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사관 문 닫던 날, 반미 구호만 넘실대더라

입력 2020.07.27 (16:4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 26일 중국 쓰촨성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 앞에서 한 중국인 여성이 영사관 철수 과정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지난 26일 중국 쓰촨성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 앞에서 한 중국인 여성이 영사관 철수 과정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이른 아침, 굳게 닫힌 미국 총영사관 철문 안쪽으로 제복을 입은 한 무리의 미국인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정문 바로 안쪽에 게양돼 있던 성조기가 천천히 하강했습니다.

오늘(27일) 오전 6시 18분, 중국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서 미국 국기가 35년 만에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미국 국무부는 오전 10시를 기해 청두 총영사관의 업무를 종료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중국 외교부도 웨이보 계정을 통해 "중국의 요구에 따라 청두 미 총영사관이 폐쇄됐다"고 알리면서 "우리는 정문을 통해 들어가 정당하게 접수 절차를 집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오늘(27일) 오전 6시 18분,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서 미국 국기가 내려지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오늘(27일) 오전 6시 18분,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서 미국 국기가 내려지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지난 24일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의 폐쇄를 통보한 뒤 청두 총영사관 앞은 연일 중국인들로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영사관과 접한 인도는 중국 공안이 철제 바리케이드를 치고 사람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막았지만, 반대편 인도는 자유롭게 왕래를 허용했습니다.

주말을 맞아 미국 총영사관 앞으로 몰려나온 중국인들은 셀카를 찍거나 중국 정부를 옹호하는 구호를 외쳐댔습니다. 일부는 어린 자녀들의 손까지 잡고 나와 길 건너편에서 연신 휴대전화 셀카를 눌러댔습니다. 구경 나온 많은 이들의 손에는 중국 국기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오늘 오전 청두 미 총영사관 앞에서 중국인들이 중국 당국의 영사관 진입을 기다리며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오늘 오전 청두 미 총영사관 앞에서 중국인들이 중국 당국의 영사관 진입을 기다리며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지난 26일 청두 미 총영사관 맞은편에서 구경 나온 중국인 가족이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EPA 연합뉴스]지난 26일 청두 미 총영사관 맞은편에서 구경 나온 중국인 가족이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EPA 연합뉴스]

토요일에는 총영사관에 붙어있던 미국 정부 휘장이 내려졌습니다. 일요일인 어제저녁에는 총영사관 명판도 떼어냈습니다. 청두 시민들은 총영사관 건물 안쪽에서 미국인들이 철수 준비를 하는 일거수일투족을 목을 빼고 지켜봤습니다. 중국 관영 CCTV도 총영사관 철수 과정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했습니다.

지난 26일 저녁 한 작업자가 청두 미 총영사관 외벽에 붙은 미국 영사관 명판을 떼어내고 있다.[사진=EPA 연합뉴스]지난 26일 저녁 한 작업자가 청두 미 총영사관 외벽에 붙은 미국 영사관 명판을 떼어내고 있다.[사진=EPA 연합뉴스]

유리창에 검게 선팅을 입힌 버스가 영사관 건물을 빠져나갈 때는 군중들 사이에서 "우~"하는 야유가 터져 나왔습니다.

한 청두 시민은 "누구라도 우리 영토를 침범하고 괴롭히면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사랑해요 중국'이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중국"을 연호하는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영사관 바로 맞은편 건물에선 발코니에 중국 국기를 길게 늘어뜨리고 "중국"을 외치는 이도 눈에 띄었습니다.

지난 26일 청두 미 영사관 맞은편 건물 발코니에서 한 중국인 남성이 중국 국기를 내걸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지난 26일 청두 미 영사관 맞은편 건물 발코니에서 한 중국인 남성이 중국 국기를 내걸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미국 영사관 앞에 배치된 중국 공안은 그때마다 나서 시민들을 제지했습니다. 정치적 구호를 담은 플래카드를 펼치려던 한 시민은 공안에 의해 어딘가로 연행됐습니다. 영국 <가디언>은 공안이 시민들의 도발적인 행동이나 과도하게 환호하는 행위를 즉각 중지시켰다고 전했습니다.

오늘 오전 10시로 통보된 총영사관 폐쇄 시한이 다가오자 청두 시민들은 영사관 맞은편에서 또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미 시간이 지났다." "어서 서둘러라" "당장 강제로 끌어내라." 같은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오늘 청두 미 총영사관이 폐쇄된 뒤 중국 공안이 영사관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오늘 청두 미 총영사관이 폐쇄된 뒤 중국 공안이 영사관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예정된 시간이 되자 중국 당국은 총영사관 안으로 진입해 영사관 건물을 접수했습니다. 이로써 1985년 문을 연 청두 미국 총영사관은 35년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중국의 아킬레스건으로 여겨졌던 티베트와 신장자치구의 인권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온 미국 정부의 외교적 전초기지는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4일 청두 영사관 폐쇄를 통보하면서 "미국의 비이성적인 조치에 대한 합법적이고 필요한 대응 조치"라고 강변했습니다. 중국 정부로선 눈엣가시 같은 미국 영사관을 "합법적으로" 폐쇄했습니다.

지난 24일 미국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이 폐쇄된 뒤 미국 관리들과 열쇠수리공이 잠겨있는 영사관 문을 따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지난 24일 미국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이 폐쇄된 뒤 미국 관리들과 열쇠수리공이 잠겨있는 영사관 문을 따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지난 21일 미국의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 통보와 함께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치고받기식 영사관 폐쇄 사태는 일단 일주일 만에 일단락됐습니다. 미국의 선제공격에 중국이 똑같은 수위로 응수하면서 타격전을 한 차례씩 주고받은 것입니다.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습니다. 중국의 보복을 받은 미국이 자국 내 다른 공관 폐쇄라는 추가 보복 카드를 꺼내들 지 아니면 여기서 확전을 멈추고 외교적 해법을 모색할 지는 전적으로 미국 정부의 손에 달린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정부의 전격적인 중국 영사관 폐쇄는 겉으로는 미국 지식재산권 보호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실은 대선을 앞둔 트럼프 정부가 지지율 반등을 위해 '중국 때리기'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미중 무역분쟁, 코로나19 중국 책임론, 홍콩 보안법에 이어 영사관 폐쇄까지 사사건건 대립을 이어온 미국과 중국 '빅2'가 미국 대선이라는 변수 앞에서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어려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미국 영사관 문 닫던 날, 반미 구호만 넘실대더라
    • 입력 2020-07-27 16:42:34
    취재K

지난 26일 중국 쓰촨성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 앞에서 한 중국인 여성이 영사관 철수 과정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이른 아침, 굳게 닫힌 미국 총영사관 철문 안쪽으로 제복을 입은 한 무리의 미국인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정문 바로 안쪽에 게양돼 있던 성조기가 천천히 하강했습니다.

오늘(27일) 오전 6시 18분, 중국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서 미국 국기가 35년 만에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미국 국무부는 오전 10시를 기해 청두 총영사관의 업무를 종료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중국 외교부도 웨이보 계정을 통해 "중국의 요구에 따라 청두 미 총영사관이 폐쇄됐다"고 알리면서 "우리는 정문을 통해 들어가 정당하게 접수 절차를 집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오늘(27일) 오전 6시 18분,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서 미국 국기가 내려지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지난 24일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의 폐쇄를 통보한 뒤 청두 총영사관 앞은 연일 중국인들로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영사관과 접한 인도는 중국 공안이 철제 바리케이드를 치고 사람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막았지만, 반대편 인도는 자유롭게 왕래를 허용했습니다.

주말을 맞아 미국 총영사관 앞으로 몰려나온 중국인들은 셀카를 찍거나 중국 정부를 옹호하는 구호를 외쳐댔습니다. 일부는 어린 자녀들의 손까지 잡고 나와 길 건너편에서 연신 휴대전화 셀카를 눌러댔습니다. 구경 나온 많은 이들의 손에는 중국 국기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오늘 오전 청두 미 총영사관 앞에서 중국인들이 중국 당국의 영사관 진입을 기다리며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지난 26일 청두 미 총영사관 맞은편에서 구경 나온 중국인 가족이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EPA 연합뉴스]
토요일에는 총영사관에 붙어있던 미국 정부 휘장이 내려졌습니다. 일요일인 어제저녁에는 총영사관 명판도 떼어냈습니다. 청두 시민들은 총영사관 건물 안쪽에서 미국인들이 철수 준비를 하는 일거수일투족을 목을 빼고 지켜봤습니다. 중국 관영 CCTV도 총영사관 철수 과정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했습니다.

지난 26일 저녁 한 작업자가 청두 미 총영사관 외벽에 붙은 미국 영사관 명판을 떼어내고 있다.[사진=EPA 연합뉴스]
유리창에 검게 선팅을 입힌 버스가 영사관 건물을 빠져나갈 때는 군중들 사이에서 "우~"하는 야유가 터져 나왔습니다.

한 청두 시민은 "누구라도 우리 영토를 침범하고 괴롭히면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사랑해요 중국'이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중국"을 연호하는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영사관 바로 맞은편 건물에선 발코니에 중국 국기를 길게 늘어뜨리고 "중국"을 외치는 이도 눈에 띄었습니다.

지난 26일 청두 미 영사관 맞은편 건물 발코니에서 한 중국인 남성이 중국 국기를 내걸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미국 영사관 앞에 배치된 중국 공안은 그때마다 나서 시민들을 제지했습니다. 정치적 구호를 담은 플래카드를 펼치려던 한 시민은 공안에 의해 어딘가로 연행됐습니다. 영국 <가디언>은 공안이 시민들의 도발적인 행동이나 과도하게 환호하는 행위를 즉각 중지시켰다고 전했습니다.

오늘 오전 10시로 통보된 총영사관 폐쇄 시한이 다가오자 청두 시민들은 영사관 맞은편에서 또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미 시간이 지났다." "어서 서둘러라" "당장 강제로 끌어내라." 같은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오늘 청두 미 총영사관이 폐쇄된 뒤 중국 공안이 영사관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예정된 시간이 되자 중국 당국은 총영사관 안으로 진입해 영사관 건물을 접수했습니다. 이로써 1985년 문을 연 청두 미국 총영사관은 35년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중국의 아킬레스건으로 여겨졌던 티베트와 신장자치구의 인권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온 미국 정부의 외교적 전초기지는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4일 청두 영사관 폐쇄를 통보하면서 "미국의 비이성적인 조치에 대한 합법적이고 필요한 대응 조치"라고 강변했습니다. 중국 정부로선 눈엣가시 같은 미국 영사관을 "합법적으로" 폐쇄했습니다.

지난 24일 미국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이 폐쇄된 뒤 미국 관리들과 열쇠수리공이 잠겨있는 영사관 문을 따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지난 21일 미국의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 통보와 함께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치고받기식 영사관 폐쇄 사태는 일단 일주일 만에 일단락됐습니다. 미국의 선제공격에 중국이 똑같은 수위로 응수하면서 타격전을 한 차례씩 주고받은 것입니다.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습니다. 중국의 보복을 받은 미국이 자국 내 다른 공관 폐쇄라는 추가 보복 카드를 꺼내들 지 아니면 여기서 확전을 멈추고 외교적 해법을 모색할 지는 전적으로 미국 정부의 손에 달린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정부의 전격적인 중국 영사관 폐쇄는 겉으로는 미국 지식재산권 보호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실은 대선을 앞둔 트럼프 정부가 지지율 반등을 위해 '중국 때리기'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미중 무역분쟁, 코로나19 중국 책임론, 홍콩 보안법에 이어 영사관 폐쇄까지 사사건건 대립을 이어온 미국과 중국 '빅2'가 미국 대선이라는 변수 앞에서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어려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