들은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조지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남긴 유서에도….

사망 확인 뒤 서울시의 공식 발표에도….

장례 기간 내내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없었습니다.

그에 대한 언급을 요구하면 도리어 무례한 걸로 취급됐습니다.

[이해찬/더불어민주당 대표/지난 10일 : "(고인에 의혹이 불거졌는데 혹시 여기에 대해서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이 있으신지...) 그건 예의가 아닙니다. OO자식 같으니라고..."]

애도가 강조되면서 '피해 사실'은 외면됐습니다.

[정주연/직장인 : "서울시에서 (시 예산으로) 5일장을 치르는 방향으로 간다는 자체가…. 누가봐도 피해자가 약자인데 마치 죽음으로서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한 것 같은…."]

[서승희/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 "그가 살아서 어떤 권력을 가졌는지 그래서 죽어서도 그 권력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이었다고 생각되고요."]

장례가 끝난 뒤에도 서울시 부시장을 지낸 한 국회의원은 "시장실 구조를 아는 입장에서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있었다"라며 피해 사실을 의심하는 글을 올렸고, 온라인상에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성폭력 가해자가 유명인이거나 권력자일 경우 늘 피해자는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사립학교 성폭력 피해자/음성변조 : "절차 방법대로 해서 관리자들한테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건 "니가 참고 다녀라, 꽃뱀이다". 어느 순간 전 예민한 사람이고 '여자한테 말도 못 시키겠다'."]

피해 사실을 폭로한 뒤에는 입을 옷을 고를 때도 '피해자다움'을 의식해야 합니다.

피해자 스스로 이른바 '꽃뱀'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하는 현실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현아/대학생 : "몇 년을 참고 참다가 이거를 터뜨린건데 또 결국 가해자 지금 세상에 없고 하니까 증언해줄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조작한 거 아니냐 이런 의혹도 많이 받는다고 알고 있어서…."]

용기를 내 발언했던 '미투' 피해자들은 유사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또 다른 2차 가해에 직면합니다.

입장을 밝히고, 누구 편인지 선택하라고 쏟아지는 요구에 서지현 검사는 "여전히 한마디도 하기 어렵다"라며 SNS 계정을 닫았습니다.

[남정숙/미투 피해자/전 성균관대교수 : "트라우마가 다시 재현이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이걸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게 미투라고 생각하느냐.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거 같아요."]

박원순 전 시장 건의 경우처럼 가해자가 숨졌을 때는 법적 판단조차 받을 수 없는 현실에 피해자는 또 한 번 무력감을 느낍니다.

[이경민/대학생 :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도 죽으면 끝나는 건가….제가 피해자가 됐어도 가해자가 자살하면 끝인가?"]

지난주에도 전북 임실에서는 한 공무원이 상사에 의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암시하는 문자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 여성은 숨지기 전 여러 곳에 자신이 당한 일을 알렸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KBS 뉴스 조지현입니다.

촬영기자:권준용,안민식,서다은/영상편집:김종선/그래픽:박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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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투’ 이후 2년 지났지만…이번에도 ‘피해자’는 없었다
    • 입력 2020-07-15 21:16:11
    • 수정2020-07-15 22:07:58
    뉴스 9
[앵커]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알린 '우 조교 사건'.

교수의 성추행 의혹을 둘러싼 공방은 6년동안 이어졌고, 마침내 법원은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한참 뒤, 누군가 이 사건에 대해 묻자 담당 변호사였던 그는 용어를 바로잡았습니다.

"우 조교 사건이 아니라 신 교수 사건이라고 해야죠."

철저하게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대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숱한 의문점 남긴 채 세상을 떠난 이후 여권신장을 위해 애쓴 걸로 알려진 인물이 오히려 성추행 논란의 중심이 됐는데 생전에 했던 이 말은, 역설적으로 이번 논란에도 적용됩니다.

철저하게 피해자. 또 고소인 중심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2018년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백이죠.

'미투 운동'이 시작된 지 2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하지만 권력형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고, 그럴 때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양상도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

박원순 시장의 죽음 이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사회 여성들은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조지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남긴 유서에도….

사망 확인 뒤 서울시의 공식 발표에도….

장례 기간 내내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없었습니다.

그에 대한 언급을 요구하면 도리어 무례한 걸로 취급됐습니다.

[이해찬/더불어민주당 대표/지난 10일 : "(고인에 의혹이 불거졌는데 혹시 여기에 대해서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이 있으신지...) 그건 예의가 아닙니다. OO자식 같으니라고..."]

애도가 강조되면서 '피해 사실'은 외면됐습니다.

[정주연/직장인 : "서울시에서 (시 예산으로) 5일장을 치르는 방향으로 간다는 자체가…. 누가봐도 피해자가 약자인데 마치 죽음으로서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한 것 같은…."]

[서승희/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 "그가 살아서 어떤 권력을 가졌는지 그래서 죽어서도 그 권력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이었다고 생각되고요."]

장례가 끝난 뒤에도 서울시 부시장을 지낸 한 국회의원은 "시장실 구조를 아는 입장에서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있었다"라며 피해 사실을 의심하는 글을 올렸고, 온라인상에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성폭력 가해자가 유명인이거나 권력자일 경우 늘 피해자는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사립학교 성폭력 피해자/음성변조 : "절차 방법대로 해서 관리자들한테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건 "니가 참고 다녀라, 꽃뱀이다". 어느 순간 전 예민한 사람이고 '여자한테 말도 못 시키겠다'."]

피해 사실을 폭로한 뒤에는 입을 옷을 고를 때도 '피해자다움'을 의식해야 합니다.

피해자 스스로 이른바 '꽃뱀'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하는 현실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현아/대학생 : "몇 년을 참고 참다가 이거를 터뜨린건데 또 결국 가해자 지금 세상에 없고 하니까 증언해줄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조작한 거 아니냐 이런 의혹도 많이 받는다고 알고 있어서…."]

용기를 내 발언했던 '미투' 피해자들은 유사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또 다른 2차 가해에 직면합니다.

입장을 밝히고, 누구 편인지 선택하라고 쏟아지는 요구에 서지현 검사는 "여전히 한마디도 하기 어렵다"라며 SNS 계정을 닫았습니다.

[남정숙/미투 피해자/전 성균관대교수 : "트라우마가 다시 재현이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이걸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게 미투라고 생각하느냐.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거 같아요."]

박원순 전 시장 건의 경우처럼 가해자가 숨졌을 때는 법적 판단조차 받을 수 없는 현실에 피해자는 또 한 번 무력감을 느낍니다.

[이경민/대학생 :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도 죽으면 끝나는 건가….제가 피해자가 됐어도 가해자가 자살하면 끝인가?"]

지난주에도 전북 임실에서는 한 공무원이 상사에 의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암시하는 문자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 여성은 숨지기 전 여러 곳에 자신이 당한 일을 알렸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KBS 뉴스 조지현입니다.

촬영기자:권준용,안민식,서다은/영상편집:김종선/그래픽:박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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