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 씨 비방 댓글 쓴 안희정 측근, 첫 재판에서 한 말은?

입력 2020.07.2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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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숨진 지 딱 2주가 흘렀습니다. 그사이 많은 일이 있었는데요. 먼저 박 시장의 비서실 직원이었던 A씨가 그동안 박 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장을 제출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 단체는 여러 차례 기자회견도 했습니다.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도 했는데, 이에 '왜 진즉 고소 안 했는지', '왜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지' 등 2차 가해가 이어졌습니다. 결국, 피해자 측은 인터넷 댓글을 통한 극심한 2차 피해를 당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고소를 진행한다고 밝혔습니다.

■ 2년 전 안희정 사건 때도…이혼 사실 적고 초성으로 욕한 안희정 측근

기시감이 드는 이유는 '2차 피해' 문제가 유명인의 성폭력·성추행 사건 때마다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2년 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 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3단독 진재경 판사는 오늘(24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7살 어 모 씨에 대한 공판준비기일을 열었습니다.

안희정 전 지사의 보좌관 출신인 어 씨는 2018년 3월, 안 전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한 김지은 씨 관련 기사에 악성 댓글을 수차례 달았습니다. 그중 검찰이 공소사실에 넣을 만큼 혐의가 있다고 본 댓글은 두 개, 김 씨의 이혼 사실을 적시한 댓글과 한글 초성으로 김 씨에 대한 욕을 하는 댓글이었습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당시 어 씨를 고발했고, A 씨는 결국 지난 5월 명예훼손과 모욕으로 구약식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 씨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불복하면서 오늘 서울서부지법에서 정식 재판이 열린 겁니다.

■ 변호인 "김지은은 공적 인물…공공의 이익 목적으로 사실 적시"

변호인은 먼저 공소사실과 같이 답글이나 댓글을 작성한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변호인은 먼저 "단순히 이혼했다는 사실은 가치 중립적 표현으로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구체적인 사실 적시로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김지은 씨가 스스로 생방송 뉴스에 출연해 폭로했다며, 김 씨를 공공성과 사회성을 갖춘 공적 인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당시에는 피해자의 증언에 대한 진위가 아직 밝혀진 바가 없었고,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활발한 의견을 교환하던 시기"라며 "피해자 진술 신빙성에 관해 사회 여론 등에 기여할 수 있는 사실을 공공의 이익 목적으로 달았다"고 강조했습니다. 비방의 목적이 아니라, 공적 관심 사안에 대한 단순한 의견 표명이라는 겁니다.

초성으로 욕설한 것에 대해서도 "초성을 쓴 게 모욕적 표현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모욕적 표현이라 하더라도, 김 씨가 주위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제로 왜 주위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것뿐"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안 전 지사의 측근이었던 어 씨가 자신이 성폭력을 방조한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쓴 댓글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모든 미투 피해자가 공인?"…취재팀 질문에 답 없이 떠난 어 씨

2년 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로 있을 때 어 씨 등 안 전 지사의 측근 2명과 악성 댓글 유포자 20여 명을 고발한 배복주 정의당 여성본부장은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에게 어 씨 측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안 전 지사의 유죄가 확정되기 전이어서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는 어 씨 측 주장에 배 본부장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도 그렇지만, 그럼 판결이 날 때까지 피해자는 2차 피해를 계속 겪어야 하느냐"며 반문했습니다. 또 김지은 씨가 공인이라는 피고인 측 주장에 대해 "그럼 모든 미투 피해자가 공인이냐"며 김 씨가 공인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배 본부장과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취재진에게 피해자 변호사와 고발인 등을 통해 추후 의견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어 씨와 변호인이 취재팀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법원을 나갔습니다.어 씨와 변호인이 취재팀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법원을 나갔습니다.

어 씨와 변호인은 재판이 끝난 뒤 "정식 재판을 청구한 게 혐의를 인정하지 않느냐는 뜻이냐", "댓글이 2차 가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김지은 씨에게 연락하거나 사과한 적 있느냐?" 등 KBS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법원을 빠져나갔습니다.

■ 재판부 "'공적 인물'이 '여러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사람'과 같은 의미인지 의문"

재판부는 오늘 공판준비기일을 마치며 양측이 여러 가지 사실관계를 다툰다기보다는 법적 공방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피고인 측도 댓글을 단 사실은 인정한 만큼, 이 사실관계를 어떻게 평가할 건지, 사회적으로 비난받거나 나아가 처벌받는 게 맞는지 등을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오늘 공판준비기일이 끝날 무렵, 재판부가 지적한 내용이 있습니다. "공무원이나 공직에 있으면서 그 권한과 책임을 행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당연히 좀 더 엄격한 잣대를 줘야 하고, 그 부분에 대한 과도한 비판이 허용되는 게 맞아 보인다"면서도 "여기서 말하는 공적 인물이라는 게 여러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것과 똑같은 의미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공판기일은 9월 4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2차 가해에 대한 논쟁이 또다시 뜨거워진 지금, 피고인 신문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재판부가 이를 어떻게 판단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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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은 씨 비방 댓글 쓴 안희정 측근, 첫 재판에서 한 말은?
    • 입력 2020-07-24 16:56:59
    취재K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숨진 지 딱 2주가 흘렀습니다. 그사이 많은 일이 있었는데요. 먼저 박 시장의 비서실 직원이었던 A씨가 그동안 박 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장을 제출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 단체는 여러 차례 기자회견도 했습니다.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도 했는데, 이에 '왜 진즉 고소 안 했는지', '왜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지' 등 2차 가해가 이어졌습니다. 결국, 피해자 측은 인터넷 댓글을 통한 극심한 2차 피해를 당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고소를 진행한다고 밝혔습니다.

■ 2년 전 안희정 사건 때도…이혼 사실 적고 초성으로 욕한 안희정 측근

기시감이 드는 이유는 '2차 피해' 문제가 유명인의 성폭력·성추행 사건 때마다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2년 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 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3단독 진재경 판사는 오늘(24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7살 어 모 씨에 대한 공판준비기일을 열었습니다.

안희정 전 지사의 보좌관 출신인 어 씨는 2018년 3월, 안 전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한 김지은 씨 관련 기사에 악성 댓글을 수차례 달았습니다. 그중 검찰이 공소사실에 넣을 만큼 혐의가 있다고 본 댓글은 두 개, 김 씨의 이혼 사실을 적시한 댓글과 한글 초성으로 김 씨에 대한 욕을 하는 댓글이었습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당시 어 씨를 고발했고, A 씨는 결국 지난 5월 명예훼손과 모욕으로 구약식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 씨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불복하면서 오늘 서울서부지법에서 정식 재판이 열린 겁니다.

■ 변호인 "김지은은 공적 인물…공공의 이익 목적으로 사실 적시"

변호인은 먼저 공소사실과 같이 답글이나 댓글을 작성한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변호인은 먼저 "단순히 이혼했다는 사실은 가치 중립적 표현으로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구체적인 사실 적시로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김지은 씨가 스스로 생방송 뉴스에 출연해 폭로했다며, 김 씨를 공공성과 사회성을 갖춘 공적 인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당시에는 피해자의 증언에 대한 진위가 아직 밝혀진 바가 없었고,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활발한 의견을 교환하던 시기"라며 "피해자 진술 신빙성에 관해 사회 여론 등에 기여할 수 있는 사실을 공공의 이익 목적으로 달았다"고 강조했습니다. 비방의 목적이 아니라, 공적 관심 사안에 대한 단순한 의견 표명이라는 겁니다.

초성으로 욕설한 것에 대해서도 "초성을 쓴 게 모욕적 표현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모욕적 표현이라 하더라도, 김 씨가 주위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제로 왜 주위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것뿐"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안 전 지사의 측근이었던 어 씨가 자신이 성폭력을 방조한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쓴 댓글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모든 미투 피해자가 공인?"…취재팀 질문에 답 없이 떠난 어 씨

2년 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로 있을 때 어 씨 등 안 전 지사의 측근 2명과 악성 댓글 유포자 20여 명을 고발한 배복주 정의당 여성본부장은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에게 어 씨 측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안 전 지사의 유죄가 확정되기 전이어서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는 어 씨 측 주장에 배 본부장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도 그렇지만, 그럼 판결이 날 때까지 피해자는 2차 피해를 계속 겪어야 하느냐"며 반문했습니다. 또 김지은 씨가 공인이라는 피고인 측 주장에 대해 "그럼 모든 미투 피해자가 공인이냐"며 김 씨가 공인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배 본부장과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취재진에게 피해자 변호사와 고발인 등을 통해 추후 의견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어 씨와 변호인이 취재팀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법원을 나갔습니다.
어 씨와 변호인은 재판이 끝난 뒤 "정식 재판을 청구한 게 혐의를 인정하지 않느냐는 뜻이냐", "댓글이 2차 가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김지은 씨에게 연락하거나 사과한 적 있느냐?" 등 KBS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법원을 빠져나갔습니다.

■ 재판부 "'공적 인물'이 '여러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사람'과 같은 의미인지 의문"

재판부는 오늘 공판준비기일을 마치며 양측이 여러 가지 사실관계를 다툰다기보다는 법적 공방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피고인 측도 댓글을 단 사실은 인정한 만큼, 이 사실관계를 어떻게 평가할 건지, 사회적으로 비난받거나 나아가 처벌받는 게 맞는지 등을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오늘 공판준비기일이 끝날 무렵, 재판부가 지적한 내용이 있습니다. "공무원이나 공직에 있으면서 그 권한과 책임을 행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당연히 좀 더 엄격한 잣대를 줘야 하고, 그 부분에 대한 과도한 비판이 허용되는 게 맞아 보인다"면서도 "여기서 말하는 공적 인물이라는 게 여러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것과 똑같은 의미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공판기일은 9월 4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2차 가해에 대한 논쟁이 또다시 뜨거워진 지금, 피고인 신문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재판부가 이를 어떻게 판단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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