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오르는 시베리아, 우리와의 연결고리는?

입력 2020.07.23 (06:00) 수정 2020.07.2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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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고온현상이 심상치 않습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북극권에서 이어진 고온 사례들을 분석하고 있다면서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WMO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 시베리아의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5℃ 높았고 6월 기온만 봤을 때는 10℃나 치솟았습니다.

WMO “시베리아의 장기 고온현상이 기후변화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WMO “시베리아의 장기 고온현상이 기후변화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

특히 러시아 극동부의 도시인 베르호얀스크(Verkhoyansk)에선 기록이 세워졌습니다. 올 들어 최고기온의 일별 추이를 봤더니 2월 중순부터 붉은색으로 보이는 고온현상이 뚜렷해졌고 이후 파죽지세로 상승했습니다.

6월 20일에는 38℃까지 올랐는데 지난 30년간 평균과 비교하면 20℃ 가까이 높습니다. 같은 날 중위도의 서울은 29.7℃로 북극권보다 '시원'했습니다.

러시아 베르호얀스크 최고기온(℃)러시아 베르호얀스크 최고기온(℃)

WMO는 "인간의 영향이 없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기후학자들의 시뮬레이션 결과 이러한 현상은 8만 년에 한 번 찾아올 만한 이변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기후에선 130년 주기로 발생 빈도가 짧아졌는데요.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가 고온현상이 발생할 확률 빈도를 615배나 높인 겁니다. 그 주기가 앞으로 더 짧아진다면 수십 년마다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지도 모릅니다.

시베리아 산불로 이산화탄소 5,600만 톤 배출


시베리아의 고온현상으로 산불도 비상입니다. 6월까지 불 타버린 면적은 115만 헥타르(11,500㎢)로 서울 면적의 20배에 이릅니다. WMO는 5,60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배출된 것으로 추정했는데, 스위스나 노르웨이의 1년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맞먹습니다.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로 촉발된 '시베리아 고온현상'이 '산불'로 이어지며 또다시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기후변화를 가속화시키는 이른바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달 들어서도 산불이 계속되면서 영구 동토층까지 녹아버리고 그 안에 갇혀있던 메탄가스가 대기 중으로 뿜어져 나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메탄 역시 강력한 온실가스입니다.

메뚜기보다 무서운 '실크나방'…. 산불 취약성 높여

최근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에서 메뚜기떼가 나타나 큰 피해를 보았다는 외신 보도가 많았습니다. 메뚜기떼의 창궐은 농경 지역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재해로 순식간에 곡창지대를 '초토화'시키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10가지 재앙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시베리아 실크나방과 애벌레, 침엽수에 매달려있는 알(오른쪽 위), 출처: conifersociety.org시베리아 실크나방과 애벌레, 침엽수에 매달려있는 알(오른쪽 위), 출처: conifersociety.org

추운 시베리아에선 메뚜기보다 나방이 더 무섭습니다. 정확히는 실크나방(Siberian silk moth)의 애벌레가 무서운 존재인데요. 침엽수의 잎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기 때문입니다. 원래 실크나방의 활동 시기는 봄부터 여름과 가을에 국한되지만, 올해는 겨울부터 왕성한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고온현상으로 서식지도 이전보다 150km나 북쪽으로 확장됐습니다.

이렇게 실크나방 애벌레가 수분을 머금고 있는 침엽수 잎을 다 먹어 버리면, 해당 지역은 산불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현상이 비단 시베리아만의 일일까요? 우리와 관계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시베리아 발' 이상고온 현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전 지구의 기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올 상반기, 전 지구 기온 관측 이후 두 번째로 높아

2020년 상반기 전 지구 기온 분포, 출처: 미 해양대기청(NOAA)2020년 상반기 전 지구 기온 분포, 출처: 미 해양대기청(NOAA)

2020년 1월부터 6월까지 지구의 평균기온은 관측 이후 두 번째로 높았습니다. 평년과 비교해서 기록적으로 따뜻했던 지역은 진한 붉은색으로 표시돼있는데요. 러시아 시베리아를 비롯해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남부도 기록적으로 따뜻했습니다.

코로나19로 온실가스 배출이 일시적으로 감소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는 몇 달 주기로 등락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수십 년에서 수백 년에 이르는 장기 변동입니다. 이산화탄소는 한 번 배출되면 수백 년간 대기 중에 머물기 때문에 지금 배출을 멈춰도 그 효과는 수백 년 뒤에 나타나기 때문인데요. 시베리아의 고온현상 역시 '왜 하필 올해 발생했느냐'가 아니라 지난 과거 동안 쌓여온 온실가스의 영향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 마디로 우리의 현재가 과거에 발목 잡혀 있다는 뜻입니다.

북극 얼음도 관측 사상 최소, 우리 영향은?

북극해와 가까운 시베리아에 폭염이 이어지면서 북극의 얼음 상황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파란색으로 보이는 올해 북극의 얼음 면적은 역대 가장 많은 얼음이 녹았던 2012년(점선)보다도 적은 상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7월 들어서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북극의 얼음이 많이 녹으면 전 지구적으로 기상이변을 몰고 올 확률이 높아집니다.

출처: 미 국립 빙설데이터센터(NSIDC)출처: 미 국립 빙설데이터센터(NSIDC)

특히 북극에 온난한 고기압이 장기간 정체하면서 그 영향이 한반도까지 미쳤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우리나라도 6월까지는 더웠습니다. 전국의 평균기온이 22.8℃로 1973년 이후 가장 높았고 폭염 일수도 평년보다 1.4일 많은 2일을 기록해 역대 1위를 기록했는데요.


그런데 7월부터는 북극의 직접 영향으로 상황이 급반전됐습니다. 위 그래프를 보면 6월에는 평년보다 높은 기온(붉은색) 분포가 많았지만 7월부터는 파란색이 대부분입니다. 7월 들어 어제(21일)까지 전국 평균기온은 22.5℃로 예년보다 1.4℃ 낮았고 폭염과 열대야 일수 역시 0.1일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는데요. 주변에서도 '7월인데 왜 이렇게 시원하냐', '밤에 창문을 닫고 잔다'라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원인은 동서의 기압계가 막혀있는 가운데 북쪽에서 밀려온 한기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6월 말부터 우리나라 주변에 찬 공기가 정체하면서 남쪽의 북태평양 고기압이 북상하지 못했고 여기에 장맛비가 오는 날도 잦았는데요. 기상청은 북극의 고온현상으로 중위도에 고압대가 정체하면서 동서 방향의 대기 순환이 느려졌고 찬 공기가 밀려오기에 좋은 조건이 유지됐다고 분석했습니다.

"북극 영향이 여름까지?"...심층적 연구 필요

그동안 북극이나 시베리아의 영향은 주로 겨울이나 봄에 받았습니다. 여름철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앞으로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러나 학자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부분은 WMO의 발표대로 시베리아의 고온현상이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로 촉발됐고,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지구의 기후와 연결고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당장 극지방과 적도 사이의 기온 편차가 줄면서 기압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올여름 장마가 언제 끝날지도 베일에 싸여있는데요.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제부터 북쪽보다는 남쪽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이 커지면서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질 거란 점입니다. 기상청은 장마가 끝난 뒤 8월부터는 예년보다 높은 기온 분포를 보이겠고, 9월까지도 중국 내륙의 건조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더위가 오래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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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타오르는 시베리아, 우리와의 연결고리는?
    • 입력 2020-07-23 06:00:42
    • 수정2020-07-23 08:57:25
    취재K
시베리아의 고온현상이 심상치 않습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북극권에서 이어진 고온 사례들을 분석하고 있다면서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WMO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 시베리아의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5℃ 높았고 6월 기온만 봤을 때는 10℃나 치솟았습니다.

WMO “시베리아의 장기 고온현상이 기후변화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
특히 러시아 극동부의 도시인 베르호얀스크(Verkhoyansk)에선 기록이 세워졌습니다. 올 들어 최고기온의 일별 추이를 봤더니 2월 중순부터 붉은색으로 보이는 고온현상이 뚜렷해졌고 이후 파죽지세로 상승했습니다.

6월 20일에는 38℃까지 올랐는데 지난 30년간 평균과 비교하면 20℃ 가까이 높습니다. 같은 날 중위도의 서울은 29.7℃로 북극권보다 '시원'했습니다.

러시아 베르호얀스크 최고기온(℃)
WMO는 "인간의 영향이 없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기후학자들의 시뮬레이션 결과 이러한 현상은 8만 년에 한 번 찾아올 만한 이변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기후에선 130년 주기로 발생 빈도가 짧아졌는데요.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가 고온현상이 발생할 확률 빈도를 615배나 높인 겁니다. 그 주기가 앞으로 더 짧아진다면 수십 년마다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지도 모릅니다.

시베리아 산불로 이산화탄소 5,600만 톤 배출


시베리아의 고온현상으로 산불도 비상입니다. 6월까지 불 타버린 면적은 115만 헥타르(11,500㎢)로 서울 면적의 20배에 이릅니다. WMO는 5,60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배출된 것으로 추정했는데, 스위스나 노르웨이의 1년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맞먹습니다.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로 촉발된 '시베리아 고온현상'이 '산불'로 이어지며 또다시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기후변화를 가속화시키는 이른바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달 들어서도 산불이 계속되면서 영구 동토층까지 녹아버리고 그 안에 갇혀있던 메탄가스가 대기 중으로 뿜어져 나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메탄 역시 강력한 온실가스입니다.

메뚜기보다 무서운 '실크나방'…. 산불 취약성 높여

최근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에서 메뚜기떼가 나타나 큰 피해를 보았다는 외신 보도가 많았습니다. 메뚜기떼의 창궐은 농경 지역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재해로 순식간에 곡창지대를 '초토화'시키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10가지 재앙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시베리아 실크나방과 애벌레, 침엽수에 매달려있는 알(오른쪽 위), 출처: conifersociety.org
추운 시베리아에선 메뚜기보다 나방이 더 무섭습니다. 정확히는 실크나방(Siberian silk moth)의 애벌레가 무서운 존재인데요. 침엽수의 잎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기 때문입니다. 원래 실크나방의 활동 시기는 봄부터 여름과 가을에 국한되지만, 올해는 겨울부터 왕성한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고온현상으로 서식지도 이전보다 150km나 북쪽으로 확장됐습니다.

이렇게 실크나방 애벌레가 수분을 머금고 있는 침엽수 잎을 다 먹어 버리면, 해당 지역은 산불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현상이 비단 시베리아만의 일일까요? 우리와 관계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시베리아 발' 이상고온 현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전 지구의 기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올 상반기, 전 지구 기온 관측 이후 두 번째로 높아

2020년 상반기 전 지구 기온 분포, 출처: 미 해양대기청(NOAA)
2020년 1월부터 6월까지 지구의 평균기온은 관측 이후 두 번째로 높았습니다. 평년과 비교해서 기록적으로 따뜻했던 지역은 진한 붉은색으로 표시돼있는데요. 러시아 시베리아를 비롯해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남부도 기록적으로 따뜻했습니다.

코로나19로 온실가스 배출이 일시적으로 감소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는 몇 달 주기로 등락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수십 년에서 수백 년에 이르는 장기 변동입니다. 이산화탄소는 한 번 배출되면 수백 년간 대기 중에 머물기 때문에 지금 배출을 멈춰도 그 효과는 수백 년 뒤에 나타나기 때문인데요. 시베리아의 고온현상 역시 '왜 하필 올해 발생했느냐'가 아니라 지난 과거 동안 쌓여온 온실가스의 영향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 마디로 우리의 현재가 과거에 발목 잡혀 있다는 뜻입니다.

북극 얼음도 관측 사상 최소, 우리 영향은?

북극해와 가까운 시베리아에 폭염이 이어지면서 북극의 얼음 상황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파란색으로 보이는 올해 북극의 얼음 면적은 역대 가장 많은 얼음이 녹았던 2012년(점선)보다도 적은 상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7월 들어서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북극의 얼음이 많이 녹으면 전 지구적으로 기상이변을 몰고 올 확률이 높아집니다.

출처: 미 국립 빙설데이터센터(NSIDC)
특히 북극에 온난한 고기압이 장기간 정체하면서 그 영향이 한반도까지 미쳤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우리나라도 6월까지는 더웠습니다. 전국의 평균기온이 22.8℃로 1973년 이후 가장 높았고 폭염 일수도 평년보다 1.4일 많은 2일을 기록해 역대 1위를 기록했는데요.


그런데 7월부터는 북극의 직접 영향으로 상황이 급반전됐습니다. 위 그래프를 보면 6월에는 평년보다 높은 기온(붉은색) 분포가 많았지만 7월부터는 파란색이 대부분입니다. 7월 들어 어제(21일)까지 전국 평균기온은 22.5℃로 예년보다 1.4℃ 낮았고 폭염과 열대야 일수 역시 0.1일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는데요. 주변에서도 '7월인데 왜 이렇게 시원하냐', '밤에 창문을 닫고 잔다'라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원인은 동서의 기압계가 막혀있는 가운데 북쪽에서 밀려온 한기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6월 말부터 우리나라 주변에 찬 공기가 정체하면서 남쪽의 북태평양 고기압이 북상하지 못했고 여기에 장맛비가 오는 날도 잦았는데요. 기상청은 북극의 고온현상으로 중위도에 고압대가 정체하면서 동서 방향의 대기 순환이 느려졌고 찬 공기가 밀려오기에 좋은 조건이 유지됐다고 분석했습니다.

"북극 영향이 여름까지?"...심층적 연구 필요

그동안 북극이나 시베리아의 영향은 주로 겨울이나 봄에 받았습니다. 여름철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앞으로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러나 학자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부분은 WMO의 발표대로 시베리아의 고온현상이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로 촉발됐고,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지구의 기후와 연결고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당장 극지방과 적도 사이의 기온 편차가 줄면서 기압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올여름 장마가 언제 끝날지도 베일에 싸여있는데요.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제부터 북쪽보다는 남쪽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이 커지면서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질 거란 점입니다. 기상청은 장마가 끝난 뒤 8월부터는 예년보다 높은 기온 분포를 보이겠고, 9월까지도 중국 내륙의 건조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더위가 오래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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