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낼게요, 대기업 전세기 한 좌석만” 중소기업 호소

입력 2020.07.22 (19:34) 수정 2020.07.2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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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중국을 왜 못 가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승은 대표와 통화를 하다 처음 음성을 높였습니다. 중국을 오가는 비행기 정기운항도 살아있고, 정부가 특별히 기업인들을 위해 '한중 신속통로'로 개설해 중국 입국을 도와주고 있는데 무슨 소리인가 싶었던 거죠.

특히 5월 1일부터 시행된 '한중 신속통로'의 경우 시행을 앞두고 어려운 와중에 나온 큰 성과라고 직접 보도한 데다, 이 제도를 활용해 기업의 필수 인력들이 오랜 기다림 끝에 중국으로 다시 출발하는 날 직접 공항까지 다녀왔던 터라 더욱 이해가 안 됐습니다.

■ "그건 대기업이고요...중소기업은 못 가요"

그런데 제 시야가 좁았습니다. 정부가 애써 만든 혜택은 현실적으로 대기업만 누릴 수 있는 현실을 알아채지 못한 겁니다.

중국 가는 노선은 있되 좌석이 없고, 대기업 전세기는 그림의 떡이고, 그렇게 직원을 보내지 못하는 사이 부품 불량률은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린 우리 중소기업들의 사정은 딱하기만 합니다.

액세서리 가공 중소기업(서울 상암동 DMC 첨단산업센터)액세서리 가공 중소기업(서울 상암동 DMC 첨단산업센터)

① '10배' 치솟은 불량률…"직원 1명만 보내면 해결된 일"

처음 찾아간 곳은 중국에서 액세서리 원자재를 들여와 유명 귀금속 제품의 크리스털을 붙이는 등 가공해서 판매하는 업체였습니다. 입구 쪽 책상에서 불량품을 가려내는 수작업이 한창이었는데, 원래는 할 필요가 없는 공정이라고 김우진 대표는 설명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로 불량품이 워낙 많아 섞여 들어와 추가로 하기 시작한 건데, 평균 10~20%씩 걸러낸다고 했습니다. 불량률이 평상시의 10배까지 치솟은 겁니다. 왜냐고요? 코로나19 여파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물건을 보내기 전에 하던 '검수' 작업을 할 직원이 현지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두 달도 더 버티기 힘든 상황이라고 합니다.

② 가격 3~4배 뛴 항공권 … 그마저도 없다


김 대표는 "직원 한 명만 중국 현지에 보내면 다 해결될 문제인데, 그 한 명을 보내지 못해서 이 사달"이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면서 매일 들어간다는 국제항공권 구매 앱을 직접 보여줬습니다.

지난 21일 검색 결과로는, 30~40만 원 수준이던 상하이 왕복 항공권이 110만 원 넘는 가격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가능한 스케줄도 2개뿐이었는데, 그나마도 실제 예약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거나, '해당 항공편은 예약할 수 없다'는 팝업창이 떴습니다. 좌석을 구할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인 겁니다.

첫 통화를 했던 다른 중소기업의 한 대표도 똑같은 사정을 속사포로 쏟아냈습니다. 한 대표는 앞으로 최대한 버텨봐야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공장이 있는 중국 심천이나 광저우행 비행기가 있는지 제가 매일 들어가봅니다. 날짜를 다르게 해서 계속 검색하는데, 여행사별로 예매 사이트별로 다 들어가서 해보는데, 단 한 편도 검색이 안 돼요. 8월, 9월, 10월...뒤로도 계속 없어요. 제가 이걸 3월부터 해왔습니다. 그러니까 신속통로니 뭐니, 비자를 내주면 뭐해요? 가는 비행기가 없는데. 표가 없어요. 표가! 중소기업은 못 가는 겁니다."

③ 그 많은 '중소기업' 관련 부처와 조직들은 뭘 하고...

이쯤 되니 궁금해집니다. '기업', '중소', '벤처', '산업', '통상', '상공' 등등 글자가 들어가는 여러 부처며 협회들은 도대체 뭘 했을까요? 누구보다 먼저 이런 문제를 살피고 파악해서 해결책을 찾았어야 할 조직과 인력들이 말입니다.

혹시 산업통상자원부나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느냐?' '뭘 도와주면 좋겠냐?' 같은 걸 조사한 적이 없는지 물었습니다. 취재 중 만난 중소기업 대표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한 번도 없다. 적어도 우리 업체는 전혀 없다. 주변에서도 '죽겠다'는 말만 수없이 들었지, 그런 실태 조사 같은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답답한 중소기업 측에서 관련 부처와 협회 등에 직접 전화도 해봤다고 합니다. 답변은 "알아보고 연락해주겠다"였는데,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이 추후 연락은 없었다고 합니다.

사단법인인 벤처기업협회에서 일찌감치 2월에 협회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고, '부품수급 문제' 등이 심각한 것으로 확인돼서 중소벤처기업부에 건의했다고 했지만 역시 후속 조치는 없었습니다.

■ "돈 다 낼게요, 대기업 전세기 빈 좌석 하나만..."

중소기업인들은 중소기업을 위한 항공편 개설이나 전용 전세기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대기업에서 전세기를 띄울 때, 남는 몇 좌석이라도 중소기업과 연결해줄 수 없겠느냐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라도 조금씩 시급한 순서대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희망이 될 것이라며, 비용은 다 지불하겠다고 몇 번이나 덧붙였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99.9%, 630만 개가 중소기업입니다. 우리나라 일자리의 82.9%, 1,599만 명이 중소기업 종사자입니다. <자료:중소벤처기업부 2017년 기준>

중소기업들이 '검수' 담당 직원 한 명을 중국에 보내지 못해 발을 구르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겠습니다.

[연관기사] [뉴스9] “표 살 테니, 대기업 전세기 한 좌석만” 중소기업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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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 낼게요, 대기업 전세기 한 좌석만” 중소기업 호소
    • 입력 2020-07-22 19:34:11
    • 수정2020-07-23 11:08:28
    취재K
■ "네? 중국을 왜 못 가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승은 대표와 통화를 하다 처음 음성을 높였습니다. 중국을 오가는 비행기 정기운항도 살아있고, 정부가 특별히 기업인들을 위해 '한중 신속통로'로 개설해 중국 입국을 도와주고 있는데 무슨 소리인가 싶었던 거죠.

특히 5월 1일부터 시행된 '한중 신속통로'의 경우 시행을 앞두고 어려운 와중에 나온 큰 성과라고 직접 보도한 데다, 이 제도를 활용해 기업의 필수 인력들이 오랜 기다림 끝에 중국으로 다시 출발하는 날 직접 공항까지 다녀왔던 터라 더욱 이해가 안 됐습니다.

■ "그건 대기업이고요...중소기업은 못 가요"

그런데 제 시야가 좁았습니다. 정부가 애써 만든 혜택은 현실적으로 대기업만 누릴 수 있는 현실을 알아채지 못한 겁니다.

중국 가는 노선은 있되 좌석이 없고, 대기업 전세기는 그림의 떡이고, 그렇게 직원을 보내지 못하는 사이 부품 불량률은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린 우리 중소기업들의 사정은 딱하기만 합니다.

액세서리 가공 중소기업(서울 상암동 DMC 첨단산업센터)
① '10배' 치솟은 불량률…"직원 1명만 보내면 해결된 일"

처음 찾아간 곳은 중국에서 액세서리 원자재를 들여와 유명 귀금속 제품의 크리스털을 붙이는 등 가공해서 판매하는 업체였습니다. 입구 쪽 책상에서 불량품을 가려내는 수작업이 한창이었는데, 원래는 할 필요가 없는 공정이라고 김우진 대표는 설명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로 불량품이 워낙 많아 섞여 들어와 추가로 하기 시작한 건데, 평균 10~20%씩 걸러낸다고 했습니다. 불량률이 평상시의 10배까지 치솟은 겁니다. 왜냐고요? 코로나19 여파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물건을 보내기 전에 하던 '검수' 작업을 할 직원이 현지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두 달도 더 버티기 힘든 상황이라고 합니다.

② 가격 3~4배 뛴 항공권 … 그마저도 없다


김 대표는 "직원 한 명만 중국 현지에 보내면 다 해결될 문제인데, 그 한 명을 보내지 못해서 이 사달"이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면서 매일 들어간다는 국제항공권 구매 앱을 직접 보여줬습니다.

지난 21일 검색 결과로는, 30~40만 원 수준이던 상하이 왕복 항공권이 110만 원 넘는 가격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가능한 스케줄도 2개뿐이었는데, 그나마도 실제 예약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거나, '해당 항공편은 예약할 수 없다'는 팝업창이 떴습니다. 좌석을 구할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인 겁니다.

첫 통화를 했던 다른 중소기업의 한 대표도 똑같은 사정을 속사포로 쏟아냈습니다. 한 대표는 앞으로 최대한 버텨봐야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공장이 있는 중국 심천이나 광저우행 비행기가 있는지 제가 매일 들어가봅니다. 날짜를 다르게 해서 계속 검색하는데, 여행사별로 예매 사이트별로 다 들어가서 해보는데, 단 한 편도 검색이 안 돼요. 8월, 9월, 10월...뒤로도 계속 없어요. 제가 이걸 3월부터 해왔습니다. 그러니까 신속통로니 뭐니, 비자를 내주면 뭐해요? 가는 비행기가 없는데. 표가 없어요. 표가! 중소기업은 못 가는 겁니다."

③ 그 많은 '중소기업' 관련 부처와 조직들은 뭘 하고...

이쯤 되니 궁금해집니다. '기업', '중소', '벤처', '산업', '통상', '상공' 등등 글자가 들어가는 여러 부처며 협회들은 도대체 뭘 했을까요? 누구보다 먼저 이런 문제를 살피고 파악해서 해결책을 찾았어야 할 조직과 인력들이 말입니다.

혹시 산업통상자원부나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느냐?' '뭘 도와주면 좋겠냐?' 같은 걸 조사한 적이 없는지 물었습니다. 취재 중 만난 중소기업 대표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한 번도 없다. 적어도 우리 업체는 전혀 없다. 주변에서도 '죽겠다'는 말만 수없이 들었지, 그런 실태 조사 같은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답답한 중소기업 측에서 관련 부처와 협회 등에 직접 전화도 해봤다고 합니다. 답변은 "알아보고 연락해주겠다"였는데,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이 추후 연락은 없었다고 합니다.

사단법인인 벤처기업협회에서 일찌감치 2월에 협회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고, '부품수급 문제' 등이 심각한 것으로 확인돼서 중소벤처기업부에 건의했다고 했지만 역시 후속 조치는 없었습니다.

■ "돈 다 낼게요, 대기업 전세기 빈 좌석 하나만..."

중소기업인들은 중소기업을 위한 항공편 개설이나 전용 전세기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대기업에서 전세기를 띄울 때, 남는 몇 좌석이라도 중소기업과 연결해줄 수 없겠느냐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라도 조금씩 시급한 순서대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희망이 될 것이라며, 비용은 다 지불하겠다고 몇 번이나 덧붙였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99.9%, 630만 개가 중소기업입니다. 우리나라 일자리의 82.9%, 1,599만 명이 중소기업 종사자입니다. <자료:중소벤처기업부 2017년 기준>

중소기업들이 '검수' 담당 직원 한 명을 중국에 보내지 못해 발을 구르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겠습니다.

[연관기사] [뉴스9] “표 살 테니, 대기업 전세기 한 좌석만” 중소기업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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