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기획/부산 ‘물난리’]⑤ 위급 상황에 먹통 119…대책도 ‘흐지부지’

입력 2020.08.03 (17:21) 수정 2020.08.0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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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급한 순간 어딘가에 신고해야 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디가 떠오르시나요? 대부분 119나 112 같은 긴급 신고 전화번호가 떠오르실 겁니다.

부산 해운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구경민 씨도 그랬습니다. 지난달 23일 시간당 80mm 이상의 폭우에 구 씨의 식당도 물에 잠겼습니다. 무릎까지 찬 물에 냉장고가 물 위에 둥둥 떠다니고 식탁도 이리저리 쓸려 다녔습니다.

감전되는 건 아닌지, 가스는 괜찮은 건지 걱정이 앞선 구 씨는 119를 눌렀습니다. 하지만 신고가 폭주했다며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누르고 또 눌렀지만 신고 폭주라는 기계음만 반복됐습니다.

■ 119신고 전화 평소의 55배 폭주 … 먹통
부산에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바로 그 날, 부산 지역 119는 먹통이었습니다. 부산소방재난본부에 걸려온 신고 전화는 3,115건. 평소의 55배가 넘는 신고였습니다.

부산소방재난본부는 급하게 평소 22대를 운영하던 전화접수대를 67대로 늘렸지만 신고 전화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119가 받지 못한 신고 전화 가운데 사망자 3명이 발생한 초량 지하차도 사고 현장에서 걸려 온 전화도 있었습니다. 침수 당시 3차례 신고 전화가 왔지만 모두 바로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네 번째 만에 연결된 신고는 첫 신고 이후 40분가량 흐른 뒤였습니다,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에 나섰지만 결국 사망자 3명이 나왔습니다.


■6년 전 세운 119 먹통 대책… 결국 '흐지부지'

6년 전 그 날도 그랬습니다. 2014년 8월 25일 부산에는 갑자기 시간당 130mm의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불어난 물에 동래구 우장춘로 지하차도에는 할머니와 손녀 2명이 고립됐습니다. 동승자가 급하게 119로 전화했지만 신고 폭주로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연락이 닿았지만 이미 2명을 구하기에는 많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재난 상황에서 폭주하는 전화에 긴급 전화가 먹통이 되고, 안타까운 인명 사고까지 발생하는 일이 벌어지자 당시 소방방재청이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이른바 ‘119 비상접수 및 백업센터’를 구축해 신고 폭주에 대비하겠다는 거였죠.

갑자기 전화가 폭증해 각 시도에 있는 119상황실이 몰려든 신고를 처리하지 못하면 예비 상황실 성격의 백업센터에서 이를 분담해 처리한다는 계획었습니다. 이듬해인 2015년부터 60억 원을 투입해 센터를 구축하겠다는 게 소방방재청의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센터 구축에 필요한 예산 60억 원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소방방재청은 소방청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불과 지난해까지 ‘소방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에 담겨있던 업무에서도 백업센터 구축 계획은 사라졌습니다.


■또 내놓은 대책…출동할 인력·장비는 숙제

대신 소방청은 119에 신고가 폭주할 경우 인접한 시도에서 함께 대응하는 광역화 시스템 구축을 준비 중입니다. 운영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백업센터보다 기존의 119상황실을 비상 상황에서 통합한다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고민에서 나온 방안으로 보입니다.

소방청은 계획대로 된다면 신고 폭주 상황도 기존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고, 시도 간 경계 없이 출동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예산 마련부터가 숙제입니다. 특히 119상황실의 시스템이 지역별로 다른 곳이 많아 이를 통합하기부터 쉽지 않습니다. 소방청이 정부에 수립예산을 요청해 놓은 상태인데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더 큰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수천 건의 신고를 모두 받는다고 하더라도 정작 출동할 인력과 장비가 부족하다면 그 또한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119 불통에 대한 대책이 단순히 전화를 몇 건 더 받게 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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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난기획/부산 ‘물난리’]⑤ 위급 상황에 먹통 119…대책도 ‘흐지부지’
    • 입력 2020-08-03 17:21:17
    • 수정2020-08-03 17:21:48
    취재K
위급한 순간 어딘가에 신고해야 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디가 떠오르시나요? 대부분 119나 112 같은 긴급 신고 전화번호가 떠오르실 겁니다.

부산 해운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구경민 씨도 그랬습니다. 지난달 23일 시간당 80mm 이상의 폭우에 구 씨의 식당도 물에 잠겼습니다. 무릎까지 찬 물에 냉장고가 물 위에 둥둥 떠다니고 식탁도 이리저리 쓸려 다녔습니다.

감전되는 건 아닌지, 가스는 괜찮은 건지 걱정이 앞선 구 씨는 119를 눌렀습니다. 하지만 신고가 폭주했다며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누르고 또 눌렀지만 신고 폭주라는 기계음만 반복됐습니다.

■ 119신고 전화 평소의 55배 폭주 … 먹통
부산에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바로 그 날, 부산 지역 119는 먹통이었습니다. 부산소방재난본부에 걸려온 신고 전화는 3,115건. 평소의 55배가 넘는 신고였습니다.

부산소방재난본부는 급하게 평소 22대를 운영하던 전화접수대를 67대로 늘렸지만 신고 전화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119가 받지 못한 신고 전화 가운데 사망자 3명이 발생한 초량 지하차도 사고 현장에서 걸려 온 전화도 있었습니다. 침수 당시 3차례 신고 전화가 왔지만 모두 바로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네 번째 만에 연결된 신고는 첫 신고 이후 40분가량 흐른 뒤였습니다,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에 나섰지만 결국 사망자 3명이 나왔습니다.


■6년 전 세운 119 먹통 대책… 결국 '흐지부지'

6년 전 그 날도 그랬습니다. 2014년 8월 25일 부산에는 갑자기 시간당 130mm의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불어난 물에 동래구 우장춘로 지하차도에는 할머니와 손녀 2명이 고립됐습니다. 동승자가 급하게 119로 전화했지만 신고 폭주로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연락이 닿았지만 이미 2명을 구하기에는 많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재난 상황에서 폭주하는 전화에 긴급 전화가 먹통이 되고, 안타까운 인명 사고까지 발생하는 일이 벌어지자 당시 소방방재청이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이른바 ‘119 비상접수 및 백업센터’를 구축해 신고 폭주에 대비하겠다는 거였죠.

갑자기 전화가 폭증해 각 시도에 있는 119상황실이 몰려든 신고를 처리하지 못하면 예비 상황실 성격의 백업센터에서 이를 분담해 처리한다는 계획었습니다. 이듬해인 2015년부터 60억 원을 투입해 센터를 구축하겠다는 게 소방방재청의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센터 구축에 필요한 예산 60억 원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소방방재청은 소방청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불과 지난해까지 ‘소방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에 담겨있던 업무에서도 백업센터 구축 계획은 사라졌습니다.


■또 내놓은 대책…출동할 인력·장비는 숙제

대신 소방청은 119에 신고가 폭주할 경우 인접한 시도에서 함께 대응하는 광역화 시스템 구축을 준비 중입니다. 운영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백업센터보다 기존의 119상황실을 비상 상황에서 통합한다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고민에서 나온 방안으로 보입니다.

소방청은 계획대로 된다면 신고 폭주 상황도 기존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고, 시도 간 경계 없이 출동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예산 마련부터가 숙제입니다. 특히 119상황실의 시스템이 지역별로 다른 곳이 많아 이를 통합하기부터 쉽지 않습니다. 소방청이 정부에 수립예산을 요청해 놓은 상태인데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더 큰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수천 건의 신고를 모두 받는다고 하더라도 정작 출동할 인력과 장비가 부족하다면 그 또한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119 불통에 대한 대책이 단순히 전화를 몇 건 더 받게 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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