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이 그러면 안 됩니다”…법정에 선 세월호 유가족의 호소

입력 2020.07.2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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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권력을 갖고 핍박하고, 억누르고, 소리를 못 내게 하는 일은 없도록 재판장님께서 꼭 엄벌해주세요."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재판장 이관용)는 오늘(24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병철 전 기무사 3처장(육군 준장)에 대한 항소심 결심공판을 진행했습니다.

김 전 처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안산 지역을 담당하는 310기무부대장(대령) 자리에 있으면서 기무사령관, 참모장 등과 공모해 기무부대원들에게 세월호 유가족 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오늘 재판엔 세월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 지상준 군의 어머니 강지은 씨가 증인으로 나왔는데요. 당시 사찰을 당한 사실을 알았을 때의 떨렸던 마음을 눈물로 털어놓았습니다.

■ 세월호 유가족 "다시는 권력으로 핍박하고 억누르는 일 없도록"

법정에 오기 전 몇 날 며칠을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강 씨, 다시 '사찰'에 대해 얘기하려니 너무 불안하고 화가 나서 그랬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세월호가족대책위가 회의를 하면 그게 자꾸 정보기관에 들어가 가족들을 위축되고 불안하게 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도청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선 회의를 할 때도 사무실 밖에 휴대전화를 두고 왔다고 했죠.

강 씨는 "유가족들의 성향이 어떤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무엇을 보고 즐기는지 왜 그걸 일일이 다 사찰해서 보고하고 수집을 하느냐"며 "유가족 지원이 목적이라는데 절대 아니다. 피해자들은 어디 가서 얘기도 못 하고 위축됐다"고 토로했습니다. "너무나 나쁜 사람들"이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강 씨는 가슴에 돌덩이를 하나씩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오직 통수권자를 위한다는 이유만으로 불법 행위를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강 씨는 "지금도 본인들은 지시에 의해서 그랬다고 하지만, 군인이 그러면 안 되는 것"이라며 "다시는 국민을 지키고 보호해줘야 하는 군인이 최전방에 서서 가해를 하는 일이 없도록 꼭 선례를 남겨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 檢, 징역 1년 구형…김병철 "군은 상명하복, 안 따랐으면 이미 처벌"

오늘 검찰은 김 씨에게 선고된 원심 형이 그 책임에 비해 너무 가볍다며,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검찰은 "누구보다 정치적 중립을 준수해야 하는 기무사가 정권 보위 목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유가족 등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무분별한 첩보수집 활동을 자행한 뒤 여론 압박 수단으로 활용해 불법 소지가 매우 크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김 전 처장이 본건 범행에 대해 상부 지시를 충실히 따랐고 위법성을 몰랐다며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하지만 김병철 전 처장은 피고인 신문을 통해, 기무사의 지시를 따랐을 뿐 유가족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게 불법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변호인은 "기무사의 세월호 업무는 당시 이재수 기무사령관이 지시했고, (김 전 처장이 부대장으로 있던) 예하부대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지 않으냐"고 물었고, 김 전 처장은 "군이 다수 투입돼서 당연히 따라야 했고, 불법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재판부가 "그럼 불법적이라 판단했다면 안 따랐을 것이냐"고 재차 묻자, 김 전 처장은 "불법적이라면 다시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변호인이 "사령부에서 지시한 내용이 명백하게 불법인 게 아니라면 첩보 수집 지시에 대해 예하부대장이 거부할 수 있느냐"고 묻자 "당연히 사령부 지시가 합법적이라는 판단을 하고 내려온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며 "그렇게 사령부가 지시한 걸 예하부대장이 거부할 순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어 "군은 상명하복"이라며 "안 그랬다면 이미 처벌받았을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 "성실히 일했는데…군에 모든 걸 바친 게 회한으로 다가와"

김 전 처장은 마지막으로 방청석에 앉아있는 유가족들에게 90도로 인사를 한 뒤, 최후 진술을 시작했습니다. 김 전 처장은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전 국민을 애통하게 했던 전 국가적 재난사태였다"며 "당시 제 둘째 아들도 단원고 인근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고 운을 뗐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작고한 장인이 세운 교회에서도 꽃다운 학생 2명이 유명을 달리했고, 아내가 장례식에 참여해 슬퍼했다"고 호소했습니다. 장인이 학생들과 함께 안산 하늘공원에 모셔져 있는데, 자식을 떠나보낸 유가족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자 오늘도 하늘공원에 가서 학생들을 추모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김 전 처장은 사고에 대한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혐의에 대해선 모두 부인했습니다. 당시 사령부의 정당한 지시를 받고 기무부대장으로서 업무에 임했을 뿐, 어떠한 불법 의사도 없었다는 겁니다.

김 전 처장은 "이런 임무 수행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곤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저나 동료들은 정치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전혀 이해 관계없이 성실히 임무를 수행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사건이 불거진 뒤 2년 동안, 너무나 가혹한 시간을 겪었다고 호소했습니다. 군에서 34년간 청춘을 바쳤다는 김 전 처장은 "군인으로서 국가에 대한 충성과 상명하복을 최고로 보며 제 모든 것을 바친 게 회한으로 다가오기도 한다"고 토로했습니다. 하지만 군인으로서의 삶을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억울한 심정도 있지만 억울하다 하소연할 수 없는 게 군인의 숙명이라며, 다만 가족들과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부하들이 이번 사건으로 고통받은 데 대해 미안하다고 전했습니다.

재판이 끝난 뒤 유가족들은 김 전 처장을 향해 "출세하고 영전할 땐 좋았죠? 왜 사찰했어요!", "같은 자식이 있다며! 똑같이 한번 당해봐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똑같이만!", "고통받고 있어요? 우리만큼이요?"라며 소리쳤습니다. 김 전 처장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법정을 떠났습니다.

재판부는 다음 달 28일, 김 전 처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내리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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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24 18:15:24
    취재K
"다시는 권력을 갖고 핍박하고, 억누르고, 소리를 못 내게 하는 일은 없도록 재판장님께서 꼭 엄벌해주세요."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재판장 이관용)는 오늘(24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병철 전 기무사 3처장(육군 준장)에 대한 항소심 결심공판을 진행했습니다.

김 전 처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안산 지역을 담당하는 310기무부대장(대령) 자리에 있으면서 기무사령관, 참모장 등과 공모해 기무부대원들에게 세월호 유가족 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오늘 재판엔 세월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 지상준 군의 어머니 강지은 씨가 증인으로 나왔는데요. 당시 사찰을 당한 사실을 알았을 때의 떨렸던 마음을 눈물로 털어놓았습니다.

■ 세월호 유가족 "다시는 권력으로 핍박하고 억누르는 일 없도록"

법정에 오기 전 몇 날 며칠을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강 씨, 다시 '사찰'에 대해 얘기하려니 너무 불안하고 화가 나서 그랬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세월호가족대책위가 회의를 하면 그게 자꾸 정보기관에 들어가 가족들을 위축되고 불안하게 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도청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선 회의를 할 때도 사무실 밖에 휴대전화를 두고 왔다고 했죠.

강 씨는 "유가족들의 성향이 어떤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무엇을 보고 즐기는지 왜 그걸 일일이 다 사찰해서 보고하고 수집을 하느냐"며 "유가족 지원이 목적이라는데 절대 아니다. 피해자들은 어디 가서 얘기도 못 하고 위축됐다"고 토로했습니다. "너무나 나쁜 사람들"이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강 씨는 가슴에 돌덩이를 하나씩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오직 통수권자를 위한다는 이유만으로 불법 행위를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강 씨는 "지금도 본인들은 지시에 의해서 그랬다고 하지만, 군인이 그러면 안 되는 것"이라며 "다시는 국민을 지키고 보호해줘야 하는 군인이 최전방에 서서 가해를 하는 일이 없도록 꼭 선례를 남겨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 檢, 징역 1년 구형…김병철 "군은 상명하복, 안 따랐으면 이미 처벌"

오늘 검찰은 김 씨에게 선고된 원심 형이 그 책임에 비해 너무 가볍다며,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검찰은 "누구보다 정치적 중립을 준수해야 하는 기무사가 정권 보위 목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유가족 등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무분별한 첩보수집 활동을 자행한 뒤 여론 압박 수단으로 활용해 불법 소지가 매우 크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김 전 처장이 본건 범행에 대해 상부 지시를 충실히 따랐고 위법성을 몰랐다며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하지만 김병철 전 처장은 피고인 신문을 통해, 기무사의 지시를 따랐을 뿐 유가족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게 불법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변호인은 "기무사의 세월호 업무는 당시 이재수 기무사령관이 지시했고, (김 전 처장이 부대장으로 있던) 예하부대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지 않으냐"고 물었고, 김 전 처장은 "군이 다수 투입돼서 당연히 따라야 했고, 불법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재판부가 "그럼 불법적이라 판단했다면 안 따랐을 것이냐"고 재차 묻자, 김 전 처장은 "불법적이라면 다시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변호인이 "사령부에서 지시한 내용이 명백하게 불법인 게 아니라면 첩보 수집 지시에 대해 예하부대장이 거부할 수 있느냐"고 묻자 "당연히 사령부 지시가 합법적이라는 판단을 하고 내려온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며 "그렇게 사령부가 지시한 걸 예하부대장이 거부할 순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어 "군은 상명하복"이라며 "안 그랬다면 이미 처벌받았을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 "성실히 일했는데…군에 모든 걸 바친 게 회한으로 다가와"

김 전 처장은 마지막으로 방청석에 앉아있는 유가족들에게 90도로 인사를 한 뒤, 최후 진술을 시작했습니다. 김 전 처장은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전 국민을 애통하게 했던 전 국가적 재난사태였다"며 "당시 제 둘째 아들도 단원고 인근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고 운을 뗐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작고한 장인이 세운 교회에서도 꽃다운 학생 2명이 유명을 달리했고, 아내가 장례식에 참여해 슬퍼했다"고 호소했습니다. 장인이 학생들과 함께 안산 하늘공원에 모셔져 있는데, 자식을 떠나보낸 유가족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자 오늘도 하늘공원에 가서 학생들을 추모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김 전 처장은 사고에 대한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혐의에 대해선 모두 부인했습니다. 당시 사령부의 정당한 지시를 받고 기무부대장으로서 업무에 임했을 뿐, 어떠한 불법 의사도 없었다는 겁니다.

김 전 처장은 "이런 임무 수행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곤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저나 동료들은 정치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전혀 이해 관계없이 성실히 임무를 수행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사건이 불거진 뒤 2년 동안, 너무나 가혹한 시간을 겪었다고 호소했습니다. 군에서 34년간 청춘을 바쳤다는 김 전 처장은 "군인으로서 국가에 대한 충성과 상명하복을 최고로 보며 제 모든 것을 바친 게 회한으로 다가오기도 한다"고 토로했습니다. 하지만 군인으로서의 삶을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억울한 심정도 있지만 억울하다 하소연할 수 없는 게 군인의 숙명이라며, 다만 가족들과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부하들이 이번 사건으로 고통받은 데 대해 미안하다고 전했습니다.

재판이 끝난 뒤 유가족들은 김 전 처장을 향해 "출세하고 영전할 땐 좋았죠? 왜 사찰했어요!", "같은 자식이 있다며! 똑같이 한번 당해봐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똑같이만!", "고통받고 있어요? 우리만큼이요?"라며 소리쳤습니다. 김 전 처장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법정을 떠났습니다.

재판부는 다음 달 28일, 김 전 처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내리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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