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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태국을 들썩이게 하고 있는 ‘페라리 뺑소니’…진실은?
입력 2020.07.30 (14:16) 글로벌 돋보기

■8년 전 벌어진 페라리 뺑소니 사건

2012년 9월 3일 월요일 새벽 5시 30분.

방콕 도심에서 과속으로 달리던 검은색 페라리 스포츠카가 오토바이를 타고 근무 중이던 경찰관을 들이받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스포츠카를 운전했던 사람은 세계적인 스포츠음료 레드불(Red Bull)의 공동 창업주의 손자인 오라윳 유위티야(35). 유위티야 일가의 재산은 우리 돈으로 23조 원으로  태국에서 두 번째 부호로 알려져 있다.

당시 페라리 승용차는 경찰관과 부딪친 후 약 200m를 더 주행한 뒤 멈췄으며 경찰관은 승용차에 끌려가다 목과 뼈가 부러져 사망했다.  오라윳은 사고 직후 도주했다 자신의 집에서 체포됐다.  당시 경찰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페라리 승용차 앞부분은 거의 전파된 상태였다.  사건 발생 후 측정된 오라윳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65%로 법적 운전 허용치를 초과했다.


■ 이상하게 흘러가는 사고조사…."음주 운전 아니라 사고 후 음주"

음주 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내고 뺑소니까지 했지만, 피해자가 동료 경찰관인데도 불구하고 경찰의 사고 조사는 이상하게 흘러갔다. 오라윳의 음주운전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은 술을 마시고 운전한 것이 아니라 사고 후에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마셨다는 피의자의 일방적 진술을 받아들였다.  오라윳은 결국 보석금 50만 밧(약 1천900만 원)을 내고 석방됐다.

오라윳은 사건이 검찰로 이첩된 뒤 7차례의 소환 조사에 단 한 차례도 응하지 않았다.  ‘업무 때문에 해외에 머물고 있어서’, ‘몸이 좋지 않아서’ 등이 그 이유였다.  단 한 차례의 강제 구인도 없었다.

■ 소환조사 불응하며 F1 관람· 유람선 여행 등 호화 생활

 태국에서 유전무죄(有錢無罪) 논란이 일기 시작하던 차에 오라윳이 전 세계를 유람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사고 후 소환조사에 불응하면서 4년 동안 9개국을 돌아다녔다는 보도가 나오고, 포뮬러원(F1) 대회를 관람하고, 유람선 여행을 즐긴 사실도 알려졌다. 여론이 좋지 않게 돌아갔다.

그제야 태국 경찰은 엄정 수사 방침을 밝히고 강제 구인에 나섰지만, 2017년 4월 오라윳은 자가용 비행기로 싱가포르로 건너간 뒤 비행기도 버려둔 채 다시 해외로 도주했다. 놓친 것이 아니라 놓아준 거라는 추측도 나왔다.

■ 인터폴 수배 명단에서도 슬그머니 사라져

태국 경찰은 오라윳을 국제형사기구(인터폴) 적색 수배자 명단에 올렸다. 그런데 이듬해인 2018년 이상한 일이 또다시 벌어졌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터폴 수배자 명단에서 오라윳이 사라진 것이다. 언론에서 이 사실을 보도했지만, 왜 오라윳이 명단에서 사라졌는지 태국 경찰도 검찰도 대답이 없었다.

인터폴 수배대상자 명단에 올랐던 오라윳인터폴 수배대상자 명단에 올랐던 오라윳

인터폴 측은 용의자가 체포되거나 본국으로 송환된 경우, 사망했을 경우, 수배 요청 국에서 체포 영장의 효력이 없어지거나, 수배 대상자가 사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받아들여졌을 때 해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태국 경찰과 검찰은 자신들과는 관련이 없다는 말만 내놓았다.  또다시 유전무죄 논란이 일었다.

■ 태국 검찰, 오라윳 기소 철회…. 이유는 안 밝혀

그러던 중 지난 24일 CNN 은  "태국 검찰이 경찰에 오라윳에 대해 기소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경찰도 검찰 결정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곧 오라윳 측에 이를 알려주고 체포영장 철회 절차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태국 검찰은 왜 기소를 철회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경찰관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한 태국 재벌 손자의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사법당국이 8년 만에 공식적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과속 및 음주운전 혐의는 공소시효가 끝났지만, 부주의한 운전에 의한 과실치사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는 2027년까지 7년이나 남아 있었다.

■ 요동치는 민심…. 총리가 진상조사 지시

사망사고를 낸 재벌 3세에 대한 태국 사법당국의 계속된 ‘면죄부’가 태국 민심을 요동치게 하고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가 "명확한 불기소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하라"고 요구하고 나섰고, 네티즌들은 SNS상에서 '레드불에 노라고 말하라'(#saynotoredbull)라는 해시태그를 퍼 나르며 비판 여론을 키웠다.


사법 정의가 훼손됐다는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의회와 정부 위원회에서 검찰과 경찰의 설명을 촉구하고 나섰고 급기야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직접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즉각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위원장으로 국립 반부패위원장이 임명됐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나빠지고 반정부 집회도 잇따르는 상황에서 자칫 이번 논란이 민심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묵묵부답이었던 검찰과 경찰도 자체 진상조사를 벌이겠다고 뒤늦게 나섰다.

■ 뒤바뀐 증언, "시속 177km 아니라 80km…. 숨진 경찰관이 잘못"

오라윳에 대한 검찰이 불기소 결정 배경에 관심이 쏠리면서 검찰이 초기 수사결과를 뒤집는 "결정적 증언"을 채택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고 직후 경찰의 초기 조사에서 오라윳이 몰던 페라리 승용차의 속도는 시속 177km.

그런데 검찰은 이후 당시 오라윳 뒤에서 운전 중이었다고 주장한 두 증인의 새로운 진술을 확보했다. 가해자 승용차의 속도가 시속 177km가 아니라 80km 이하였다는 것이다. 두 증인은 페라리 승용차가 시속 80㎞ 이하 속도로 3차선에서 달리고 있었지만, 왼쪽 차선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경찰이 갑작스럽게 차선을 바꿔 페라리 앞으로 끼어들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숨진 경찰이 잘못이고 오라윳은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  당시 증거수집팀, "CCTV 분석 결과 시속 170km 이상"

하지만 초기 수사 당시 증거수집팀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사고 직후 현장에서 100m가량 떨어진 것에 설치된 폐쇄회로 TV를 분석한 결과 당시 페라리 승용차의 속도는 시속 170km가 넘는다고 밝혔다.  당시 두 개 팀이 페라리 속도를 계산했다면서 시작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자신이 속한 팀은 시속 177㎞, 다른 한 팀은 시속 174㎞로 각각 결론 냈다고 설명했다.

오라윳 유위디아의 할아버지인 찰레오 유위디아는 가난한 중국 이민자의 아들로 교육도 많이 받지 못하고 고생하다 방콕으로 건너와 항생제를 팔다 작은 약재상을 하나 차렸고, 1976년 에너지 음료를 개발하며 거부가 됐다고 한다.

고생하며 자수성가를 한 할아버지 덕분에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오라윳. 태국 사회에서 정의와 법치라는 가치가 그의 오만방자한 행동을 이길 수 있을지 이번 사건의 결과가 주목된다. 물론 정의와 법치가 돈을 이기는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성난 여론에 의해 마지못해 지켜졌다는 것은 씁쓸한 일일 수밖에 없다.
  • [특파원리포트] 태국을 들썩이게 하고 있는 ‘페라리 뺑소니’…진실은?
    • 입력 2020-07-30 14:16:10
    글로벌 돋보기

■8년 전 벌어진 페라리 뺑소니 사건

2012년 9월 3일 월요일 새벽 5시 30분.

방콕 도심에서 과속으로 달리던 검은색 페라리 스포츠카가 오토바이를 타고 근무 중이던 경찰관을 들이받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스포츠카를 운전했던 사람은 세계적인 스포츠음료 레드불(Red Bull)의 공동 창업주의 손자인 오라윳 유위티야(35). 유위티야 일가의 재산은 우리 돈으로 23조 원으로  태국에서 두 번째 부호로 알려져 있다.

당시 페라리 승용차는 경찰관과 부딪친 후 약 200m를 더 주행한 뒤 멈췄으며 경찰관은 승용차에 끌려가다 목과 뼈가 부러져 사망했다.  오라윳은 사고 직후 도주했다 자신의 집에서 체포됐다.  당시 경찰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페라리 승용차 앞부분은 거의 전파된 상태였다.  사건 발생 후 측정된 오라윳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65%로 법적 운전 허용치를 초과했다.


■ 이상하게 흘러가는 사고조사…."음주 운전 아니라 사고 후 음주"

음주 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내고 뺑소니까지 했지만, 피해자가 동료 경찰관인데도 불구하고 경찰의 사고 조사는 이상하게 흘러갔다. 오라윳의 음주운전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은 술을 마시고 운전한 것이 아니라 사고 후에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마셨다는 피의자의 일방적 진술을 받아들였다.  오라윳은 결국 보석금 50만 밧(약 1천900만 원)을 내고 석방됐다.

오라윳은 사건이 검찰로 이첩된 뒤 7차례의 소환 조사에 단 한 차례도 응하지 않았다.  ‘업무 때문에 해외에 머물고 있어서’, ‘몸이 좋지 않아서’ 등이 그 이유였다.  단 한 차례의 강제 구인도 없었다.

■ 소환조사 불응하며 F1 관람· 유람선 여행 등 호화 생활

 태국에서 유전무죄(有錢無罪) 논란이 일기 시작하던 차에 오라윳이 전 세계를 유람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사고 후 소환조사에 불응하면서 4년 동안 9개국을 돌아다녔다는 보도가 나오고, 포뮬러원(F1) 대회를 관람하고, 유람선 여행을 즐긴 사실도 알려졌다. 여론이 좋지 않게 돌아갔다.

그제야 태국 경찰은 엄정 수사 방침을 밝히고 강제 구인에 나섰지만, 2017년 4월 오라윳은 자가용 비행기로 싱가포르로 건너간 뒤 비행기도 버려둔 채 다시 해외로 도주했다. 놓친 것이 아니라 놓아준 거라는 추측도 나왔다.

■ 인터폴 수배 명단에서도 슬그머니 사라져

태국 경찰은 오라윳을 국제형사기구(인터폴) 적색 수배자 명단에 올렸다. 그런데 이듬해인 2018년 이상한 일이 또다시 벌어졌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터폴 수배자 명단에서 오라윳이 사라진 것이다. 언론에서 이 사실을 보도했지만, 왜 오라윳이 명단에서 사라졌는지 태국 경찰도 검찰도 대답이 없었다.

인터폴 수배대상자 명단에 올랐던 오라윳인터폴 수배대상자 명단에 올랐던 오라윳

인터폴 측은 용의자가 체포되거나 본국으로 송환된 경우, 사망했을 경우, 수배 요청 국에서 체포 영장의 효력이 없어지거나, 수배 대상자가 사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받아들여졌을 때 해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태국 경찰과 검찰은 자신들과는 관련이 없다는 말만 내놓았다.  또다시 유전무죄 논란이 일었다.

■ 태국 검찰, 오라윳 기소 철회…. 이유는 안 밝혀

그러던 중 지난 24일 CNN 은  "태국 검찰이 경찰에 오라윳에 대해 기소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경찰도 검찰 결정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곧 오라윳 측에 이를 알려주고 체포영장 철회 절차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태국 검찰은 왜 기소를 철회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경찰관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한 태국 재벌 손자의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사법당국이 8년 만에 공식적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과속 및 음주운전 혐의는 공소시효가 끝났지만, 부주의한 운전에 의한 과실치사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는 2027년까지 7년이나 남아 있었다.

■ 요동치는 민심…. 총리가 진상조사 지시

사망사고를 낸 재벌 3세에 대한 태국 사법당국의 계속된 ‘면죄부’가 태국 민심을 요동치게 하고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가 "명확한 불기소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하라"고 요구하고 나섰고, 네티즌들은 SNS상에서 '레드불에 노라고 말하라'(#saynotoredbull)라는 해시태그를 퍼 나르며 비판 여론을 키웠다.


사법 정의가 훼손됐다는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의회와 정부 위원회에서 검찰과 경찰의 설명을 촉구하고 나섰고 급기야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직접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즉각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위원장으로 국립 반부패위원장이 임명됐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나빠지고 반정부 집회도 잇따르는 상황에서 자칫 이번 논란이 민심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묵묵부답이었던 검찰과 경찰도 자체 진상조사를 벌이겠다고 뒤늦게 나섰다.

■ 뒤바뀐 증언, "시속 177km 아니라 80km…. 숨진 경찰관이 잘못"

오라윳에 대한 검찰이 불기소 결정 배경에 관심이 쏠리면서 검찰이 초기 수사결과를 뒤집는 "결정적 증언"을 채택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고 직후 경찰의 초기 조사에서 오라윳이 몰던 페라리 승용차의 속도는 시속 177km.

그런데 검찰은 이후 당시 오라윳 뒤에서 운전 중이었다고 주장한 두 증인의 새로운 진술을 확보했다. 가해자 승용차의 속도가 시속 177km가 아니라 80km 이하였다는 것이다. 두 증인은 페라리 승용차가 시속 80㎞ 이하 속도로 3차선에서 달리고 있었지만, 왼쪽 차선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경찰이 갑작스럽게 차선을 바꿔 페라리 앞으로 끼어들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숨진 경찰이 잘못이고 오라윳은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  당시 증거수집팀, "CCTV 분석 결과 시속 170km 이상"

하지만 초기 수사 당시 증거수집팀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사고 직후 현장에서 100m가량 떨어진 것에 설치된 폐쇄회로 TV를 분석한 결과 당시 페라리 승용차의 속도는 시속 170km가 넘는다고 밝혔다.  당시 두 개 팀이 페라리 속도를 계산했다면서 시작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자신이 속한 팀은 시속 177㎞, 다른 한 팀은 시속 174㎞로 각각 결론 냈다고 설명했다.

오라윳 유위디아의 할아버지인 찰레오 유위디아는 가난한 중국 이민자의 아들로 교육도 많이 받지 못하고 고생하다 방콕으로 건너와 항생제를 팔다 작은 약재상을 하나 차렸고, 1976년 에너지 음료를 개발하며 거부가 됐다고 한다.

고생하며 자수성가를 한 할아버지 덕분에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오라윳. 태국 사회에서 정의와 법치라는 가치가 그의 오만방자한 행동을 이길 수 있을지 이번 사건의 결과가 주목된다. 물론 정의와 법치가 돈을 이기는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성난 여론에 의해 마지못해 지켜졌다는 것은 씁쓸한 일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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