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웠다 고생했다…바다·하늘 지킨 헬기 나란히 퇴역

입력 2020.07.3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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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우리의 하늘과 바다를 지켜온 헬기가 이틀 간격으로 은퇴했습니다. 육군의 UH-1H, 일명 휴이와 해양경찰청의 B-501호기입니다. 비슷한 외모의 이들은 모두 미국 벨 헬리콥터에서 제작됐습니다.

유달리 다사다난했던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함께한 이들. 날아다니는 역사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활약에 비해 다소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 두 헬기의 지난날을 돌이켜봅니다.

맹호부대 주둔지에서 이륙하는 베트남 전쟁 당시 휴이.맹호부대 주둔지에서 이륙하는 베트남 전쟁 당시 휴이.

52년간 대한민국 하늘 지킨 베트남 전쟁의 아이콘

굉음과 함께 줄지어 등장해 정글에 군인들을 내려놓는 헬기. 베트남 전쟁 당시 공중강습 작전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휴이는 전쟁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우리 군은 1968년 UH-1D 헬기 6대를 도입한 이후 1971년 성능이 강화된 UH-1H 헬기 도입을 시작했습니다. 모두 129대가 전력화됐습니다.

이들 헬기의 총 비행시간은 79만 2천 시간입니다. 90년 4개월을 하늘에 떠 있었던 셈입니다. 비행 거리는 1억 4,600만km로 지구를 3,649바퀴 돈 것과 같습니다.

휴이 원조집 미 육군은 2016년 말 휴이를 모두 퇴역시켰습니다. 노후화 논란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며 4년을 더 비행했습니다.

은퇴식장에 도열한 휴이.은퇴식장에 도열한 휴이.

대간첩 작전에서 대민지원까지 다재다능

휴이는 1968~69년 울진·삼척지구에 북한 무장공비가 침입했을 때 전투병력을 실어나르고 물자를 공수했습니다. 이후 수많은 훈련과 작전에 투입됐습니다.

1988년 태풍 셀마 때는 60여 대가 출동해 강풍과 폭우 속에서 3천여 명의 인명을 구조했습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성화봉송 엄호 비행을 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에도 24시간 대기를 유지했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휴이에서 기관총 사격이 있었는지는 계속 논란입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수백 개의 탄흔 대부분은 헬기에서 쏜 것이라고 감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백성묵 전 203 항공대장은 80년 5월 21일 휴이 10대를 인솔해 광주에 가긴 했지만, 사격은 없었다고 재판에서 반박했습니다.

현대사의 명암을 모두 안고 휴이는 27일 고별비행을 끝으로 전역했습니다. 노병의 자리는 국산 수리온 헬기가 이어받습니다.

고별비행을 마친 휴이에 꽃다발을 달아주는 장면.고별비행을 마친 휴이에 꽃다발을 달아주는 장면.

해양경찰청이 데려온 최초의 헬기

1953년 창설된 해양경찰이 첫 헬기를 데려오는 데는 36년이 걸렸습니다. 해경 1호 헬기 B-501호기는 1989년 9월 인천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헬기 1대 인력 4명으로 시작한 작은 항공대였습니다.

B-501호 역시 밤낮없이 우리 바다를 누렸습니다. 어제(29일) 퇴역하기까지 31년 동안 총 5,525시간을 비행했습니다. 비행 거리는 지구 30바퀴에 달하는 123만km입니다. 무사고 비행이라 더 빛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연평균 순찰 62회, 인명 구조 6회, 수색 8회의 임무를 묵묵히 해냈습니다. 수색구조와 해양경비, 오염방제 활동 등 궂은일을 마다치 않았습니다.

1992년 헬기1992년 헬기 인명 구조 훈련 중인 B-501호. 인명 구조 훈련 중인 B-501호.1992년 헬기1992년 헬기 인명 구조 훈련 중인 B-501호. 인명 구조 훈련 중인 B-501호.

특히 1993년 전북 해상에서 일어난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와 1995년 전남 해상에서 발생한 씨프린스호 해양오염사고 당시 수색·방제 작업에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다만 노후화 등의 이유로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같은 항공대의 다른 헬기들이 투입되는 걸 지켜봐야 했습니다.

해경은 1호 헬기라는 상징성을 고려해 B-501호를 전남 여수 해양경찰교육원에 전시하기로 했습니다. 방문객이 직접 만져보고 조종석에 앉아 내부도 볼 수 있으며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습니다.

B-501호가 퇴역하면서 해경에 남은 헬기는 이제 19대. 퇴역으로 인한 빈자리는 역시 수리온 헬기가 맡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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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마웠다 고생했다…바다·하늘 지킨 헬기 나란히 퇴역
    • 입력 2020-07-30 14:32:14
    취재K
수십 년간 우리의 하늘과 바다를 지켜온 헬기가 이틀 간격으로 은퇴했습니다. 육군의 UH-1H, 일명 휴이와 해양경찰청의 B-501호기입니다. 비슷한 외모의 이들은 모두 미국 벨 헬리콥터에서 제작됐습니다.

유달리 다사다난했던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함께한 이들. 날아다니는 역사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활약에 비해 다소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 두 헬기의 지난날을 돌이켜봅니다.

맹호부대 주둔지에서 이륙하는 베트남 전쟁 당시 휴이.
52년간 대한민국 하늘 지킨 베트남 전쟁의 아이콘

굉음과 함께 줄지어 등장해 정글에 군인들을 내려놓는 헬기. 베트남 전쟁 당시 공중강습 작전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휴이는 전쟁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우리 군은 1968년 UH-1D 헬기 6대를 도입한 이후 1971년 성능이 강화된 UH-1H 헬기 도입을 시작했습니다. 모두 129대가 전력화됐습니다.

이들 헬기의 총 비행시간은 79만 2천 시간입니다. 90년 4개월을 하늘에 떠 있었던 셈입니다. 비행 거리는 1억 4,600만km로 지구를 3,649바퀴 돈 것과 같습니다.

휴이 원조집 미 육군은 2016년 말 휴이를 모두 퇴역시켰습니다. 노후화 논란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며 4년을 더 비행했습니다.

은퇴식장에 도열한 휴이.
대간첩 작전에서 대민지원까지 다재다능

휴이는 1968~69년 울진·삼척지구에 북한 무장공비가 침입했을 때 전투병력을 실어나르고 물자를 공수했습니다. 이후 수많은 훈련과 작전에 투입됐습니다.

1988년 태풍 셀마 때는 60여 대가 출동해 강풍과 폭우 속에서 3천여 명의 인명을 구조했습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성화봉송 엄호 비행을 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에도 24시간 대기를 유지했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휴이에서 기관총 사격이 있었는지는 계속 논란입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수백 개의 탄흔 대부분은 헬기에서 쏜 것이라고 감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백성묵 전 203 항공대장은 80년 5월 21일 휴이 10대를 인솔해 광주에 가긴 했지만, 사격은 없었다고 재판에서 반박했습니다.

현대사의 명암을 모두 안고 휴이는 27일 고별비행을 끝으로 전역했습니다. 노병의 자리는 국산 수리온 헬기가 이어받습니다.

고별비행을 마친 휴이에 꽃다발을 달아주는 장면.
해양경찰청이 데려온 최초의 헬기

1953년 창설된 해양경찰이 첫 헬기를 데려오는 데는 36년이 걸렸습니다. 해경 1호 헬기 B-501호기는 1989년 9월 인천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헬기 1대 인력 4명으로 시작한 작은 항공대였습니다.

B-501호 역시 밤낮없이 우리 바다를 누렸습니다. 어제(29일) 퇴역하기까지 31년 동안 총 5,525시간을 비행했습니다. 비행 거리는 지구 30바퀴에 달하는 123만km입니다. 무사고 비행이라 더 빛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연평균 순찰 62회, 인명 구조 6회, 수색 8회의 임무를 묵묵히 해냈습니다. 수색구조와 해양경비, 오염방제 활동 등 궂은일을 마다치 않았습니다.

1992년 헬기1992년 헬기 인명 구조 훈련 중인 B-501호. 인명 구조 훈련 중인 B-501호.
특히 1993년 전북 해상에서 일어난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와 1995년 전남 해상에서 발생한 씨프린스호 해양오염사고 당시 수색·방제 작업에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다만 노후화 등의 이유로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같은 항공대의 다른 헬기들이 투입되는 걸 지켜봐야 했습니다.

해경은 1호 헬기라는 상징성을 고려해 B-501호를 전남 여수 해양경찰교육원에 전시하기로 했습니다. 방문객이 직접 만져보고 조종석에 앉아 내부도 볼 수 있으며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습니다.

B-501호가 퇴역하면서 해경에 남은 헬기는 이제 19대. 퇴역으로 인한 빈자리는 역시 수리온 헬기가 맡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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