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위기입니다. 검찰의 시간도 법원의 시간도 아닌 중앙은행의 시간입니다. 어금니 꽉 깨물고 현금을 찍어냅니다. 석 달간 연준(FED)는 3,500조 원을 풀었습니다. 돈의 쓰나미가 몰려옵니다. 바이러스가 이길까? 돈이 이길까? 다우지수가 다시 사상 최고치를 향해갑니다.
(지구인들은 재정이 부족하면 중앙은행이 현금을 마구 찍어내면 된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양적완화를 했는데, 좀처럼 돈의 가치가 안 떨어집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코로나 위기. 이제 보란 듯이 윤전기를 돌릴 시간입니다. 화폐를 잔뜩 찍어내 혼쭐이 난 로마의 황제들이나 흥선대원군은 얼마나 억울한가...)
연준(FED)이 다시 헬기에서 달러를 뿌립니다. 양적완화 시즌 2입니다. 방법은 시즌1과 비슷합니다. 시중 국채나 MBS 같은 채권을 사들입니다. 채권을 사들이면 연준의 현금이 시중은행으로 흘러가고 시중은행이 그 돈으로 대출을 늘립니다. 시중에 돈이 더 돌도록 하는 겁니다. 자꾸 채권을 사들이면서 연준 곳간에는 우리 돈 7천조 원 정도의 채권이 쌓였습니다. 물론 모니터상의 숫자일 뿐이지만.
특이한 것은 이번엔 ‘코카콜라 ‘같은 회사채도 사들입니다. 갑자기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을 콕 집어서 현금을 찔러줍니다. 뭐가 어때요? 최후의 대부자(The lender of last resort)라면서요? 솔까말. 중앙은행도 신한은행이나 저축은행처럼 어쨌든 은행일 뿐인데.
시즌2에는 우리 한국은행도 출연합니다. 우리도 시중 채권을 마음껏 사주기로 했습니다. 석 달간 무제한입니다.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의 시작입니다.(한은 부총재가 양적완화라고 했으니, 양적완화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요)
이렇게 합니다. 매주 화요일 한국은행에선 대출 잔치가 벌어집니다. 시중은행이 가진 RP(환매조건부채권)를 무제한 사들입니다. 사실은 시중은행들이 가진 여러 채권을 맡기고 돈을 빌려 가는 구조입니다. “돈 필요한 사람 다 모여! 고고씽!”
이자율은 0.78%. 거의 공짜죠. 그러니 시중 은행은 이렇게 한국은행에 빌려온 돈에 조금만 이윤을 붙여 대출이 가능합니다. 한국은행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시중 이자율을 낮추는 겁니다.
한국은행은 기업들의 회사채·기업어음(CP)도 사들입니다. 미국 연준처럼 직접 사들이진 못하고, 대신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은행이 SPV에 돈을 채워놓으면, SPV가 기업들의 채권을 수조 원어치씩 사들입니다.
주로 코로나로 신용등급이 급락한 기업(Fallen angel)이 대상입니다. 현금이 급한 기업들이 이렇게 회사채를 발행해 급전을 구할 수 있습니다. 결국, 부실기업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을 넘어, 발권력이 있는 중앙은행이 위험기업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겁니다. 어? 이렇게 쉬울 수가. 이제 돈이 필요하면 중앙은행이 발권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됩니다. ‘혹시 돈 필요하세요? 중앙은행이 찍어드립니다’
이렇게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이면 금융시장의 채권 수요가 높아집니다. 채권값도 배춧값하고 똑같습니다. 수요가 높아지면 시장에서 채권값이 올라갑니다. 채권값이 오르면 채권 이자율이 내려갑니다.(다들 채권을 사겠다는데 기업이 이자를 높게 줄 리가 없죠) 이렇게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집니다. 기업 돈줄의 숨통을 열어주는 겁니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회사채를 잠깐 맡아뒀는데, 그 회사가 망해버리면 어떡하죠? 중앙은행 곳간에 넣어둔 회사채는 휴지가 될 텐데, 그럼 부실이 중앙은행으로 넘어옵니다. 그래서 미국은 연방정부가 연준이 인수하는 회사채에 보증을 해줍니다. 우리는 정부 보증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은은 갑자기 어려워진 기업 중 부실한 기업(?)을 제외하고 회사채를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안 망할 회사만 골라 급전을 빌려준다는 뜻입니다.
진짜 다른 점이 또 있습니다.
달러는 전 지구에서 유통됩니다. 하지만 원화는 주로 한반도에서만 쓰입니다. 그러니 달러는 아무리 찍어내도 좀처럼 가치가 안 떨어집니다(작은 방보다 큰 방에서 방귀를 뀌면 냄새가 희석되는 것과 같다.). 우리 돈 원화는 시장이 좁다 보니 자칫하면 넘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파도처럼 넘나드는 투기자본과 맞물려 자칫 원화 가치가 폭락할 수도 있습니다. 외환위기가 오는 겁니다. ‘연준은 ICBM 쏘는 데 한은은 왜 M16만 쏘느냐?’는 지적은 그래서 위험해 보입니다.
몇 가지 고민할 문제들.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기업을 살린다면, 그 권리는 누가 준 것일까? 그 기준은 누가 검증할 것인가? 재정을 한 푼이라도 쓰려면 국회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시장에 돈을 공급하는 문제는 어디까지 한국은행이 스스로 결정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되면 정부는 돈이 궁할 때마다 한국은행을 바라볼 겁니다. 세금을 더 거둘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 경제부총리가 보란 듯이 한국은행의 역할을 주문합니다. 이미 지난 추경 중 10조 원의 국채는 한국은행이 받아줬습니다. 재정과 통화의 구별이 모호해집니다. 대우조선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은행이 공적자금을 지출하는데 한국은행이 이를 보증하면, 그 돈은 재정인가요? 통화인가요? 민간자금인가요? 기준이 모호해지면 책임도 모호해집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풀린 돈은 태풍이 멈추고 나면, 누구의 주머니에 들어가 있을까?
중앙은행의 역할이 변합니다. 전쟁이 난무하던 19세기 영국 왕실은 전쟁채권을 계속 찍어냈고, 영란은행은 끝없이 이를 인수해 조국을 구합니다. 당시 영란은행의 역할을 규정한 문서를 보면, 초기의 금융불안이 공황이나 광기로 발전할 수 있다며 중앙은행의 역할을 ‘금융시장 안정’으로 규정합니다.
‘볼커 룰’로 유명한 폴 볼커(Paul Volcke)도 연준의 설립 목적이 금융시장 안정이라고 했습니다.
글로벌 위기가 반복됩니다. ‘물가안정을 도모해 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는 한국은행법 1조는
이제 경제학과 시험에서 만나기 힘들 것 같습니다. 한국은행 현관에 있는 ‘물가안정’이라는 액자는 별관 구내식당쯤에 걸어야 할 분위기입니다.
위기가 또 찾아왔습니다. 중앙은행의 시간입니다. 방법은 또 돈찍기입니다. 어금니 꽉 깨물고, 다시 돈을 양적으로 완화할 시간입니다.
그래도 하나는 기억해야죠. 화폐가치가 망가지면 제국의 권세도 시들었습니다. 그러니 다시 찾아온 중앙은행의 시간. 섣부른 제국 따라 하기도 경계해야 할 때입니다.
지난 10년간 계속 오르고 있는 다우지수
(지구인들은 재정이 부족하면 중앙은행이 현금을 마구 찍어내면 된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양적완화를 했는데, 좀처럼 돈의 가치가 안 떨어집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코로나 위기. 이제 보란 듯이 윤전기를 돌릴 시간입니다. 화폐를 잔뜩 찍어내 혼쭐이 난 로마의 황제들이나 흥선대원군은 얼마나 억울한가...)
연준(FED)이 다시 헬기에서 달러를 뿌립니다. 양적완화 시즌 2입니다. 방법은 시즌1과 비슷합니다. 시중 국채나 MBS 같은 채권을 사들입니다. 채권을 사들이면 연준의 현금이 시중은행으로 흘러가고 시중은행이 그 돈으로 대출을 늘립니다. 시중에 돈이 더 돌도록 하는 겁니다. 자꾸 채권을 사들이면서 연준 곳간에는 우리 돈 7천조 원 정도의 채권이 쌓였습니다. 물론 모니터상의 숫자일 뿐이지만.
특이한 것은 이번엔 ‘코카콜라 ‘같은 회사채도 사들입니다. 갑자기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을 콕 집어서 현금을 찔러줍니다. 뭐가 어때요? 최후의 대부자(The lender of last resort)라면서요? 솔까말. 중앙은행도 신한은행이나 저축은행처럼 어쨌든 은행일 뿐인데.
시즌2에는 우리 한국은행도 출연합니다. 우리도 시중 채권을 마음껏 사주기로 했습니다. 석 달간 무제한입니다.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의 시작입니다.(한은 부총재가 양적완화라고 했으니, 양적완화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요)
이렇게 합니다. 매주 화요일 한국은행에선 대출 잔치가 벌어집니다. 시중은행이 가진 RP(환매조건부채권)를 무제한 사들입니다. 사실은 시중은행들이 가진 여러 채권을 맡기고 돈을 빌려 가는 구조입니다. “돈 필요한 사람 다 모여! 고고씽!”
이자율은 0.78%. 거의 공짜죠. 그러니 시중 은행은 이렇게 한국은행에 빌려온 돈에 조금만 이윤을 붙여 대출이 가능합니다. 한국은행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시중 이자율을 낮추는 겁니다.
한국은행은 기업들의 회사채·기업어음(CP)도 사들입니다. 미국 연준처럼 직접 사들이진 못하고, 대신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은행이 SPV에 돈을 채워놓으면, SPV가 기업들의 채권을 수조 원어치씩 사들입니다.
주로 코로나로 신용등급이 급락한 기업(Fallen angel)이 대상입니다. 현금이 급한 기업들이 이렇게 회사채를 발행해 급전을 구할 수 있습니다. 결국, 부실기업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을 넘어, 발권력이 있는 중앙은행이 위험기업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겁니다. 어? 이렇게 쉬울 수가. 이제 돈이 필요하면 중앙은행이 발권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됩니다. ‘혹시 돈 필요하세요? 중앙은행이 찍어드립니다’
이렇게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이면 금융시장의 채권 수요가 높아집니다. 채권값도 배춧값하고 똑같습니다. 수요가 높아지면 시장에서 채권값이 올라갑니다. 채권값이 오르면 채권 이자율이 내려갑니다.(다들 채권을 사겠다는데 기업이 이자를 높게 줄 리가 없죠) 이렇게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집니다. 기업 돈줄의 숨통을 열어주는 겁니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회사채를 잠깐 맡아뒀는데, 그 회사가 망해버리면 어떡하죠? 중앙은행 곳간에 넣어둔 회사채는 휴지가 될 텐데, 그럼 부실이 중앙은행으로 넘어옵니다. 그래서 미국은 연방정부가 연준이 인수하는 회사채에 보증을 해줍니다. 우리는 정부 보증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은은 갑자기 어려워진 기업 중 부실한 기업(?)을 제외하고 회사채를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안 망할 회사만 골라 급전을 빌려준다는 뜻입니다.
진짜 다른 점이 또 있습니다.
달러는 전 지구에서 유통됩니다. 하지만 원화는 주로 한반도에서만 쓰입니다. 그러니 달러는 아무리 찍어내도 좀처럼 가치가 안 떨어집니다(작은 방보다 큰 방에서 방귀를 뀌면 냄새가 희석되는 것과 같다.). 우리 돈 원화는 시장이 좁다 보니 자칫하면 넘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파도처럼 넘나드는 투기자본과 맞물려 자칫 원화 가치가 폭락할 수도 있습니다. 외환위기가 오는 겁니다. ‘연준은 ICBM 쏘는 데 한은은 왜 M16만 쏘느냐?’는 지적은 그래서 위험해 보입니다.
몇 가지 고민할 문제들.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기업을 살린다면, 그 권리는 누가 준 것일까? 그 기준은 누가 검증할 것인가? 재정을 한 푼이라도 쓰려면 국회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시장에 돈을 공급하는 문제는 어디까지 한국은행이 스스로 결정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되면 정부는 돈이 궁할 때마다 한국은행을 바라볼 겁니다. 세금을 더 거둘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 경제부총리가 보란 듯이 한국은행의 역할을 주문합니다. 이미 지난 추경 중 10조 원의 국채는 한국은행이 받아줬습니다. 재정과 통화의 구별이 모호해집니다. 대우조선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은행이 공적자금을 지출하는데 한국은행이 이를 보증하면, 그 돈은 재정인가요? 통화인가요? 민간자금인가요? 기준이 모호해지면 책임도 모호해집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풀린 돈은 태풍이 멈추고 나면, 누구의 주머니에 들어가 있을까?
중앙은행의 역할이 변합니다. 전쟁이 난무하던 19세기 영국 왕실은 전쟁채권을 계속 찍어냈고, 영란은행은 끝없이 이를 인수해 조국을 구합니다. 당시 영란은행의 역할을 규정한 문서를 보면, 초기의 금융불안이 공황이나 광기로 발전할 수 있다며 중앙은행의 역할을 ‘금융시장 안정’으로 규정합니다.
‘볼커 룰’로 유명한 폴 볼커(Paul Volcke)도 연준의 설립 목적이 금융시장 안정이라고 했습니다.
글로벌 위기가 반복됩니다. ‘물가안정을 도모해 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는 한국은행법 1조는
이제 경제학과 시험에서 만나기 힘들 것 같습니다. 한국은행 현관에 있는 ‘물가안정’이라는 액자는 별관 구내식당쯤에 걸어야 할 분위기입니다.
위기가 또 찾아왔습니다. 중앙은행의 시간입니다. 방법은 또 돈찍기입니다. 어금니 꽉 깨물고, 다시 돈을 양적으로 완화할 시간입니다.
그래도 하나는 기억해야죠. 화폐가치가 망가지면 제국의 권세도 시들었습니다. 그러니 다시 찾아온 중앙은행의 시간. 섣부른 제국 따라 하기도 경계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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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D와 한국은행의 돈풀기는 어떻게 다른가?
-
- 입력 2020-07-25 09:02:32
다시 위기입니다. 검찰의 시간도 법원의 시간도 아닌 중앙은행의 시간입니다. 어금니 꽉 깨물고 현금을 찍어냅니다. 석 달간 연준(FED)는 3,500조 원을 풀었습니다. 돈의 쓰나미가 몰려옵니다. 바이러스가 이길까? 돈이 이길까? 다우지수가 다시 사상 최고치를 향해갑니다.
(지구인들은 재정이 부족하면 중앙은행이 현금을 마구 찍어내면 된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양적완화를 했는데, 좀처럼 돈의 가치가 안 떨어집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코로나 위기. 이제 보란 듯이 윤전기를 돌릴 시간입니다. 화폐를 잔뜩 찍어내 혼쭐이 난 로마의 황제들이나 흥선대원군은 얼마나 억울한가...)
연준(FED)이 다시 헬기에서 달러를 뿌립니다. 양적완화 시즌 2입니다. 방법은 시즌1과 비슷합니다. 시중 국채나 MBS 같은 채권을 사들입니다. 채권을 사들이면 연준의 현금이 시중은행으로 흘러가고 시중은행이 그 돈으로 대출을 늘립니다. 시중에 돈이 더 돌도록 하는 겁니다. 자꾸 채권을 사들이면서 연준 곳간에는 우리 돈 7천조 원 정도의 채권이 쌓였습니다. 물론 모니터상의 숫자일 뿐이지만.
특이한 것은 이번엔 ‘코카콜라 ‘같은 회사채도 사들입니다. 갑자기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을 콕 집어서 현금을 찔러줍니다. 뭐가 어때요? 최후의 대부자(The lender of last resort)라면서요? 솔까말. 중앙은행도 신한은행이나 저축은행처럼 어쨌든 은행일 뿐인데.
시즌2에는 우리 한국은행도 출연합니다. 우리도 시중 채권을 마음껏 사주기로 했습니다. 석 달간 무제한입니다.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의 시작입니다.(한은 부총재가 양적완화라고 했으니, 양적완화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요)
이렇게 합니다. 매주 화요일 한국은행에선 대출 잔치가 벌어집니다. 시중은행이 가진 RP(환매조건부채권)를 무제한 사들입니다. 사실은 시중은행들이 가진 여러 채권을 맡기고 돈을 빌려 가는 구조입니다. “돈 필요한 사람 다 모여! 고고씽!”
이자율은 0.78%. 거의 공짜죠. 그러니 시중 은행은 이렇게 한국은행에 빌려온 돈에 조금만 이윤을 붙여 대출이 가능합니다. 한국은행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시중 이자율을 낮추는 겁니다.
한국은행은 기업들의 회사채·기업어음(CP)도 사들입니다. 미국 연준처럼 직접 사들이진 못하고, 대신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은행이 SPV에 돈을 채워놓으면, SPV가 기업들의 채권을 수조 원어치씩 사들입니다.
주로 코로나로 신용등급이 급락한 기업(Fallen angel)이 대상입니다. 현금이 급한 기업들이 이렇게 회사채를 발행해 급전을 구할 수 있습니다. 결국, 부실기업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을 넘어, 발권력이 있는 중앙은행이 위험기업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겁니다. 어? 이렇게 쉬울 수가. 이제 돈이 필요하면 중앙은행이 발권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됩니다. ‘혹시 돈 필요하세요? 중앙은행이 찍어드립니다’
이렇게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이면 금융시장의 채권 수요가 높아집니다. 채권값도 배춧값하고 똑같습니다. 수요가 높아지면 시장에서 채권값이 올라갑니다. 채권값이 오르면 채권 이자율이 내려갑니다.(다들 채권을 사겠다는데 기업이 이자를 높게 줄 리가 없죠) 이렇게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집니다. 기업 돈줄의 숨통을 열어주는 겁니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회사채를 잠깐 맡아뒀는데, 그 회사가 망해버리면 어떡하죠? 중앙은행 곳간에 넣어둔 회사채는 휴지가 될 텐데, 그럼 부실이 중앙은행으로 넘어옵니다. 그래서 미국은 연방정부가 연준이 인수하는 회사채에 보증을 해줍니다. 우리는 정부 보증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은은 갑자기 어려워진 기업 중 부실한 기업(?)을 제외하고 회사채를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안 망할 회사만 골라 급전을 빌려준다는 뜻입니다.
진짜 다른 점이 또 있습니다.
달러는 전 지구에서 유통됩니다. 하지만 원화는 주로 한반도에서만 쓰입니다. 그러니 달러는 아무리 찍어내도 좀처럼 가치가 안 떨어집니다(작은 방보다 큰 방에서 방귀를 뀌면 냄새가 희석되는 것과 같다.). 우리 돈 원화는 시장이 좁다 보니 자칫하면 넘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파도처럼 넘나드는 투기자본과 맞물려 자칫 원화 가치가 폭락할 수도 있습니다. 외환위기가 오는 겁니다. ‘연준은 ICBM 쏘는 데 한은은 왜 M16만 쏘느냐?’는 지적은 그래서 위험해 보입니다.
몇 가지 고민할 문제들.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기업을 살린다면, 그 권리는 누가 준 것일까? 그 기준은 누가 검증할 것인가? 재정을 한 푼이라도 쓰려면 국회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시장에 돈을 공급하는 문제는 어디까지 한국은행이 스스로 결정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되면 정부는 돈이 궁할 때마다 한국은행을 바라볼 겁니다. 세금을 더 거둘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 경제부총리가 보란 듯이 한국은행의 역할을 주문합니다. 이미 지난 추경 중 10조 원의 국채는 한국은행이 받아줬습니다. 재정과 통화의 구별이 모호해집니다. 대우조선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은행이 공적자금을 지출하는데 한국은행이 이를 보증하면, 그 돈은 재정인가요? 통화인가요? 민간자금인가요? 기준이 모호해지면 책임도 모호해집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풀린 돈은 태풍이 멈추고 나면, 누구의 주머니에 들어가 있을까?
중앙은행의 역할이 변합니다. 전쟁이 난무하던 19세기 영국 왕실은 전쟁채권을 계속 찍어냈고, 영란은행은 끝없이 이를 인수해 조국을 구합니다. 당시 영란은행의 역할을 규정한 문서를 보면, 초기의 금융불안이 공황이나 광기로 발전할 수 있다며 중앙은행의 역할을 ‘금융시장 안정’으로 규정합니다.
‘볼커 룰’로 유명한 폴 볼커(Paul Volcke)도 연준의 설립 목적이 금융시장 안정이라고 했습니다.
글로벌 위기가 반복됩니다. ‘물가안정을 도모해 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는 한국은행법 1조는
이제 경제학과 시험에서 만나기 힘들 것 같습니다. 한국은행 현관에 있는 ‘물가안정’이라는 액자는 별관 구내식당쯤에 걸어야 할 분위기입니다.
위기가 또 찾아왔습니다. 중앙은행의 시간입니다. 방법은 또 돈찍기입니다. 어금니 꽉 깨물고, 다시 돈을 양적으로 완화할 시간입니다.
그래도 하나는 기억해야죠. 화폐가치가 망가지면 제국의 권세도 시들었습니다. 그러니 다시 찾아온 중앙은행의 시간. 섣부른 제국 따라 하기도 경계해야 할 때입니다.
(지구인들은 재정이 부족하면 중앙은행이 현금을 마구 찍어내면 된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양적완화를 했는데, 좀처럼 돈의 가치가 안 떨어집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코로나 위기. 이제 보란 듯이 윤전기를 돌릴 시간입니다. 화폐를 잔뜩 찍어내 혼쭐이 난 로마의 황제들이나 흥선대원군은 얼마나 억울한가...)
연준(FED)이 다시 헬기에서 달러를 뿌립니다. 양적완화 시즌 2입니다. 방법은 시즌1과 비슷합니다. 시중 국채나 MBS 같은 채권을 사들입니다. 채권을 사들이면 연준의 현금이 시중은행으로 흘러가고 시중은행이 그 돈으로 대출을 늘립니다. 시중에 돈이 더 돌도록 하는 겁니다. 자꾸 채권을 사들이면서 연준 곳간에는 우리 돈 7천조 원 정도의 채권이 쌓였습니다. 물론 모니터상의 숫자일 뿐이지만.
특이한 것은 이번엔 ‘코카콜라 ‘같은 회사채도 사들입니다. 갑자기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을 콕 집어서 현금을 찔러줍니다. 뭐가 어때요? 최후의 대부자(The lender of last resort)라면서요? 솔까말. 중앙은행도 신한은행이나 저축은행처럼 어쨌든 은행일 뿐인데.
시즌2에는 우리 한국은행도 출연합니다. 우리도 시중 채권을 마음껏 사주기로 했습니다. 석 달간 무제한입니다.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의 시작입니다.(한은 부총재가 양적완화라고 했으니, 양적완화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요)
이렇게 합니다. 매주 화요일 한국은행에선 대출 잔치가 벌어집니다. 시중은행이 가진 RP(환매조건부채권)를 무제한 사들입니다. 사실은 시중은행들이 가진 여러 채권을 맡기고 돈을 빌려 가는 구조입니다. “돈 필요한 사람 다 모여! 고고씽!”
이자율은 0.78%. 거의 공짜죠. 그러니 시중 은행은 이렇게 한국은행에 빌려온 돈에 조금만 이윤을 붙여 대출이 가능합니다. 한국은행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시중 이자율을 낮추는 겁니다.
한국은행은 기업들의 회사채·기업어음(CP)도 사들입니다. 미국 연준처럼 직접 사들이진 못하고, 대신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은행이 SPV에 돈을 채워놓으면, SPV가 기업들의 채권을 수조 원어치씩 사들입니다.
주로 코로나로 신용등급이 급락한 기업(Fallen angel)이 대상입니다. 현금이 급한 기업들이 이렇게 회사채를 발행해 급전을 구할 수 있습니다. 결국, 부실기업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을 넘어, 발권력이 있는 중앙은행이 위험기업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겁니다. 어? 이렇게 쉬울 수가. 이제 돈이 필요하면 중앙은행이 발권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됩니다. ‘혹시 돈 필요하세요? 중앙은행이 찍어드립니다’
이렇게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이면 금융시장의 채권 수요가 높아집니다. 채권값도 배춧값하고 똑같습니다. 수요가 높아지면 시장에서 채권값이 올라갑니다. 채권값이 오르면 채권 이자율이 내려갑니다.(다들 채권을 사겠다는데 기업이 이자를 높게 줄 리가 없죠) 이렇게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집니다. 기업 돈줄의 숨통을 열어주는 겁니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회사채를 잠깐 맡아뒀는데, 그 회사가 망해버리면 어떡하죠? 중앙은행 곳간에 넣어둔 회사채는 휴지가 될 텐데, 그럼 부실이 중앙은행으로 넘어옵니다. 그래서 미국은 연방정부가 연준이 인수하는 회사채에 보증을 해줍니다. 우리는 정부 보증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은은 갑자기 어려워진 기업 중 부실한 기업(?)을 제외하고 회사채를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안 망할 회사만 골라 급전을 빌려준다는 뜻입니다.
진짜 다른 점이 또 있습니다.
달러는 전 지구에서 유통됩니다. 하지만 원화는 주로 한반도에서만 쓰입니다. 그러니 달러는 아무리 찍어내도 좀처럼 가치가 안 떨어집니다(작은 방보다 큰 방에서 방귀를 뀌면 냄새가 희석되는 것과 같다.). 우리 돈 원화는 시장이 좁다 보니 자칫하면 넘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파도처럼 넘나드는 투기자본과 맞물려 자칫 원화 가치가 폭락할 수도 있습니다. 외환위기가 오는 겁니다. ‘연준은 ICBM 쏘는 데 한은은 왜 M16만 쏘느냐?’는 지적은 그래서 위험해 보입니다.
몇 가지 고민할 문제들.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기업을 살린다면, 그 권리는 누가 준 것일까? 그 기준은 누가 검증할 것인가? 재정을 한 푼이라도 쓰려면 국회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시장에 돈을 공급하는 문제는 어디까지 한국은행이 스스로 결정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되면 정부는 돈이 궁할 때마다 한국은행을 바라볼 겁니다. 세금을 더 거둘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 경제부총리가 보란 듯이 한국은행의 역할을 주문합니다. 이미 지난 추경 중 10조 원의 국채는 한국은행이 받아줬습니다. 재정과 통화의 구별이 모호해집니다. 대우조선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은행이 공적자금을 지출하는데 한국은행이 이를 보증하면, 그 돈은 재정인가요? 통화인가요? 민간자금인가요? 기준이 모호해지면 책임도 모호해집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풀린 돈은 태풍이 멈추고 나면, 누구의 주머니에 들어가 있을까?
중앙은행의 역할이 변합니다. 전쟁이 난무하던 19세기 영국 왕실은 전쟁채권을 계속 찍어냈고, 영란은행은 끝없이 이를 인수해 조국을 구합니다. 당시 영란은행의 역할을 규정한 문서를 보면, 초기의 금융불안이 공황이나 광기로 발전할 수 있다며 중앙은행의 역할을 ‘금융시장 안정’으로 규정합니다.
‘볼커 룰’로 유명한 폴 볼커(Paul Volcke)도 연준의 설립 목적이 금융시장 안정이라고 했습니다.
글로벌 위기가 반복됩니다. ‘물가안정을 도모해 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는 한국은행법 1조는
이제 경제학과 시험에서 만나기 힘들 것 같습니다. 한국은행 현관에 있는 ‘물가안정’이라는 액자는 별관 구내식당쯤에 걸어야 할 분위기입니다.
위기가 또 찾아왔습니다. 중앙은행의 시간입니다. 방법은 또 돈찍기입니다. 어금니 꽉 깨물고, 다시 돈을 양적으로 완화할 시간입니다.
그래도 하나는 기억해야죠. 화폐가치가 망가지면 제국의 권세도 시들었습니다. 그러니 다시 찾아온 중앙은행의 시간. 섣부른 제국 따라 하기도 경계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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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장 기자 kim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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