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로맨스 아니라 스토킹입니다”…#스토킹_METOO

입력 2020.07.1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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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킹_METOO

'내가 당한 스토킹을 고발한다'. 최근 트위터에 '#스토킹_METOO'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본인의 스토킹 경험을 고발하는 글들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습니다. 먼저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내가 당한 스토킹을 고발한다. 이십 대 초반에 사귀다 헤어진 남자는 헤어진 이후에도 가족과 살고있는 집에 수차례 찾아왔고 연락을 계속 무시하자 너 때문에 유흥업소에 가도 제대로 즐길 수 없으니 책임지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스토킹은 범죄다. #스토킹_METOO"

"내가 당한 스토킹을 고발한다. 이별통보를 하고 다음 날 오전 전 남친이 집 앞까지 찾아왔다. 밤 8시까지 기다린다는 문자와 함께. 나는 두려움에 집 밖을 벗어날 수 없었다. 스토킹은 낭만이 아니다. #스토킹_METOO"

소셜미디어에서 본인의 스토킹 피해 경험을 고발하는 ‘#스토킹_METOO’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소셜미디어에서 본인의 스토킹 피해 경험을 고발하는 ‘#스토킹_METOO’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일면식 없는 사이에서도

스토킹 가해자는 주로 남편이나 남자친구일 것이라는 인식과 달리,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서 스토킹을 경험했다는 내용이 많은 것도 눈에 띕니다.

"내가 당한 스토킹을 고발한다. 대학생 때 집 근처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여느 때와 같았던 날 퇴근하고 나갔더니 손님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밥을 사준다. 술을 사준다 어쩐다 하더니 알바처(아르바이트 장소)에서 약 10분가량 떨어진 집까지 따라왔다. 아파트 단지였기에 다른 동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느낌이 싸해서 창문 밖을 슬쩍 봤더니 그 남자가 손가락으로 내가 내린 층을 하나하나 세고 있었다. 스토킹은 범죄다. #스토킹_METOO"

"내가 당한 스토킹을 고발한다. 친구들과 술 한 잔 마시고 집에 가던 택시에서 오빠가 용돈도 주고 드라이브도 시켜줄 테니 연락 달라던 택시남. 저녁 즈음이면 동네에 있을 테니 연락 달라던 택시 남 때문에 며칠을 두려움에 떨었다. 스토킹은 남 일이 아니다. #스토킹_METOO"

■ '살인의 전조', 스토킹

이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건 '스토킹은 낭만이 아니라 범죄'라는 겁니다. 그동안 스토킹은 구애나 애정 표현으로, 스토킹 가해자는 '순정남'으로 비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스토킹은 '살인의 전조'라는 인식이 확고해지고 있습니다.

'안인득 사건'에서 안 씨는 아파트 주민 5명을 살해하고 방화하기 전 여고생을 반년 가까이 스토킹했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은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상해 피해가 없었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했습니다. 같은 해 일어난 '등촌동 살인사건' 가해자도 이혼한 부인을 무참히 살해하기 전 스토킹을 해왔습니다.

안인득에게 스토킹 당한 여고생과 가족들은 신변 위협에 집 앞에 CCTV까지 설치하고 경찰에도 수차례 신고했지만, 상해 피해가 없었단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했습니다.안인득에게 스토킹 당한 여고생과 가족들은 신변 위협에 집 앞에 CCTV까지 설치하고 경찰에도 수차례 신고했지만, 상해 피해가 없었단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KBS가 전국 1심 법원에서 선고가 내려진 살인과 살인미수 사건 381건을 분석했을 때, 30%에서 범행 전 스토킹 또는 스토킹 의심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스토킹이 구애가 아니라 살인의 전조, 강력범죄의 전조로 해석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 스토킹 처벌법 마련하라

하지만 스토킹을 처벌하는 별도의 법률은 없습니다. 폭행, 주거 침입 같은 구체적인 범죄 행위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경범죄로 처벌될 뿐입니다. 이때 내는 범칙금은 8만 원으로, 암표 판매 범칙금의 절반 수준입니다.

구체적인 범죄 행위가 나타난다고 해도 처벌은 미약합니다. 지난 2일, 법원은 '결혼해달라'며 대학 선배를 30년간 스토킹한 50대 남성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38번에 걸쳐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보내 협박죄가 적용된 건데, 이 가해자는 이미 피해자를 폭행·협박해 네 차례 처벌받은 전력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여성들과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스토킹을 확실한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을 강화해 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스토킹미투' 운동을 시작한 여성의당이 법안 제정을 촉구하고 있고, 이번 국회에도 스토킹처벌법안 4건이 올라와 있습니다.

■ '재탕 삼탕 법안' 되는 사이, 피해 급증

이 법안들은 특정 행위를 스토킹으로 규정해 범죄화하고, 강력 범죄로 나아가기 전에 피해자 보호조치가 가능하도록 국가가 개입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스토킹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예산 지원 등 정부의 책무도 명시합니다.

사실 스토킹처벌법은 15대 국회부터 꾸준히 발의되고 있습니다. 법안이 처음 발의된 1999년 당시 소관 상임위였던 여성특별위는 "스토킹을 범죄행위로 인식하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이후 스토킹 관련 법안은 매번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며 '재탕 삼탕' 법안으로 전락했습니다.

스토킹방지법이 발의되고 20년이 지나는 동안 ‘사이버 스토킹’ 등 수법은 진화하고 있습니다.스토킹방지법이 발의되고 20년이 지나는 동안 ‘사이버 스토킹’ 등 수법은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20년, '스토킹은 범죄'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 한편 스토킹 수법은 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카메라 등 디지털 장치를 이용한 범죄부터 얼굴과 신체 등을 합성해 퍼뜨리는 '사이버 스토킹'까지 나타나는 상황입니다.

그사이 스토킹 피해는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스토킹을 경범죄로 처벌하기 시작한 2013년 312명이던 검거자가 지난해 583명으로 두 배가량 늘었습니다. 전체 신고 건수는 검거 건수보다 열 배가량 많았습니다.

※ KBS는 스토킹과 관련한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보는 전화 02-781-4444번으로나, 카카오톡에서 'KBS 제보'를 검색하셔서 친구 맺기를 하신 뒤 보내실 수 있습니다. KBS 뉴스는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갑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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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거, 로맨스 아니라 스토킹입니다”…#스토킹_METOO
    • 입력 2020-07-18 08:01:18
    취재K
■ #스토킹_METOO

'내가 당한 스토킹을 고발한다'. 최근 트위터에 '#스토킹_METOO'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본인의 스토킹 경험을 고발하는 글들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습니다. 먼저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내가 당한 스토킹을 고발한다. 이십 대 초반에 사귀다 헤어진 남자는 헤어진 이후에도 가족과 살고있는 집에 수차례 찾아왔고 연락을 계속 무시하자 너 때문에 유흥업소에 가도 제대로 즐길 수 없으니 책임지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스토킹은 범죄다. #스토킹_METOO"

"내가 당한 스토킹을 고발한다. 이별통보를 하고 다음 날 오전 전 남친이 집 앞까지 찾아왔다. 밤 8시까지 기다린다는 문자와 함께. 나는 두려움에 집 밖을 벗어날 수 없었다. 스토킹은 낭만이 아니다. #스토킹_METOO"

소셜미디어에서 본인의 스토킹 피해 경험을 고발하는 ‘#스토킹_METOO’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일면식 없는 사이에서도

스토킹 가해자는 주로 남편이나 남자친구일 것이라는 인식과 달리,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서 스토킹을 경험했다는 내용이 많은 것도 눈에 띕니다.

"내가 당한 스토킹을 고발한다. 대학생 때 집 근처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여느 때와 같았던 날 퇴근하고 나갔더니 손님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밥을 사준다. 술을 사준다 어쩐다 하더니 알바처(아르바이트 장소)에서 약 10분가량 떨어진 집까지 따라왔다. 아파트 단지였기에 다른 동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느낌이 싸해서 창문 밖을 슬쩍 봤더니 그 남자가 손가락으로 내가 내린 층을 하나하나 세고 있었다. 스토킹은 범죄다. #스토킹_METOO"

"내가 당한 스토킹을 고발한다. 친구들과 술 한 잔 마시고 집에 가던 택시에서 오빠가 용돈도 주고 드라이브도 시켜줄 테니 연락 달라던 택시남. 저녁 즈음이면 동네에 있을 테니 연락 달라던 택시 남 때문에 며칠을 두려움에 떨었다. 스토킹은 남 일이 아니다. #스토킹_METOO"

■ '살인의 전조', 스토킹

이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건 '스토킹은 낭만이 아니라 범죄'라는 겁니다. 그동안 스토킹은 구애나 애정 표현으로, 스토킹 가해자는 '순정남'으로 비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스토킹은 '살인의 전조'라는 인식이 확고해지고 있습니다.

'안인득 사건'에서 안 씨는 아파트 주민 5명을 살해하고 방화하기 전 여고생을 반년 가까이 스토킹했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은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상해 피해가 없었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했습니다. 같은 해 일어난 '등촌동 살인사건' 가해자도 이혼한 부인을 무참히 살해하기 전 스토킹을 해왔습니다.

안인득에게 스토킹 당한 여고생과 가족들은 신변 위협에 집 앞에 CCTV까지 설치하고 경찰에도 수차례 신고했지만, 상해 피해가 없었단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KBS가 전국 1심 법원에서 선고가 내려진 살인과 살인미수 사건 381건을 분석했을 때, 30%에서 범행 전 스토킹 또는 스토킹 의심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스토킹이 구애가 아니라 살인의 전조, 강력범죄의 전조로 해석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 스토킹 처벌법 마련하라

하지만 스토킹을 처벌하는 별도의 법률은 없습니다. 폭행, 주거 침입 같은 구체적인 범죄 행위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경범죄로 처벌될 뿐입니다. 이때 내는 범칙금은 8만 원으로, 암표 판매 범칙금의 절반 수준입니다.

구체적인 범죄 행위가 나타난다고 해도 처벌은 미약합니다. 지난 2일, 법원은 '결혼해달라'며 대학 선배를 30년간 스토킹한 50대 남성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38번에 걸쳐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보내 협박죄가 적용된 건데, 이 가해자는 이미 피해자를 폭행·협박해 네 차례 처벌받은 전력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여성들과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스토킹을 확실한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을 강화해 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스토킹미투' 운동을 시작한 여성의당이 법안 제정을 촉구하고 있고, 이번 국회에도 스토킹처벌법안 4건이 올라와 있습니다.

■ '재탕 삼탕 법안' 되는 사이, 피해 급증

이 법안들은 특정 행위를 스토킹으로 규정해 범죄화하고, 강력 범죄로 나아가기 전에 피해자 보호조치가 가능하도록 국가가 개입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스토킹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예산 지원 등 정부의 책무도 명시합니다.

사실 스토킹처벌법은 15대 국회부터 꾸준히 발의되고 있습니다. 법안이 처음 발의된 1999년 당시 소관 상임위였던 여성특별위는 "스토킹을 범죄행위로 인식하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이후 스토킹 관련 법안은 매번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며 '재탕 삼탕' 법안으로 전락했습니다.

스토킹방지법이 발의되고 20년이 지나는 동안 ‘사이버 스토킹’ 등 수법은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20년, '스토킹은 범죄'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 한편 스토킹 수법은 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카메라 등 디지털 장치를 이용한 범죄부터 얼굴과 신체 등을 합성해 퍼뜨리는 '사이버 스토킹'까지 나타나는 상황입니다.

그사이 스토킹 피해는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스토킹을 경범죄로 처벌하기 시작한 2013년 312명이던 검거자가 지난해 583명으로 두 배가량 늘었습니다. 전체 신고 건수는 검거 건수보다 열 배가량 많았습니다.

※ KBS는 스토킹과 관련한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보는 전화 02-781-4444번으로나, 카카오톡에서 'KBS 제보'를 검색하셔서 친구 맺기를 하신 뒤 보내실 수 있습니다. KBS 뉴스는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갑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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