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위탁관리만 맡고 있습니다. 교체는 보건소에서 해야죠."
하루 2만여 명이 오가는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역무실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 구석에 자동심장충격기가 설치돼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을 때 환자의 가슴에 패치를 붙여 전기 충격을 주는 기계입니다.
심정지 환자의 골든타임(구조 최적시간)은 4분으로 119구급대가 도착하기 전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부산 시내 지하철역에는 모두 39개가 설치되어 있고, 넓고 긴 도시철도 부산역 안에는 단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그 안을 열어보니 가슴에 붙이는 패드의 사용기한이 이미 두 달 가까이 지났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뚜껑은 벌어져 당장 제대로 닫히지 않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역무실에서는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는 답변만 내놓았습니다. 위탁 관리는 하고 있지만, 부품 교체 등 최종 책임은 지방자치단체 보건소에 있다는 겁니다. 담당 보건소는 예산이 부족했다고 해명합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다녀간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패치가 교체됐습니다. 문제가 있는 지 확인만 하면 된다는 교통공사 측과 예산이 부족하다더니 몇 시간 만에 패드를 교체한 보건소 모두 책임회피에 급급했습니다.
설치만 우후죽순…부산에만 3,100여 대
도시철도 내에 설치된 자동심장충격기는 부산시 감사에서도 지적됐습니다. 부산시가 부산교통공사를 상대로 벌인 감사에서 자동심장충격기 39개 중 배터리 이상과 패치 유통기한 경과로 지적을 받은 건수가 3건입니다. 얼핏 보면 많지 않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그 지하철에서 환자가 발생했을 때, 119구급대가 도착하기 전에 자동 심장충격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결국 아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패치는 시간이 지나면 젤이 굳어 부착이 잘되지 않고, 배터리는 이상이 생기면 사용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만큼 설치 이후에 관리가 더 중요한 장치입니다.
자동심장충격기는 2018년 정부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의무 구비시설로 지정했습니다. 500세대 이상의 아파트, 20t 이상 선박, 공공의료시설 등에 비치하도록 했습니다. 설치하지 않으면 과태료도 부과합니다.
이 때문에 최근 2년 사이 자동심장충격기 설치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고, 부산에서만 6월 말 기준 3,100여 대의 자동심장충격기가 설치됐습니다. 또 법적 의무는 없지만,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지하철역 등 다중이용시설에는 보건복지부가 예산을 지원해 지자체가 설치하고 관리까지 맡고 있습니다.
관리자도 모르는 사용법, 점검도 부실
그러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자체는 의무 구비시설에 관리자를 지정해 교육과 관리를 맡기고 있습니다.
현장을 방문했을 때 사용법을 제대로 아는 관리자는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취재진이 방문한 한 아파트에서는 자동심장충격기가 설치된 전기실의 문이 아예 잠겨있었습니다. 500세대 이상의 아파트 단지라 사용하려면 먼 곳에서는 10분 가까이 뛰어와 문까지 열어야 하는 지경입니다.
하지만 부산시가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서류에는 해당 아파트의 자동 심장충격기가 누구든지 접근해 상시사용이 가능한 곳이라고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아파트 관계자들은 사용한 적도 없었다며 열어달라면 열어주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거기다 사용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밖에도 매년 보건복지부의 지시가 내려오면 지자체마다 의무 구비시설을 대상으로 점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올해는 코로나19로 무산됐습니다. 코로나19만 아니면 점검은 충분히 가능한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아예 대상 현황도 파악하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선박입니다.
한 명이 700척 이상 관리…사실상 점검 사각지대
바다를 낀 부산의 특성상 자동심장충격기 의무 구비대상의 절반 가까이인 1,300여 곳이 선박입니다. 20t 이상의 선박 전체가 해당하는데, 어선과 화물선 등 종류도 크기도 다양합니다.
선박을 관리하는 조합들은 법 개정에 따라 선박 내 설치하는 자동심장충격기를 각자 공동구매했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간 선박도 설치한 지 3년가량이 되는 자동심장충격기를 선박 내에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담당자는 처음 선박에 설치한 내역을 보건소에 신고한 이후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후 관리가 어떻게 되는지, 부품 교체는 이뤄졌는지를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나마 조합에서 일괄적으로 부품 교체를 해주어 당장 사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선박 대부분이 이처럼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담당 보건소에 이유를 물어보니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인력'이라고 답했습니다. 구·군별로 자동심장충격기 담당자는 1명뿐입니다. 항만을 낀 구·군은 부산에 9곳인데, 이 가운데 동구에는 700여 척의 어선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한 명이 700척 이상의 선박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데, 20t 이상 선박들은 장기 출항하는 경우가 많고, 멀리 나가면 연락도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설치 대상인 선박이 존재하는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경우가 300 건 가까이 됩니다. 직원 한 명이 이 모든 일을 감당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3박자 관리, 전략적 배치·지속적 교육·통합 관리
응급의료 전문가들은 관리 체계에 허점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자동심장충격기 구비대상만 늘렸을 뿐 꼭 필요한 곳에 설치됐는지, 앞으로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충분하지 않다는 겁니다.
119구급대가 바로 출동하기 어려운 장소, 사람의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 충분한 교육, 이 삼박자가 어우러져야 합니다.
단순히 설치 대수만 늘리고 관리를 구·군 담당자 한 명에게만 맡긴다는 건 방관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선박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박에 설치된 다양한 응급의료시스템은 출항한 이후에 위급상황에 처하는 환자를 위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갖춰져야 하고, 관리도 통합적으로 진행해야 누락되는 지점이 생기지 않습니다.
응급의료에 관한 통합 시스템을 마련해 인력과 계획을 다시 수립하지 않으면 지금의 자동심장충격기는 제힘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마련한 자동심장충격기, 골든타임을 지키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한 때입니다.
하루 2만여 명이 오가는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역무실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 구석에 자동심장충격기가 설치돼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을 때 환자의 가슴에 패치를 붙여 전기 충격을 주는 기계입니다.
심정지 환자의 골든타임(구조 최적시간)은 4분으로 119구급대가 도착하기 전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부산 시내 지하철역에는 모두 39개가 설치되어 있고, 넓고 긴 도시철도 부산역 안에는 단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그 안을 열어보니 가슴에 붙이는 패드의 사용기한이 이미 두 달 가까이 지났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뚜껑은 벌어져 당장 제대로 닫히지 않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역무실에서는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는 답변만 내놓았습니다. 위탁 관리는 하고 있지만, 부품 교체 등 최종 책임은 지방자치단체 보건소에 있다는 겁니다. 담당 보건소는 예산이 부족했다고 해명합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다녀간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패치가 교체됐습니다. 문제가 있는 지 확인만 하면 된다는 교통공사 측과 예산이 부족하다더니 몇 시간 만에 패드를 교체한 보건소 모두 책임회피에 급급했습니다.
설치만 우후죽순…부산에만 3,100여 대
도시철도 내에 설치된 자동심장충격기는 부산시 감사에서도 지적됐습니다. 부산시가 부산교통공사를 상대로 벌인 감사에서 자동심장충격기 39개 중 배터리 이상과 패치 유통기한 경과로 지적을 받은 건수가 3건입니다. 얼핏 보면 많지 않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그 지하철에서 환자가 발생했을 때, 119구급대가 도착하기 전에 자동 심장충격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결국 아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패치는 시간이 지나면 젤이 굳어 부착이 잘되지 않고, 배터리는 이상이 생기면 사용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만큼 설치 이후에 관리가 더 중요한 장치입니다.
자동심장충격기는 2018년 정부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의무 구비시설로 지정했습니다. 500세대 이상의 아파트, 20t 이상 선박, 공공의료시설 등에 비치하도록 했습니다. 설치하지 않으면 과태료도 부과합니다.
이 때문에 최근 2년 사이 자동심장충격기 설치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고, 부산에서만 6월 말 기준 3,100여 대의 자동심장충격기가 설치됐습니다. 또 법적 의무는 없지만,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지하철역 등 다중이용시설에는 보건복지부가 예산을 지원해 지자체가 설치하고 관리까지 맡고 있습니다.
관리자도 모르는 사용법, 점검도 부실
그러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자체는 의무 구비시설에 관리자를 지정해 교육과 관리를 맡기고 있습니다.
현장을 방문했을 때 사용법을 제대로 아는 관리자는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취재진이 방문한 한 아파트에서는 자동심장충격기가 설치된 전기실의 문이 아예 잠겨있었습니다. 500세대 이상의 아파트 단지라 사용하려면 먼 곳에서는 10분 가까이 뛰어와 문까지 열어야 하는 지경입니다.
하지만 부산시가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서류에는 해당 아파트의 자동 심장충격기가 누구든지 접근해 상시사용이 가능한 곳이라고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아파트 관계자들은 사용한 적도 없었다며 열어달라면 열어주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거기다 사용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밖에도 매년 보건복지부의 지시가 내려오면 지자체마다 의무 구비시설을 대상으로 점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올해는 코로나19로 무산됐습니다. 코로나19만 아니면 점검은 충분히 가능한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아예 대상 현황도 파악하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선박입니다.
한 명이 700척 이상 관리…사실상 점검 사각지대
바다를 낀 부산의 특성상 자동심장충격기 의무 구비대상의 절반 가까이인 1,300여 곳이 선박입니다. 20t 이상의 선박 전체가 해당하는데, 어선과 화물선 등 종류도 크기도 다양합니다.
선박을 관리하는 조합들은 법 개정에 따라 선박 내 설치하는 자동심장충격기를 각자 공동구매했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간 선박도 설치한 지 3년가량이 되는 자동심장충격기를 선박 내에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담당자는 처음 선박에 설치한 내역을 보건소에 신고한 이후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후 관리가 어떻게 되는지, 부품 교체는 이뤄졌는지를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나마 조합에서 일괄적으로 부품 교체를 해주어 당장 사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선박 대부분이 이처럼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담당 보건소에 이유를 물어보니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인력'이라고 답했습니다. 구·군별로 자동심장충격기 담당자는 1명뿐입니다. 항만을 낀 구·군은 부산에 9곳인데, 이 가운데 동구에는 700여 척의 어선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한 명이 700척 이상의 선박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데, 20t 이상 선박들은 장기 출항하는 경우가 많고, 멀리 나가면 연락도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설치 대상인 선박이 존재하는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경우가 300 건 가까이 됩니다. 직원 한 명이 이 모든 일을 감당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3박자 관리, 전략적 배치·지속적 교육·통합 관리
응급의료 전문가들은 관리 체계에 허점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자동심장충격기 구비대상만 늘렸을 뿐 꼭 필요한 곳에 설치됐는지, 앞으로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충분하지 않다는 겁니다.
119구급대가 바로 출동하기 어려운 장소, 사람의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 충분한 교육, 이 삼박자가 어우러져야 합니다.
단순히 설치 대수만 늘리고 관리를 구·군 담당자 한 명에게만 맡긴다는 건 방관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선박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박에 설치된 다양한 응급의료시스템은 출항한 이후에 위급상황에 처하는 환자를 위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갖춰져야 하고, 관리도 통합적으로 진행해야 누락되는 지점이 생기지 않습니다.
응급의료에 관한 통합 시스템을 마련해 인력과 계획을 다시 수립하지 않으면 지금의 자동심장충격기는 제힘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마련한 자동심장충격기, 골든타임을 지키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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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타임’ 지키는 자동심장충격기…고장나고 잠궈놓고
-
- 입력 2020-07-18 11:02:05
"저희는 위탁관리만 맡고 있습니다. 교체는 보건소에서 해야죠."
하루 2만여 명이 오가는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역무실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 구석에 자동심장충격기가 설치돼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을 때 환자의 가슴에 패치를 붙여 전기 충격을 주는 기계입니다.
심정지 환자의 골든타임(구조 최적시간)은 4분으로 119구급대가 도착하기 전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부산 시내 지하철역에는 모두 39개가 설치되어 있고, 넓고 긴 도시철도 부산역 안에는 단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그 안을 열어보니 가슴에 붙이는 패드의 사용기한이 이미 두 달 가까이 지났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뚜껑은 벌어져 당장 제대로 닫히지 않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역무실에서는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는 답변만 내놓았습니다. 위탁 관리는 하고 있지만, 부품 교체 등 최종 책임은 지방자치단체 보건소에 있다는 겁니다. 담당 보건소는 예산이 부족했다고 해명합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다녀간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패치가 교체됐습니다. 문제가 있는 지 확인만 하면 된다는 교통공사 측과 예산이 부족하다더니 몇 시간 만에 패드를 교체한 보건소 모두 책임회피에 급급했습니다.
설치만 우후죽순…부산에만 3,100여 대
도시철도 내에 설치된 자동심장충격기는 부산시 감사에서도 지적됐습니다. 부산시가 부산교통공사를 상대로 벌인 감사에서 자동심장충격기 39개 중 배터리 이상과 패치 유통기한 경과로 지적을 받은 건수가 3건입니다. 얼핏 보면 많지 않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그 지하철에서 환자가 발생했을 때, 119구급대가 도착하기 전에 자동 심장충격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결국 아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패치는 시간이 지나면 젤이 굳어 부착이 잘되지 않고, 배터리는 이상이 생기면 사용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만큼 설치 이후에 관리가 더 중요한 장치입니다.
자동심장충격기는 2018년 정부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의무 구비시설로 지정했습니다. 500세대 이상의 아파트, 20t 이상 선박, 공공의료시설 등에 비치하도록 했습니다. 설치하지 않으면 과태료도 부과합니다.
이 때문에 최근 2년 사이 자동심장충격기 설치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고, 부산에서만 6월 말 기준 3,100여 대의 자동심장충격기가 설치됐습니다. 또 법적 의무는 없지만,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지하철역 등 다중이용시설에는 보건복지부가 예산을 지원해 지자체가 설치하고 관리까지 맡고 있습니다.
관리자도 모르는 사용법, 점검도 부실
그러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자체는 의무 구비시설에 관리자를 지정해 교육과 관리를 맡기고 있습니다.
현장을 방문했을 때 사용법을 제대로 아는 관리자는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취재진이 방문한 한 아파트에서는 자동심장충격기가 설치된 전기실의 문이 아예 잠겨있었습니다. 500세대 이상의 아파트 단지라 사용하려면 먼 곳에서는 10분 가까이 뛰어와 문까지 열어야 하는 지경입니다.
하지만 부산시가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서류에는 해당 아파트의 자동 심장충격기가 누구든지 접근해 상시사용이 가능한 곳이라고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아파트 관계자들은 사용한 적도 없었다며 열어달라면 열어주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거기다 사용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밖에도 매년 보건복지부의 지시가 내려오면 지자체마다 의무 구비시설을 대상으로 점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올해는 코로나19로 무산됐습니다. 코로나19만 아니면 점검은 충분히 가능한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아예 대상 현황도 파악하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선박입니다.
한 명이 700척 이상 관리…사실상 점검 사각지대
바다를 낀 부산의 특성상 자동심장충격기 의무 구비대상의 절반 가까이인 1,300여 곳이 선박입니다. 20t 이상의 선박 전체가 해당하는데, 어선과 화물선 등 종류도 크기도 다양합니다.
선박을 관리하는 조합들은 법 개정에 따라 선박 내 설치하는 자동심장충격기를 각자 공동구매했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간 선박도 설치한 지 3년가량이 되는 자동심장충격기를 선박 내에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담당자는 처음 선박에 설치한 내역을 보건소에 신고한 이후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후 관리가 어떻게 되는지, 부품 교체는 이뤄졌는지를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나마 조합에서 일괄적으로 부품 교체를 해주어 당장 사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선박 대부분이 이처럼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담당 보건소에 이유를 물어보니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인력'이라고 답했습니다. 구·군별로 자동심장충격기 담당자는 1명뿐입니다. 항만을 낀 구·군은 부산에 9곳인데, 이 가운데 동구에는 700여 척의 어선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한 명이 700척 이상의 선박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데, 20t 이상 선박들은 장기 출항하는 경우가 많고, 멀리 나가면 연락도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설치 대상인 선박이 존재하는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경우가 300 건 가까이 됩니다. 직원 한 명이 이 모든 일을 감당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3박자 관리, 전략적 배치·지속적 교육·통합 관리
응급의료 전문가들은 관리 체계에 허점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자동심장충격기 구비대상만 늘렸을 뿐 꼭 필요한 곳에 설치됐는지, 앞으로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충분하지 않다는 겁니다.
119구급대가 바로 출동하기 어려운 장소, 사람의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 충분한 교육, 이 삼박자가 어우러져야 합니다.
단순히 설치 대수만 늘리고 관리를 구·군 담당자 한 명에게만 맡긴다는 건 방관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선박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박에 설치된 다양한 응급의료시스템은 출항한 이후에 위급상황에 처하는 환자를 위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갖춰져야 하고, 관리도 통합적으로 진행해야 누락되는 지점이 생기지 않습니다.
응급의료에 관한 통합 시스템을 마련해 인력과 계획을 다시 수립하지 않으면 지금의 자동심장충격기는 제힘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마련한 자동심장충격기, 골든타임을 지키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한 때입니다.
하루 2만여 명이 오가는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역무실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 구석에 자동심장충격기가 설치돼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을 때 환자의 가슴에 패치를 붙여 전기 충격을 주는 기계입니다.
심정지 환자의 골든타임(구조 최적시간)은 4분으로 119구급대가 도착하기 전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부산 시내 지하철역에는 모두 39개가 설치되어 있고, 넓고 긴 도시철도 부산역 안에는 단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그 안을 열어보니 가슴에 붙이는 패드의 사용기한이 이미 두 달 가까이 지났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뚜껑은 벌어져 당장 제대로 닫히지 않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역무실에서는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는 답변만 내놓았습니다. 위탁 관리는 하고 있지만, 부품 교체 등 최종 책임은 지방자치단체 보건소에 있다는 겁니다. 담당 보건소는 예산이 부족했다고 해명합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다녀간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패치가 교체됐습니다. 문제가 있는 지 확인만 하면 된다는 교통공사 측과 예산이 부족하다더니 몇 시간 만에 패드를 교체한 보건소 모두 책임회피에 급급했습니다.
설치만 우후죽순…부산에만 3,100여 대
도시철도 내에 설치된 자동심장충격기는 부산시 감사에서도 지적됐습니다. 부산시가 부산교통공사를 상대로 벌인 감사에서 자동심장충격기 39개 중 배터리 이상과 패치 유통기한 경과로 지적을 받은 건수가 3건입니다. 얼핏 보면 많지 않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그 지하철에서 환자가 발생했을 때, 119구급대가 도착하기 전에 자동 심장충격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결국 아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패치는 시간이 지나면 젤이 굳어 부착이 잘되지 않고, 배터리는 이상이 생기면 사용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만큼 설치 이후에 관리가 더 중요한 장치입니다.
자동심장충격기는 2018년 정부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의무 구비시설로 지정했습니다. 500세대 이상의 아파트, 20t 이상 선박, 공공의료시설 등에 비치하도록 했습니다. 설치하지 않으면 과태료도 부과합니다.
이 때문에 최근 2년 사이 자동심장충격기 설치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고, 부산에서만 6월 말 기준 3,100여 대의 자동심장충격기가 설치됐습니다. 또 법적 의무는 없지만,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지하철역 등 다중이용시설에는 보건복지부가 예산을 지원해 지자체가 설치하고 관리까지 맡고 있습니다.
관리자도 모르는 사용법, 점검도 부실
그러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자체는 의무 구비시설에 관리자를 지정해 교육과 관리를 맡기고 있습니다.
현장을 방문했을 때 사용법을 제대로 아는 관리자는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취재진이 방문한 한 아파트에서는 자동심장충격기가 설치된 전기실의 문이 아예 잠겨있었습니다. 500세대 이상의 아파트 단지라 사용하려면 먼 곳에서는 10분 가까이 뛰어와 문까지 열어야 하는 지경입니다.
하지만 부산시가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서류에는 해당 아파트의 자동 심장충격기가 누구든지 접근해 상시사용이 가능한 곳이라고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아파트 관계자들은 사용한 적도 없었다며 열어달라면 열어주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거기다 사용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밖에도 매년 보건복지부의 지시가 내려오면 지자체마다 의무 구비시설을 대상으로 점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올해는 코로나19로 무산됐습니다. 코로나19만 아니면 점검은 충분히 가능한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아예 대상 현황도 파악하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선박입니다.
한 명이 700척 이상 관리…사실상 점검 사각지대
바다를 낀 부산의 특성상 자동심장충격기 의무 구비대상의 절반 가까이인 1,300여 곳이 선박입니다. 20t 이상의 선박 전체가 해당하는데, 어선과 화물선 등 종류도 크기도 다양합니다.
선박을 관리하는 조합들은 법 개정에 따라 선박 내 설치하는 자동심장충격기를 각자 공동구매했습니다. 취재진이 찾아간 선박도 설치한 지 3년가량이 되는 자동심장충격기를 선박 내에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담당자는 처음 선박에 설치한 내역을 보건소에 신고한 이후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후 관리가 어떻게 되는지, 부품 교체는 이뤄졌는지를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나마 조합에서 일괄적으로 부품 교체를 해주어 당장 사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선박 대부분이 이처럼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담당 보건소에 이유를 물어보니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인력'이라고 답했습니다. 구·군별로 자동심장충격기 담당자는 1명뿐입니다. 항만을 낀 구·군은 부산에 9곳인데, 이 가운데 동구에는 700여 척의 어선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한 명이 700척 이상의 선박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데, 20t 이상 선박들은 장기 출항하는 경우가 많고, 멀리 나가면 연락도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설치 대상인 선박이 존재하는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경우가 300 건 가까이 됩니다. 직원 한 명이 이 모든 일을 감당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3박자 관리, 전략적 배치·지속적 교육·통합 관리
응급의료 전문가들은 관리 체계에 허점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자동심장충격기 구비대상만 늘렸을 뿐 꼭 필요한 곳에 설치됐는지, 앞으로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충분하지 않다는 겁니다.
119구급대가 바로 출동하기 어려운 장소, 사람의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 충분한 교육, 이 삼박자가 어우러져야 합니다.
단순히 설치 대수만 늘리고 관리를 구·군 담당자 한 명에게만 맡긴다는 건 방관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선박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박에 설치된 다양한 응급의료시스템은 출항한 이후에 위급상황에 처하는 환자를 위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갖춰져야 하고, 관리도 통합적으로 진행해야 누락되는 지점이 생기지 않습니다.
응급의료에 관한 통합 시스템을 마련해 인력과 계획을 다시 수립하지 않으면 지금의 자동심장충격기는 제힘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마련한 자동심장충격기, 골든타임을 지키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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