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톡]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보도…선을 넘은 언론

입력 2020.07.18 (08:01) 수정 2020.07.25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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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박 시장의 실종 사실이 알려진 건 9일 오후 6시경. 언론은 빠르게 관련 소식을 전했는데요. 박 시장의 사망이 확인된 뒤 경찰이 브리핑을 연 10일 새벽 2시까지 8시간 동안 무려 2천3백여 건의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는 박 시장의 소재지와 신변 관련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기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오후 6시 45분경 월간조선이 '[속보] 박원순 시장 시신 발견'이라는 기사를 냈고, 로톡뉴스, YBS뉴스통신 등 여러 온라인 매체들이 앞다퉈 '시신 발견', '사망확인'이라는 속보 기사를 냈습니다. 이들 기사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하자 경찰이 나섰습니다. 언론 등을 통해 나오는 박 시장의 사망설은 오보라는 공식 입장을 전한 겁니다.


심지어 추측을 넘어 책임을 회피하는 기사도 등장했습니다. 연합뉴스가 10일 새벽 0시 31분 '박원순 서울시장 숨진 채 발견된 듯'이란 제목의 기사를 쓴 겁니다. 박원순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됐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런 것 같다는 의미로 읽히는 제목이죠. 실제로 '듯'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러지 아니한 것 같기도 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J' 고정 패널인 임자운 반올림 활동가는 "연합뉴스의 이 기사 제목을 통해서 알 수 있는 팩트는 기자가 시신 발견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면서 "확인하지 않고 이런 기사를 썼다는 건 나중에 생존이 확인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보인다"며 생명에 대한 기자의 인식 수준이 실망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의 사망이 확인된 후에도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는 이어졌습니다. 7월 10일 한겨레 신문은 '인권 강조해오다 '도덕성 치명타'…수습 힘들다 판단한 듯'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사회적 지탄 압박 견디지 못한 듯', '고소당한 상황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죽음의 이유를 추정하고 예단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한겨레는 뒤늦게 해당 기사의 제목을 수정했지만, 성급하게 사망 동기를 분석하려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 등이 함께 제정한 '자살 보도 권고기준 3.0'은 구체적인 자살의 동기를 비롯해 자살 방법과 도구 등을 보도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일 새벽 서울 와룡 공원 앞에서 경찰이 진행한 현장 브리핑에 참석한 취재진은 박원순 시장이 목숨을 끊은 방법과 발견 당시 시신의 상태를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고인과 유족의 명예를 고려해 설명해 줄 수 없다는 경찰의 정중한 거부에도 자살 보도준칙을 어긴 질문은 쏟아졌습니다. 이 장면은 생중계 중인 방송사를 통해 시청자에게 여과 없이 전달됐습니다.


'J'에 특별 출연한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 영상광고학과 교수는 "폭력적인 질문들이 계속 여과 없이 계속 중계를 통해서 대중에게 노출됐다"면서 "당시 중계하던 방송사들도 윤리에 어긋나는 질문을 한다면 방송을 끊어야 하는 문제의식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영상기자협회가 제정한 영상보도가이드라인에는 자살자의 시신을 촬영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 규정을 어긴 언론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는 공영방송인 KBS도 있었습니다. KBS는 7월 10일 아침 뉴스인 뉴스광장에서 박 시장의 시신이 이송되는 장면이 방송됐습니다. 뿌옇게 흐림 처리를 했지만, 시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기에 충분했습니다. KBS 영상취재주간에 해당 화면이 방송된 경위를 문의해 본 결과, 자살 보도준칙에 대한 인식 부족을 인정한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더욱 강화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고 박원순 시장의 장례 절차가 진행 중이던 지난 13일, 박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한 전직 비서 A 씨 측의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언론의 관심은 박 시장의 죽음에서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으로 옮겨졌습니다. 이제 언론은 자살 보도 준칙과 더불어 성범죄 보도 준칙을 고려해야 할 상황이 왔지만, 실제 보도는 준칙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한국 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만든 '성폭력·성희롱 사건 보도 공감 기준 및 실천요강'을 보면, '피해자 우선 보호하기'와 '선정적 자극적 보도 지양하기'를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보도가 쏟아졌고, 심지어는 그래픽 삽화를 활용해 범행 장소를 시각화해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SNS상의 문제적 발언까지도 선별해 기사화하기도 했습니다.


고인 예우, 유족 배려, 피해자 보호.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과 성추행 의혹을 다루는 언론이 가장 우선시했어야 할 할 세 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지켜주는 언론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언론사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로 클릭 수와 트래픽을 지키는 기자를 인정하고, 보상하며 심지어 장려하고 있는 조직 문화와 시스템을 공고히 해왔기 때문입니다.

'J' 고정 패널인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고인과 유가족, 고소인 이 세 사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데 언론이 이 셋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형국을 만들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셋을 모두 존중하는 것이 언론이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저널리즘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입니다. J 99회는 [죽음의 상품화…'듯 보' 언론의 꼼수]라는 주제로 오는 19일 밤 9시 4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됩니다. 이상호 KBS 아나운서, 팟캐스트 MC 최욱,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임자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가 겸 변호사,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이지은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알립니다]
위 기사와 관련해 YBS뉴스통신은 "지난 7월 9일 밤 9시 42분 자사 속보 기사의 제목은 '시신발견'이 아니라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확인'이다"라고 알려와 해당 문구를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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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리톡]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보도…선을 넘은 언론
    • 입력 2020-07-18 08:01:18
    • 수정2020-07-25 21:18:25
    저널리즘 토크쇼 J
지난 9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박 시장의 실종 사실이 알려진 건 9일 오후 6시경. 언론은 빠르게 관련 소식을 전했는데요. 박 시장의 사망이 확인된 뒤 경찰이 브리핑을 연 10일 새벽 2시까지 8시간 동안 무려 2천3백여 건의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는 박 시장의 소재지와 신변 관련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기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오후 6시 45분경 월간조선이 '[속보] 박원순 시장 시신 발견'이라는 기사를 냈고, 로톡뉴스, YBS뉴스통신 등 여러 온라인 매체들이 앞다퉈 '시신 발견', '사망확인'이라는 속보 기사를 냈습니다. 이들 기사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하자 경찰이 나섰습니다. 언론 등을 통해 나오는 박 시장의 사망설은 오보라는 공식 입장을 전한 겁니다.


심지어 추측을 넘어 책임을 회피하는 기사도 등장했습니다. 연합뉴스가 10일 새벽 0시 31분 '박원순 서울시장 숨진 채 발견된 듯'이란 제목의 기사를 쓴 겁니다. 박원순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됐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런 것 같다는 의미로 읽히는 제목이죠. 실제로 '듯'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러지 아니한 것 같기도 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J' 고정 패널인 임자운 반올림 활동가는 "연합뉴스의 이 기사 제목을 통해서 알 수 있는 팩트는 기자가 시신 발견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면서 "확인하지 않고 이런 기사를 썼다는 건 나중에 생존이 확인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보인다"며 생명에 대한 기자의 인식 수준이 실망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의 사망이 확인된 후에도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는 이어졌습니다. 7월 10일 한겨레 신문은 '인권 강조해오다 '도덕성 치명타'…수습 힘들다 판단한 듯'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사회적 지탄 압박 견디지 못한 듯', '고소당한 상황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죽음의 이유를 추정하고 예단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한겨레는 뒤늦게 해당 기사의 제목을 수정했지만, 성급하게 사망 동기를 분석하려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 등이 함께 제정한 '자살 보도 권고기준 3.0'은 구체적인 자살의 동기를 비롯해 자살 방법과 도구 등을 보도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일 새벽 서울 와룡 공원 앞에서 경찰이 진행한 현장 브리핑에 참석한 취재진은 박원순 시장이 목숨을 끊은 방법과 발견 당시 시신의 상태를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고인과 유족의 명예를 고려해 설명해 줄 수 없다는 경찰의 정중한 거부에도 자살 보도준칙을 어긴 질문은 쏟아졌습니다. 이 장면은 생중계 중인 방송사를 통해 시청자에게 여과 없이 전달됐습니다.


'J'에 특별 출연한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 영상광고학과 교수는 "폭력적인 질문들이 계속 여과 없이 계속 중계를 통해서 대중에게 노출됐다"면서 "당시 중계하던 방송사들도 윤리에 어긋나는 질문을 한다면 방송을 끊어야 하는 문제의식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영상기자협회가 제정한 영상보도가이드라인에는 자살자의 시신을 촬영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 규정을 어긴 언론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는 공영방송인 KBS도 있었습니다. KBS는 7월 10일 아침 뉴스인 뉴스광장에서 박 시장의 시신이 이송되는 장면이 방송됐습니다. 뿌옇게 흐림 처리를 했지만, 시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기에 충분했습니다. KBS 영상취재주간에 해당 화면이 방송된 경위를 문의해 본 결과, 자살 보도준칙에 대한 인식 부족을 인정한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더욱 강화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고 박원순 시장의 장례 절차가 진행 중이던 지난 13일, 박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한 전직 비서 A 씨 측의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언론의 관심은 박 시장의 죽음에서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으로 옮겨졌습니다. 이제 언론은 자살 보도 준칙과 더불어 성범죄 보도 준칙을 고려해야 할 상황이 왔지만, 실제 보도는 준칙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한국 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만든 '성폭력·성희롱 사건 보도 공감 기준 및 실천요강'을 보면, '피해자 우선 보호하기'와 '선정적 자극적 보도 지양하기'를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보도가 쏟아졌고, 심지어는 그래픽 삽화를 활용해 범행 장소를 시각화해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SNS상의 문제적 발언까지도 선별해 기사화하기도 했습니다.


고인 예우, 유족 배려, 피해자 보호.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과 성추행 의혹을 다루는 언론이 가장 우선시했어야 할 할 세 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지켜주는 언론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언론사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로 클릭 수와 트래픽을 지키는 기자를 인정하고, 보상하며 심지어 장려하고 있는 조직 문화와 시스템을 공고히 해왔기 때문입니다.

'J' 고정 패널인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고인과 유가족, 고소인 이 세 사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데 언론이 이 셋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형국을 만들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셋을 모두 존중하는 것이 언론이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저널리즘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입니다. J 99회는 [죽음의 상품화…'듯 보' 언론의 꼼수]라는 주제로 오는 19일 밤 9시 4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됩니다. 이상호 KBS 아나운서, 팟캐스트 MC 최욱,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임자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가 겸 변호사,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이지은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알립니다]
위 기사와 관련해 YBS뉴스통신은 "지난 7월 9일 밤 9시 42분 자사 속보 기사의 제목은 '시신발견'이 아니라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확인'이다"라고 알려와 해당 문구를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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