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물 꼭 봐야 해!…산수화부터 사리기까지

입력 2020.07.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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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두 달 간 문을 닫았던 수도권 국립 문화 시설들이 22일 일제히 문을 열었습니다. 재개관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이 야심차게 준비한 특별전은 '신국보보물전'입니다. 2017년부터 3년 간 새롭게 지정된 국보와 보물 157건 가운데, 이동이 어렵거나 중량이 무거운 문화재 등을 제외한 83건, 196점을 한 자리에 모아 공개하는 전시입니다.

국보와 보물 공개 전시로는 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문화재 대여 기관만 34곳으로, 진귀한 유물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건데요. 200점 가까운 유물을 한 자리에 모으는 데만 3주가량 걸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귀한 유물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세라, 박물관 재개관 첫 날부터 예매 매진 행렬이 이어졌는데요. 이번 전시에서 꼭 봐야 할 보물은 뭐가 있을까요? 박물관 학예사들이 꼽은 보물들을 소개합니다.

두루마리에 펼쳐진 두 개의 산수화


길이 8.5m에 광활하게 펼쳐지는 산과 계곡, 그리고 그 속의 사람들.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보물 제2029호)는 한국 회화에서 보기 드문 긴 두루마리 형태의 산수화입니다. 비단 두루마기에 산세의 묘사, 또 작고 세밀하게 그려진 인물들의 꼼꼼한 묘사가 어우러져 드라마틱한 장관을 이룹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 김홍도와 나란히 궁중화원으로 이름을 떨친 이인문의 작품인데요. 당대에 유행했던 실경산수화나 풍속화보다는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길 꿈꾸는 이상향을 표현한 산수화를 즐겨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림엔 여러 개의 인장이 찍혀 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상당수가 추사 김정희의 인장이라는 겁니다. '김정희씨고정지인(김정희가 감정하고 찍은 인장)', '추사', '자손영보'(자손 대대로 전할 보물), '추사진장(추사의 진귀한 소장품)', 김정희인'이라고 돼 있어, 한때 김정희가 이 그림을 소장했고, 또 자손 대대로 전할 보물이라고 평가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을 왜 김정희가 소장했는지는 문헌에도 전해지는 게 없다는데요. 20세기 전후로 일본에 넘어가 개인 소장가가 가지고 있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팔면서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됐다고 합니다.


이 작품과 같은 공간에 나란히 전시된 작품은 <심사정 필 촉잔도권>(보물 제1986호)입니다. 실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과 쌍벽을 이루는 문인 화가 심사정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이 작품 역시 8m에 이르는 긴 두루마리 그림으로, <강산무진도>와 비교하며 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입니다.

두 그림의 가장 큰 차이, <강산무진도>에는 사람이 등장하고 <촉잔도권>에는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어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강산무진도>와 같이 볼 수 있는 기회는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신윤복·김홍도·김득신 풍속화, 어떻게 다른가?

이번 전시에서는 18세기 최고의 풍속화가로 꼽히는 신윤복, 김홍도, 김득신의 작품도 한 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요. 미술사학자인 고 최순우 선생은 세 화가 작품의 차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신윤복 풍속도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도회적인 세련이나 김홍도 풍속도에서 볼 수 있는 구수하고도 익살맞은 서민사회의 일하는 풍정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김득신 풍속도에서는 기지와 해학의 즐거움이 생동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신윤복 필 미인도>(보물 제1973호)는 여인의 아름다움이 섬세하게 묘사돼 그야말로 도회적인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배추같이 풍성한 옥색 치마 사이로 드러난 버선코 등의 표현에서 요즘 말로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려는 치밀함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이 돋보입니다.


<김홍도 필 마상청앵도>(보물 제1970호)는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섬세한 감수성을 사려 깊게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풍속화가로 잘 알려진 김홍도가 풍속을 소재로 삼아 시적 정취까지 표현한 산수화의 대표작으로, 김홍도 만년의 원숙한 기량이 돋보입니다.

이 작품에는 특히 앞서 소개한 <강산무진도>의 작가 이인문이 직접 쓴 시가 왼쪽 상단에 써 있는데요. 두 사람은 궁중화원 동료였다고 합니다.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쓴 시와 그림이 어우러져 더욱 감동이 밀려옵니다.


<김득신 필 풍속도 화첩>(보물 제1987호)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잘 포착한 작품입니다. 김득신은 인물의 동작과 시선을 세심하게 묘사해, 긴박한 순간을 생생하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잡으려는 선비의 표정, 탕건 차림의 남성들이 투전에 몰두하는 장면 묘사에서 기지와 해학이 묻어납니다.

<조선왕조실록> 적상산 사고본까지 완성

태조부터 25대 왕 철종에 이르기까지 472년 간의 역사를 담은 <조선왕조실록>은 오대산과 정족산, 적상산 등 여러 곳의 사고에 보관돼 왔는데요. 그동안 적상산사고본은 북한에 있어 남한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죠.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소장 중인 '성종실록'과 '인조실록' '효종실록', 또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구입한 '광해군일기' 등 총 4책이 적상산사고본으로 확인됐습니다. 적상산사고본 발견은 그동안 확인할 수 없었던 적상산사고본의 원형을 복원하는 첫 걸음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적상산사고본(국보 제151-4호)을 비롯해 오대산사고본, 정족산사고본(국보 제151-1호), 봉모당본(규장각 주요 시설 중 하나였던 봉모당에 보관되었던 실록 부록), 낙질본과 산엽본(유실된 부분이 많아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책)까지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이밖에 그림을 기록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 왕실 행사 기록화인 <기사계첩>(국보 제325호)과 조선시대 인쇄 문화의 발전을 보여주는 <송조표전총류>(보물 제1989호) 등 다양한 기록 유산을 비롯해, 우리 도자 공예의 뛰어난 기술과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고려청자들도 선보입니다.

또 국보와 보물의 절반이 넘는 불교문화재로는 불교 경전을 인쇄하기 위해 새긴 <묘법연화경 목판>(보물 제1961호)과 세종이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찬불가인 <월인천강지곡>(국보 제320호) 등 불교 경전과 서적이 다수 전시됩니다.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발견의 의미


마지막으로 불교 문화재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유물 한 점을 소개합니다. 주인공은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국보 제327호)입니다. 2007년 부여 왕흥사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됐는데요. 석제 사리공 가장 바깥에 청동제 합, 은제 호, 금제 병 순으로 안치한 4중 봉안 방식이 독특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러시아 전통인형 '마트료시카'와 비슷한 형태라 할 수 있는데요. 가장 큰 용기를 열면 중간 크기 용기가 나오고, 그 안에 더 작은 용기가 또 들어 있는 형태입니다. 전체적으로는 깔끔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이 사리기에 사용된 깎고 다듬는 여러 가지 기법에서 백제 장인의 뛰어난 솜씨를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청동제 합에 새겨진 명문(銘文)으로 577년에 제작한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요. 이를 통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에서 왕흥사가 법왕 2년에 창건됐고, 무왕 35년에 낙성됐다고 하는 단편적인 내용을 한층 보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간 문헌 사료에서 확인되지 않는 백제 위덕왕 대의 역사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을 견디고 현재까지 보존돼 우리 곁에 남아있는 문화유산. 여기에 담겨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9월 27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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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보물 꼭 봐야 해!…산수화부터 사리기까지
    • 입력 2020-07-23 06:00:42
    취재K
코로나19 사태로 두 달 간 문을 닫았던 수도권 국립 문화 시설들이 22일 일제히 문을 열었습니다. 재개관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이 야심차게 준비한 특별전은 '신국보보물전'입니다. 2017년부터 3년 간 새롭게 지정된 국보와 보물 157건 가운데, 이동이 어렵거나 중량이 무거운 문화재 등을 제외한 83건, 196점을 한 자리에 모아 공개하는 전시입니다.

국보와 보물 공개 전시로는 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문화재 대여 기관만 34곳으로, 진귀한 유물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건데요. 200점 가까운 유물을 한 자리에 모으는 데만 3주가량 걸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귀한 유물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세라, 박물관 재개관 첫 날부터 예매 매진 행렬이 이어졌는데요. 이번 전시에서 꼭 봐야 할 보물은 뭐가 있을까요? 박물관 학예사들이 꼽은 보물들을 소개합니다.

두루마리에 펼쳐진 두 개의 산수화


길이 8.5m에 광활하게 펼쳐지는 산과 계곡, 그리고 그 속의 사람들.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보물 제2029호)는 한국 회화에서 보기 드문 긴 두루마리 형태의 산수화입니다. 비단 두루마기에 산세의 묘사, 또 작고 세밀하게 그려진 인물들의 꼼꼼한 묘사가 어우러져 드라마틱한 장관을 이룹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 김홍도와 나란히 궁중화원으로 이름을 떨친 이인문의 작품인데요. 당대에 유행했던 실경산수화나 풍속화보다는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길 꿈꾸는 이상향을 표현한 산수화를 즐겨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림엔 여러 개의 인장이 찍혀 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상당수가 추사 김정희의 인장이라는 겁니다. '김정희씨고정지인(김정희가 감정하고 찍은 인장)', '추사', '자손영보'(자손 대대로 전할 보물), '추사진장(추사의 진귀한 소장품)', 김정희인'이라고 돼 있어, 한때 김정희가 이 그림을 소장했고, 또 자손 대대로 전할 보물이라고 평가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을 왜 김정희가 소장했는지는 문헌에도 전해지는 게 없다는데요. 20세기 전후로 일본에 넘어가 개인 소장가가 가지고 있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팔면서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됐다고 합니다.


이 작품과 같은 공간에 나란히 전시된 작품은 <심사정 필 촉잔도권>(보물 제1986호)입니다. 실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과 쌍벽을 이루는 문인 화가 심사정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이 작품 역시 8m에 이르는 긴 두루마리 그림으로, <강산무진도>와 비교하며 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입니다.

두 그림의 가장 큰 차이, <강산무진도>에는 사람이 등장하고 <촉잔도권>에는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어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강산무진도>와 같이 볼 수 있는 기회는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신윤복·김홍도·김득신 풍속화, 어떻게 다른가?

이번 전시에서는 18세기 최고의 풍속화가로 꼽히는 신윤복, 김홍도, 김득신의 작품도 한 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요. 미술사학자인 고 최순우 선생은 세 화가 작품의 차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신윤복 풍속도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도회적인 세련이나 김홍도 풍속도에서 볼 수 있는 구수하고도 익살맞은 서민사회의 일하는 풍정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김득신 풍속도에서는 기지와 해학의 즐거움이 생동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신윤복 필 미인도>(보물 제1973호)는 여인의 아름다움이 섬세하게 묘사돼 그야말로 도회적인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배추같이 풍성한 옥색 치마 사이로 드러난 버선코 등의 표현에서 요즘 말로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려는 치밀함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이 돋보입니다.


<김홍도 필 마상청앵도>(보물 제1970호)는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섬세한 감수성을 사려 깊게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풍속화가로 잘 알려진 김홍도가 풍속을 소재로 삼아 시적 정취까지 표현한 산수화의 대표작으로, 김홍도 만년의 원숙한 기량이 돋보입니다.

이 작품에는 특히 앞서 소개한 <강산무진도>의 작가 이인문이 직접 쓴 시가 왼쪽 상단에 써 있는데요. 두 사람은 궁중화원 동료였다고 합니다.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쓴 시와 그림이 어우러져 더욱 감동이 밀려옵니다.


<김득신 필 풍속도 화첩>(보물 제1987호)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잘 포착한 작품입니다. 김득신은 인물의 동작과 시선을 세심하게 묘사해, 긴박한 순간을 생생하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잡으려는 선비의 표정, 탕건 차림의 남성들이 투전에 몰두하는 장면 묘사에서 기지와 해학이 묻어납니다.

<조선왕조실록> 적상산 사고본까지 완성

태조부터 25대 왕 철종에 이르기까지 472년 간의 역사를 담은 <조선왕조실록>은 오대산과 정족산, 적상산 등 여러 곳의 사고에 보관돼 왔는데요. 그동안 적상산사고본은 북한에 있어 남한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죠.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소장 중인 '성종실록'과 '인조실록' '효종실록', 또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구입한 '광해군일기' 등 총 4책이 적상산사고본으로 확인됐습니다. 적상산사고본 발견은 그동안 확인할 수 없었던 적상산사고본의 원형을 복원하는 첫 걸음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적상산사고본(국보 제151-4호)을 비롯해 오대산사고본, 정족산사고본(국보 제151-1호), 봉모당본(규장각 주요 시설 중 하나였던 봉모당에 보관되었던 실록 부록), 낙질본과 산엽본(유실된 부분이 많아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책)까지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이밖에 그림을 기록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 왕실 행사 기록화인 <기사계첩>(국보 제325호)과 조선시대 인쇄 문화의 발전을 보여주는 <송조표전총류>(보물 제1989호) 등 다양한 기록 유산을 비롯해, 우리 도자 공예의 뛰어난 기술과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고려청자들도 선보입니다.

또 국보와 보물의 절반이 넘는 불교문화재로는 불교 경전을 인쇄하기 위해 새긴 <묘법연화경 목판>(보물 제1961호)과 세종이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찬불가인 <월인천강지곡>(국보 제320호) 등 불교 경전과 서적이 다수 전시됩니다.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발견의 의미


마지막으로 불교 문화재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유물 한 점을 소개합니다. 주인공은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국보 제327호)입니다. 2007년 부여 왕흥사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됐는데요. 석제 사리공 가장 바깥에 청동제 합, 은제 호, 금제 병 순으로 안치한 4중 봉안 방식이 독특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러시아 전통인형 '마트료시카'와 비슷한 형태라 할 수 있는데요. 가장 큰 용기를 열면 중간 크기 용기가 나오고, 그 안에 더 작은 용기가 또 들어 있는 형태입니다. 전체적으로는 깔끔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이 사리기에 사용된 깎고 다듬는 여러 가지 기법에서 백제 장인의 뛰어난 솜씨를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청동제 합에 새겨진 명문(銘文)으로 577년에 제작한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요. 이를 통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에서 왕흥사가 법왕 2년에 창건됐고, 무왕 35년에 낙성됐다고 하는 단편적인 내용을 한층 보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간 문헌 사료에서 확인되지 않는 백제 위덕왕 대의 역사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을 견디고 현재까지 보존돼 우리 곁에 남아있는 문화유산. 여기에 담겨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9월 27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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