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 잠복 끝에 직접 ‘배드 파더’ 잡았는데…‘실수’로 놓친 경찰

입력 2020.07.22 (11:46) 수정 2020.07.2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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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9살 두 아이의 엄마 이 모 씨는 오늘도 전남편 A 씨의 집 앞에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해서입니다. 법원이 이미 A 씨에게 밀린 8천7백만 원의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는데도, 이 씨가 넉 달 넘게 길거리를 헤매야 하는 건 왜일까요.

■ 감치 명령, 양육비 이행 '최후의 카드'

7년 전 이혼한 남편은 8천7백만 원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거듭되는 생활고에 더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이 씨는 법원에 양육비 이행명령 신청을 하면서, 감치 명령도 함께 신청했습니다. 본인과 아이들까지 들먹이며 "너희 셋은 내 인생 최대의 오점"이라는 말까지 듣고 더 이상 남편에게 양육비 이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감치 명령은 채무자가 ‘고의로’ 양육비를 이행하지 않을 때 법원이 내리는 명령입니다. 감치 명령은 채무자가 ‘고의로’ 양육비를 이행하지 않을 때 법원이 내리는 명령입니다.

감치 명령은 양육비 이행 과정에서 '최후의 카드'처럼 여겨집니다. 감치는 채무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고의로 양육비를 이행하지 않을 때 법원이 내리는 명령입니다. 일정 기간 신체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는 데다 빨리 나오려면 밀린 양육비를 일부라도 지급해야 하므로 강제성을 띕니다.

구금 기간은 최장 30일로, 감치 결정이 나온 지 6달 이내에 집행돼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채무자가 잠적하거나 위장 전입하는 경우, 건강이나 기타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집행은 정지될 수도 있습니다.

■ 넉 달간 잠복 끝에 찾은 '배드 파더', '실수로' 풀어 준 경찰

하지만 감치 명령을 신청하는 과정부터 쉽지 않습니다. 감치 신청이 효과를 내려면 신청자가 채무자의 정확한 주소를 알아야 합니다. 채무자의 소재지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감치 신청 자체를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이 씨는 지난 2월부터 전남편의 주소를 수소문해 근처에서 잠복하고, 근처에 주차된 차량에 적힌 연락처로 닥치는 대로 전화를 걸어 연락처를 알아냈습니다. 결국 지난달 15일 법원은 전남편에 대한 감치 결정을 내렸고, 이 씨는 한 달간 더 잠복한 뒤 전남편을 붙잡아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A 씨도 순순히 경찰차에 타고 파출소로 연행됐습니다.

감치를 위해서는 감치명령 신청자가 직접 채무자의 주소지와 위치를 파악해서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감치를 위해서는 감치명령 신청자가 직접 채무자의 주소지와 위치를 파악해서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문제는 전남편이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옮겨진 뒤 발생했습니다. 부산 동부경찰서는 "법원으로부터 등기가 온 게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며 죄 없는 사람을 계속 붙잡을 수 있을 수 없다고 말하며 A 씨를 풀어주려 했습니다. 이 씨가 "법원에서 관할 경찰서로 보냈는데 없을 수가 있느냐. 법원 사건 내용 보시면 분명히 경찰서 사무원이 받은 걸로 돼 있다"며 애원했지만 결국 풀려났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경찰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어제 당직자가 오해한 것 같다며, 경찰 등기는 확인했는데 민사 등기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 씨는 "이혼을 경찰서 가서 하는 것도 아니고 분명히 가정법원 결정문 정본을 보여줬는데 말이 되느냐"며 원통해 했습니다.

이 씨는 "경찰은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보겠다며 다음날 이틀에 걸쳐 잠복했지만 잠시 훑어보다시피 했을 뿐이었고, 그 이후로는 다른 사건 조사 중이라 갈 수 없다며 주말 내내 연락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 감치명령 기한 6달 지나면 다시 시작해야

이 씨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려 사연이 세간에 알려지자, 그제야 경찰은 A 씨를 연행하기 위한 잠복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끝내 남편이 나타나지 않고 감치 명령 기한인 6개월이 지나버리면 이 씨는 다시 이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법무법인 숭인 양소영 변호사는 "감치 제도는 기본적으로 민사집행법에 따른 제재라, 경찰이 적극적으로 집행에 나설 이유가 없고 본인들의 업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이번 건 같은 경우는 국가에 대해서 손해배상청구를 해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수배 등 경찰이 의무적으로 알아보는 절차를 진행하도록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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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넉 달 잠복 끝에 직접 ‘배드 파더’ 잡았는데…‘실수’로 놓친 경찰
    • 입력 2020-07-22 11:46:34
    • 수정2020-07-22 13:50:25
    취재K
7살, 9살 두 아이의 엄마 이 모 씨는 오늘도 전남편 A 씨의 집 앞에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해서입니다. 법원이 이미 A 씨에게 밀린 8천7백만 원의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는데도, 이 씨가 넉 달 넘게 길거리를 헤매야 하는 건 왜일까요.

■ 감치 명령, 양육비 이행 '최후의 카드'

7년 전 이혼한 남편은 8천7백만 원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거듭되는 생활고에 더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이 씨는 법원에 양육비 이행명령 신청을 하면서, 감치 명령도 함께 신청했습니다. 본인과 아이들까지 들먹이며 "너희 셋은 내 인생 최대의 오점"이라는 말까지 듣고 더 이상 남편에게 양육비 이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감치 명령은 채무자가 ‘고의로’ 양육비를 이행하지 않을 때 법원이 내리는 명령입니다.
감치 명령은 양육비 이행 과정에서 '최후의 카드'처럼 여겨집니다. 감치는 채무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고의로 양육비를 이행하지 않을 때 법원이 내리는 명령입니다. 일정 기간 신체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는 데다 빨리 나오려면 밀린 양육비를 일부라도 지급해야 하므로 강제성을 띕니다.

구금 기간은 최장 30일로, 감치 결정이 나온 지 6달 이내에 집행돼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채무자가 잠적하거나 위장 전입하는 경우, 건강이나 기타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집행은 정지될 수도 있습니다.

■ 넉 달간 잠복 끝에 찾은 '배드 파더', '실수로' 풀어 준 경찰

하지만 감치 명령을 신청하는 과정부터 쉽지 않습니다. 감치 신청이 효과를 내려면 신청자가 채무자의 정확한 주소를 알아야 합니다. 채무자의 소재지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감치 신청 자체를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이 씨는 지난 2월부터 전남편의 주소를 수소문해 근처에서 잠복하고, 근처에 주차된 차량에 적힌 연락처로 닥치는 대로 전화를 걸어 연락처를 알아냈습니다. 결국 지난달 15일 법원은 전남편에 대한 감치 결정을 내렸고, 이 씨는 한 달간 더 잠복한 뒤 전남편을 붙잡아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A 씨도 순순히 경찰차에 타고 파출소로 연행됐습니다.

감치를 위해서는 감치명령 신청자가 직접 채무자의 주소지와 위치를 파악해서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문제는 전남편이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옮겨진 뒤 발생했습니다. 부산 동부경찰서는 "법원으로부터 등기가 온 게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며 죄 없는 사람을 계속 붙잡을 수 있을 수 없다고 말하며 A 씨를 풀어주려 했습니다. 이 씨가 "법원에서 관할 경찰서로 보냈는데 없을 수가 있느냐. 법원 사건 내용 보시면 분명히 경찰서 사무원이 받은 걸로 돼 있다"며 애원했지만 결국 풀려났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경찰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어제 당직자가 오해한 것 같다며, 경찰 등기는 확인했는데 민사 등기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 씨는 "이혼을 경찰서 가서 하는 것도 아니고 분명히 가정법원 결정문 정본을 보여줬는데 말이 되느냐"며 원통해 했습니다.

이 씨는 "경찰은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보겠다며 다음날 이틀에 걸쳐 잠복했지만 잠시 훑어보다시피 했을 뿐이었고, 그 이후로는 다른 사건 조사 중이라 갈 수 없다며 주말 내내 연락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 감치명령 기한 6달 지나면 다시 시작해야

이 씨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려 사연이 세간에 알려지자, 그제야 경찰은 A 씨를 연행하기 위한 잠복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끝내 남편이 나타나지 않고 감치 명령 기한인 6개월이 지나버리면 이 씨는 다시 이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법무법인 숭인 양소영 변호사는 "감치 제도는 기본적으로 민사집행법에 따른 제재라, 경찰이 적극적으로 집행에 나설 이유가 없고 본인들의 업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이번 건 같은 경우는 국가에 대해서 손해배상청구를 해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수배 등 경찰이 의무적으로 알아보는 절차를 진행하도록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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