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쉽지 않아” 검사 훈계에…“정의가 뭐냐” 맞받은 숙명여고 쌍둥이

입력 2020.07.17 (14:2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울 숙명여고 교무부장이던 아버지와 공모해 학교 정기고사 시험 문제를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쌍둥이 자매의 재판이 오늘(17일)로 마무리됐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송승훈 부장판사는 오늘,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현 씨 자매에 대한 결심 공판을 진행했습니다.

현 씨 자매는 숙명여고에 재학 중이던 2017년 2학기부터 2019년 1학기까지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교무부장이던 아버지로부터 시험지와 답안지를 시험 전에 미리 받아 시험을 치르는 등, 숙명여고의 성적 평가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죠.

앞서 재판에 넘겨진 쌍둥이 자매의 아버지는 업무방해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는데요. 딸들에겐 어떤 법적 판단이 내려질까요? 오늘 재판에서도 명백한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검찰과,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는 쌍둥이 측의 공방이 팽팽하게 이어졌습니다.

■ 검찰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깨닫길 바라"

검찰은 자매에게 각각 장기 3년과 단기 2년의 징역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에게는 소년법에 따라 장기와 단기로 나눠 형기의 상·하한을 둔 부정기형을 선고할 수 있습니다.

검찰은 구형에 앞서, 우리나라의 치열한 입시 현실을 강조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입시를 치러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수험생 자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부모와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위한 정기고사 성적을 향상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는지 잘 알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자매와 아버지는 친구들과 학부모들이 19년간 흘린 피땀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고, 밤잠 줄여가며 공부한 동급생들에게 씻기 어려운 상처를 줬으며,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숙명여고 선생님들에게도 허탈함과 상처를 남겼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공교육 시스템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수시 폐지를 요청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올 만큼 입시 정책에 대한 불신도 키웠다고 했습니다.

검찰은 무엇보다 '강남 8학군'에 속하는 숙명여고에서 성적이 대폭 상승해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압도적인 전교 1등을 한 건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한 사람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믿기 어려운데, 심지어 쌍둥이 자매가 각각 문·이과 1등을 한 건 아주 이례적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전 과목 답안이 모두 적힌 메모카드와 포스트잇이 자매의 집에서 압수된 점, 시험지 좁은 여백에 이른바 '깨알 답안'이 적혀있던 점, 영어시험 정답인 서술형 구문이 휴대전화에 이미 저장돼있던 점, 쌍둥이가 정정 이전의 정답을 답으로 기재한 점, 모의고사 성적과 내신 성적의 차이가 너무 큰 점 등을 증거로 들었습니다. 검찰은 마지막으로 쌍둥이 자매가 여전히 잘못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실형을 구형했습니다.

"피고인들은 1년 6개월간 5차례 정기고사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진 이 사건 범행을 직접 실행했고, 성적 상승의 직접적인 수혜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징역 3년의 중형이 확정된 후에도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고 아무런 반성의 기미도 없습니다. 여전히 실력으로 얻은 정당한 결과라며 자신들과 아버지가 음모의 희생양이 돼 억울하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수사 기관을 조롱하는 태도를 보인 점,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교사를 모욕한 점 등을 보고 매우 놀랐지만, 피고인들의 연령을 고려해 여기서 제시하진 않겠습니다. 본 검사는 피고인들이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고, 거짓말엔 반드시 대가가 따르며, 정의가 살아있다는 점을 깨닫길 바랍니다."


■ 쌍둥이 언니 "융통성 없는 내가 범죄?…검사가 말하는 정의가 뭐냐"

그동안 한결같이 무죄를 주장해왔던 쌍둥이 자매는 최후진술에서도 검찰의 논고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쌍둥이 언니 현 씨는 먼저, '역사학자'라는 자신의 꿈을 언급했습니다. 단순히 역사가 좋다는 가벼운 이유가 아니라, 무언가를 잊고 그것이 사라진다는 충격을 참을 수 없어 품게 된 꿈이라는 설명도 했습니다.

그래서 현 씨는 학교생활 내내 '정확한 기록, 정밀한 언어, 정당한 원칙'에 집착해왔고, 이렇게 융통성 없는 자신이 융통성이 차고 넘치는 것도 모자라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삶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호소했습니다. 또 자신에게 학교는 늘 싸우는 곳이 아니라 노력하는 곳이었다고도 했습니다.

검찰이 모의고사 성적을 가지고 자신을 실력 없는 학생이라 말하지만 실제로 높은 점수를 받은 과목도 있으며, 선생님께 듣고 배운 대로 답안을 작성했을 뿐이라며 혐의 역시 모두 부인했습니다. 맞은 편에 앉아있는 검사를 바라보며 이런 말도 덧붙였죠.

"검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정의가 무엇인지 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 어떤 분이 저한테 괜찮냐고 묻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괜찮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 솔직히 말하면 괜찮지 않습니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한 번도 괜찮았던 적이 없습니다. 괜찮다는 말도 괜찮지 않단 말도 제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이 자리에 살아 있습니다. 저는 인형도 아니고 이야기 속 등장인물도 아닙니다. 이걸 기록해주셨으면 합니다."

쌍둥이 동생 역시 "이제까지 나온 사실들을 종합해서 올바른 판단을 해주시길 부탁드린다"며 짧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쌍둥이 자매의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비록 아버지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었지만, 선입견이나 예단을 갖지 말고 원점에서 판단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직접적인 증거 없이 모두 간접 증거뿐인데, 검찰 측이 무죄 정황을 보여주는 증거들에 대해선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쌍둥이는 아버지가 감옥에 가고 어머니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 이미 가혹할 정도로 상응하는 형벌을 받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제 막 대학교 신입생으로 꿈을 펼칠 나이인 자매에게 이 사건이 평생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지 않을지 안타깝다고도 했습니다. 변호인은 우리 사회가 그렇게 관용과 자비가 없는 사회냐며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쌍둥이 자매에 대한 선고 공판 다음 달 12일 오전 10시에 열립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세상 쉽지 않아” 검사 훈계에…“정의가 뭐냐” 맞받은 숙명여고 쌍둥이
    • 입력 2020-07-17 14:29:55
    취재K
서울 숙명여고 교무부장이던 아버지와 공모해 학교 정기고사 시험 문제를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쌍둥이 자매의 재판이 오늘(17일)로 마무리됐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송승훈 부장판사는 오늘,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현 씨 자매에 대한 결심 공판을 진행했습니다.

현 씨 자매는 숙명여고에 재학 중이던 2017년 2학기부터 2019년 1학기까지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교무부장이던 아버지로부터 시험지와 답안지를 시험 전에 미리 받아 시험을 치르는 등, 숙명여고의 성적 평가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죠.

앞서 재판에 넘겨진 쌍둥이 자매의 아버지는 업무방해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는데요. 딸들에겐 어떤 법적 판단이 내려질까요? 오늘 재판에서도 명백한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검찰과,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는 쌍둥이 측의 공방이 팽팽하게 이어졌습니다.

■ 검찰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깨닫길 바라"

검찰은 자매에게 각각 장기 3년과 단기 2년의 징역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에게는 소년법에 따라 장기와 단기로 나눠 형기의 상·하한을 둔 부정기형을 선고할 수 있습니다.

검찰은 구형에 앞서, 우리나라의 치열한 입시 현실을 강조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입시를 치러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수험생 자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부모와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위한 정기고사 성적을 향상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는지 잘 알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자매와 아버지는 친구들과 학부모들이 19년간 흘린 피땀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고, 밤잠 줄여가며 공부한 동급생들에게 씻기 어려운 상처를 줬으며,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숙명여고 선생님들에게도 허탈함과 상처를 남겼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공교육 시스템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수시 폐지를 요청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올 만큼 입시 정책에 대한 불신도 키웠다고 했습니다.

검찰은 무엇보다 '강남 8학군'에 속하는 숙명여고에서 성적이 대폭 상승해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압도적인 전교 1등을 한 건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한 사람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믿기 어려운데, 심지어 쌍둥이 자매가 각각 문·이과 1등을 한 건 아주 이례적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전 과목 답안이 모두 적힌 메모카드와 포스트잇이 자매의 집에서 압수된 점, 시험지 좁은 여백에 이른바 '깨알 답안'이 적혀있던 점, 영어시험 정답인 서술형 구문이 휴대전화에 이미 저장돼있던 점, 쌍둥이가 정정 이전의 정답을 답으로 기재한 점, 모의고사 성적과 내신 성적의 차이가 너무 큰 점 등을 증거로 들었습니다. 검찰은 마지막으로 쌍둥이 자매가 여전히 잘못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실형을 구형했습니다.

"피고인들은 1년 6개월간 5차례 정기고사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진 이 사건 범행을 직접 실행했고, 성적 상승의 직접적인 수혜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징역 3년의 중형이 확정된 후에도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고 아무런 반성의 기미도 없습니다. 여전히 실력으로 얻은 정당한 결과라며 자신들과 아버지가 음모의 희생양이 돼 억울하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수사 기관을 조롱하는 태도를 보인 점,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교사를 모욕한 점 등을 보고 매우 놀랐지만, 피고인들의 연령을 고려해 여기서 제시하진 않겠습니다. 본 검사는 피고인들이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고, 거짓말엔 반드시 대가가 따르며, 정의가 살아있다는 점을 깨닫길 바랍니다."


■ 쌍둥이 언니 "융통성 없는 내가 범죄?…검사가 말하는 정의가 뭐냐"

그동안 한결같이 무죄를 주장해왔던 쌍둥이 자매는 최후진술에서도 검찰의 논고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쌍둥이 언니 현 씨는 먼저, '역사학자'라는 자신의 꿈을 언급했습니다. 단순히 역사가 좋다는 가벼운 이유가 아니라, 무언가를 잊고 그것이 사라진다는 충격을 참을 수 없어 품게 된 꿈이라는 설명도 했습니다.

그래서 현 씨는 학교생활 내내 '정확한 기록, 정밀한 언어, 정당한 원칙'에 집착해왔고, 이렇게 융통성 없는 자신이 융통성이 차고 넘치는 것도 모자라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삶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호소했습니다. 또 자신에게 학교는 늘 싸우는 곳이 아니라 노력하는 곳이었다고도 했습니다.

검찰이 모의고사 성적을 가지고 자신을 실력 없는 학생이라 말하지만 실제로 높은 점수를 받은 과목도 있으며, 선생님께 듣고 배운 대로 답안을 작성했을 뿐이라며 혐의 역시 모두 부인했습니다. 맞은 편에 앉아있는 검사를 바라보며 이런 말도 덧붙였죠.

"검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정의가 무엇인지 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 어떤 분이 저한테 괜찮냐고 묻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괜찮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 솔직히 말하면 괜찮지 않습니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한 번도 괜찮았던 적이 없습니다. 괜찮다는 말도 괜찮지 않단 말도 제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이 자리에 살아 있습니다. 저는 인형도 아니고 이야기 속 등장인물도 아닙니다. 이걸 기록해주셨으면 합니다."

쌍둥이 동생 역시 "이제까지 나온 사실들을 종합해서 올바른 판단을 해주시길 부탁드린다"며 짧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쌍둥이 자매의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비록 아버지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었지만, 선입견이나 예단을 갖지 말고 원점에서 판단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직접적인 증거 없이 모두 간접 증거뿐인데, 검찰 측이 무죄 정황을 보여주는 증거들에 대해선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쌍둥이는 아버지가 감옥에 가고 어머니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 이미 가혹할 정도로 상응하는 형벌을 받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제 막 대학교 신입생으로 꿈을 펼칠 나이인 자매에게 이 사건이 평생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지 않을지 안타깝다고도 했습니다. 변호인은 우리 사회가 그렇게 관용과 자비가 없는 사회냐며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쌍둥이 자매에 대한 선고 공판 다음 달 12일 오전 10시에 열립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