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이탈’ 베트남인들은 왜 목숨 건 탈출을 했을까

입력 2020.07.3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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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에 있는 해외입국자 임시생활시설에서 무단 이탈한 베트남인 3명이 어제(29일) 모두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지난 27일 새벽 3시 10분쯤 김포시 고촌읍에 임시생활시설로 마련된 호텔 6층에서 완강기를 타고 내려와 도주한 혐의를 받는다.

지난 4월부터 국내로 들어오는 해외입국자는 모두 2주 동안 의무적으로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

무단 이탈한 베트남인들은 지난 2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왔고, `코로나19` 1차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자가격리 종료를 일주일 정도 남기고 있는 시점이었다.

일주일만 기다리면 `자유의 몸`이 되는 상황, 그런데도 그들은 왜 추락할 위험까지 감수하면서까지 `목숨 건 탈출`을 시도했을까.

베트남인들이 탈출한 김포의 임시생활시설베트남인들이 탈출한 김포의 임시생활시설

`탈출 당일` 무슨 일 있었나

지난 26일 늦은 밤, 김포의 임시생활시설 호텔 6층에선 정적을 깨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자가격리자들은 다른 격리자 방에 들어가는 게 금지돼 있지만, 베트남인 7명이 서로의 방을 들락날락하며 범행을 모의한 것이다.

이들은 부산항에서 원양 어선을 타기 위해 한국에 함께 들어왔다.

서로 알고 지내던 이들이 각방을 쓰며 격리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던 중, 누군가가 "한국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꺼냈다.

이 말에 29살 A 씨 등 3명이 탈출 결심을 했고, 나머지 4명은 숙소에 남기로 했다.

인천 서구의 원룸 건물 CCTV에 포착된 ‘무단이탈’ 베트남인들인천 서구의 원룸 건물 CCTV에 포착된 ‘무단이탈’ 베트남인들

텃밭서 참외 먹으며 버텨…조력자 있었다

A 씨에게는 영화 <기생충>의 대사처럼 `계획이 다 있었다`

한국에 사는 지인이자 베트남인 B 씨에게 연락해 거처를 마련하고, 일을 알아보기로 한 것.

하지만 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휴대전화가 없었다.

베트남에서 쓰던 휴대전화가 있었지만, 로밍을 하지 않아서 쓸 수가 없었다.

탈출에 성공한 이들은 주변 텃밭에서 참외 등을 따 먹으며 허기를 달랬고, 인근 폐가에서 14시간 정도 머무르다 지나가는 행인의 휴대 전화를 빌렸다.

B 씨와 연락이 닿은 A 씨 등 2명은 B 씨가 지내는 인천 서구의 한 원룸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지만, 또 다른 1명은 한국에 사는 또 다른 베트남 국적 지인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광주로 향했다.

김포 → 인천·광주로 이동…이틀 만에 검거

원룸에서 씻고 식사를 마친 A 씨 등 2명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자신들의 `무단이탈` 관련 기사가 TV와 인터넷에 쏟아지고, 경찰에서 추적팀을 꾸린 것을 알게 된 것.

숨어 지내기로 한 이들은 인근 텃발 움막과 텃밭 근처 폐컨테이너에서 지내다가 탈출 60여 시간여 만인 어제(29일) 오후 3시 45분쯤 경찰에 붙잡혔다.

혼자 경기도 광주로 갔던 C 씨도 4시간쯤 뒤인 어제 오후 7시 25분쯤 곤지암읍에 있는 한 제조업체 기숙사에서 검거됐다.

경찰은 베트남인들이 이동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장소의 CCTV와 주변인들을 일일이 수색하며 검거에 성공했다.

또, 조력자 B 씨의 불법 체류 사실도 확인하고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B 씨를 체포했다.

경찰은 이들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출입국 관리 당국에 신병을 인계할 예정이다.

이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베트남으로 강제출국 조치될 것으로 보인다.

`짧은 체류` 범행 동기로 작용했나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이유로 탈출을 시도했던 베트남인들,

한국에 머무는 짧은 체류 기간이 목숨을 건 탈출 동기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무단 이탈` 베트남인들은 관광·통과 비자(B-2)로 한국에 들어왔고, 비자의 체류 기간은 한 달이라 다음 달 19일 만료 예정이었다.

탈출한 베트남인들은 수중에 100달러 정도밖에 없었는데, 격리 시설을 나와 2주 동안 생활비로 쓰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더군다나 돈을 벌러 한국에 온 그들에게 아무 일도 못 하는 격리 기간은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돕거나, 국내 산업 현장에서 일하기 위해 해외에서 입국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어제(29일) "외국인 근로자들의 체류기간을 연장하고 농촌 등지에서 일할 기회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배경이다.

뒤늦게 관리 강화하겠다는 방역당국

하지만 `코로나19`의 국내 지역발생보다 해외유입 사례가 늘어나면서, 이들에 대한 엄격한 방역 관리가 우선인 상황이다.

경찰은 베트남인들이 사라진 임시생활시설에서 정문과 후문을 감시 중이었지만 탈출을 막지 못했고, `무단 이탈` 10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도주 사실을 확인했다.

이 같은 외국인 근로자의 임시생활시설 탈출 사례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1차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외국인들이 임시생활시설에 머무르지만, 잠복기가 지나지 않아 감염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방역당국은 임시생활시설 주변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고 CCTV 설치를 확대하는 방안을 뒤늦게 내놨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오늘(30일) 브리핑에서 "완강기를 없애는 건 소방법 위반 사항일 것 같다"며 "외곽 경비 강화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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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격리 이탈’ 베트남인들은 왜 목숨 건 탈출을 했을까
    • 입력 2020-07-30 15:26:17
    취재K
경기도 김포에 있는 해외입국자 임시생활시설에서 무단 이탈한 베트남인 3명이 어제(29일) 모두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지난 27일 새벽 3시 10분쯤 김포시 고촌읍에 임시생활시설로 마련된 호텔 6층에서 완강기를 타고 내려와 도주한 혐의를 받는다.

지난 4월부터 국내로 들어오는 해외입국자는 모두 2주 동안 의무적으로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

무단 이탈한 베트남인들은 지난 2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왔고, `코로나19` 1차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자가격리 종료를 일주일 정도 남기고 있는 시점이었다.

일주일만 기다리면 `자유의 몸`이 되는 상황, 그런데도 그들은 왜 추락할 위험까지 감수하면서까지 `목숨 건 탈출`을 시도했을까.

베트남인들이 탈출한 김포의 임시생활시설
`탈출 당일` 무슨 일 있었나

지난 26일 늦은 밤, 김포의 임시생활시설 호텔 6층에선 정적을 깨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자가격리자들은 다른 격리자 방에 들어가는 게 금지돼 있지만, 베트남인 7명이 서로의 방을 들락날락하며 범행을 모의한 것이다.

이들은 부산항에서 원양 어선을 타기 위해 한국에 함께 들어왔다.

서로 알고 지내던 이들이 각방을 쓰며 격리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던 중, 누군가가 "한국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꺼냈다.

이 말에 29살 A 씨 등 3명이 탈출 결심을 했고, 나머지 4명은 숙소에 남기로 했다.

인천 서구의 원룸 건물 CCTV에 포착된 ‘무단이탈’ 베트남인들
텃밭서 참외 먹으며 버텨…조력자 있었다

A 씨에게는 영화 <기생충>의 대사처럼 `계획이 다 있었다`

한국에 사는 지인이자 베트남인 B 씨에게 연락해 거처를 마련하고, 일을 알아보기로 한 것.

하지만 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휴대전화가 없었다.

베트남에서 쓰던 휴대전화가 있었지만, 로밍을 하지 않아서 쓸 수가 없었다.

탈출에 성공한 이들은 주변 텃밭에서 참외 등을 따 먹으며 허기를 달랬고, 인근 폐가에서 14시간 정도 머무르다 지나가는 행인의 휴대 전화를 빌렸다.

B 씨와 연락이 닿은 A 씨 등 2명은 B 씨가 지내는 인천 서구의 한 원룸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지만, 또 다른 1명은 한국에 사는 또 다른 베트남 국적 지인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광주로 향했다.

김포 → 인천·광주로 이동…이틀 만에 검거

원룸에서 씻고 식사를 마친 A 씨 등 2명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자신들의 `무단이탈` 관련 기사가 TV와 인터넷에 쏟아지고, 경찰에서 추적팀을 꾸린 것을 알게 된 것.

숨어 지내기로 한 이들은 인근 텃발 움막과 텃밭 근처 폐컨테이너에서 지내다가 탈출 60여 시간여 만인 어제(29일) 오후 3시 45분쯤 경찰에 붙잡혔다.

혼자 경기도 광주로 갔던 C 씨도 4시간쯤 뒤인 어제 오후 7시 25분쯤 곤지암읍에 있는 한 제조업체 기숙사에서 검거됐다.

경찰은 베트남인들이 이동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장소의 CCTV와 주변인들을 일일이 수색하며 검거에 성공했다.

또, 조력자 B 씨의 불법 체류 사실도 확인하고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B 씨를 체포했다.

경찰은 이들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출입국 관리 당국에 신병을 인계할 예정이다.

이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베트남으로 강제출국 조치될 것으로 보인다.

`짧은 체류` 범행 동기로 작용했나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이유로 탈출을 시도했던 베트남인들,

한국에 머무는 짧은 체류 기간이 목숨을 건 탈출 동기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무단 이탈` 베트남인들은 관광·통과 비자(B-2)로 한국에 들어왔고, 비자의 체류 기간은 한 달이라 다음 달 19일 만료 예정이었다.

탈출한 베트남인들은 수중에 100달러 정도밖에 없었는데, 격리 시설을 나와 2주 동안 생활비로 쓰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더군다나 돈을 벌러 한국에 온 그들에게 아무 일도 못 하는 격리 기간은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돕거나, 국내 산업 현장에서 일하기 위해 해외에서 입국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어제(29일) "외국인 근로자들의 체류기간을 연장하고 농촌 등지에서 일할 기회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배경이다.

뒤늦게 관리 강화하겠다는 방역당국

하지만 `코로나19`의 국내 지역발생보다 해외유입 사례가 늘어나면서, 이들에 대한 엄격한 방역 관리가 우선인 상황이다.

경찰은 베트남인들이 사라진 임시생활시설에서 정문과 후문을 감시 중이었지만 탈출을 막지 못했고, `무단 이탈` 10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도주 사실을 확인했다.

이 같은 외국인 근로자의 임시생활시설 탈출 사례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1차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외국인들이 임시생활시설에 머무르지만, 잠복기가 지나지 않아 감염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방역당국은 임시생활시설 주변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고 CCTV 설치를 확대하는 방안을 뒤늦게 내놨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오늘(30일) 브리핑에서 "완강기를 없애는 건 소방법 위반 사항일 것 같다"며 "외곽 경비 강화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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