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기획/부산 ‘물난리’]② 빗물 저장시설도 ‘지역 쏠림’… 경제성 없어서 설치 못한다?

입력 2020.07.29 (12:02) 수정 2020.08.0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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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비가 쏟아지던 지난 23일 밤,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의 한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입니다. 빗물이 지하주차장으로 밀려들어 가 수억 원대 고급 스포츠카 등 차량 수십 대가 침수됐습니다. 우수관은 역류했고 도로는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오피스텔 바로 앞에는 부산에서 12곳뿐인 빗물 저장시설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축구장 1개 크기의 거대한 빗물 저장시설을 코앞에 두고 왜 이런 피해가 발생한 걸까요?  KBS 재난기획 보도, 오늘은 부산 지역에 설치된 빗물 저장시설의 한계점을 짚어봅니다.

센텀 빗물 저장시설센텀 빗물 저장시설
빗물 저장시설은 우수관을 통해 흘러오는 빗물을 모아 인근 하천으로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부산 해운대구 센텀 빗물 저장소는 지난 2011년 100억 가까운 돈을 들여 시간당 100mm 이상의 빗물을 소화할 수 있도록 지어졌습니다. 지난 23일부터 이틀간 방류한 물은 총 2만 7천 톤가량입니다. 준설 10년 만에 역대 최고 수위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비 피해는 줄어들지 않았는데요. 빗물 저장시설이 일부 지역에는 연결돼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센텀 빗물 저장시설은 상습침수지역인 해운대 벡스코 인근에서 동백중학교까지 센텀시티 일대의 빗물을 관리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해운대구 우2동과 재송동 일대는 우수관을 빗물 저장시설에 연결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바로 옆 수영강으로 빗물을 바로 내보내도록 직통 관로를 연결해 놨는데요. 문제는 밀물 때입니다. 바닷물이 들어와 수영강 수위가 높아지면 오히려 직통관을 통해 빗물까지 시내로 역류해 침수 피해를 키우는 겁니다.  부산시 측은 빗물 저장시설 용량 탓에 이 구간을 연결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업 시작 초기부터 인근 우수관로 개선과 추가 시설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추가 시설이 들어서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시간당 80mm 이상의 비가 쏟아지자 저장시설과 연결되지 않은 지역은 물론, 도로로 내려온 빗물에 센텀시티 도로 대부분이 침수 피해를 입었습니다.

부산 빗물 저장시설 현황부산 빗물 저장시설 현황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 같은 빗물 저장시설이 특정 지역에 몰려 있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됩니다. 부산에 설치된 12개 빗물 저장시설 모두 해운대구와 금정구 등 동부산권에 몰려있습니다. 도심 하천이 두 번이나 범람하고 지하차도 침수 사고로 3명이 숨진 부산 동구에는 빗물 저장시설이 없습니다. 심지어 원도심과 서부산권에는 빗물 저장시설 설치 계획조차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경제성을 따져야 한다." 부산시 재난 담당자의 말입니다. 결국 예산 부족 탓이란 겁니다.  방재에 경제성을 따지는 사이, 구도심과 서부산권은 고스란히 침수 피해에 인명 피해까지 입었습니다.

부산 서구 감천재개발구역부산 서구 감천재개발구역

전문가들은 부산 지역의 지형 특성상 빗물 저장시설은 지역 곳곳에 설치돼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해안가 뒤로 산이 자리한 부산은 갑작스러운 집중호우에 물이 삽시간에 산비탈을 따라 내려와 저지대로 고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산지를 깎아 집을 지은 난개발 지역에서는  빗물 유속이 더 빨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집중호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하천 중상류 지점에 빗물 저장시설을 설치하고, 하류에 배수 펌프장을 이용해 물을 내보내는 방안이 적합하다고 설명합니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물을 차례로 줄여 저지대와 하천 하류의 침수를 막을 수 있습니다.

서울 국내 최초의 터널형 빗물 저장시설서울 국내 최초의 터널형 빗물 저장시설

그렇다면 빗물 저장시설을 어디에 어떻게 설치할 수 있는지가 논의돼야 하는데요. 통상적으로 공공기관, 학교, 공원 등 공공시설 지하에 공간을 마련해 빗물을 받는 방안이 대표적입니다. 서울은 공원 터 밑을 활용해 지하 터널 형태의 빗물 저장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산의 경우 특히 동천과 같이 지류가 많고, 하류에 배수펌프장 용량이 작은 곳이라면 곳곳에 여러 빗물 저장시설을 설치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이를 위해서 상당한 예산이 들어가는데, 국비 지원이 절실하다는 게 부산시의 입장입니다. 국비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정부가 시행하는 빗물 저장시설 설치사업에 공모하는 것과 자연재해위험 개선지구로 등록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지난 2018년 부산시는 설치사업에 공모해 현재 빗물 저장시설 3곳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자연재해위험 개선지구로 등록하면 국비 50%를 지원받을 수 있고 이 경우 배수펌프장과 우수저류시설 등 다양한 시설 유치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사업들에도 하천과 하수관로 등 다양한 시설들의 유기적 협력 체계가 동반돼야 합니다. 예산 확보도 정부 부처별로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도시 전체의 배수 시스템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 그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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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29 12:02:01
    • 수정2020-08-03 17:21:33
    취재K


거센 비가 쏟아지던 지난 23일 밤,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의 한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입니다. 빗물이 지하주차장으로 밀려들어 가 수억 원대 고급 스포츠카 등 차량 수십 대가 침수됐습니다. 우수관은 역류했고 도로는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오피스텔 바로 앞에는 부산에서 12곳뿐인 빗물 저장시설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축구장 1개 크기의 거대한 빗물 저장시설을 코앞에 두고 왜 이런 피해가 발생한 걸까요?  KBS 재난기획 보도, 오늘은 부산 지역에 설치된 빗물 저장시설의 한계점을 짚어봅니다.

센텀 빗물 저장시설빗물 저장시설은 우수관을 통해 흘러오는 빗물을 모아 인근 하천으로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부산 해운대구 센텀 빗물 저장소는 지난 2011년 100억 가까운 돈을 들여 시간당 100mm 이상의 빗물을 소화할 수 있도록 지어졌습니다. 지난 23일부터 이틀간 방류한 물은 총 2만 7천 톤가량입니다. 준설 10년 만에 역대 최고 수위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비 피해는 줄어들지 않았는데요. 빗물 저장시설이 일부 지역에는 연결돼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센텀 빗물 저장시설은 상습침수지역인 해운대 벡스코 인근에서 동백중학교까지 센텀시티 일대의 빗물을 관리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하지만 해운대구 우2동과 재송동 일대는 우수관을 빗물 저장시설에 연결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바로 옆 수영강으로 빗물을 바로 내보내도록 직통 관로를 연결해 놨는데요. 문제는 밀물 때입니다. 바닷물이 들어와 수영강 수위가 높아지면 오히려 직통관을 통해 빗물까지 시내로 역류해 침수 피해를 키우는 겁니다.  부산시 측은 빗물 저장시설 용량 탓에 이 구간을 연결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업 시작 초기부터 인근 우수관로 개선과 추가 시설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추가 시설이 들어서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시간당 80mm 이상의 비가 쏟아지자 저장시설과 연결되지 않은 지역은 물론, 도로로 내려온 빗물에 센텀시티 도로 대부분이 침수 피해를 입었습니다.

부산 빗물 저장시설 현황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 같은 빗물 저장시설이 특정 지역에 몰려 있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됩니다. 부산에 설치된 12개 빗물 저장시설 모두 해운대구와 금정구 등 동부산권에 몰려있습니다. 도심 하천이 두 번이나 범람하고 지하차도 침수 사고로 3명이 숨진 부산 동구에는 빗물 저장시설이 없습니다. 심지어 원도심과 서부산권에는 빗물 저장시설 설치 계획조차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경제성을 따져야 한다." 부산시 재난 담당자의 말입니다. 결국 예산 부족 탓이란 겁니다.  방재에 경제성을 따지는 사이, 구도심과 서부산권은 고스란히 침수 피해에 인명 피해까지 입었습니다.

부산 서구 감천재개발구역
전문가들은 부산 지역의 지형 특성상 빗물 저장시설은 지역 곳곳에 설치돼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해안가 뒤로 산이 자리한 부산은 갑작스러운 집중호우에 물이 삽시간에 산비탈을 따라 내려와 저지대로 고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산지를 깎아 집을 지은 난개발 지역에서는  빗물 유속이 더 빨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집중호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하천 중상류 지점에 빗물 저장시설을 설치하고, 하류에 배수 펌프장을 이용해 물을 내보내는 방안이 적합하다고 설명합니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물을 차례로 줄여 저지대와 하천 하류의 침수를 막을 수 있습니다.

서울 국내 최초의 터널형 빗물 저장시설
그렇다면 빗물 저장시설을 어디에 어떻게 설치할 수 있는지가 논의돼야 하는데요. 통상적으로 공공기관, 학교, 공원 등 공공시설 지하에 공간을 마련해 빗물을 받는 방안이 대표적입니다. 서울은 공원 터 밑을 활용해 지하 터널 형태의 빗물 저장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산의 경우 특히 동천과 같이 지류가 많고, 하류에 배수펌프장 용량이 작은 곳이라면 곳곳에 여러 빗물 저장시설을 설치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이를 위해서 상당한 예산이 들어가는데, 국비 지원이 절실하다는 게 부산시의 입장입니다. 국비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정부가 시행하는 빗물 저장시설 설치사업에 공모하는 것과 자연재해위험 개선지구로 등록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지난 2018년 부산시는 설치사업에 공모해 현재 빗물 저장시설 3곳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자연재해위험 개선지구로 등록하면 국비 50%를 지원받을 수 있고 이 경우 배수펌프장과 우수저류시설 등 다양한 시설 유치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사업들에도 하천과 하수관로 등 다양한 시설들의 유기적 협력 체계가 동반돼야 합니다. 예산 확보도 정부 부처별로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도시 전체의 배수 시스템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 그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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