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음식물쓰레기 감량기…전기료 ‘폭탄’에 A/S도 안 돼 음식점마다 ‘전전긍긍’

입력 2020.07.1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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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음식점을 창업하려면 '경차'를 살 만큼의 목돈을 들여 도입해야 하는 기계가 있습니다. 바로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입니다. 영업용 100kg 처리용량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는 대개 천만 원 후반에서 2천만 원대, 많게는 3천만 원을 호가해 차 한 대 값을 호가합니다.

제주지역 음식점과 관광숙박업소, 집단급식소 등 1,700곳이 넘는 음식물 쓰레기 다량 배출사업장이 이러한 고가의 감량기를 '울며 겨자 먹기'로 구매해야 하는데요. 제주도가 구입 금액의 50%, 천만 원까지를 보조금으로 지원하고는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부담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KBS 취재진이 보조금으로 감량기를 도입한 음식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제는 과도한 초기비용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수천만 원짜리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 그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전기요금 '폭탄' 썩는 냄새까지… A/S 안 돼 기기 버리기도


현장에서 우려하는 가장 큰 문제는 잦은 고장과 A/S 문제였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를 도입한 제주시 내 A 음식점은 천만 원이 넘는 돈을 날렸습니다. 기계를 몇 년 쓰지도 못했는데 자꾸 고장 나더니, A/S를 해줄 판매 업체마저 도산해버렸기 때문입니다. A 음식점 주인은 "업체 도산으로 다른 지역에 있는 기계 제조 공장까지 찾아다녔다"며 "A/S도 제대로 보증 안 되는 품질 미달의 감량기가 시중에 많지만, 제주도에선 감량기를 사라고 등 떠밀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악취입니다. B 음식점은 심각한 악취 탓에 감량기 설치 하루 만에 도입을 철회했습니다. 크기가 경차만큼 커서 부엌 대신 건물 바깥에 설치했는데도 손님들의 악취 민원이 발생한 겁니다. B음식점주는 "냄새가 환풍기를 통해 매장까지 들어와 도저히 매장 운영이 안 됐다"며 "당시 수십 군데 감량기 판매 업체가 홍보해와 고르고 골라 선택했지만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전기요금도 부담입니다. 지난해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를 도입한 C 음식점은 한전에 전기 증설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여름철에 매장 에어컨을 감량기와 함께 가동해보니 누전 차단기가 계속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C 음식점 주인은 "감량기를 쓴 뒤 매달 추가로 내는 전기요금이 30만 원가량"이라며 "1년에 400만 원에 육박하는 전기요금이 오롯이 감량기 운영비로 들어간다"고 토로했습니다.


설치 공간 확보가 어렵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D 음식점은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 기종을 바꿔보고 설치공간을 신설했지만, 결국 기계를 철거했습니다. D 음식점 주인은 임대받은 식당 안에 감량기를 설치했다가 악취로 이웃의 항의를 받았고, 건물 바깥에 수백만 원을 들여 비가림시설을 설치해 또 다른 기종 감량기를 뒀습니다. 그런데 건물 외부 비가림시설에 두면 건축법 위반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점주는 민원이 들어올까 전전긍긍하다 결국 감량기를 치워버렸습니다. D 음식점주는 "음식점 대부분이 임대를 받아 장사하는데 주변 민원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불법을 저지르며 감량기를 쓸 수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문제점은 더 있습니다. 감량기에서 발생하는 찌꺼기를 퇴비로 뿌려보니 염분 탓에 감귤나무가 죽어버리는 일이 여러 곳에서 발생한 겁니다. 도입 업소들은 퇴비 재활용이 어려운 감량기 찌꺼기를 종량제 봉투로 버려야 해 이중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밤새 가동되는 감량기 소음으로 세 들어 살던 이웃이 잠을 못 자 이사 가버린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제도 도입 4년째 이행률 절반 못 넘겨…땜질식 쓰레기 정책 '피해는 도민 몫'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로 빚어지는 갖가지 문제들로 설치 이행률도 지지부진합니다. 제주에 음식물 쓰레기 자체처리를 의무화한 조례 도입 4년째, 대상 업소 1,790여 곳 가운데 감량기를 설치하거나 위탁운영을 맡긴 업소는 절반도 채 안 됩니다. 위탁처리를 맡긴 업체들 역시, 개 사육농장 등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보내는 실정입니다. 제주지역에 전문화된 시설을 갖춘 음식물 쓰레기 위탁처리업체를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조례 개정으로 감량기를 도입하지 않거나 위탁 운영을 하지 않는 업체들은 앞으로 최고 백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당장 올해 안에 감량기를 설치하지 못하면 과태료를 내야 하는 업소만 9백여 곳에 달합니다.

1년 뒤 '음식물 쓰레기 처리 대란' 우려…땜질식 처방에 도민에게 책임 전가


제주에서는 당장 내년 말 '음식물 쓰레기 대란'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제주시 지역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맡는 제주시 봉개 쓰레기매립장 내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 반입 연장 만료 기한이 내년 10월까지인데, 대안인 제주 광역음식물처리시설은 2023년이 지나서야 완공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최소 1년 8개월여간 제주시에서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 방법이 현재로썬 요원한 상황입니다. 특히 제주 광역음식물처리시설은 최근 건설업체 간 입찰 문제가 불거지면서 건설 추진도 멈춘 상태입니다.


음식점주들은 행정의 무능으로 우려되는 피해를 음식점과 도민에게 책임 전가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조례를 따르기 위해 천만 원 넘게 큰돈을 들여 감량기를 샀는데, 이후 겪는 시행착오가 너무 크고 행정당국은 이러한 문제를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는 겁니다.

김병효 외식업중앙회 제주시지부장은 "감량기 도입으로 인한 업계 피해가 큰데, 제주도청이 이에 대한 책임 있는 답을 줘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김 지부장은 "불완전한 제도로 인한 뒷감당을 음식점들이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는데 과태료 부과까진 말도 안 된다. 해결책도 없이 과태료를 부과한다면 반대 행동에 나서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제주도보다 앞서 2013년부터 감량기 보급 시범사업을 도입한 서울시는 달랐습니다. 제주와 비슷한 감량기 문제점들이 제기되자, 사용자가 겪는 시행착오와 불편을 줄이는 감량기 안내 지침을 만든 겁니다. 지침에는 감량기 구매에 있어 소비자의 유의사항을 알리고, 기종의 처리방식별 장단점 등도 비교해 제품 선택을 돕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제주도는 감량기를 보급하는 지원 정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제주시는 사업소가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를 수년간 빌려 쓰는 '리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타당성 검토 용역도 맡겼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도민에게 책임과 피해를 전가하는 방식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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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물단지’ 음식물쓰레기 감량기…전기료 ‘폭탄’에 A/S도 안 돼 음식점마다 ‘전전긍긍’
    • 입력 2020-07-18 11:09:26
    취재K
제주에서 음식점을 창업하려면 '경차'를 살 만큼의 목돈을 들여 도입해야 하는 기계가 있습니다. 바로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입니다. 영업용 100kg 처리용량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는 대개 천만 원 후반에서 2천만 원대, 많게는 3천만 원을 호가해 차 한 대 값을 호가합니다.

제주지역 음식점과 관광숙박업소, 집단급식소 등 1,700곳이 넘는 음식물 쓰레기 다량 배출사업장이 이러한 고가의 감량기를 '울며 겨자 먹기'로 구매해야 하는데요. 제주도가 구입 금액의 50%, 천만 원까지를 보조금으로 지원하고는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부담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KBS 취재진이 보조금으로 감량기를 도입한 음식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제는 과도한 초기비용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수천만 원짜리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 그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전기요금 '폭탄' 썩는 냄새까지… A/S 안 돼 기기 버리기도


현장에서 우려하는 가장 큰 문제는 잦은 고장과 A/S 문제였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를 도입한 제주시 내 A 음식점은 천만 원이 넘는 돈을 날렸습니다. 기계를 몇 년 쓰지도 못했는데 자꾸 고장 나더니, A/S를 해줄 판매 업체마저 도산해버렸기 때문입니다. A 음식점 주인은 "업체 도산으로 다른 지역에 있는 기계 제조 공장까지 찾아다녔다"며 "A/S도 제대로 보증 안 되는 품질 미달의 감량기가 시중에 많지만, 제주도에선 감량기를 사라고 등 떠밀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악취입니다. B 음식점은 심각한 악취 탓에 감량기 설치 하루 만에 도입을 철회했습니다. 크기가 경차만큼 커서 부엌 대신 건물 바깥에 설치했는데도 손님들의 악취 민원이 발생한 겁니다. B음식점주는 "냄새가 환풍기를 통해 매장까지 들어와 도저히 매장 운영이 안 됐다"며 "당시 수십 군데 감량기 판매 업체가 홍보해와 고르고 골라 선택했지만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전기요금도 부담입니다. 지난해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를 도입한 C 음식점은 한전에 전기 증설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여름철에 매장 에어컨을 감량기와 함께 가동해보니 누전 차단기가 계속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C 음식점 주인은 "감량기를 쓴 뒤 매달 추가로 내는 전기요금이 30만 원가량"이라며 "1년에 400만 원에 육박하는 전기요금이 오롯이 감량기 운영비로 들어간다"고 토로했습니다.


설치 공간 확보가 어렵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D 음식점은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 기종을 바꿔보고 설치공간을 신설했지만, 결국 기계를 철거했습니다. D 음식점 주인은 임대받은 식당 안에 감량기를 설치했다가 악취로 이웃의 항의를 받았고, 건물 바깥에 수백만 원을 들여 비가림시설을 설치해 또 다른 기종 감량기를 뒀습니다. 그런데 건물 외부 비가림시설에 두면 건축법 위반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점주는 민원이 들어올까 전전긍긍하다 결국 감량기를 치워버렸습니다. D 음식점주는 "음식점 대부분이 임대를 받아 장사하는데 주변 민원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불법을 저지르며 감량기를 쓸 수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문제점은 더 있습니다. 감량기에서 발생하는 찌꺼기를 퇴비로 뿌려보니 염분 탓에 감귤나무가 죽어버리는 일이 여러 곳에서 발생한 겁니다. 도입 업소들은 퇴비 재활용이 어려운 감량기 찌꺼기를 종량제 봉투로 버려야 해 이중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밤새 가동되는 감량기 소음으로 세 들어 살던 이웃이 잠을 못 자 이사 가버린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제도 도입 4년째 이행률 절반 못 넘겨…땜질식 쓰레기 정책 '피해는 도민 몫'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로 빚어지는 갖가지 문제들로 설치 이행률도 지지부진합니다. 제주에 음식물 쓰레기 자체처리를 의무화한 조례 도입 4년째, 대상 업소 1,790여 곳 가운데 감량기를 설치하거나 위탁운영을 맡긴 업소는 절반도 채 안 됩니다. 위탁처리를 맡긴 업체들 역시, 개 사육농장 등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보내는 실정입니다. 제주지역에 전문화된 시설을 갖춘 음식물 쓰레기 위탁처리업체를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조례 개정으로 감량기를 도입하지 않거나 위탁 운영을 하지 않는 업체들은 앞으로 최고 백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당장 올해 안에 감량기를 설치하지 못하면 과태료를 내야 하는 업소만 9백여 곳에 달합니다.

1년 뒤 '음식물 쓰레기 처리 대란' 우려…땜질식 처방에 도민에게 책임 전가


제주에서는 당장 내년 말 '음식물 쓰레기 대란'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제주시 지역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맡는 제주시 봉개 쓰레기매립장 내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 반입 연장 만료 기한이 내년 10월까지인데, 대안인 제주 광역음식물처리시설은 2023년이 지나서야 완공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최소 1년 8개월여간 제주시에서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 방법이 현재로썬 요원한 상황입니다. 특히 제주 광역음식물처리시설은 최근 건설업체 간 입찰 문제가 불거지면서 건설 추진도 멈춘 상태입니다.


음식점주들은 행정의 무능으로 우려되는 피해를 음식점과 도민에게 책임 전가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조례를 따르기 위해 천만 원 넘게 큰돈을 들여 감량기를 샀는데, 이후 겪는 시행착오가 너무 크고 행정당국은 이러한 문제를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는 겁니다.

김병효 외식업중앙회 제주시지부장은 "감량기 도입으로 인한 업계 피해가 큰데, 제주도청이 이에 대한 책임 있는 답을 줘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김 지부장은 "불완전한 제도로 인한 뒷감당을 음식점들이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는데 과태료 부과까진 말도 안 된다. 해결책도 없이 과태료를 부과한다면 반대 행동에 나서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제주도보다 앞서 2013년부터 감량기 보급 시범사업을 도입한 서울시는 달랐습니다. 제주와 비슷한 감량기 문제점들이 제기되자, 사용자가 겪는 시행착오와 불편을 줄이는 감량기 안내 지침을 만든 겁니다. 지침에는 감량기 구매에 있어 소비자의 유의사항을 알리고, 기종의 처리방식별 장단점 등도 비교해 제품 선택을 돕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제주도는 감량기를 보급하는 지원 정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제주시는 사업소가 음식물 쓰레기 감량기를 수년간 빌려 쓰는 '리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타당성 검토 용역도 맡겼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도민에게 책임과 피해를 전가하는 방식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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