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림로①] “법정 보호종 없다”던 소규모환경영향평가…최종 보고서 봤더니

입력 2020.07.17 (07:01) 수정 2020.07.17 (07:0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연관 기사][비자림로②] 종료 닷새 앞두고 ‘용역 중단’…공사 재개했다 과태료까지

제주국제공항에서 동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약 50분. 곧게 뻗은 길 양옆으로 높고 곧은 녹색 병풍을 친 듯한 3km 길이의 왕복 2차로 도로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드라이브 명소로 제주 여행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비자림로'입니다.

KBS제주 취재팀은 최근 마무리된 제주 구좌읍 송당리 비자림로 확장·포장공사 구간의 추가 생태 조사 결과를 담은 최종보고서를 단독 입수해, 지역 뉴스로 사흘에 걸쳐 방송 보도로 시청자들께 전해드렸는데요.

수년에 걸친 이슈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두 차례에 걸쳐 이번 추가 생태 조사 보고서 내용과 남은 과제 등을 정리해 전국 독자들께 소개합니다.


지역 숙원사업이냐, 법정 보호종 지키기냐?

여행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제주여행' 해시태그와 함께 등장할법한 비자림로가 지역 사회뉴스의 주요 화젯거리로 다뤄진 지도 벌써 3년째. 비자림로를 넓히는 공사를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 숙원사업이라는 목소리와 법정 보호종이 다수 서식하는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는 호소 사이에서, 비자림로 공사는 그사이 3번이나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습니다.

얼마 전 이 공사구역에서 진행된 추가 생태 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착공 전인 5년 전에 실시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뒤집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비자림로 2.94km 확장·포장은 어떤 공사?

지난 2015년 봄, 비자림로에선 높이 10m가량 나무 수백 그루가 밑동부터 댕강 잘려나갔습니다. 울창했던 도로 한 귀퉁이는 흙바닥을 드러냈고, 아스팔트로 덮이기 전 공사가 멈춘 탓에 지금껏 잡목과 마른 풀이 빈자리를 꿰차고 있죠.

비자림로 벌목은 '3구간'이라 불리는 구역부터 시작했는데요.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공사한다는 건지, 우선 이 도로의 공사 구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비자림로 확장·포장공사 1, 2, 3구간 모습비자림로 확장·포장공사 1, 2, 3구간 모습

비자림로 확장·포장 공사는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대천교차로에서 금백조로 입구까지 2.94km 길이 왕복 2차로 도로를 왕복 4차로로 넓히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공사구역은 1, 2, 3구간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KBS제주 취재진이 보도한 최종보고서는 바로 이 가운데 천미천 삼림이 있는 1구간과 3구간을 중심으로 이뤄진 조사의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 연구팀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제주도로부터 용역 의뢰를 받아, 비자림로 확장·포장공사 1, 3구간에 대해 추가 생태조사를 했습니다.

지난 4월 연구팀이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서 생태 조사를 하고 있다. 비자림로 시민모임 제공지난 4월 연구팀이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서 생태 조사를 하고 있다. 비자림로 시민모임 제공

이번 조사에는 제주대학교 오홍식 교수, ㈜제주생물다양성연구소 문명옥 연구원, (재)제주테크노파크 생물종다양성연구소 양경식 연구원을 비롯해 시민단체에서 추천한 양치식물연구회 김진숙 연구원, 새와 생명의 터 나일 무어스(Nial Moores) 대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소장 등이 참여했습니다.

애초 이 조사 용역은 지난해 10월부터 그해 12월까지 예정 기간이 2개월에 불과했습니다. 시민사회에서는 그간 사계절 조사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줄기차게 해 왔던 터였는데요.

생태조사를 벌이기에 너무 짧은 기간인 탓에 영산강유역환경청도 겨울과 봄에 걸쳐 조사를 진행할 것과 시민사회에서 추천한 연구원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권고하면서, 용역 기간이 6월 말까지 연장됐습니다.

지난 5월 27일 관계자들이 비자림로 공사 2구간에서 벌목을 하고 있다.지난 5월 27일 관계자들이 비자림로 공사 2구간에서 벌목을 하고 있다.

이번 용역 조사의 공식 조사 지역이 아니었던 2구간에선 지난 5월 제주도가 벌목 공사를 재개했다가 하루 만에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제주도는 앞선 생태조사에서 2구간은 삼나무의 보존 가치가 낮고, 법정 보호종 등 별다른 서식지 훼손 문제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올해 5월 27일, 공사를 다시 시작합니다.

그러나 영산강유역환경청이 제주도에 환경영향평가법 위반으로 곧바로 중지 명령을 내렸고, 그다음 날 공사는 다시 멈췄습니다.

"법정 보호종 없다"던 소규모환경영향평가…불과 5년 만에 비자림로 생태계 대격변?

KBS 취재진이 입수한 비자림로 추가 생태 조사 최종보고서는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서 멸종위기 동·식물을 다수 확인했다며, 사업 추진으로 다양한 동식물의 종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2015년 소규모환경영향평가의 부실이 이번 최신 보고서를 통해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난 겁니다.

2015년 제주도가 제출한 비자림로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 ‘계획노선에 멸종위기야생동·식물, 각종 보호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썼다. 이후 환경청은 해당 환경평가 대행업체에 부실 작성 책임을 물어 영업정지 3개월과 과태료 500만 원 행정 처분을 내렸다.2015년 제주도가 제출한 비자림로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 ‘계획노선에 멸종위기야생동·식물, 각종 보호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썼다. 이후 환경청은 해당 환경평가 대행업체에 부실 작성 책임을 물어 영업정지 3개월과 과태료 500만 원 행정 처분을 내렸다.

연구진들은 해당 공사 구간이 생물 다양성 보전에 있어 중요한 곳이며, 도로 공사 진행으로 환경 훼손 우려가 크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습니다. 특히, 보고서 결론부에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전문성 결여로 이루어진 비자림로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에서 제기된 주장과 달리, 본 보고서의 저자들은 비자림로 나무를 더 자르고 도로를 넓히는 것이 비자림로 지역 생물 다양성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2015년)의 주장에 대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었음.

같은 장소에서 5년 전 이뤄진 소규모환경영향평가의 결론을 뒤집는 서술입니다.

올해 2월과 5월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서 각각 발견된 멸종위기종 잿빛개구리매(좌, 천연기념물 제323-6호)와 팔색조(우, 천연기념물 제204호) 비자림로 시민모임 제공올해 2월과 5월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서 각각 발견된 멸종위기종 잿빛개구리매(좌, 천연기념물 제323-6호)와 팔색조(우, 천연기념물 제204호) 비자림로 시민모임 제공

이번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협의 내용 이행에 따른 조사용역 기간, 연구진은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팔색조와 긴꼬리딱새, 잿빛개구리매 등 법정 보호종에 해당하는 조류 16종을 관찰했습니다. 연구진들이 서식 정보를 확인한 조류는 모두 90여 종에 이릅니다.

식물 조사에서도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등재된 으름난초 1종을 비롯해 한국 적색목록에 포함된 식물 11종, 한국의 희귀 식물 16종 등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이번 비자림로 추가 조사에서 양치식물이 모두 68종이 확인됐는데, 소규모환경영향평가에선 겨우 10여 종밖에 보고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보고서는 비자림로의 식물상 다양성 지수(1.61)는 지리산국립공원(1.85), 제주 곶자왈 시험림(1.63)만큼 높았고, 자연 보전상태 지수로 쓰이는 양치식물계수도 비자림로 조사구간(3.48)이 한반도 평균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고 썼습니다.

5년 사이에 비자림로 일대 식물 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대격변'이라도 일어났던 걸까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식물·곤충인 으름난초(좌)와 애기뿔소똥구리(우)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식물·곤충인 으름난초(좌)와 애기뿔소똥구리(우)

멸종위기종 곤충인 애기뿔소똥구리가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 대거 사는 것도 연구진에 의해 확인됐습니다.

이 벌레는 이름 그대로 동물의 '똥'을 먹고 사는 곤충입니다. 본래 우리나라 전역에서 서식하던 곤충이었지만, 이 땅에서 사라진 지 오래죠.

흔했던 벌레가 절멸 위기에 놓이게 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축산업이 변하면서 소 따위의 가축을 기르는 방식이 대부분 콘크리트 바닥 위에 우리를 설치해 가두는 방식으로 바뀌다 보니, 소똥구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진 원인이 가장 큽니다.

아직 목초지에 가축을 방목하는 형태가 남아있는 제주에서 그나마 개체가 확인이 가능한 정도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이 연구조사를 진행한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벌목구간에 땅을 파서 소똥을 안에 넣어두는 단순한 구조의 '트랩'을 설치해 애기뿔소똥구리 개체를 확인하는 가장 보수적인 방법을 사용했는데도, 호우주의보 속에서 여덟 시간여 만에 수십 마리 개체가 관찰됐다"고 말했습니다.

벌목과 도로포장이 예정된 비자림로 삼나무숲 모습벌목과 도로포장이 예정된 비자림로 삼나무숲 모습

연구진은 이번 용역 기간이 생태 조사를 하기에 짧은 데다, 일부 멸종위기종의 경우 주 활동 시기와 조사 기간이 맞지 않아, 서식 정보를 제대로 확인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습니다.

"생물 종 다양성 재확인…환경영향 저감 방안 마련해야"
대체서식지 조성엔 '회의적', '공사 중단' 요구도

연구진들은 도로 확장·포장 공사가 도로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이르기까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도로 공사 과정에서 주변 지역의 서식지 파괴가 불가피한 데다 도로가 넓어지면 차량이 빠르게 오가면서 소음과 광공해를 일으키고, 야생동물의 로드킬 위험도 덩달아 커진다는 겁니다.

조사자는 이 때문에 예정대로 공사한다면 확장 폭을 최소화하고, 전 구간에 걸쳐 과속방지턱과 과속카메라를 설치해 저속 주행을 유도하라고 권고합니다.


멸종위기종을 위한 '대체 서식지' 마련에 회의적인 시각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 같이 촘촘히 연결된 생태계 전체를 다른 지역에 옮겨 이식한다는 것은 국내에 성공사례가 전혀 없을뿐더러, 세계적으로도 드물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조사자들은 결론에서 이번 공사로 인한 생태계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또 멸종위기종이나 보호종 서식지에 대한 개발이 불가피할 때는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관련 뉴스 링크]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88939 [단독]“생물종 다양성 재확인·환경영향 저감 방안 마련해야”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89917“대체서식지 사실상 불가능…저감방안 마련·공사 최소화”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91742 비자림로 추가 용역 보고서…이번엔 환경저감대책 이행하나?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비자림로①] “법정 보호종 없다”던 소규모환경영향평가…최종 보고서 봤더니
    • 입력 2020-07-17 07:01:27
    • 수정2020-07-17 07:03:21
    취재K
[연관 기사][비자림로②] 종료 닷새 앞두고 ‘용역 중단’…공사 재개했다 과태료까지

제주국제공항에서 동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약 50분. 곧게 뻗은 길 양옆으로 높고 곧은 녹색 병풍을 친 듯한 3km 길이의 왕복 2차로 도로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드라이브 명소로 제주 여행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비자림로'입니다.

KBS제주 취재팀은 최근 마무리된 제주 구좌읍 송당리 비자림로 확장·포장공사 구간의 추가 생태 조사 결과를 담은 최종보고서를 단독 입수해, 지역 뉴스로 사흘에 걸쳐 방송 보도로 시청자들께 전해드렸는데요.

수년에 걸친 이슈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두 차례에 걸쳐 이번 추가 생태 조사 보고서 내용과 남은 과제 등을 정리해 전국 독자들께 소개합니다.


지역 숙원사업이냐, 법정 보호종 지키기냐?

여행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제주여행' 해시태그와 함께 등장할법한 비자림로가 지역 사회뉴스의 주요 화젯거리로 다뤄진 지도 벌써 3년째. 비자림로를 넓히는 공사를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 숙원사업이라는 목소리와 법정 보호종이 다수 서식하는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는 호소 사이에서, 비자림로 공사는 그사이 3번이나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습니다.

얼마 전 이 공사구역에서 진행된 추가 생태 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착공 전인 5년 전에 실시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뒤집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비자림로 2.94km 확장·포장은 어떤 공사?

지난 2015년 봄, 비자림로에선 높이 10m가량 나무 수백 그루가 밑동부터 댕강 잘려나갔습니다. 울창했던 도로 한 귀퉁이는 흙바닥을 드러냈고, 아스팔트로 덮이기 전 공사가 멈춘 탓에 지금껏 잡목과 마른 풀이 빈자리를 꿰차고 있죠.

비자림로 벌목은 '3구간'이라 불리는 구역부터 시작했는데요.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공사한다는 건지, 우선 이 도로의 공사 구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비자림로 확장·포장공사 1, 2, 3구간 모습
비자림로 확장·포장 공사는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대천교차로에서 금백조로 입구까지 2.94km 길이 왕복 2차로 도로를 왕복 4차로로 넓히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공사구역은 1, 2, 3구간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KBS제주 취재진이 보도한 최종보고서는 바로 이 가운데 천미천 삼림이 있는 1구간과 3구간을 중심으로 이뤄진 조사의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 연구팀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제주도로부터 용역 의뢰를 받아, 비자림로 확장·포장공사 1, 3구간에 대해 추가 생태조사를 했습니다.

지난 4월 연구팀이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서 생태 조사를 하고 있다. 비자림로 시민모임 제공
이번 조사에는 제주대학교 오홍식 교수, ㈜제주생물다양성연구소 문명옥 연구원, (재)제주테크노파크 생물종다양성연구소 양경식 연구원을 비롯해 시민단체에서 추천한 양치식물연구회 김진숙 연구원, 새와 생명의 터 나일 무어스(Nial Moores) 대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소장 등이 참여했습니다.

애초 이 조사 용역은 지난해 10월부터 그해 12월까지 예정 기간이 2개월에 불과했습니다. 시민사회에서는 그간 사계절 조사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줄기차게 해 왔던 터였는데요.

생태조사를 벌이기에 너무 짧은 기간인 탓에 영산강유역환경청도 겨울과 봄에 걸쳐 조사를 진행할 것과 시민사회에서 추천한 연구원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권고하면서, 용역 기간이 6월 말까지 연장됐습니다.

지난 5월 27일 관계자들이 비자림로 공사 2구간에서 벌목을 하고 있다.
이번 용역 조사의 공식 조사 지역이 아니었던 2구간에선 지난 5월 제주도가 벌목 공사를 재개했다가 하루 만에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제주도는 앞선 생태조사에서 2구간은 삼나무의 보존 가치가 낮고, 법정 보호종 등 별다른 서식지 훼손 문제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올해 5월 27일, 공사를 다시 시작합니다.

그러나 영산강유역환경청이 제주도에 환경영향평가법 위반으로 곧바로 중지 명령을 내렸고, 그다음 날 공사는 다시 멈췄습니다.

"법정 보호종 없다"던 소규모환경영향평가…불과 5년 만에 비자림로 생태계 대격변?

KBS 취재진이 입수한 비자림로 추가 생태 조사 최종보고서는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서 멸종위기 동·식물을 다수 확인했다며, 사업 추진으로 다양한 동식물의 종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2015년 소규모환경영향평가의 부실이 이번 최신 보고서를 통해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난 겁니다.

2015년 제주도가 제출한 비자림로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 ‘계획노선에 멸종위기야생동·식물, 각종 보호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썼다. 이후 환경청은 해당 환경평가 대행업체에 부실 작성 책임을 물어 영업정지 3개월과 과태료 500만 원 행정 처분을 내렸다.
연구진들은 해당 공사 구간이 생물 다양성 보전에 있어 중요한 곳이며, 도로 공사 진행으로 환경 훼손 우려가 크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습니다. 특히, 보고서 결론부에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전문성 결여로 이루어진 비자림로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에서 제기된 주장과 달리, 본 보고서의 저자들은 비자림로 나무를 더 자르고 도로를 넓히는 것이 비자림로 지역 생물 다양성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2015년)의 주장에 대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었음.

같은 장소에서 5년 전 이뤄진 소규모환경영향평가의 결론을 뒤집는 서술입니다.

올해 2월과 5월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서 각각 발견된 멸종위기종 잿빛개구리매(좌, 천연기념물 제323-6호)와 팔색조(우, 천연기념물 제204호) 비자림로 시민모임 제공
이번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협의 내용 이행에 따른 조사용역 기간, 연구진은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팔색조와 긴꼬리딱새, 잿빛개구리매 등 법정 보호종에 해당하는 조류 16종을 관찰했습니다. 연구진들이 서식 정보를 확인한 조류는 모두 90여 종에 이릅니다.

식물 조사에서도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등재된 으름난초 1종을 비롯해 한국 적색목록에 포함된 식물 11종, 한국의 희귀 식물 16종 등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이번 비자림로 추가 조사에서 양치식물이 모두 68종이 확인됐는데, 소규모환경영향평가에선 겨우 10여 종밖에 보고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보고서는 비자림로의 식물상 다양성 지수(1.61)는 지리산국립공원(1.85), 제주 곶자왈 시험림(1.63)만큼 높았고, 자연 보전상태 지수로 쓰이는 양치식물계수도 비자림로 조사구간(3.48)이 한반도 평균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고 썼습니다.

5년 사이에 비자림로 일대 식물 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대격변'이라도 일어났던 걸까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식물·곤충인 으름난초(좌)와 애기뿔소똥구리(우)
멸종위기종 곤충인 애기뿔소똥구리가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 대거 사는 것도 연구진에 의해 확인됐습니다.

이 벌레는 이름 그대로 동물의 '똥'을 먹고 사는 곤충입니다. 본래 우리나라 전역에서 서식하던 곤충이었지만, 이 땅에서 사라진 지 오래죠.

흔했던 벌레가 절멸 위기에 놓이게 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축산업이 변하면서 소 따위의 가축을 기르는 방식이 대부분 콘크리트 바닥 위에 우리를 설치해 가두는 방식으로 바뀌다 보니, 소똥구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진 원인이 가장 큽니다.

아직 목초지에 가축을 방목하는 형태가 남아있는 제주에서 그나마 개체가 확인이 가능한 정도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이 연구조사를 진행한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벌목구간에 땅을 파서 소똥을 안에 넣어두는 단순한 구조의 '트랩'을 설치해 애기뿔소똥구리 개체를 확인하는 가장 보수적인 방법을 사용했는데도, 호우주의보 속에서 여덟 시간여 만에 수십 마리 개체가 관찰됐다"고 말했습니다.

벌목과 도로포장이 예정된 비자림로 삼나무숲 모습
연구진은 이번 용역 기간이 생태 조사를 하기에 짧은 데다, 일부 멸종위기종의 경우 주 활동 시기와 조사 기간이 맞지 않아, 서식 정보를 제대로 확인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습니다.

"생물 종 다양성 재확인…환경영향 저감 방안 마련해야"
대체서식지 조성엔 '회의적', '공사 중단' 요구도

연구진들은 도로 확장·포장 공사가 도로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이르기까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도로 공사 과정에서 주변 지역의 서식지 파괴가 불가피한 데다 도로가 넓어지면 차량이 빠르게 오가면서 소음과 광공해를 일으키고, 야생동물의 로드킬 위험도 덩달아 커진다는 겁니다.

조사자는 이 때문에 예정대로 공사한다면 확장 폭을 최소화하고, 전 구간에 걸쳐 과속방지턱과 과속카메라를 설치해 저속 주행을 유도하라고 권고합니다.


멸종위기종을 위한 '대체 서식지' 마련에 회의적인 시각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 같이 촘촘히 연결된 생태계 전체를 다른 지역에 옮겨 이식한다는 것은 국내에 성공사례가 전혀 없을뿐더러, 세계적으로도 드물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조사자들은 결론에서 이번 공사로 인한 생태계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또 멸종위기종이나 보호종 서식지에 대한 개발이 불가피할 때는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관련 뉴스 링크]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88939 [단독]“생물종 다양성 재확인·환경영향 저감 방안 마련해야”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89917“대체서식지 사실상 불가능…저감방안 마련·공사 최소화”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91742 비자림로 추가 용역 보고서…이번엔 환경저감대책 이행하나?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